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15
제 215화
73장. 안녕, 클로이 – 1화
케즈만이 죽는 순간.
경험치가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며 레벨 20이 올랐다.
동시에 에서도 좀처럼 카운팅을 올리기 어려웠던 칭호도 얻을 수 있게 됐다.
[마족 사냥꾼] [서열 1위 마왕을 제외한, 서열 100위 내의 마족을 제거할 때마다 해당 포인트를 수집합니다.] [마족 사냥꾼의 수치가 1씩 오를 때마다 당사자는 제1 스탯인 마력이 200 오릅니다. 사제지간 시스템으로 연결된 제자들에게는 모두 올 스탯 5가 주어집니다.] [현재 마족 사냥꾼 : 01 / 99]‘아낌없이 주는 마족이네.’
아주 마음에 드는 칭호였다.
99명의 마족을 모두 제거한다고 가정하면 나는 2만에 가까운 마력을 올리게 되고, 제자들은 올 스탯이 500 가까이 오른다.
물론 마족 하나하나 잡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보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나뿐만 아니라, 내 제자들까지 모두 성장시킬 수 있다는 점은!
소위 ‘개꿀’ 옵션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것이었다.
바로 그때.
슈아아아아.
산산조각이 나 버린 케즈만의 몸이 갑자기 합쳐지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케즈만이 다시 부활을 하려는 건가 싶어서, 황급히 마법을 캐스팅했다.
다만 이런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한편으로 의구심을 갖기도 했다.
지금껏 에서 죽은 마족이 부활하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혹 그랬다면 애초에 성마 대전은 성립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마족을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나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합쳐진 케즈만의 몸은 완전한 모습이 아니었다.
그저 살점을 뭉쳐 겨우 눈과 코, 입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윤곽만 잡아 놓은 입체적 ‘고깃덩어리’에 가까웠다.
“…….”
모두가 침묵을 지킨 채, 그 고깃덩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상황이 종료됐기 때문이다.
케즈만이 죽자마자 마수들은 앞을 다퉈 차원문을 타고 도망갔다.
그 이후로 차원문은 서서히 단계적으로 닫히고 있는 중이었다.
“하아아…….”
멀지 않은 곳에서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채, 울고 있는 클로이가 보인다.
다행히도 클로이의 곁에는 방금 전에 달려간 헤이즈가 꼭 붙어 있었다.
그녀를 껴안으며, 함께 슬픔을 나누고 있는 모습이었다.
-제법이군, 하찮은 인간들.
그때, 고깃덩어리가 입을 열었다.
누군가의 모습을 흉내 내서 만든 덩어리 같기는 하지만, 정체를 알 수는 없었다.
나는 날이 잔뜩 선 말투로 고깃덩어리의 말을 받았다.
“죽은 마족의 살덩이를 빌려서 말을 하는 너보다는 고귀한 것 같은데?”
-나는 마왕이다. 너희들처럼 하찮은 미물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존귀한 몸이지.
그 순간,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표정이 변하지 않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그래서?”
-그래서라? 여유가 넘치는군. 그래, 네 녀석이 나를 따르는 추종자들을 무참히 제거하고 있는 학살자라지?
“훗, 알아주니 고맙네.”
나는 피식 웃었다.
정말 고마워서가 아니다.
본격적인 활동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내 존재를 알아본 것이 신기해서였다.
-우리 마족은 천 년 전의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졌고, 완벽해졌다. 너희 인간들이 아무리 발악한다고 한들, 우리의 숙원을 막을 수는 없다.
“그 천 년 동안 인간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어.”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맞는 말이었으니까.
용마 대전 당시에는 작은 힘조차 보탤 수 없을 정도로 약했던 인간은 이제 거대한 문명을 이루었다.
하물며 나와 같은 ‘변종’ 마법사도 등장하지 않았는가? 그때와 다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나의 충실한 종이 될 것을 약속한다면……. 너희들 모두에게 영생과 부귀영화, 그리고 압도적인 힘이 선물로 주어질 것이다.
“그다음은? 마계의 왕좌라도 하나씩 나눠 주는 거야?”
-하찮은 네놈들에게 이 정도의 은혜를 베풀어 주는 것만으로도 응당 감사해야 하거늘.
“하긴. 그렇게 힘을 조금 나눠 주고, 오늘 우리 앞에서 벌레처럼 죽어간 마수들처럼 희생을 강요하겠지. 그렇지?”
-그것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다. 희생이 아니지.
“그래? 그럼 네가 직접 와서 네놈의 가치를 증명해 봐. 차원문 너머에서 입만 털지 말고, 직접 붙잔 말이다.”
화르르륵! 콰앙!
나는 있는 힘껏 만들어 낸 불길을 고깃덩어리에 던져 버렸다.
그러자 고깃덩어리 속에 새겨진 마왕 얼굴의 형상이 잔뜩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협상 결렬인가?
“인간을 비롯한 모든 종족은 그 존재만으로도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야. 하지만 너희 마족들은 달라. 태생부터 모든 것이 잘못된, 신의 실수야. 쓰레기고, 폐기물이지.”
-뭐라고?
까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평생을 살아도 들어 보지 못한 모욕을 인간에게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하하! 하하하하!”
그 통쾌함 때문일까?
지켜보던 라키스가 허리까지 힘껏 젖혀 가며 웃었다.
나에 대한 깊은 동조를 웃음과 행동으로 드러내 보인 것일 터이다.
“하하하!”
웃음은 마치 전염병처럼 번져 갔다. 이어서 엘라도, 레나도, 미아도 웃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이 유쾌해서는 절대 아니었다.
당장 옆에 보이는 클로이가 소중한 오빠 둘을 잃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모두가 이 상황에서 주눅 든,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내게 힘을 보탠 것이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네가 직접 와. 입만 털지 말고.”
-마지막으로 제안하지. 내 충실한 종이 될…….
“응. X 까.”
나는 욕설로 쿨하게 협상의 결렬을 알리고는.
퍼어엉!
7클래스 익스플로전 마법을 이용해 살점을 터뜨려 버렸다.
애초에 마왕의 현신이 아니라, 살점에 남은 마기를 빌려 잠시 메신저의 역할을 하게 만든 것이라 약하기 그지없었다.
슈르르륵.
이어서 틈을 점점 좁혀 가던 아웃브레이크의 차원문도 완전히 종적을 감췄다.
생각지도 않게 벌어졌던 마왕, 마수와의 전투는 그렇게 끝이 났다.
승리했지만,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오라버니…….”
깊은 슬픔에 빠진 클로이와 그녀의 가족들 때문이었다.
* * *
자레드는 이번 일로 인해 모두에게 생겨났을 마왕, 마족에 대한 호기심보다.
클로이를 비롯한 그녀의 가족들이 안정을 되찾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지난 수백 년간 외란은 물론이거니와 내란조차 없었던 그레이 엘프였기에 이번 일로 인한 충격이 아주 컸다.
엘프 대장로의 수장인 오스테가마저도 처음에는 중심을 못 잡고 흔들렸을 정도니까.
어쨌든 왕의 자리는 오랜 시간 비워 놓을 수 없는 일이기에 대장로들은 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그 자리에는 특별히 자레드도 참석할 수 있었다.
이번 일로 그레이 엘프 모두에게 큰 도움을 준 자레드에 대한 감사와 신뢰의 의미에서였다.
대장로 회의에서는 만장일치로 다음 후계자가 결정됐다.
새 왕위에 오를 엘프는 이번 일로 목숨을 잃은 왕과 둘째 오빠를 제외하면 형제자매 중 첫째인 클로이였다.
왕위는 무조건 남성 혈족만이 계승해야 한다는 편견이 없는 그레이 엘프이기에 가능한 결정이기도 했다.
‘결국은…… 역사대로 됐어.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침묵의 여왕, 클로이.
에서 스토리의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그레이 엘프의 여왕.
그녀는 성마 대전이 발발한 시점에서 5년 뒤, 여왕의 자리에 오른다.
그 전에 지금처럼 트란퀼루스를 포함한 오빠 둘을 잃는 일이 있었다.
시기와 방법이 다르긴 했지만, 결국 두 오빠를 잃었다는 역사는 변하지 않은 것이다.
‘내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레이 엘프는 신경 쓰지 못한 것이 사실이니까.’
나는 이번 일이 유의미한 변곡점을 미리 만들어 두지 못해서 일어난, 그레이 엘프가 겪을 수밖에 없었던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즉, 성마 대전을 ‘재앙’으로 마주하게 될 스토리와 동일시하는 것을 경계했다.
냉정하고, 차갑게 생각했다.
여전히 미래는 유의미하게 바뀌어 가고 있는 중이며, 그 와중에 불의의 일격을 당해 슬픔과 마주하게 된 것뿐이라고 말이다.
어쨌든 대장로 회의가 마무리되고.
대장로 오스테가가 차분한 목소리로 내용을 정리해 나갔다.
“클로이 님을 새로운 여왕으로 추대하겠습니다. 아울러 트란퀼루스 대왕의 국장은 우리 그레이 엘프의 오랜 역사에 따라, 간소히 치를 예정입니다.”
그레이 엘프다운 결정이었다.
“이번 일로 큰 충격을 받으셨을 여왕 폐하의 모든 자매와 모후(母后)의 안정을 위해, 우리 장로들이 최선을 다하도록 합시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울러 이 자리를 빌려 그레이 엘프를 위해 희생을 마다 않고 용감히 싸워 주신 크리비아 제국의 모든 일원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대왕께는 진심으로 고개 숙여 숭고한 희생에 거듭 감사함을 전합니다.”
오스테가를 시작으로 모든 대장로들이 자레드를 향해 일제히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진심이 담긴 감사 인사였다.
자레드가 없었다면, 그 누구도 케즈만을 제대로 막아 낼 수 없었을 것이기에.
그렇게 됐다면, 그레이 엘프는 지금 후계 걱정이 아니라 멸족을 걱정해야 했을 판이었다.
그 정도로 케즈만이 보인 힘은 압도적이었고, 마수들의 전투 능력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회의는 끝났다. 전후 수습에 대한 계획도 세워졌다.
그레이 엘프는 자레드에게 손을 벌리지는 않았다.
자레드 역시 괜한 월권(越權)이 되지 않도록 조용히 그들의 결정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레이 엘프는 그래도 될 만큼, 유구한 세월 동안 경험과 지식을 축적해 온 고귀한 존재였기에.
* * *
구르르릉. 쏴아아아.
오빠를 잃은 클레이의 슬픔을아는 듯, 하늘에서도 장대비가 쏟아져 내렸다.
방금 전까지 자레드가 위로하고 갔지만, 클레이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때때로 자신을 피도 눈물도 없는 차가운 성격의 소유자로 여겨 왔던 클로이였다.
감정 표현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던 그녀였기에.
그래서 지금껏 자레드에게 자신의 마음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하지만 오빠 트란퀼루스의 죽음은 그런 그녀로서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안겨 주었다.
그래서 울고, 또 울었다.
대장로 회의에서 새 여왕으로 클레이를 추대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
예전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어머니.
그리고 아직 어린 소녀나 다름없는 동생들이 클로이는 마음에 걸렸다.
마냥 슬퍼만 하기에는 그녀가 짊어지고 나가야 할 짐의 무게가 가볍지 않았다.
“하아아…….”
클로이가 목걸이를 움켜쥐고는 다시금 굵은 눈물을 쏟아 냈다.
자레드가 선물로 줬던, 그래서 무엇보다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선물이었다.
마음의 정리가 필요했다.
새로이 등극하게 된 그레이 엘프의 여왕으로서,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의 감정들과 이별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애틋했던 사랑의 감정이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