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2
제 22화
8장. 아티팩트 사냥꾼 – 2화
“이쯤이었나?”
델루크의 은신처가 있는 카스가드 설산에 도착한 자레드는 설산 초입의 동굴에 들어가서, 열심히 벽에 몸을 들이밀고 있었다.
델루크의 아지트는 설산 정상에 있고, 거기까지 가기 위해서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야 했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정공법’이었다.
문제는 입구에서부터 정상에 오르기까지 정말 많은 트랩이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미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입구에서부터 얼어붙은 시체들이 한가득했다.
그중에는 설산에 델루크가 사는 것도, 함정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들어왔다가 불귀의 객이 된 사람도 꽤 있을 터였다.
“정말 아주 작은 틈이어서 찾기가 좀 힘드네.”
자레드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라이트 마법으로 겨우 앞을 밝히며, 손이 닿는 대로 벽면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이유는 하나.
여기에 비밀 통로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설산 초입에서 델루크의 방으로 이동하는 직통 비밀 통로가.
그것은 에서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버그 중의 하나였다.
전생의 그는 유저들에게 절대 알리지 않고, 혼자서만 수년 동안 이득을 취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에 정공법 공략도 섞어서 도전함으로써 교묘하게 운영진의 모니터링도 피했다.
다른 유저들은 정공법으로 입구에서부터 숱하게 죽어가며 이곳을 공략했다.
하지만 그는 비밀 통로를 이용해 방으로 들어갔다.
열이면 열, 이것은 버그였다.
일종의 맵 버그 같은 것이다.
내부 구조의 코드 설계가 완벽하지 않은 탓에 작은 결함이 만들어 낸 스크래치 같은 것이었다.
자레드가 확신할 수 있던 것은 델루크 본인도 전혀 모르는 통로였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쪽 통로로 접근했을 때, 델루크는 자신의 아티팩트가 전부 도둑을 맞을 때까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동굴 안의 벽을 손으로 부드럽게 문지르며, 특별한 입구를 찾기를 30분.
‘찾았다!’
드디어 손끝에 감각이 왔다.
딱딱한 내벽으로 가득해야 할 동굴에 유독 스펀지처럼 푹푹 손이 들어가는 부위가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주변의 벽과 색깔과 질감이 같다.
게다가 구멍이 뻥 뚫린 것이 아니라 벽으로 되어 있어, 함부로 여기로 달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문제는 이 벽이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는 일종의 워프 게이트라는 것이다.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9와 3/4 승강장처럼 말이다.
“후우, 좋아.”
자레드가 심호흡을 하며, 최대한 뒤로 물러섰다. 어설픈 속도로는 통로에 빨려 들어가지 못한다.
정말 벽을 내 몸으로 부수겠다는 각오로 전력 질주를 해야 했다. 망설임 없이.
-자레드? 너 설마, 지금 여기로 뛰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잘 봐. 이건 벽이야. 벽이라고!
“알아. 아니까, 달리는 거야.”
-자레드! 위험하다고!
이자벨라가 정면에서 양옆으로 손을 휘저으며 자레드의 돌진을 막으려 했다.
어느덧 이런저런 정이 들어 버린 이자벨라는 자레드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것이 즐거웠다.
한데 여기서 죽어 버리면, 삶의 낙이 사라질까 두려웠다. 자레드의 곁을 떠나고 싶지도 않았고.
“궁금하면 따라와. 너도 들어올 수 있을 테니까.”
-뭐?
“간다! 따라오든지, 여기서 기다리든지!”
헤이스트 마법을 이용해 가속력을 최대로 높인 자레드가 전력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쿠아아아아!
순간 파공음이 크게 일 정도로 자레드의 몸이 맹렬하게 동굴 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꺄아아악!
이자벨라가 비명을 질렀다.
이대로 가다가는 눈앞에서 자레드의 머리가 산산조각 나서 즉사하는 꼴을 목격할 판이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쑤우우욱!
-응?
자레드가 없어졌다.
깔끔하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진짜야? 이런 통로가 있단 말이야? 무슨 소설도 아니고 이게 말이 돼?
이자벨라가 한참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사라진 자레드의 빈자리를 쳐다보았다.
믿기지 않았다.
자레드는 자신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 * *
벽을 통과하자마자 내가 발을 내디딘 곳은 다름 아닌 델루크의 비밀 방이었다.
델루크가 머무는 방은 여기서 50m 정도 떨어져 있고, 비밀 방은 별도로 분리된 공간에 있었다.
‘반갑다, 아공간 아티팩트야. 게임이 아닌 실제라 인벤토리가 없어서 꽤 불편했는데, 너를 이렇게 만나네.’
나는 먼저 아공간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아티팩트를 주워 들었다.
[탐욕의 장난꾸러기, 멜트] [분류 등급 : 4성] [옵션 1 : 가로, 세로, 높이 1m로 구성된 정육면체의 아공간을 소유합니다.] [옵션 2 : 아공간의 크기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10000G를 멜트에게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투자할 경우, 아공간의 크기는 가로, 세로, 높이 10m로 늘어납니다.] [옵션 3 : 물건 보관과 소환에는 3초의 시간이 소요됩니다.]이것은 멜트라는 장난꾸러기 아이가 만든 ‘아공간 가방’이라는 설정의 아티팩트다.
스탯을 올려 주는 옵션이 없는데도 4성의 판정을 받은 이유는 구하기가 어려워서다.
실제로 에서도 확장 인벤토리 정도의 개념은 있었지만, 돈만 있다면 무한히 공간을 확장할 수 있는 아공간은 귀했다.
모든 유저를 통틀어도 소유자 비율이 0.001%도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반지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손에 끼우는 순간 옵션 1번에 있는 아공간을 획득한다.
여기서 문제는 초기 1m짜리 아공간은 다수의 아티팩트를 보관하기에는 매우 부족한 크기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확장하자니 10000골드라는 거액을 사용해야 한다. 지금으로선 절대 무리인 비용이다.
‘사람의 머리는 항상 시스템을 능가했지. 그런 점에서 나도 참 악랄하긴 악랄했어.’
익숙한 꼼수가 떠오른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분명 초기 1m짜리 공간으로는 이 방에 있는 아티팩트를 담아 넣기에는 태부족이다.
하지만 딱히 의미가 없어 보이는 3번 옵션이 꼼수의 핵심이다.
바로 아공간에서 물건을 꺼낼 때와 물건을 넣는 순간, 그 3초의 시간 동안 과연 물건이 어디에 있냐는 것이다.
시스템은 이것을 아공간도, 외부도 아닌 중간의 경계에 있는 것으로 계산한다.
즉,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통로 어딘가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이용해 적재 용량 이상의 보관품을 꽤 욱여넣었다.
아공간을 확장할 돈이 없어 종종 써먹은 꼼수였던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아공간의 용량이 꽉 찼을 때, 물건 하나를 소환하는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3초 안에 잽싸게 물건을 보관하는 명령을 내린 뒤, 아공간을 강제로 닫아 버린다.
그러면 중간에 낀(?) 형태로 꼼수 보관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억지로 아공간을 열고 물건이 나오거나, 혹은 사라지는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
‘좋아, 그럼 보관용 아공간은 확실하게 확보했고!’
아공간이 생기니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약탈의 시간이다.
* * *
반지.
[성녀 이프노스의 반지] [분류 등급 : 2성] [옵션 1 : 지혜 50 증가] [옵션 2 : 마력 50 증가] [옵션 3 : 소모 마력의 2배를 사용해서, 마법 공격에 신성력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목걸이.
[대현자 고르자스의 목걸이] [분류 등급 : 4성] [옵션 1 : 마력 100 증가] [옵션 2 : 1클래스의 마법은 마력을 전혀 소모하지 않습니다.] [옵션 3 : 식욕, 수면욕, 성욕이 완벽하게 통제됩니다. 먹지 않고, 자지 않고, 하지 않아도 건강한 신체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귀걸이.
[여왕 마리엘라의 귀걸이] [분류 등급 : 2성] [옵션 1 : 매력 100 증가] [옵션 2 : 마력 50 증가] [옵션 3 : 치명적인 유혹 – 상시 상대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향기가 귀걸이에서 발산됩니다.]자레드는 이렇게 세 개의 아티팩트를 즉각 착용했다.
공통적으로 마력을 모두 올려 주는 데다가 지혜와 매력 스탯을 보조해 주는 아티팩트라 스펙업에 매우 유용했던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마력 200, 매력 100, 지혜 50의 이득을 봤다.
단순 레벨업으로 따지면 110레벨의 이득을 본 셈이었다. 그만큼 지혜의 포인트 교환비가 괴랄하기 때문이다.
‘보통 지혜가 100단위로 오를 때마다 기대할 수 있는 최대 대미지 값이 2배 상승했지? 괜찮군. 아티팩트 옵션이 전부 다 좋아.’
자레드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 외에도 10개의 아티팩트를 빼돌렸지만, 부위가 겹치거나 바로 용처를 찾을 수 없어 아공간에 꼼수로 밀어 넣어 두었다.
‘이제 잠자는 늙은 리치의 머리털을 뽑을 차례인가?’
파앗.
자레드가 일찌감치 오른손 위에 패럴라이즈 마법을 캐스팅했다.
성녀 이프노스 반지의 3번 옵션을 따라, 마력 소모량 2배를 활용해서 만든 성(聖) 패럴라이즈 마법이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비밀 방에서 밖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스르륵.
삐걱거리는 소음 없이 조용히 문이 열렸다.
그사이, 같은 방법으로 뒤늦게 들어온 이자벨라가 합류했다.
그녀는 심각한 분위기를 빠르게 읽었는지, 조용히 자레드의 뒤를 따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델루크는 분명 늙고 힘 빠진 리치이긴 하지만, 어쨌든 기본 베이스는 흑마법사다.
게다가 이 시점에서는 수준도 6클래스로 낮지 않다. 클래스 자체만 놓고 보면, 자레드가 열세였다.
그래서 조기에 승부를 봐야 했다. 신성력을 떡칠한 마법으로 조기에 폭딜을 퍼부어, 녀석의 목숨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델루크를 죽이면, 놈에게서 델루크의 팔찌를 얻을 수 있지. 레벨이 낮은 내가 요령을 부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티팩트야.’
자레드는 델루크의 팔찌를 떠올렸다. 상대보다 자신의 레벨이 낮을 경우, 근력과 지혜 스탯을 2배 뻥튀기해 주는 아티팩트였다.
델루크의 팔찌.
레벨업이 아닌 스탯 성장에 집중하는 자레드에게는 무조건 필요한 아티팩트라고 할 수 있었다.
‘영지가 아무리 부강해져도, 영주가 그만한 그릇이 되지 못하면 그 영지는 언젠간 멸망하기 마련이니까.’
자레드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에서 난립(亂立)했던 수많은 유저 영주들과 그들이 마주해야 했던 새드 엔딩들을.
비극으로 끝나는 그들의 결말을 보면서, 자레드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절대 자신의 힘을 키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게임에서도 수도 없이 다짐했던 것을 현생이라고 잊을 리 없었다.
‘반드시 이 세계의 주인공이 되겠어!’
자레드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살기 어린 안광이 눈에서 강렬히 폭사되며, 날카롭게 아지트 전체를 훑었다.
바로 그때.
“스산하군. 어디서 찬바람이 들어오는 건가.”
“…….”
직각으로 꺾여 있는 우측의 통로에서 낮게 깔린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델루크다. 리치 특유의 마기가 가감 없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샤아아아.
자레드의 오른손 위에서 성 패럴라이즈 마법의 구체가 거칠게 뛰쳐나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패럴라이즈 마법은 파이어볼과 같은 속성 원소형 마법이 아니었기 때문에, 기척을 얼마든지 완벽하게 숨길 수 있었던 것이다.
‘1분, 아니 30초. 그 안에 끝낸다. 델루크가 가장 약한 시간에!’
자레드가 숨을 죽이고, 조용히 기다렸다.
그리고.
저벅- 저벅- 저벅-.
이윽고 델루크의 발걸음이 가까워지더니,
자글자글한 주름이 가득한 얼굴이 기다리고 있던 자레드의 눈앞에서 선명히 모습을 드러냈다.
“죽어!”
자레드가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