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25
제 225화
76장. 의외의 전쟁 – 3화
“나가 봐.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나 건강해. 이제는 매일매일 몸에 좋은 영양제도 챙겨 먹고 있고!”
“알겠습니다, 단주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알렉스가 자리를 비웠다.
그가 나가자마자, 아르케네스는 바로 서류에 시선을 돌렸다.
특별히 이종족들의 동향까지 파악하게 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었다.
지난번 그레이 엘프의 터전에서 벌어진 사건 이후, 아르케네스도 ‘마왕’이라는 존재에 대해 큰 관심을 갖게 됐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암흑 교단과의 연결 고리를 알게 됐고, 마도국의 본질을 알게 됐다.
그래서 냉정하게 생각했다.
이웃한 그레이 엘프의 땅에 마족을 소환하는 술식을 은밀히 박아 놓았던 그들이라면.
혹시 다른 종족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그녀의 추론이었다.
[그렉스 오크. 최근에 신데르스 왕국과의 접경지대로 무리에서 낙오된 5마리의 오크가 접근했다가 폭발한 지뢰에 의해 즉사.] [매드 트롤. 한 마리가 접경지대에서 난동을 피우다가 현장에 출동한 신데르스 왕국군에 의해 처치됨. 홀로 다섯 개의 지뢰를 몸으로 파괴한 것으로 알려짐.]“확실히 뭔가 이상해…….”
접경지대에 몬스터가 나타나는 일이야 종종 있는 일이다.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간 신데르스 왕국의 눈치를 보느라 무척이나 웅크리고 있었던 그들이, 유독 최근에 활발하게 움직이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수상했다.
“혼자 끙끙댈 게 아니라, 혼이 나더라도 폐하께 말씀드리자.”
홰액!
아르케네스가 서류들을 모두 챙겨 들었다.
자신이 백날 고민해 봐야, 좀 더 확실한 통찰력을 발휘하는 자레드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정답은 하나뿐.
자레드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 * *
“폐하, 제가 혹시 필요 이상으로 넘겨짚고 있는 것이라면 따끔하게 혼을 내 주세요.”
“음……. 확실히 아키, 네가 가져온 서류들을 보면 그들의 동향에 변화가 생긴 게 맞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이상한 점이 많네.”
“그렇죠, 폐하?”
“자료를 정말 꼼꼼하게 조사했구나. 사소한 정보들까지 놓치지 않고 모두 모아 놨어.”
“그레이 엘프의 땅에서 있었던 그날의 사건 이후로 의심을 하면서 보게 된 사실들이 많아서요.”
“잘했다. 내가 하지 못한 일을 네가 대신 해 주고 있었구나. 정말 고마워.”
나는 마주 앉은 아키의 어깨를 툭툭 쳐 주며, 다시금 서류 내용을 눈에 담았다.
지능이 낮은 개체를 흑마술, 흑마법 따위를 사용해서 조종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에서 마도국과 암흑 교단은 이런 식으로 이종족을 조종하여 플레이어들을 괴롭혔다.
자주 희생을 당한 것은 역시 고블린, 오크, 트롤의 저(低)지능 3대장들이었다.
‘불안한 느낌을 그냥 지나치면, 보통 비수가 되어 날아오지.’
직감에 모든 것을 의존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직감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아울러 직감을 확인하는 데 적은 기회비용만 투자해도 된다면, 보통 투자해 보는 것이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바로 확인하는 게 좋겠군.”
“예?”
“텔레포트가 있잖아. 바로 놈들의 터전까지 날아가서 확인할 수 있어.”
“하지만 폐하, 혹시라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그렇다면 오히려 더 잘된 거지. 아키, 네가 내게 조기 경보를 해 준 셈이 되니까.”
“아…….”
“이 통신석을 가지고 있도록 해. 아무 일도 없다면 조용히 돌아오겠지만.”
“그렇지 않다면요?”
“네게 통신석으로 조금 다른 말을 하게 될 거야. 라키스 경에게 가서 즉시 급파할 수 있는 팀을 꾸리라고 말이야.”
순간 동공이 확대되는 아키의 모습이 차분한 내 목소리와 달리,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아마 아키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설마 아무리 마도국과 암흑 교단이 독한 놈들이라 해도, 다른 종족들의 힘을 빌려 쓸까, 하고.
애석하게도 그렇다.
놈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부모나 자식조차 제물로 삼아 인신 공양을 하는 정신 나간 놈들도 있는 판국에, 이런 일쯤은 예사다.
“폐하, 조심하셔야 해요!”
“걱정 마. 난 벽에 똥칠할 때까지 열심히 살 거다.”
우우웅!
나는 바로 초장거리 텔레포트를 위한 마법을 활성화했다.
소환의 역장 너머로 두 손을 꼭 모은 채, 기도하듯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키가 보인다.
방금 한 말은 농담이 아니다. 정말 오래 살고 싶다!
전생에 서른네 살에 요절(夭折)을 해서 그런지 더욱 장수에 대한 갈망이…… 크다.
“헤이즈와 함께 있어! 아마 곧 네가 마실 차를 갖고 올 테니까!”
“알겠어요!”
파아앗!
이윽고 주변 공간이 일그러지며, 내 몸은 황궁에서 남쪽 저 멀리 산속으로 이동했다.
* * *
척척척! 척척척!
…….
“뭐야, 이거.”
신데르스 왕국 남부에 위치한 부스토레 산맥으로 이동을 한 내 눈에 보인 것은 영 달갑지 않은 광경이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하늘에 아주 얇은 초승달만이 걸린 암흑 속에서 대규모의 몬스터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망할 X들.”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고도를 낮춰 좀 더 자세하게 내려다보니, 거의 ‘전부’라고 해도 될 정도의 대규모가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의 종족으로 구성된 부대가 아니었다.
그렉스 오크, 매드 트롤, 아스 고블린이 혼합된 부대였다.
세 종족은 신데르스 왕국이라는 공통의 적을 두고 있긴 하지만, 절대 서로 간의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
한데 저렇게 혼성 부대를 만들었다는 것은 무조건 외력(外力)이 작용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모두 입에 재갈을 물고 있었고, 덕분에 무장한 갑주의 금속성만이 들렸다.
“…….”
나는 일단 대응을 아꼈다.
당장에 바로 큰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좋든 싫든 저 몬스터 혼성 부대는 무조건 신데르스 왕국의 지뢰 지대를 넘어가야만 한다.
예전에 우리 제국으로부터 지뢰를 거의 쓸어 담듯 사들인 이즈엘이 만든 ‘죽음의 방어선.’
그래서 자국민의 출입이 불가능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국을 수호하겠다는 일념으로 만든 마지노선이었다.
내가 판단하기에 저 몬스터 군단은 지뢰 제거에 파리 목숨처럼 활용될 확률이 99.9%였다.
어차피 이성을 거세당한 상태일 테니, 자신들이 묏자리를 찾아 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겠지.
파아아앗!
나는 허공에서 플라이 마법을 최대치로 가속시켜, 남쪽으로 좀 더 움직였다.
텔레포트라는 간단한 방법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만약 여기보다 더 후방에 렌투스 제국군이 있다면…… 텔레포트를 감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조기에 껄끄러운 전투를 치르게 될 수도 있다.
내가 일반 마법사의 힘을 상회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은 맞지만, 어쨌든 무적은 아니니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좀 더 남쪽으로 이동했을까?
혼성 몬스터 군단과 40km 정도 거리를 둔 지점에 도착했을 때.
“……정신 나간 X들. 자기네들 전쟁에 암흑 교단과 마도국의 힘을 끌어들였어?”
나는 진군 중인 렌투스 제국군을 볼 수 있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이토록 많은 이종족을 세뇌시키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힘을 가진 존재가 움직여야 한다.
나는 유력한 용의자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카코 교단의 새 교주 또는 마탑주 이카젤라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전략적 필요성에 따라 렌투스 제국과 데스먼드 제국이 손을 잡았다는 얘기가 된다.
나는 상공으로 좀 더 높이 날아오른 다음, 구름 위로 모습을 숨겼다.
그리고 뮤트 마법을 이용해 주변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약간의 소음도 모두 차단했다.
이어서 아공간에서 꺼내 든 것은 통신석이었다.
신데르스 왕국의 국왕 이즈엘과 이어지는 직통 라인이었다.
* * *
“그게 사실입니까?”
-제가 뜬금없이 대왕께 농이나 할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이건 말도 안 되는……. 몬스터를 그런 식으로 사용한다면, 지뢰 지대는 무력화가 될 겁니다.”
-대왕, 당장 왕국의 모든 전력을 남부로 급파하셔야 합니다. 어차피 렌투스 제국을 제외하면, 접경한 인접 국가는 우리 크리비아 제국만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무조건 믿으라고 말씀드리진 않겠습니다만, 지금은 눈앞의 적에 확실하게 대응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군 장성을 소집하고 대응책을 강구하지요.”
-시간이 급합니다. 어서요!
자레드와의 짧은 교신이 끝나자, 이즈엘은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멍한 상태로 있었다.
내심 남부에 만든 지뢰 저지선을 철석같이 믿었던 이즈엘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군의 심층 연구에 따르면, 이곳을 렌투스 제국이 돌파하려면 최소 5만의 병사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저지선을 구축할 때, 국력이 휘청거렸을 정도로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된 방어책이었다.
한데 렌투스 제국이 의외의 방법을 쓴 것이다. 이대로라면 몬스터들의 하찮은 목숨과 저지선을 교환해야 하는 판국이었다.
자레드의 말대로 크리비아 제국과의 접경지대에도 경계를 위한 전력은 존재했다.
크리비아 제국을 믿지 못해서라기보다 국가를 경영하는 차원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대응이었다.
아무리 우호 국가라도 하더라도, 언제든 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레드의 말에 따르면, 몬스터 군단은 시작에 불과하고 그 뒤에 렌투스 제국군이 있다고 했다.
이러면 어설프게 병력을 동원하는 것으로는 사태를 수습할 수가 없다.
괜히 렌투스 제국의 황제와 갈라딘 공작을 ‘전쟁광’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만한 야심을 가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엄청난 규모의 군대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신데르스 왕국도 작정하고 전력을 총동원하지 않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남부를 잃을 위험이 있었다.
곡창지대인 남부를 잃으면, 사실상 왕국은 빈껍데기만 남는다.
그 정도로 남부 지대의 가치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했다.
“망할……!”
쾅!
열이 뻗친 이즈엘이 책상을 힘껏 내리쳤다.
난세의 수많은 정복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평화를 겨우 유지하나 싶었는데…… 이런 사달이 난 것이다.
* * *
“음.”
아키에게도 연락을 마쳤다.
지금 당장 우리 제국도 무턱대고 대병력을 파견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는 지원할 병사가 이동해야 할 거리가 엄청나기도 했고.
대규모 텔레포트 마법진으로는 하루에 몇백 단위의 인원을 옮기는 것은 가능하지만, 대병력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디미오스 마법사단과 아그레시오 기사단의 정예만 편성하도록 지시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고급 전력을 먼저 동원하고, 그다음에 일반 병력의 파견을 고민하는 것이 옳다고 봤다.
“문제는 시간인데.”
아무리 신속하게 준비하고,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해서 움직인다고 해도 걸리는 시간이 있다.
나는 빨리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한나절 이상은 걸릴 것으로 보았다. 즉, 동은 터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때까지 여기서 시간을 끌 수 있는 사람은…… 전장에 홀로 서 있는 나만이 유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