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34
제 234화
78장. 다섯 번째 변곡점 – 4화
자레드와 이즈엘 사이에서 항복에 대한 논의는 좀 더 빠르게 진행됐다.
자레드는 단계적인 병합안을 제시했다.
군사적 관할권은 통합 크리비아 제국에 편입시키되, 행정적 자치권은 이즈엘을 수반(首班)으로 해서 일정 기간 동안 이어 가도록 말이다.
이는 연착륙을 통해 자연스럽게 신데르스 왕국을 크리비아 제국으로 편입시킴으로써 혹시나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지 모르는 왕국민들의 반감을 줄여 보겠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이즈엘은 동의했고, 자레드는 진심으로 이즈엘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항복을 하는 사람과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친숙하고 친근한 모습이어서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둘 사이에 그런 대화가 오가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다음.
자레드는 성마 대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즈엘이 믿든 믿지 않든 그것은 전혀 상관없었지만, 자신이 왜 이토록 정복 전쟁에 열을 올렸는지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와 닿지 않아 밋밋한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즈엘의 모습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사실…… 암흑 교단에 대해서는 마이라가 지난번 왕자의 난 이후로 많은 연구를 해 왔습니다.”
“마이라 공주께서 말입니까?”
“예. 다만 조사와 연구의 사실은 대외적으로는 비밀로 해 왔습니다. 왕실까지 침투했던 놈들이 아닙니까. 극비를 유지한 채로 많은 조사를 해 왔지요.”
“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암흑 교단의 실체에 대해서 깊은 고민과 연구를 한 것은 자신과 교황 아르모니아 17세 정도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즈엘에게서도 비슷한 말이 나오니 기뻤다.
홀로 미래를 대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선대 대왕께서는 각 국가에 제법 많은 눈을 심어 두셨었지요. 군인의 이름으로, 혹은 궁녀나 호위 기사의 이름으로.”
“그건 처음 듣는 얘기군요.”
“외국의 정보와 동향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셨던 분이니까요. 어쨌든 그러던 와중에 데스먼드 제국의 실체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마도국 정도가 아니라, 아예 뼛속까지 암흑 교단과 하나가 된 국가라는 것을요.”
자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즈엘이 말을 계속 이어 갔다.
“그리고 대대적인 인신 공양이 시작됐습니다. 불과 며칠 전부터 시작된 일입니다. 한동안 잠잠했던 지하 제단에 암흑의 불길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암흑의 불길?”
“그들은 그것을 그렇게 부른다고 합니다. 소환 의식을 더 강화하는 의미로 그렇게 말하는 듯하더군요.”
“…….”
그것은 바로 렌투스 제국까지 무너지면서 직접적으로 크리비아 제국과 국경을 맞닿게 된, 데스먼드 제국의 결정이었다.
고아, 병든 노인, 노숙자 등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이 소리 소문 없이 암흑 교단에 의해 붙잡혀 가고 있었다.
‘에서 암흑 교단이 인신 공양을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게 단순한 의식 정도가 아니라 마왕 현신을 앞당기기 위한 포석이었단 말인가?’
자레드가 양미간을 찌푸렸다.
점점 줄어드는 성마 대전까지의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는 마당에, 이대로라면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때, 이즈엘이 말을 덧붙였다.
“저는 안타깝게도 어렸을 때부터 책을 벗처럼 여기고 산 터라, 무인으로서의 자질은 꽝입니다. 하지만 마이라는 다릅니다. 부족한 오빠를 지키겠다고 꽤 오래전부터 검술을 다듬어 왔습니다.”
“마이라 공주님의 모습이 뵐 때마다 날로 달라지시더군요.”
“예, 대왕. 그래서 한 가지 요청을 드릴까 합니다. 대왕도, 저도 이제 암흑 교단의 음험한 계략이 무엇인지 압니다.”
“그렇지요.”
“그리고 저는 암흑 교단으로 인해 사랑하는 아버지, 또한 다투기는 했어도 관계가 나쁘진 않았던 형제를 모두 잃었습니다.”
그의 예전을 떠올린 자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선왕 데커드 9세의 죽음은 자연사라기보다 암흑 교단에 의한 타살에 가깝다는 증거는 이미 많이 나와 있었다.
“대왕의 큰 뜻을 알았으니, 부디 제 여동생이 그 뜻에 함께 동참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아마 기뻐할 겁니다. 지금까지는 홀로 모든 조사를 해 왔으니까요.”
“괜찮으시겠습니까?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목숨을 걸고 그들과 일전을 벌일 각오를 해야 하니까요.”
“후후, 제가 말하는 것보다 마이라의 의지가 백배, 아니 천배는 더 강할 겁니다.”
이즈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여동생 마이라와 단둘이 알아 왔던 비밀, 그리고 무거웠던 국왕으로서의 짐을 덜어 내니.
홀가분해진 듯했다.
그 이후.
이즈엘은 왕궁으로 돌아갔다.
자레드와의 확실한 협의가 끝났으니, 이제 신하들로 하여금 신데르스 왕국의 새 미래를 준비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마이라는 남았다.
둘만이 남은 자리.
마이라는 자레드와의 독대가 어색한 듯,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정말 많이 성장했네.’
심안으로 살펴본 마이라의 스탯은 나쁘지 않았다.
현재 동료 검사들 중에서 가장 성취도가 높은 라키스를 기준으로 봤을 때, 그의 6할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예전에 심안으로 그녀를 살폈을 때와 달리 특수 성향도 꽤 많이 늘어났다.
부단히 노력을 해 온 것이 그녀의 잠재된 능력을 개방할 수 있도록 도운 듯했다.
‘그렇다면 아슈르와 함께 수련의 방에 가도록 안배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총 열 명이 허용됐던 수련의 방. 거기서 이미 여덟 자리는 사용했고, 두 자리가 남았다.
자레드는 성마 대전에 대한 위기감과 목표 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아슈르와 마이라가 최종 대상으로 적합하다고 여겼다.
이 문제는 차근차근, 두 사람과 논의할 부분이기도 했다.
어차피 결정만 내리면, 현실에서는 단 1초의 시간도 흐르지 않은 채로 수련을 완료할 수 있을 테니까.
* * *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아무도 없는 황궁의 내 침실에서 허공에 한가득 다양한 퀘스트 창을 띄워 놓고 있었다.
퀘스트 달성은 진즉에 했지만, ‘완료’ 버튼을 누르지 않고 있었던 목록들이었다.
의 시스템은 완료 버튼을 누르지 않은 퀘스트에 대해서는 계속 붉은빛이 점멸하도록 되어 있다.
눈에 ‘거슬리게’ 해서 어떻게든 빨리 완료 버튼을 누르도록 하려는 개발진의 의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전생에 를 플레이 했던 내내, 퀘스트를 마무리해도 절대 바로 완료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완료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특전이 때때로 나중에 필요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태창의 점멸 현황을 무시하는 버릇이 생겼기에 현생에서도 그것을 무시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황금기 조합식. 후, 언제 이걸 쓰게 될까 싶었는데 드디어 그때가 오긴 오네.”
황금기 조합식이란.
현재 우리 크리비아 제국이 누리고 있는 ‘황금기’의 기간을 연장하고, 혜택을 더 늘리는 것을 말한다.
[2회에 한정해서 제국 전체의 모든 내정 수치를 최고치로 상승시킵니다. 즉시 모든 지역에서 황금기가 도래합니다.] [최고치를 찍은 내정 수치는 이후 2년에 걸쳐, 원래의 수치로 아주 천천히 하락합니다.]현재 크리비아 제국에 적용돼 있는 황금기의 옵션은 다음과 같다.
베네라티오 7세의 옥새의 능력을 발현하면서 얻은 결과물이다.
이 상태로도 분명 우리 제국은 풍요로움을 구가하고 있지만, 아쉬운 점은 어쨌든 수치가 점점 떨어진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100%’의 한계를 뛰어넘는 대(大)황금기를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퀘스트 ‘행정 장관 전원의 절대 충성’을 달성하였습니다. 완료하시겠습니까?]이 퀘스트는 말 그대로 각지의 행정 장관으로 배치된 인물들이 나에 대한 충성심을 최대로 찍으면, 자동으로 달성되는 퀘스트다.
효과는 전체 내정의 20% 상승이다.
하지만 현재 크리비아 제국의 내정치는 최대 기준 90%인 상태.
그 말인즉슨, 이 효과를 발동시키면 의미 없이 버려지는 내정 수치가 생기게 된다.
적용 후에 108%가 되면서, 최대치보다 더 넘어서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 플레이어들은 보통 83% 정도의 수치일 때 썼었지. 그래야 100%에 근접해지고, 증가폭이 가장 크니까.’
보통의 플레이어는 정석을 따르기 마련이다.
애초에 ‘행정 장관 전원의 절대 충성’이라는 것이 달성하기 힘든 퀘스트이기에 감히 누구도 실험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미친 녀석은 많은 법.
플레이어 중 하나가 술김에 퀘스트 발동을 착오해서 다른 퀘스트와 순서를 바꿔 완료를 하는 일이 생겼다.
‘내정 올인’은 말 그대로 내정에 종사하고 있는 인물의 투지나 의지를 5%가량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때.
시스템상의 버그인지는 모르지만, 약 0.6초 동안 관리하는 영지나 국가의 내정 최대가 ‘999999’로 갱신되는 현상이 생긴다.
사실 보통 완료 버튼을 누를 때, 내정 상태창이 아니라 퀘스트 창을 띄우기에…… 어지간한 플레이어는 인지도 못 했던 일이었다.
“좋아. 그렇다면…….”
나는 두 개의 퀘스트 창을 띄워 놓은 뒤, 양손을 동시에 올렸다.
그리고.
며칠 전부터 열심히 단련해 온 리듬감을 바탕으로 완료창을 0.5초의 차이를 두고 눌렀다.
따닥!
그러자 다음 순간!
[통합 정보 – 크리비아 제국] [종합 영토 평가 등급 : S] [소속 : 크리비아 제국] [내정-농업 : 99523 / 90000] [내정-상업 : 96257 / 90000] [내정-치안 : 98285 / 90000] [내정-과학 : 99198 / 90000] [내정-충성 : 98700 / 90000] [군사-총원 : 현재 620,048명]“이거지!”
나는 쾌재를 불렀다.
이렇게 내정치가 한번 최대치를 넘어가게 되면, 그때는 중복 효과를 얻어도 모두 적용된다.
시스템의 허점에 경배를!
개발진의 빈틈에 찬사를!
오늘도 나는 이렇게 버그로 열심히 꿀을 빨고 있다.
어쩌면 이러라고 전생에 과로사한 내가 이 세계에서 환생하도록 보내진 것일지도 모른다.
[퀘스트 ‘농업의 달인’을 달성하였습니다. 완료하시겠습니까?] [퀘스트 ‘상업의 귀재’를 달성하였습니다. 완료하시겠습니까?] [퀘스트 ‘범죄율 1%’를 달성하였습니다. 완료하시겠습니까?]“든든하다, 든든해!”
나는 그간 달성은 했으나 확인을 아껴 왔던 퀘스트 모두를 줄줄이 완료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누를 때마다 내정 수치들이 올라갔다.
전부 퍼센티지(%)의 효과로 소급되는 것들이라 증가 폭이 상당했다.
이렇게 내정 수치가 쭉쭉 올라가게 되면, 제국민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황금기로 오른 능률을 초과하여, 소위 ‘오버 파워’를 하게 된다. 물론 부작용은 없다.
애초에 개발진이 준비해 놓지 않은 변수이기에 페널티도 없는 것이다.
“자, 이번에는 과학 수치. 충성도도 좀 자극해 주고……. 그래. 이거야. 국가 운영이란 이런 거지!”
그 후로도 한참 동안.
나는 밀린 퀘스트의 완료 버튼을 누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앞으로 1년?
아니, 10년은 거뜬하게 100% 이상의 내정치로 버틸 수 있을 꼼수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