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37
제 237화
79장. 제1차 나스 대미궁 공략 – 3화
“도대체, 도대체 어디에 가 계셨던 것입니까? 아무리 수소문해 봐도 베르하드 님의 행방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뭐가 그리 궁금하더냐? 늙은이가 여생을 여기저기 방랑하며 지내겠다는데, 뭐 그리 귀찮게 해?”
목소리는 분명 역정을 내듯 말하고 있지만, 베르하드의 입가에는 미소가 한가득했다.
내가 계속 그에게 관심을 두었다는 사실이 기분이 좋은 건지, 아니면 달리 기분 좋은 일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내 관심이 싫지는 않은 듯한 눈치였다.
“제게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해 주신 분이니까 당연히 안부가 궁금할 수밖에 없지요.”
“뭐……. 일이 있었다.”
나는 바로 뮤트 마법을 펼쳤다.
그리고 실드를 두껍게 쳤다.
11월의 크리비아 제국은 전생의 ‘대한민국’으로 따지면 12월 말 정도의 날씨였다.
그래서 바람이 무척 찼다.
아마 보름 정도만 더 지나면 한파(寒波)가 불어닥칠 것이다. 매년,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베르하드가 말을 이었다.
“네게도 많은 일이 일어났던 것 같구나. 3년 만에 4클래스에서 8클래스라니……. 신이 내린 천재쯤 되는가 보군.”
에둘러 칭찬하는 베르하드의 모습. 원래 툴툴거리는 듯하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한 번…… 볼까?’
나는 심안을 발동시켰다.
예전에 처음 베르하드를 만났을 때는 이런 메시지가 떴었다.
[대상과의 레벨 격차가 10배 이상이므로, 그 어떤 정보도 심안으로 탐지할 수 없습니다.]당시 나는 레벨 60이 채 되지 않은 ‘쪼렙’이었고, 그는 추측컨대 레벨 600을 훌쩍 뛰어넘은 수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당시의 베르하드를 넘볼 수 있을 법한 경지에 올라와 있다.
궁금했다.
3년 전만 해도 드높은 하늘 같고 감히 넘볼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던 베르하드.
과연 그의 경지는 현재 어디쯤에 도달해 있는 것일까.
[베르하드 – Lv. 888] [근력 : 297][체력 : 4,444] [마력 : 10,011][지혜 : 1,988] [민첩 : 199][매력 : 78] [물방 : 311][마방 : 808]‘……탱법사였어?’
심안으로 살핀 베르하드의 스탯에는 뭔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가 하나 있었다.
바로 체력이었다.
탱법사.
말 그대로 체력에 많은 수치를 투자해서 근접전을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즐기는 마법사다.
마법사라는 이름이 주는 이미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 콘셉트이기는 하지만, 에서 제법 유행했던 콘셉트이기도 했다.
탱법사의 강점은 압도적인 탱킹 능력이다.
레나와 같은 검사처럼 ‘어그로’ 스킬은 없지만, 실드와 같은 방어 마법을 바탕으로 거의 무한에 가깝게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9클래스 대마법사로서 대단위 광역 마법까지 구사할 수 있으니, 파괴력은 엄청난 셈이다.
저 정도의 체력이면 자신이 있는 곳까지 포함해서 광역 마법을 전개해도, 능히 버텨 낼 수 있을 것이다.
아티팩트로 떡칠하다시피 한 내 체력의 거의 4배 수준이 아닌가? 한마디로 어마어마한 수치라는 얘기다.
베르하드의 스탯은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 맞다. 단지 내가 비정상일 뿐이다.
그때, 베르하드가 말했다.
“얼마 전에 대륙으로 돌아와서 돌아가는 상황은 얼추 알고 있다. 암흑 교단과 심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듯하던데……. 이유가 있느냐?”
이렇게 묻는 것을 보니, 베르하드는 성마 대전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듯했다.
사실 에서도 그랬었다.
당시 베르하드는 분명 플레이어들의 편으로 분류되어 있는 NPC임에도 제대로 힘을 보태 준 적이 없었다.
항상 부재중(不在中).
메인 퀘스트 중에 그를 찾아가야 하는 일이 몇 번 있었지만, 항상 그의 거처는 비어 있었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은 어차피 없는 놈을 만나러 가는, 이딴 뺑뺑이 퀘스트는 왜 만들어 놨냐며!
분통을 터뜨렸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나도 그랬고.
어차피 베르하드를 만나게 되면 꼭 하고 싶었던 얘기였기에.
나는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암흑 교단과 데스먼드 제국, 그리고 성마 대전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였다.
* * *
꽤 긴 이야기가 됐다.
자레드는 암흑 교단, 특히 제단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하였고, 베르하드는 조용히 경청했다.
사실 예전부터 베르하드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연구 대상’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런 만큼 대륙의 정세에는 무관심했다. 신성 제국이니 마도국이니 하는 구분도 덧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자레드에게 들은 이야기는 충격의 연속이었다.
단지 신념의 문제로 인한 갈등이 아니라, 배후에 더 큰 음모가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안 것이다.
“그게…… 정말이냐?”
“수많은 자료와 증거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있고요.”
자레드가 아공간에서 검은 돌 하나를 꺼내어 내밀었다.
마기, 그 자체로 강렬하게 반응하는 암흑 원석이었다.
아슈르의 아버지인 루갈이 카코 교단의 주 제단에서 가져온 것으로, 그의 죽음을 야기한 원인이자, 그 뒤 아슈르의 오랜 도피 생활이 이어지도록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
아슈르가 자신의 아버지와 암흑 교단에 얽힌 이야기를 자레드에게 털어놓은 것도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왜 처음부터 그 얘기를 털어놓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었지만…… 자레드의 생각은 달랐다.
상대를 신뢰하기 위해서는 분명 그 사람을 지켜보고 판단해야 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슈르의 뜻을 존중했고, 큰 결심을 하고 비밀을 공개한 그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자레드에게서 암흑 원석을 받아 든 베르하드는 자못 심각해진 표정으로 원석을 살폈다.
단순히 어둠의 기운을 풍기는 정도가 아니라, 근원까지 완벽한 ‘악(惡)’으로 응축된 원석이었다.
즉, 순수 악을 상징하는 존재가 아니면 절대 이런 기운을 발생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마왕 같은.
미래는 알지 못해도, 과거의 용마 대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은 베르하드였다.
그렇기에 이 원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용마 대전에 이은 또 한 번의 마왕 현신.
그것이 아니고선, 이 암흑 원석이 인간들의 세계에 나타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베르하드는 분노했다.
“정신 나간 암흑 교단 놈들. 과거에 이런 짓거리로 드래곤이 평생 저주를 품고, 인간의 태반이 죽었던 것을 정녕 모르는 것인가?”
“어둠의 힘. 그것을 약속받은 자들의 그릇된 욕망이겠죠.”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답했다.
“내가 너무 세상사에 무심했군.”
베르하드가 자조하듯 말했다.
물론 이유가 없지는 않았다.
불과 몇 년 전부터 죽음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활성화되기 시작한 정체불명의 균열 때문이었다.
“그간 나는 동방 대륙에 대해서 연구를 해 왔다.”
“예? 동방 대륙이요?”
운을 뗀 베르하드의 말에 자레드가 놀라 물었다.
“그래.”
베르하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그저 바다의 악명에 걸맞게 온갖 혼탁한 기운이 섞이며 만들어진 결계라고 생각했다.
딱히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균열은 점점 더 커져 갔고, 이윽고 반대편을 살필 수 있을 수준이 됐다.
그것은 단순한 균열이 아니었다.
이 세계와 다른 세계를 잇는 듯 보이는 특별한 균열이었던 것이다.
베르하드는 이것을 동쪽에 있는 미지의 세계로 연결하는 균열로 여겼고, 그 세계를 ‘동방 대륙’이라 불렀다.
물론 동방 대륙에 무엇이 있는지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 아직 넘어가 보지 못했으니까.
‘아……. 그러면 에서 베르하드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동방 대륙 때문이었던 거구나. 연구를 위해 대륙을 떠나 있었으니, 당연히 그의 소식도 들을 수 없었던 거야.’
그제야 를 즐기면서 늘 수수께끼 퍼즐처럼 답을 얻을 수 없었던 까닭을 알게 됐다.
이런 뒷이야기가 있었을 줄이야.
베르하드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앞뒤가 딱딱 들어맞는 인과관계임이 틀림없었다.
“균열과 연결점이 생기기는 했으나, 상호 이동은 불가능한 상태다. 하지만 균열의 에너지가 활성화되는 것으로 봐서는 그리 머지않은 시점에 어떤 일이든 생길 것이다.”
“동방 대륙이라…….”
단어를 곱씹는 자레드의 표정이 어두웠다.
동방 대륙 업데이트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직장에서 과로사를 하지 않았다면, 곧 업데이트와 함께 즐길 수 있었을 의 대규모 콘텐츠였다.
전생에서는 즐기지 못했지만, 현생에서 이렇게 마주하게 되니 기분이 묘했다.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성마 대전을 대비하는 것만으로도 갈 길이 먼 시점에서 동방 대륙과 연결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과연 그 차원문을 통해 넘어올 존재들은 아군일까 적군일까? 이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당면한 문제가 더 중요하다. 암흑 교단에 대해서 내 조사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단지 준동(蠢動)하지 않아 내버려 두었거늘…….”
베르하드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베르하드 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마왕의 현신을 막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놈들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 지금은 우선순위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겠군. 내 곧 다시 찾아올 터이니 기다려라. 암흑 교단에 대해 연구한 자료들을 수합하고 검증할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리겠습니다.”
“그나저나 말이다. 소문을 하나 들었다. 네가 남들과는 다른 특수한 마법을 쓴다고 들었는데…….”
트랜센던스, 초월 마법.
이제는 잘 알려진 자레드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모두가 자레드에게 특별한 마법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위력을 가늠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한다.
백전무패의 갈라딘 공작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도 자레드가 시전했던 초월 마법 때문이었다.
데큐플 트랜센던스 플레어 스피어. 8만이라는 천문학적인 마력을 소모하는 위력적인 일격.
이는 대마법사인 베르하드라고 하더라도 감히 추측할 수 없는 마법의 극단적 정점이었다.
“보여 드릴까요?”
“보고 싶구나.”
“그렇다면…….”
빠직! 빠지지직!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레드가 펼친 것은 데큐플 트랜센던스, 체인 라이트닝이었다.
예전에 파우페르 왕국의 마법사단 전체를 몰살시켰던 충격과 공포의 전격 마법이었다.
구르르르릉! 구릉!
빠지지지직!
아무것도 없던 상공에 거대한 구름이 만들어지더니, 당장에라도 번개를 칠 것처럼 먹구름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오…….”
베르하드가 탄성을 터뜨렸다.
분명 본질은 6클래스 체인 라이트닝 마법인데, 현실은 9클래스의 대단위 마법을 연상케 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단언할 수 있었다.
지금의 자레드는 8클래스 마법사지만, 초월 마법의 위력은 9클래스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고.
“네가 9클래스의 마법사가 된다면 그야말로 지옥이 현실에 강림하겠구나.”
이것이 베르하드의 생각이었다.
보잘것없는 지방의 젊은 20대 영주라고 생각했던 자레드는 불과 몇 년 새에 크게 달라졌다.
단언컨대 일대일이라면.
베르하드 자신도 능히 감당할 수 없을, 그 정도의 경지에 올라와 있는 듯했다.
‘괴물.’
이 말이야말로 자레드의 지금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