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38
제 238화
79장. 제1차 나스 대미궁 공략 – 4화
“멋진 마법이다. 멋진 마법이야……. 신이 내린 힘이군.”
베르하드가 웃었다.
순간, 학자로서의 욕심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자레드의 초월 마법을 하나하나 자세히 분석해 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그 마음을 접었다.
어떤 단순한 논리로 발현 구조를 이해하려고 들기에는 너무 고차원적인 마법으로 보였던 것이다.
마치 신의 ‘실수’로 자레드에게만 주어진 고유한 능력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평생을 마법 연구에 매진해 온 학자로서 내린 결론은 그것이었다.
“감사합니다, 베르하드 님.”
“감사는 내가 해야지. 네 말대로 암흑 교단이 준동하고, 마왕의 현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이제 대륙의 운명과 미래는 네 어깨에 달렸다. 나는 나름대로 너를 도울 방법을 찾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홀로 힘들어하지 말거라. 내가 전력을 다해 돕겠다.”
“감사합니다!”
자레드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이 기뻤다.
에서는 끝끝내 얼굴 한 번 보지 못해서, 플레이어들이 야속해했던 베르하드.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편이 되어 함께하게 됐다.
그간 성마 대전의 시기가 계속 앞당겨지고, 클로이의 오빠 트란퀼루스를 암습으로 잃는 등.
부정적인 미래 변화가 누적된 탓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자레드였다.
물론 모든 것이 아는 대로 흘러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태연자약하게 넘기기엔 꽤 흔들림이 큰 일들이 제법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 쪽에서도 유의미한 변곡점을 만들어 냈다.
‘그렇기에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해. 베르하드 님은 소모품이 아니니까.’
자레드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손안에 든 것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위한 깊은 생각이었다.
* * *
[레벨 500 이상. 8클래스 이상. 나스 대미궁 50층 이상 공략. 암흑 교단 1개 궤멸]베르하드와 헤어지고 다시 침실로 돌아온 나는 가장 중요한 과제의 목록을 살피고 있었다.
라디우스를 위시한 신들의 관심이 ‘가호’로 전환되기 위한 조건이 적힌 내용이었다.
예전에 이 내용을 처음 보았을 때만 해도 과연 이 조건들을 달성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었다.
“숙제를 많이 하긴 했네.”
하지만 이제 보니, 꽤 많이 진전된 상태였다.
우선 암흑 교단이었던 움브라 교단을 내 손으로 궤멸시켰다.
제단까지 완벽하게 파괴한 덕분에 실제로 상태창에서도 ‘암흑 교단 1개 궤멸’이라는 글자가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완료된 내용이라는 뜻이다.
“8클래스도 달성했지.”
렌-세븐을 죽이면서 자연스럽게 이것도 달성했다. 갈라딘 공작을 죽인 것은 덤이었다.
벌써 그것이 몇 개월 전의 일인데, 떠올려 보니 방금 전의 일처럼 머릿속에 생생했다.
“남은 것은 나스 대미궁 50층 이상의 공략에 레벨 500인가?”
레벨 500은 사실 어렵지 않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나스 대미궁을 1층부터 차근차근 공략하며 내려가기 시작하면 무조건 달성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나스 대미궁 그 자체다.
올라갈수록 몬스터의 체력과 전투력을 포함한, 모든 공략 난이도가 올라간다.
꼼수가 통하는 층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층수도 있다.
개발진들도 나스 대미궁 전체를 꼼수와 버그투성이로 내놓은 것은 아니니까.
“데스먼드 제국이 숨을 죽이고 있고, 카코 교단의 활동이 줄어든 지금이 적기다.”
나는 지금처럼 나스 대미궁을 공략할 절호의 찬스는 없다고 여겼다.
일단 50층까지 공략을 완료하기만 하면, 세이브 포인트(Save Point)를 등록할 수 있다.
세이브 포인트란, 플레이어에게 ‘각인’이 새겨지는 것을 뜻한다.
이 각인이 있으면 나스 대미궁 입구의 차원문으로 입장할 때, 1층이 아닌 50층으로 이동한다.
각인이 대상을 50층으로 바로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물론 이 사실은 나스 대륙의 수많은 헌터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까지 50층 이상 오른 그 어떤 팀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상 레벨업은 나스 대미궁이 진국이기는 하니까.”
과거 에서도 상위권 이상의 플레이어들은 틈만 나면 미궁에서 살다시피 했다.
미궁 공략은 분명 어렵고 힘든 만큼 경험치와 전리품 보상이 무척 짭짤했다.
나는 현재 400에서 500대에 머물고 있는 동료들의 레벨이 나스 대미궁 공략을 모두 마칠 경우.
최소 800대에서 900대 이상을 넘으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뜬금없는 추측이 아니라, 를 통해서 증명된 데이터였다.
대신 딱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역시 ‘죽음’에 대한 공포.
일반적인 던전은 보스 몬스터의 공격이 위력적이기는 하나, 즉사로 이어지는 공격은 적다.
그만큼 정교하지 못하고 투박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스 대미궁은 개발진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던전인 만큼 무엇보다 보스 몬스터들의 완성도가 높았다.
각각 훈장처럼 가지고 있는 버그나 꼼수의 요소와는 별개로 말이다. 어느 녀석 하나 호락호락하게 넘길 수 있는 놈이 없다.
“내가 좀 더 부지런히 뛰어다닐 수밖에. 그리고 동료들의 실력을 믿는 거다.”
내가 성장하는 동안, 동료들도 함께 열심히 성장해 왔다.
그들이 이룬 성취와 경지는 결코 내가 전부 떠먹여 주거나 운 좋게 얻은 것들이 아니었다.
매번 밤을 새워 가며 전력을 다하는 헤이즈의 훈련, 굳은살이 박이다 못해 여기저기 살점이 터져 버린 레나의 거친 손.
이 모든 것들은 내 강요 없이 그들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고 투지를 불태워 만들어 낸 놀라운 성과물이었다.
“……아버지.”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자레드의 기억으로서 아버지였던 바렛 자작님이 떠오르고, 신태풍의 기억으로서 아버지도 생각났다. 아울러 여동생까지도.
“잘 해내겠습니다. 직접 지켜보실 수는 없겠지만, 꿈에서라도 함께해 주세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 사실상 최종장에 접어들었다.
던전으로는 끝이나 다름없는 나스 대미궁, 그리고 대륙에서 최대의 적인 데스먼드 제국을 상대하게 된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확실하게 정리하고 나면, 비로소 성마 대전을 대비하는 모든 준비를 끝마치게 된다.
“가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모두를 불러 모아 우리의 하나 된 목표를 확실하게 알릴 때가 왔다.
아울러 마이라와 아슈르를 수련의 방으로 보낼 시간도 됐다.
베르하드 님은 이미 레벨이 높아 사실상의 성장이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 고려해 보기는 했으나 최종 결정에서는 제외했다.
수련의 방은 아직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은 마이라와 아슈르가 가는 것이 좋아 보인다.
그렇게 제1차 나스 대미궁 공략을 위한 준비가 시작됐다.
* * *
그로부터 닷새 후.
모든 준비를 마친 자레드 일행은 게니츠 제독이 직접 항해를 지휘하는 용선(龍船)을 타고 나스 대미궁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스 대륙의 북해, 서해, 동해를 모두 관장하게 된 게니츠 제독은 흰머리가 제법 늘어나 있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그의 투지와 의지, 열정은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막강한 크리비아 해군을 만들어 달라는 자레드의 부탁을 항상 가슴속에 담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레드는 데스먼드 제국과의 전쟁에서 해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것은 데스먼드 제국이 갖는 특수한 지리적 구조 때문이었다.
데스먼드 제국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데시타스 강이 남해의 끝자락까지 쭉 이어지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배를 이용해서 강을 거슬러 오르면 바로 황도에 상륙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황도(皇都)에는 황궁은 물론이거니와 이카젤라를 위시한 흑마법사들이 상주하는 마탑도 있다.
적의 중심부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것은 적의 약점을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해군에 대한 투자를 아낌없이 진행하는 중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제국 각지에 있는 모든 조선소는 100%, 최대치로 가동되고 있는 중이었다.
“폐하. 신 게니츠, 해군 전체를 대신하여 폐하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옵니다.”
“경이 이렇게 직접 지휘하는 용선을 타고 움직이니, 감회가 더 새롭구려. 첫 만남의 그때, 기억하오?”
“어찌 잊겠습니까. 그때부터 폐하는 영웅의 기상을 지니신 분이었습니다.”
“하하,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소. 내게도 경은 유능한 해군 제독이자 꼭 신하로 두고 싶은 인재였소. 그 꿈이 이뤄졌을 때, 정말 행복했지. 루크 제독까지 데려온 덕분에 크리비아 해군은 지금의 모습까지 성장할 수 있었소.”
“언제든 하명해 주십시오. 신 게니츠, 목숨을 바쳐서라도 국가를 위해 헌신하겠나이다.”
“그 목숨, 나를 위해서라도 함부로 버리지 마시오. 알겠소?”
“황공하옵니다, 폐하.”
쉬익. 쉬익. 쉬이익.
공들여 제작한 용선답게 바다를 세차게 가르며 나아가는 모습은 일품이었다.
흔들림 없이 안정적인 갑판 위에서 나와 함께 대미궁을 공략할 동료들이 삼삼오오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두꺼운 서류철이 들려 있었는데, 미궁 1층부터 50층까지의 공략 팁이 적힌 것이었다.
물론 작성자는 나였다.
“폐하,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사온데…….”
“말해 보시오.”
나는 조심스럽게 운을 떼는 게니츠의 모습을 보고는 바로 뮤트 마법을 전개했다.
물론 이 근처에는 내 동료들과 해군 소속의 병사들밖에 없지만, 그래도 만약을 대비한 안배였다.
유비무환.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다.
“데스먼드 해군 쪽에는 신이 거의 30년 전부터 오랜 교류를 이어 온 기술자들이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렸을 적부터 인연을 만들어 온 오랜 벗이지요.”
“그건 처음 듣는구려.”
“예, 폐하. 그들은 데스먼드 제국으로부터 상당한 대우를 받고 있고, 아울러 함선 전반의 관리를 맡고 있기도 하지요.”
“계속 말해 보시오.”
“다만 최근 들어 인신 공양이니 뭐니 하는 흉흉한 소문이 제국 내에서 돌고 있고, 특히 외국인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기 시작하니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듯합니다.”
“기술자들마저도 암흑 교단이나 그 추종자들의 타깃이 되고 있다는 말이오?”
“원래 광신(狂信)이 무서운 법 아니겠습니까, 폐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단의 광기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맹목적인 추종을 만들어 낸다.
위기감을 느낀 데스먼드 제국과 암흑 교단이 우리 크리비아 제국을 위시한 다른 세력을 두고 얼마나 많은 선전 선동을 하겠는가?
불 보듯 뻔했다.
하물며 나 역시도 선전 장관 발데스를 통해 꾸준히 제국민 전체의 의식을 고취시키는 중이었다.
제국 전역의 대광장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암흑 교단의 추악함에 대한 영상을 상영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어떤 심리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오?”
“예, 폐하. 그들은 본국으로의 투항을 원합니다. 그 대가로 데스먼드 제국의 함선을 바치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호응이 필요하겠군.”
게니츠의 말을 들은 내 눈빛이 차갑게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