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48
제 248화
80장. 꼼수와 버그의 힘 – 9화
“…….”
어느 순간부터 동료들은 자레드와 아마라의 전투를 지켜보는 관전자가 되어 있었다.
직무 유기가 아니었다.
인간의 경지를 초월해서 싸우고 있는 자레드와 아마라의 전투에 끼어들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법사는 육체의 고통을 끔찍이도 싫어한다.’는 세간의 말과 달리, 자레드는 거침이 없었다.
아마라와의 싸움에서 제법 깊은 상처를 입긴 했지만,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노림수를 던졌다.
“왜, 왜 아쿠아 스웜일까?”
나오미는 자레드의 노림수를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자레드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늘 한 수에서 두 수를 앞서는 자레드의 전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었다.
아마라는 육체 자체가 단단하게 이뤄진 녀석이기 때문에 화염으로 태우거나 결빙으로 얼리는 것은 몰라도…… 물은 소용이 없었다.
한데 자레드는 초월 마법의 형태로 변화시킨 아쿠아 스웜으로 아마라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바로 그때.
자레드가 이번에는 자신을 중심으로 거센 오라를 사방으로 방출시키며, 힘을 뿜어냈다.
그것은 바로 데큐플 트랜센던스 윌트였다. 수분 증발 마법을 전개한 것이다.
“아앗!”
그 순간, 주변 공기에 담겨 있던 수분이 일제히 증발했다.
적당한 수치로 느껴졌던 수분이 모두 증발하자, 마치 건조한 사막에 온 듯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체감 온도는 올라갔고, 덩달아 모든 것이 푸석푸석해진 듯한 퍽퍽한 느낌이 났다.
“와! 저기를 보세요!”
미아가 소리쳤다.
그녀의 외침에 모든 동료들의 시선이 자레드와 아마라에게로 향했다.
“와! 폐하, 이걸 이렇게 연계를 하신다고요?”
나오미가 탄성을 터뜨렸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수분을 순식간에 증발시킨 자레드의 윌트 마법이었다.
8클래스의 마법인 윌트는 수분을 증발시키는 마법으로, 전투용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인 윌트로는 물이 고인 웅덩이 정도를 말리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법사들 사이에선 윌트 마법이 왜 8클래스로 구분이 됐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만큼 활용도가 너무 낮고, 위력도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레드가 펼친 윌트 마법은 달랐다.
최대치로 강화한 윌트 마법의 증발력은 주변에 있는 모든 수분을 빼앗아가 버렸다.
이곳에 오기 전에 일행 모두가 목을 축이고, 수통에 물을 저장했던 저수지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무것도 없는 저수지 바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물을 잃은 물고기들이 파닥거렸다.
“…….”
가장 놀라운 것은 아마라에게 일어난 변화였다.
허공에서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듯, 자레드를 응시하는 아마라의 몸 전체는 잔뜩 금이 가 있었다.
“상처를 통해서 몸 안에 수분을 주입한 다음에…… 그 수분을 체액, 혈액 따위와 함께 증발시키신 건가?”
자레드의 설명은 없었지만, 마법사인 나오미의 추측은 95% 이상 거의 들어맞았다.
이것이 노림수였다.
일반적인 공격 마법은 눈치 빠른 아마라가 즉각 대응하거나 회피를 하기에 좋은 것들이었다.
그래서 수분 공급과 증발이라는 변칙적인 공격을 연계한 것이다.
만약 아마라에게 상처가 없었더라면 그저 몸 외부에 묻은 물이 증발하는 선으로 끝났겠지만.
이자벨의 연계 덕분에 기회가 생긴 자레드는 플레임 스트라이크로 확실한 상처를 냈고.
거기에 아쿠아 스웜으로 충분한 양의 수분을 밀어 넣었던 것이다.
이것을 아마라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사실은 ‘죽음의 수액’을 뒤집어쓴 것이나 다름없었다.
“단장님, 저 아마라라는 녀석 죽은 거예요?”
“죽기 직전인 듯하다.”
미아의 물음에 나오미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분명 아마라의 원형은 아직까지 잘 유지되고 있었지만, 마치 붕괴되기 직전의 동상을 보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눈칫밥도 결국 머릿속에 들어 있는 만큼만 볼 수 있는 거야. 학습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유유히 아마라에게 다가간 자레드가 중지를 튕겼다.
그리고 딱밤을 치듯 아마라의 이마 한가운데를 건드리자.
그득. 그드득. 그드드득!
이미 만들어진 균열을 따라 아마라의 전신이 가뭄에 갈라진 대지처럼 쩍쩍 갈라졌다.
‘다양한 조합을 알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큰 도움이 됐어. 마왕을 상대로도 변수 창출이 가능하겠어.’
자레드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마왕 전력의 25% 정도 되는 적을 상대로 어느 정도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지 가늠해 보는 테스트는 끝났다.
지금 상황에선 전력을 모두 동원하면, 일단 아마라 정도는 확실히 제압할 수 있었다.
아직 마왕을 만나기까지의 시간은 남아 있다.
무엇보다 마왕 이전에 마도국과 암흑 교단이라는 적도 남아 있고.
“드디어…….”
나스 대미궁 50층 공략이 끝났다. 정공으로, 꼼수로, 때로는 버그로 알차게 공략했던 시간이었다.
변화는 비단 자레드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를 포함한 11명의 일원 모두가 엄청난 성장을 경험했다.
심안으로 확인했을 때, 가장 적게 레벨이 오른 사람이 레벨 100이 오른 라키스였을 정도였으니까.
레벨이 전원 평균에 비해 낮았던 마이라나 아슈르는 무려 200에 가까운 레벨이 올랐다!
각 층을 완전히 초토화시키며, 착실하게 공략하고 올라온 보람이 확실히 있었던 것이다.
샤아아아.
아마라가 한 줌의 가루가 되어 흩어진 자리에는 반짝이는 무언가가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자레드가 그것을 움켜쥐자, 옵션이 표시됐다.
[아마라의 정수] [분류 등급 : 10성] [옵션 1 : 가호를 내린 신의 수에 비례해서 마력의 총량이 증가합니다.] [옵션 2 : 옵션 1의 진행을 대기 중입니다.]“간단하지만 강력하군.”
자레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옵션 2번을 보니 비활성화 상태로 되어 있었다.
활성화를 하는 순간, 신의 가호에 맞춰 마력의 증가 폭이 결정되는 모양이다.
이제 미궁석을 활성화하면, 50층 공략이라는 최종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그다음은 오래전부터 고대해 왔던 신의 가호를 줄줄이 받을 차례다.
성마 대전의 준비를 위해 한 걸음 더, 힘껏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윽고 지상에 안착한 자레드가 동료들을 이끌고, 전방에 활성화된 차원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 *
51층으로 향하는 차원문 앞.
우리는 진입하지 않았다.
1차 목표는 달성했고, 이제는 다시 제국으로 돌아가 재정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모두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올라오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적된 피로는 상당했다.
사실 11명의 인원 중에서 쌩쌩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 일례로 심안으로 보이는 모두의 체력이 계속 7할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헤이즈가 아무리 치유술을 시전해 주어도 체력이 오르지 않았는데, 그것이 바로 ‘피로 누적’으로 인한 현상이었다.
“미궁석, 모두 갖고 있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라의 낙인] [대미궁 50층을 공략한 자에게 새겨지는 증표입니다.미궁석을 51층으로 향하는 차원문에 넣어 활성화시키면, 이후 미궁 진입 시에 바로 해당 차원문으로 입장하게 됩니다.]
낙인에 관련된 상세한 툴팁이 적혀 있어,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제 나를 포함한 11명은 하이 패스를 얻는 셈이다.
극단적인 예지만 누군가에게 쫓기더라도, 미궁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상대를 따돌릴 수 있다.
적은 1층으로 들어가고, 우리는 51층으로 입장하게 될 테니까.
‘딱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1층을 공략하고 싶으면 50층에서 거꾸로 내려와야 한다는 것 정도?’
이게 유일한 단점인데, 굳이 그렇게 할 일은 없을 듯하다. 뭐……. 여차해서 필요하다면 까짓것 내려오면 되지.
“넣자.”
내가 먼저 미궁석을 던졌다.
절차는 간단했다.
그냥 차원문에 넣으면 모든 각인 절차가 끝난다.
이렇게 간단할까 싶지만, 개발진이 그렇게 만들어 놨다.
그래서 던전은 공들여 만들어 놓고, 가장 뿌듯한 보상을 느끼는 연출이 ‘구리다’는 혹평을 들었다.
한편 바로 그때.
[주신 ‘라디우스’가 당신의 꿋꿋한 목표 달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예상치 못한 이른 달성에 경의를 표하며, 지켜보던 모든 신들에게 지금의 결과물을 공표합니다.]
‘좋아.’
시스템 메시지가 나를 반겼다.
라디우스의 얼굴을 직접 두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왠지 박수를 짝짝 치며 좋아하고 있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신도 감정이 있으니까.
아마도 좋아할 것이다.
후원하고 밀어주는 인간이 자신의 기대를 뛰어넘는 성과를 냈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신 ‘치트라’가 당신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악신의 추종자에 대적할 최고의 영웅이라고 평가합니다.] [신 ‘바카서스’가 다가올 선과 악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 달라는 당부를 전합니다.] [신 ‘오둘루’가…… (생략)]메시지가 셀 수 없이 밀려 올라왔다.
몇몇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수십에 달할 정도로 신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고 싶은데, 지금은 때가 아닌듯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그때 꼼꼼하게 읽어야겠다.
‘이해해 주실 거죠?’
어느덧 청명해진 하늘을 바라보며,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신에게 말을 전했다.
바로 그때.
[신이 내건 모든 조건을 달성했음을 확인합니다.] [주신 ‘라디우스’가 당신을 신들의 정원으로 초대하고자 합니다. 응하겠습니까?] [신들의 정원에 있는 동안, 현실의 시간은 모두 정지됩니다.]‘지난번처럼 쇼케이스겠지?’
신들의 공간에 가 봤던 적은 한 번 있다. 그래서 그때와 같겠지 싶었다.
[신들은 당신과의 직접적인 면담을 원합니다. 피후원자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어 합니다.]‘직접……?’
이것만큼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바였다.
에서도 신의 가호, 후원 같은 시스템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이런 일은 없었다.
그래서 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지 못했다.
실제로 의 설치 파일을 몰래 까 본(?) 전문가 유저들도 신에 관련된 이미지 파일은 전혀 없다고 했다.
세간에는 쭉쭉빵빵 알몸 여신이니, 식스팩의 연예인급 남신이 있다느니 하는 얘기가 합성 짤로 돌았지만…… 모두 해프닝이었던 것이다.
에서 존재하긴 했으나, 그저 추상적 관념으로만 존재하고 실체는 없었던 신.
그런 신들이 나를 직접 만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때가 왔구나.’
누가 말해 준 것은 아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정말 이제는 성마 대전이 바로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라고.
모르긴 몰라도 예정된 심판의 날도 훨씬 더 앞당겨질 것이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전부터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가겠다.’
[신들의 정원으로 이동합니다.]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몸이 미궁 50층의 차원문 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네가 자레드구나.”
조용히 내 이름을 부르는 누군가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렸다.
사방에 눈부신 섬광이 내리비치고 있는 탓에 그의 얼굴을 정확히 볼 수는 없었다.
“누구십니까?”
“라디우스다.”
그가 자신의 존재를 밝혔다.
주신…… 라디우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