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49
제 249화
81장. 창궐(猖獗) – 1화
“라디우스 님…….”
나는 한참을 아무 말도 잇지 못하고 서 있었다.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늘 이런저런 상상을 하곤 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상상은 역시 인간과 비교해서 했던 것이었다.
즉,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처럼 신의 모습은 인간을 쏙 빼닮았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라디우스는 달랐다.
그냥 하나의 빛이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하늘에 환하게 빛나는 별을 배구공 정도 되는 크기로 만들어 놓은 듯했다.
손이나 발 같은 인체와 유사한 부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마치 떠나니는 유령의 모습과 같았다.
“예상과 달랐던 모양이군.”
“사실…… 그렇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신들도 다양한 차원에 존재하는 문명체들을 볼 때마다 매번 놀라곤 하니까.”
전생에 나는 외계인에 대한 책을 관심 있게 읽은 적이 있다.
거기에서 한 과학자가 말하기를 모든 외계인이 인간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판단하지 말라고 했다.
지렁이를 닮았을 수도 있고, 혹은 흐물거리는 연체동물을 닮았을 수 있으며, 기계일 수도 있다고 했으니까.
그때는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가 싶었는데, 라디우스를 보니 알겠다.
인간이 아는 것은 인간밖에 없기에 신을 인간에 대입해서 생각했을 뿐,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을.
“긴말하지 않겠다. 우리는 앞으로 네게 힘을 보탤 것이다. 신의 가호란, 그 자체로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잘 알 것이다.”
입이나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라디우스를 위시해서 가까이 보이는 단상에서 반짝이는 빛의 구체들은 오로지 나만을 보고 있다.
신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허무맹랑한 생각이 아니었다.
“알고 있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을 것이다. 신들의 정원에 인간인 네가 머물 수 있는 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인간들의 기준으로 10분 정도는 머물 수 있을 것이다.”
“10분이라…….”
“사실 널 만나지 않고도 가호를 내리는 것은 가능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듯하기에 보고자 한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물론 별 의미 없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다시 이런 공간으로 부르지 않겠다는 뜻도 되니까.
하지만 괜히 마음속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왠지 내가 죽어 다시는 오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뭐,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회사의 말단 직원이었던 내가 아니던가?
그런 내가 현생에서 대륙을 호령하는 황제가 되었고, 신들의 가호를 한 몸에 받는 존재가 됐다.
그 얼마나 성공한 삶인가?
마왕을 막아 낼 수만 있다면, 이 목숨 정도는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진심이었다.
“그럼 무례함을 무릅쓰고 라디우스 님께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라디우스에게 궁금한 것을 물을 기회가 다시는 주어지지 않을 터였다. 모든 의문은 여기서 해소하고 가야 한다.
라디우스가 차분히 답했다.
“무엇이든 말해 보거라.”
“다가올 성마 대전은 신들의 전쟁인 것입니까?”
“그렇다. 인간들이 선과 악의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의 전쟁이지. 하지만 비단 신들의 전쟁만은 아니다. 결국 주체는 인간이니까.”
“그렇다면…… 선을 상징하는 신들께서 제게 힘을 보태 주고 있으신 겁니까?”
“정확하게 그러냐고 묻는다면 아니지만, 대개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왜 정확한 것이 아닙니까?”
“악신 중에 마음을 고쳐 우리에게 합류한 존재도 있지만, 반대로 타락해 넘어간 존재도 있어서다.”
덤덤하게 말하는 라디우스의 말이었지만, 내용은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졌다.
결국 신도 인간처럼 뜻을 꺾고, 변절하고, 배신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악신들이 후원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인간입니까? 아니면…….”
“마왕 레크나트다.”
마왕, 레크나트.
처음으로 마왕의 이름을 들었다.
에서도 성마 대전의 최종 보스인 마왕 ‘X’로 공개됐을 뿐 이름은 없었던 존재였다.
레크나트.
내가 상대해야 할 적의 이름이 명확해졌다.
얼굴도, 생김새도, 능력도 모르지만…… 뭔가 한 단계 녀석에게 바짝 다가간 느낌이었다.
라디우스가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약삭빠른 악신들이 고만고만한 하급 신의 다수를 인간의 추종자에게 붙여 주었더군.”
“이카젤라겠군요.”
“네가 짐작 가는 자가 있다면 그것이 맞을 것이다.”
앞으로 넘어야 할 두 개의 산이 명확해졌다. 작은 산과 큰 산.
“성마 대전이 끝나면…… 신들의 전쟁도 모두 끝나게 됩니까?”
“지금껏 이렇게 신들이 극단으로 나뉘어서 자신들이 가진 권능의 일부를 인간에게 공유한 적은 없었다.”
“…….”
“네가 가진 안젤루스 링에는 악신을 소멸할 수 있는 힘이 있지 않더냐?”
“그렇습니다.”
“대척점에 있는 그놈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목숨이라고 해서 여러 개가 아니라는 소리다.”
무게감이 확 와 닿았다.
그리고 확실해졌다.
인간계의 성마 대전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신들의 전쟁도 끝나게 될 것이라고.
그야말로 명운이 걸린 전쟁. 과거의 용마 대전과는 다른 것이다.
“목숨을 바쳐 이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힘주어 말했다.
반짝이고 있는 수많은 신들의 모습이 보인다.
내게 곧 가호를 내리게 될 신들이겠지. 그들과 나는, 이제 운명 공동체가 된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네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지 않느냐?”
“솔직히 궁금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알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의 기쁨은 그때의 것으로 남겨 두고 싶습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으니까요.”
은근한 말투로 묻는 라디우스의 말에 순간 혹할 뻔했지만, 나는 다시 묻지 않았다.
분명 달콤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일까?
영생일까?
아니면 인간계 전체를 호령할,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되는 것일까?
라디우스가 언급한 것만으로도 결코 평범한 미래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기대가 되기에 더 알고 싶지 않고, 또한 그만큼 승리하고 싶다.
이 세상의 주인공이 마왕이 아닌 내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이카젤라는 더더욱 아니고.
“가호 외에 그 어떤 형태로도 인간계에 개입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것은 악신도 마찬가지겠죠.”
“해묵은 싸움을 끝낼 때가 됐다. 어리석은 신들이 벌이는 최악의 전쟁, 그 끝을 네가 맺어 주었으면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전쟁이 인간과 마왕의 대리전이 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신들이 자신들의 선에서 끝맺지 못한 전쟁의 칼자루를 인간과 마왕의 손에 넘겼다는 것이다.
라디우스를 위시한 선의 신들은 내게 기대를 걸었고, 다른 악신들은 마왕에게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전략적으로 내 발목을 붙잡을 요량으로 이카젤라에게 향했을 것이다.
9클래스 흑마법사, 이카젤라.
녀석도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다. 분명히 지금 이 순간에도 나처럼 성장하고 있을 테니까.
“이제…… 됐습니다.”
더 묻고 싶은 것은 없었다.
신들도 예언자는 아니다.
미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신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했겠지.
나는 혹시나 승리할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기분 좋은 여백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그때.
오롯이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네게 우리 모두의 가호를 내리겠다. 부디 앞으로 있을 성스러운 전쟁에 큰 힘이 되었으면 한다.”
“신들께서 제게 주신 힘에 먹칠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늘 그랬듯이.”
“가까이 와라.”
샤아아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상 위에 있던 수많은 신들에게서 뿜어 나온 빛줄기가 라디우스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라디우스를 중심으로 뭉쳐진 백색 원형의 기운은.
파아앗!
한 줄기 섬광과 함께 푸른색으로 변했다. 라디우스는 지체 없이 그것을 내 몸으로 밀어 넣었다.
쑤우욱!
“크윽!”
들어온 푸른빛 기운은 순식간에 내 심장 안을 가득 채웠고, 맥동하는 심장과 함께 들썩이기 시작했다.
“…….”
약간의 고통이 있었지만, 충분히 참을 만했다.
나는 신들이 내게 내린 가호가 남김없이 흡수될 수 있도록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이는 단지 ‘데이터’처럼 느껴지는 가호가 아니라, 정말로 살아 숨 쉬는 가호처럼 느껴졌다.
마치 신들의 영혼 일부를 함께 담은 느낌이랄까? 그들의 기대, 열망, 희망이 가감 없이 느껴졌다.
“모든 가호가 내려졌다. 돌아가 네게 일어난 변화를 확인하여라. 이 정원에서 승전보를 기다리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제게 소임을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맙다.”
나는 고개를 숙여 마지막 감사를 표했고, 라디우스는 짧은 대답과 함께 내게서 멀어져 갔다.
그리고.
파아아앗!
시야에서 정원이 사라지더니, 나는 미궁으로 돌아왔다.
아직 시간 정지는 해제되지 않은 상태였다.
상태창을 보자 ‘해제’ 버튼이 따로 활성화되어 있었다.
[시간 정지 해제까지 10분 00초 남았습니다. 반경 10m 안에서는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합니다.]해제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내게 유예기간이 주어진 모양이다.
아마 일어난 변화를 살피고, 달라진 능력을 재점검해 보라는 배려인 듯했다.
신이기에 ‘함부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시간의 조화이기도 하리라.
줄줄이 상태창에 밀려 올라오는 가호 메시지가 보였다.
오랜만에 정리를 한 묵은 통장의 내역을 보듯, 쉴 새 없이 밀려 올라왔다.
나는 묵묵히 메시지의 행렬이 끝나길 기다리며, 흘깃흘깃 스탯창을 보았다.
모든 스탯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스탯 변화는 감소가 아닌, 오로지 상승 일변도로만 변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동안, 빠르게 올라가는 총액 표시를 보는 듯했다.
“와, 이거……. 이게 이 정도까지 올라간다고?”
연신 감탄을 했다.
먼저 내 눈에 띈 것은 주신 라디우스가 내게 내린 가호였다.
다양한 스탯을 올렸지만.
그중 내 눈길을 잡아끈 것은 단번에 마력을 5만이나 늘린 것이었다!
마력은 다다익선이다.
마력 9만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데큐플 트랜센던스로 9클래스 마법을 한 번 쓰면 끝이다.
그래서 10만에 달하는 마력도 내게는 결코 많다고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데 라디우스의 가호 하나만으로 마력이 5만이 증가하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내가 이만큼 특전을 누린다는 것은 똑같지는 않더라도, 마왕도 유사한 특전을 누린다는 거겠지.’
한편으로는 긴장도 하게 됐다.
내가 성장하는 증가 폭만큼, 상대 역시 그만한 힘을 가진 존재가 될 것이기에.
이윽고 적용된 가호를 포함해, 아티팩트의 착용까지 모두 반영한 스탯창이 변화를 멈췄다.
이제.
50층 공략까지 깔끔하게 마친 나 자신, ‘자레드 폰 유칼레스’의 총결산을 확실히 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