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56
제 256화
82장. 발악 – 1화
이야기는 더욱 무르익어 갔다.
일단 자레드와 알카디우스는 큰 틀에서 완벽한 합의를 마쳤다.
성마 대전 이후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되, 그 전까지는 서로 전방위적인 협력을 하기로.
공통 적국으로 지정한 것은 당연히 데스먼드 제국이었고, 척결할 교단으로 카코 교단을 꼽았다.
그리고 데스먼드 제국과 암흑 교단에 대한 정보는 가감 없이 전부 교환하기로 했다.
합의를 마쳐서일까?
한결 홀가분해진 듯 보이는 알카디우스는 자레드에게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자레드 님, 한 가지 요청이 있습니다만.”
“얼마든지 말씀하시지요.”
“초월 마법을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전부터 저를 포함한 많은 신하들이 꼭 보고 싶었던 마법입니다.”
“대단할 것도 없는 마법입니다만…….”
“그럴 리가요. 대륙을 호령하던 소드 마스터 갈라딘마저도 저승으로 보낸 마법이 아닙니까.”
“보여 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지요. 그럼 좀 더 공개된 장소로 갈까요?”
자레드는 선뜻 응해 주었다.
오늘 알카디우스와 함께 자리에 참석한 칸트라 제국의 신하는 다들 내로라하는 자들이었다.
마법사는 최소 6클래스 이상이었고, 검사 역시 소드 엑스퍼트 급 이상은 됐다.
자레드는 그들에게 자신의 힘을 보여 주는 것이 두 가지 효과를 내리라고 생각했다.
첫째는 아군으로서 듬직한 전력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사기 진작’의 효과였고.
둘째는 혹여 자레드를 적으로 돌렸을 경우, 그들이 직접 마주하게 될 힘을 미리 경고하는 효과였다.
어떤 형태로든 확실한 메시지를 줄 수 있기에 알카디우스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자레드 일행과 알카디우스 일행은 인근의 야산에 함께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모두의 시선은 자레드에게 완벽하게 집중돼 있었다.
다들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살피는 모습이었다.
“보통의 마법은 이런 모습이죠.”
우우웅!
자레드가 캐스팅한 것은 평범한 1클래스 마법에 해당하는 매직 미사일이었다.
마법사들의 기본으로 불리는 바람 마법으로, 5개의 바람 구체를 만들어 내는 마법이었다.
전장에서 광범위하게 쓰이지만, 위력은 다소 낮아서 실드에 너무 쉽게 막히는 마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트랜센던스, 그러니까 첫 번째 초월의 형태를 만들어 낸다면.”
쿠와아아아!
순간 일진광풍이 사방에서 휘몰아치며, 매직 미사일이 강화와 분화를 동시에 마쳤다.
“와……!”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마법사에게 있어 매직 미사일은 1클래스의 마법이고, 바람 구체의 개수는 5개로 고정된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자레드가 펼친 트랜센던스 매직 미사일은 상식을 일찌감치 무너뜨려 버렸다.
“여섯 번째 초월의 형태로 만들어 볼까요?”
다음 순간.
자레드가 양손을 하늘로 펼치며, 힘껏 공간을 휘젓기 시작하자.
“이건 말도 안 되는…….”
모두가 입을 떡 하고 벌리고 말았다. 바로 옆에서 자레드의 모습을 지켜보던 알카디우스는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늘 곁에서 자레드의 초월 마법을 지켜봤던 크리비아 제국의 신하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난생처음 자레드를 보는 그들에게는 직접 눈으로 실감하는 그의 놀라운 힘이었던 것이다.
“셈이 빠르신 분이 있다면 세 보셔도 좋습니다.”
자레드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누가 먼저 나서기도 전에 먼저 알카디우스가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바람 구체의 수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때아닌 숫자 놀음이 여기저기서 펼쳐졌다. 다들 직접 수를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알카디우스가 모든 구체의 수를 카운트했다.
“320개의 매직 미사일 마법 구체란 말입니까? 이게 초월 마법의 힘…….”
“좀 더 강화할 수 있죠.”
자레드가 마력을 더 소모하며, 초월의 단계를 계속 높여 갔다.
셉튜플 트랜센던스, 640개.
옥튜플 트랜센던스, 1280개.
노뉴플 트랜센던스, 2560개.
데큐플 트랜센던스, 5120개.
“이건 신의…… 힘입니까?”
칸트라 제국의 마법사단 단장으로서 함께 사절단에 참여한 제임슨이 혀를 내둘렀다.
그는 8클래스 마법사로 자레드와 같은 클래스였다.
나이는 올해 일흔으로 결코 적지 않았지만, 어쨌든 9클래스라는 대마법사의 반열을 코앞에 둔 현인(賢人)이기도 했다.
“애꿎은 나무들에게 미안하지만, 그래도 결과물을 보는 것이 좋겠죠?”
자레드가 웃으며 살짝 손끝을 털어 내는 시늉을 하자.
콰아아아아!
5120개의 매직 미사일 구체들이 굉음을 내며, 일제히 야산을 향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내 평생 이런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믿기지 않네요, 제임슨 경.”
“예, 폐하. 이런 마법을 어찌 신이 구현할 수 있단 말입니까? 크리비아 제국의 황제 폐하께 라디우스 님의 가호가 있으심입니다.”
‘제임슨이 알고 말한 것은 아니겠지만, 괜히 깜짝 놀랐네.’
자레드가 잠시 뜨끔했던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의 말대로다.
지금 이 순간.
수많은 신들의 가호가 자신에게 내려져 있었으니까.
콰쾅! 쾅! 쾅!
야산 전체에서 먼지구름이 일었다.
여기저기서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가 쓰러졌고, 깜짝 놀란 동물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레드는 벌어진 입을 다물 생각조차 못 하고 있는 알카디우스와 신하들을 향해 차분히 말했다.
“운 좋게 얻은 이 힘을…… 적의 완벽하고도 압도적인 분쇄를 위해 사용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께 쓸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그래서 더 무섭게 들리는 경고이기도 했다.
자레드는 이 정도면 확실한 메시지는 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월 마법이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대왕 폐하, 이제 세부적인 실무 협상은 함께한 신하들에게 맡기심이 어떨지요.”
자레드가 분위기를 바꿔 운을 떼자.
“……아. 그래야지요. 그게 좋겠습니다.”
야산에 펼쳐진 광경에 넋이 나가 있던 알카디우스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양국의 실무 협상이 시작됐다. 좀 더 확실하게, 유기적으로 협력하기 위한 논의의 시작이었다.
* * *
한편 그 시각.
황도 외곽, 전망이 좋은 위치에 자리를 잡은 아르케네스의 별장에서는 소소한 술자리가 있었다.
참석자는 아르케네스와 헤이즈.
단둘의 자리였다.
칸트라 제국의 사절단을 만나는 자리는 극히 소수의 군인들만 참여했기에 휴식이 주어졌던 것이다.
“별장 정말 좋다, 아키.”
“그렇죠? 분에 넘치는 곳이라 있을 때마다 참 불편해요. 그래서 가끔 중요한 손님을 모실 때만 별장으로 와요. 평소에는 상단 건물 집무실에 있어요.”
“요즘도 무리하는 거 아니지? 폐하께서 항상 걱정하셔! 지난번처럼 갑자기 또 쓰러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야!”
“호호, 언니! 걱정 마세요! 평소보다 더 많이 자고, 몸에 좋은 보약도 엄청 챙겨 먹고 있는 걸요?”
“그나저나 남장은 계속할 생각이야? 사석에서야 이렇게 편하게 모든 ‘압박’을 벗어던지고 얘기를 한다지만…….”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요. 폐하께선 직업에 귀천이 따로 없고, 남녀 구분도 없다고 하셨지만…….”
아르케네스가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헤이즈도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남성들만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어떤 세계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상계(商界)였다.
이제 와서 사실은 여자였다고 모든 것을 공개하기에는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컸다.
아르케네스 상단은 크리비아 제국을 대표하는 초대형 상단이기 때문이다.
황제인 자레드의 직속 상단으로서 덩치를 크게 불린 아르케네스 상단.
이제는 커질 대로 커져 버린 상단인 터라, 모든 행보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다못해 아르케네스 상단에서 쌀을 평소보다 조금 더 매입을 하기 시작하면.
군소 규모 상단들은 넘겨짚고 전쟁이 임박했나 싶은 생각에 쌀을 미친 듯이 사들였다.
이런 식이었다.
아르케네스 상단에서 재채기를 하면, 하위 상단에서는 거대한 폭풍이 되어 휘몰아쳤던 것이다.
나비효과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아르케네스이기에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키, 뭔가 힘든 일이 있구나?”
말끝을 흐림과 동시에 표정이 어두워지는 아르케네스를 보며, 헤이즈가 바로 그녀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이야 치유사로서 큰 능력을 갖게 되었지만, 어쨌든 그녀의 시작점은 하녀였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눈빛이나 표정을 보고 감정을 읽어 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언니……. 사실 언니도 알고 있었죠? 처음 폐하를 만났던 그때부터 제가 조심스럽게 폐하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것을요.”
“…….”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 * *
그날 밤.
“1419년 12월 25일? 기가 차다 못해 이제는 말도 안 나오는군. 빌어먹을 마왕 XX.”
그라시아의 두루마리에 적힌 심판의 날을 확인한 나는 불쾌한 감정을 여과 없이 토해 냈다.
시간이 또 앞당겨졌다.
그만큼 세계의 흐름이 빨라졌다는 뜻이지만, 이건 심해도 너무 심했다.
내가 기억하는 성마 대전의 개전일은 1424년 3월 4일.
외우기 쉬운 숫자 조합이라, 잊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날짜다.
한데 예정된 시기가 5년 가까이 앞당겨진 것이다.
[발악]두루마리는 단 두 글자의 문구만을 내게 전해 주었다.
발악(發惡).
이 정도면 이카젤라가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날을 앞당기려고 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녀석에 의해 현신의 날이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앞당겨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2년 남았다, 이건가.”
그쯤 남았다.
현생에서 눈을 떴을 때.
내게 있어 대륙력 1419년은 성마 대전이 아닌, 대기근으로 인한 나스 대전쟁이 벌어지는 때였다.
하지만 역사는 완전히 뒤집혀졌다. 가속이 붙은 역사의 수레바퀴는 마치 폭주 기관차처럼 그저 앞만 보고 달리는 중이었다.
“2년이 결코 적게 남은 건 아니지만, 문제는 더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는 거지.”
내가 걱정하는 부분이었다.
이카젤라와 암흑 교단, 그리고 데스먼드 제국을 붕괴하지 않는 이상 시간은 계속 줄어들 것이다.
“제길.”
나는 아쉬움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차라리 게임 속 전쟁이라면 아무 생각 없이 병사들을 징병하고, 죽건 말건 신경도 안 쓰고 전장으로 마구 내몰 텐데.
이젠 내게 오롯한 현실이 되어 버린 이 세계를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최대한 빨리 전후 복구를…….”
사랑하고 아끼는 내 제국이 다시 힘을 축적할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복귀하는 대로, 제국 전역에서의 피해 복구 및 수습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아울러 소중한 가족과 인연을 잃은 사람들의 슬픈 마음도 아우르기로 했다.
그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깨닫기 시작하는 것부터, 미래를 위한 진정한 대비가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