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64
제 264화
84장. 목표는 이카젤라 – 2화
사흘이 더 지나고.
우리 크리비아 제국군도 드디어 데스먼드 제국의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후군과 보급대는 아직 진군 중이고, 가장 중요한 중군과 핵심 전력만 마법진을 총동원해서 이동시킨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현대의 전투처럼 뚝딱 수만 명의 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애석하게도 이 세계에서 그 정도의 발전된 문명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각자도생할 개인 식량을 충분히 챙겨 왔기 때문에 닷새 정도는 버틸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여차하면 데스먼드 제국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할 생각도 있었다.
어쨌든 우리는 데스먼드 제국의 외곽부터 빠르게 잠식해 나가기 시작했다.
나스 대륙의 남서쪽에 위치한 데스먼드 제국은 그렇게 삼면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동쪽의 칸트라 제국군, 북동쪽의 우리 군대, 그리고 북서쪽의 그레이 엘프군이었다.
초전박살, 추풍낙엽.
이런 사자성어들이 어울리는 결과가 데스먼드 제국군의 운명으로 주어졌다.
나를 비롯한 실력 좋은 동료와 신하들이 최전방에서 적의 전열을 완벽하게 궤멸시켰기에.
그들은 함부로 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사실 내 개인적으로는 하루라도 빨리 마탑으로 진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서 전투 도중에 전체 지휘를 라키스에게 맡겨 두고, 대열을 이탈해서 마탑 방향으로 향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이런 나의 노림수를 일찌감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유력한 이동 경로에 다수의 마법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핵심 군사 도시에서는 아예 마정석의 힘을 대량으로 방출하여 왜곡까지 발생시키고 있었다.
이런 상태라면 내가 공격적으로 텔레포트를 쓰다가, 왜곡에 걸려 비명횡사할 공산도 컸다.
마음이 급한 것과 무관하게 서두를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카젤라는 바보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과 달리 전황은 탄탄대로였다. 연전연승의 연속이었다.
아군의 사기는 전투를 치를 때마다 높아졌고, 각지에서 데스먼드 제국의 병사와 백성들이 항복했다.
나는 모든 병사에게 약탈과 폭력 행위를 금할 것을 우선 명령으로 내렸고, 어기는 자는 군법에 의거해 사형에 처하겠다고 했다.
다행히 이를 어기는 병사들은 없었다. 병사들은 내 의도를 완벽히 깨닫고, 정복지의 백성들을 최대한 친절하게 대했다.
물론 조직적인 반항의 기질이 보이거나, 특히 교단의 구성원이 보이면 남김없이 처단했다.
유일하게 내가 반드시 찾아내어 죽이도록 명령한 것이 카코 교단의 단원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연승을 거듭하며 우리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지만.
‘미치겠군.’
정작 내 속은 계속해서 타들어 가는 중이었다.
[1419년 3월 14일]두루마리에 적힌 심판의 날을 향한 카운트다운의 시점이 점점 더 앞당겨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나스 대륙력 1417년.
이제 막 12월로 접어드려는 11월 말의 시점이었다.
하루하루가 중요한 마당에 줄어드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그 하루의 시간 동안 레벨을 1이라도 올리고, 아티팩트를 하나 더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이카젤라가 악랄한 수를 써 가며 제단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정공법을 쓰면 데스먼드 제국은 확실히 무너뜨릴 수 있겠지만, 마탑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주게 돼.’
나는 전략적 판단을 할 필요성이 있음을 느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카젤라는 철저하게 데스먼드 제국을 총알받이로 사용했다.
정탐에 의한 보고에 따르면, 디그론 4세의 대외 활동도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나는 디그론 4세와 나탈리가 이카젤라에 의해 무력화된 그림을 생각했다.
이유는 어찌 됐건 간에…… 지금 이 상황의 구심점은 바로 이카젤라라고 말이다.
놈은 오래전부터 마왕 레크나트의 현신을 준비해 온 열렬한 마왕 추종자였다.
그렇다면 녀석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시간일 뿐이고, 그의 장단에 놀아나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을 터.
그래서 별동대를 구성했다.
수는 많지 않지만, 그 인원만으로도 능히 일당백, 일당천을 해낼 수 있는 구성원만 뽑은 것이다.
바로 나스 대미궁 공략에 참여한 구성원들이었다.
물론 이 자리에 없는 그레이 엘프의 여왕인 클로이는 빠졌고, 아울러 라키스와 엘라도 제외됐다.
그리고 사생결단의 전투가 될 가능성이 컸기에 어린 미아도 배제했다. 강제 명령이었다.
그들은 나를 대신해 군을 통솔하며, 데스먼드 제국의 수도로 진군할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
그리고 레나, 헤이즈, 이자벨, 아슈르, 마이라, 나오미. 이렇게 일곱의 진형이 짜여졌고.
사실 가장 극적인 합류는 바로.
“내가 괴짜 마법사라는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묵묵하게 지키는 것만큼은 자신 있지. 암흑 제단의 내부 구조나 샛길에 대해서는 내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모두들 너무 경계하진 말아라.”
베르하드의 합류였다.
사실 에서도 방관자 – 물론 이유 있는 방관이기는 했지만 – 였던 베르하드이기에 그의 합류는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그가 시기적절하게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암흑 교단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가진 채로 말이다.
그렇게 8인으로 구성한 별동대는 데스먼드 제국의 동쪽을 가로지르는 라카르자 산맥을 따라.
마탑으로 북진하기 시작했다.
모두 타넥스를 착용한 채, 든든한 보호를 받으며 고속으로 질주하는 멋진 광경이었다.
이제 사비오의 채찍질 속에 대량생산 체제에 들어간 타넥스는 앞으로도 이렇게 나를 포함한 최정예 전력의 힘이 되어 줄 터였다.
* * *
과아아아! 과아아아!
타넥스가 굉음을 낼 때마다 추진력이 한껏 더 끌어올려졌다.
모두가 타넥스에 몸을 맡긴 채, 나름대로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자레드만이 타넥스를 착용하지 않고, 전방을 한참 앞서나가고 있었다.
플라이 마법의 추진력이 훨씬 더 빠른 데다가 전방 정탐을 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타넥스 기체는 본대보다 낮은 고도를 비행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지상에서 이뤄질 수 있는 대공 요격이나 마법사의 접근을 조기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아버지…….’
아슈르가 아버지와의 유일한 추억의 흔적으로 남은 목걸이를 꼭 움켜쥐었다.
오늘의 이 비행은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전장으로 향하는 의미 있는 비행이었다.
아버지 루갈이 목숨을 잃은 것은 바로 암흑 교단 때문이었으니까.
비록 힘이 부족해 나스 대미궁으로 떠난 도망자의 삶을 살기는 했어도, 복수를 잊었던 것은 아니었다.
살아서 과연 복수는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자레드 덕에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것도 예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훨씬 더 강력해진 전사가 되어서 말이다.
아슈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또 있었다.
바로 암흑 교단인 ‘움브라 교단’의 수작에 휘말려 왕자의 난은 물론, 선대왕인 아버지를 잃어야 했던 마이라.
그녀 역시 오빠인 이즈엘과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꼭 암흑 교단에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내 능력이 닿는 한, 모든 힘을 동원해서 암흑 교단 놈들을 한 명이라도 더 죽이겠어.’
마이라의 결심은 한결같았고, 그 마음은 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자레드와 함께 마탑으로 향하는 이 시간이 매우 의미 있고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오라버니……. 반드시 오라버니의 복수를 제 손으로 꼭 해내겠어요.’
자레드 일행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묵묵히 데스먼드 제국군과 싸우고 있는 여왕 클로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마다 처한 환경과 상황은 달랐지만, 결국 암흑 교단의 손에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그리고 그들의 분노는.
오롯이, 아주 정확하게 이 모든 일의 원흉! 마탑주 이카젤라를 향하고 있었다.
* * *
“끄아아아!”
“사, 살려 주십시오!”
“뭣들 하고 있어? 너희들도 뒈지고 싶지 않으면, 어서 이놈들을 모두 화염에 처넣어라!”
“이카젤라 님! 제발! 저희는 오로지 충심 하나만으로 교단을 위해 일생을 바쳐 온……!”
“아아아아아!”
“전부 다 쓸어 넣어 버려라!”
광기에 찬 이카젤라가 폭주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제단 중앙에 위치한 ‘레크나트의 화염’ 속으로 100명이 넘는 단원의 목숨이 사라졌다.
각지에서 수송된 평범한 사람들을 제물로 삼는 것도 모자라, 교단의 하급 단원까지 던진 것이다.
다음 제물이 될 민간인이 도착하기까지의 공백을 아깝게 여겨, 가까이에 있는 제물을 고른 것이었다.
화르륵! 화륵! 화르륵!
화염의 불길은 더욱 높이 솟아올랐다.
불길은 점점 더 보랏빛을 진하게 머금어 가고 있었는데, 그 말은 곧 마왕의 현신이 더더욱 앞당겨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
자신의 손으로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동료였던 자들을 밀어 넣은 단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하지만 이카젤라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이미 몇몇이 드러내 놓고 반대 의사를 내비쳤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9클래스의 흑마법사.
제국 내에서 날고 긴다는 이룡도 단숨에 한 줌의 재가 되었을진대, 일반 단원의 운명이야…… 손가락만 튕겨도 끝이었다.
“왜! 왜 아직도 다음 제물이 도착하지 않는 거지?”
“…….”
두려움에 짓눌린 침묵은 계속됐다. 벌써 오늘만 해도 제단에 내던져진 인명이 수만이 넘었다.
이카젤라의 폭주를 막을 사람도, 반대할 사람도 없었다.
그저 학살의 연속.
여기에 끌려온 죄 없는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이유조차 모른 채 불에 내던져졌다.
이카젤라가 계속 클린 마법을 이용해 냄새를 잡지 않았다면, 지하 제단은 온통 시체 타는 냄새만 진동을 했을 것이다.
“안 되겠군. 안 되겠어!”
참을 수 없었는지, 이카젤라가 제단 근처에 서 있던 단원들을 향해 손짓했다.
텔레키네시스였다.
“어어?”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제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레크나트 님께서 곧 너희를 지옥에서 다시 구해 내실 것이다! 그러니 영광스럽게 죽어라!”
애타는 외침도, 구슬픈 눈물도 이카젤라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단원들은 불에 던져지는 작은 나뭇가지처럼, 그렇게 덧없이 투척 되어 한 줌의 재로 화했다.
그리고.
“보고 드립니다!”
단원 하나가 달려와 부복했다.
“도착했나?”
“예! 아시노스 마을에서 3천의 인원을 바로 압송해 왔습니다!”
“좋아! 그래야지! 그놈들을 어서 이쪽으로 끌고 와라!”
“예엣!”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카젤라가 입맛을 다시며, 제물이 될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단원들의 통제 속에 흐느끼고 두려워하며, 속속 암흑 제단 안으로 끌려오고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
이카젤라는 제물로 끌려온 인파들 사이에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변수를 목격했다.
넝마가 된 옷을 걸친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남자 하나가 고개를 들더니.
파앗!
“……!”
순식간에 텔레포트를 전개하며, 바로 자신의 코앞까지 날아든 것이다.
다음 순간.
이카젤라는 똑똑히 얼굴의 주인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카젤라, 이 X새끼야.”
그것은 바로.
크리비아 제국의 황제!
자레드 폰 유칼레스의 또렷한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