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68
제 268화
85장. 혈투 – 4화
‘이런 X랄 맞은 일이…….’
대난투극이 시작되면서 이카젤라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자레드의 새로운 면을 보기 시작했다.
자레드가 꺼낸 선택지는 바로 마법 멸시와 선택적 회피였다.
이카젤라가 중간중간 견제를 위해 속공으로 밀어 넣은 3클래스 이하의 마법은 모조리 ‘마법 멸시’에 막혔다.
정말 손가락 하나만 까딱였을 뿐인데, 허망하게 자레드의 코앞에서 마법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허상을 보는 줄 알았다. 마법이 무기력하게 증발해 버렸기 때문이다.
8클래스인 자레드가 디스펠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리도 없어서 이카젤라에게는 의문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든 것은 역시 선택적 회피였다.
[옵션 7 : 선택적 회피 – 4클래스 이상의 마법은 ‘해당 마법의 클래스 × 1000’의 마력으로 튕겨 낼 수 있습니다.]이그노어 건틀릿의 7번 옵션인 선택적 회피는 과거에 자레드가 사용하기에는 마력 부담이 컸었다.
9클래스 마법을 튕겨 내려면, 어쨌든 9천의 마력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스 대미궁을 다녀오면서 마력이 대폭 상승한 자레드에게는 더 이상 골치 아픈 요소가 아니었다.
죽음의 광선, 헬파이어, 다크 블레이즈, 블리딩 등등 모든 9클래스 마법이 자레드에게는 먹혀들지 않았다.
정확히는 방어되었다.
자레드는 마력만으로, 너무나도 쉽게 공격을 튕겨 내 버렸다.
그리고 성난 파도처럼 날아들었던 이카젤라의 흑마법은 그대로 단원들에게 날아갔다.
“끄아아아!”
“으아아!”
여기저기서 비명과 함께 단원들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다.
광선에 닿으면 분해되고, 헬파이어의 불길에는 뼈까지 녹아내렸으며, 블리딩에 당하면 모든 핏방울이 터져 죽었다.
“도대체 탑주님께서 왜……?”
“우리를 버리시는가?”
자레드의 대응 방식임을 알지 못하는 단원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이카젤라가 자신들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도망치는 단원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오기와 독기로 얼룩진 이카젤라가 다시금 헬파이어를 이용해 자레드를 노리려는 순간!
타앙!
자레드가 다시금 선택적 회피로 헬파이어를 튕겨 내며, 동시에 화염 구체 뒤에서 이카젤라를 정조준했다.
‘데큐플 트랜센던스 플레어 스피어.’
5원소 마법의 집성체로 ‘심판의 창’이라고도 불리는 마법.
자레드는 미련 없이 8만의 마력을 소모하며, 이카젤라의 중심을 정확하게 노렸다.
“빌어먹을……!”
이카젤라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강한 위력을 담았던 자신의 마법이 되돌아오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지이잉!
퍼펙트 실드.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다.
자기 자신의 마법을 막기 위해 또 다른 마법을 펼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
기존의 전투 메커니즘을 뒤바꿔 버린 자레드의 변수 창출에 이카젤라는 그만 질려 버렸다.
콰아앙!
“크어억!”
헬파이어의 구체를 그대로 막아 낸 이카젤라의 몸이 허공에서 뒤로 쭉 밀려났다.
하지만 문제는 안타깝게도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
헬파이어의 화염구가 만들어 낸 검은 연기 사이로 좁게 보이는 뒤에서.
더 강력한 무언가가 매섭게 날아들고 있었다.
“X발…….”
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
재차 퍼펙트 실드를 펼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자레드가 정확하게 시간을 계산해 노렸던 것이다.
게다가 헬파이어의 구체가 만들어 낸 완벽한 사각지대에서 정확하게 플레어 스피어를 조준했다.
파아앗!
꿩 대신 닭의 개념으로 이카젤라가 펼친 것은 다름 아닌 실드.
완벽한 미스 매치가 성사됐다.
콰과과과과!
“끄억……!”
오색영롱한 마법의 창이 이카젤라의 전신을 할퀴며 지나갔다.
평범한 플레어 스피어라면 한 번만 할퀴고 말았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이것은 10단계 초월 마법.
쇄액! 찌이익! 쫘아악!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칠 정도로 살이 인정사정없이 찢겨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걸로는 절대 안 죽어. 오히려 광폭화의 좋은 재료가 될 뿐이야.’
이쯤에서 이카젤라에게 일격을 가한 기쁨을 누릴 법도 하지만, 자레드는 더욱 긴장의 끈을 조였다.
‘마력 방출!’
자레드는 미련 없이 남은 모든 마력을 방출했다.
그리고 즉각 무디두스의 기도를 이용해 18만의 마력을 단번에 충전했다.
‘아르케네스를 구한 그날에 바로 이 지팡이를 얻었지. 참 요긴하게 쓰이는 지팡이야.’
마력 전체를 회복시켜 주는 2성짜리 아티팩트는 이것밖에 없을 것이다.
에서는 오히려 인벤토리만 잡아먹는 짐짝처럼 여겨졌었는데……. 현생에서는 정말 인생의 동반자나 다름없었다.
“크으으……. 이 정도 가지고 내가 상처를 입을 것 같으냐!”
바로 그때.
역시나 자레드가 예상했던 것처럼 이카젤라가 광폭화 패턴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광폭화는 신체에 피해가 누적될수록 마력, 지혜, 캐스팅 속도가 급상승하는 특성이 있다.
악신 ‘퀴라티오’가 에서 학살과 기생의 신으로 피학적 성향이 있어 광폭화라는 끔찍한 특성이 만들어진 것이다.
‘광폭화의 가장 큰 단점은 돌입하는 바로 그 순간이지.’
여기서 겁을 집어먹고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승부수를 던질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자레드는 사방에 마력을 흩뿌려 두었다.
거의 10만에 가까운 마력이었는데, 비유하자면 반경 30m의 공간에 보이지 않는 기름을 잔뜩 뿌려 놓은 것과 같았다.
‘데큐플 트랜센던스 마나 익스플로전.’
‘데큐플 트랜센던스 마나 번.’
자레드가 도합 16만의 마력을 한꺼번에 소모하며, 마력을 매개체로 한 2개의 마법을 시전했다.
하나는 마력을 폭발시켜 버리는 마나 익스플로전이고, 하나는 마력을 태우는 마나 번이었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시전할 경우, 에서는 대재앙이라고 부르는 일이 벌어졌었다.
각각의 마법 대미지가 겹쳐지는 과정에서 교집합이 되는 구간에 말도 안 되는 대미지 곱셈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카젤라, 너를 위해 준비한 신의 선물이야.’
신의 선물이라고 쓰고, 대미지 버그라고 읽는다.
교집합 구간에서는 지속 시간이 약 0.5초 정도에 불과하나, 순간적으로 6000도에 가까운 고열이 발생한다.
이것 때문에 에서는 긴급 패치가 한 번 이뤄졌던 적이 있었다.
나스 대미궁 99층의 보스 몬스터 아우스타스가 10초 만에 허무하게 죽었기 때문이다.
개발진이 자신들이 디테일하게 설정을 짜 두지 못한 큰 실수라고 인정했던 그 버그.
그간 단 한 번도 세상에 공개하지 않고 아껴 왔던 ‘필살 버그’를 사용하는 순간이었다.
“어…….”
이카젤라가 허리 아래로 시원해진 느낌에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없었다.
허리 아래로 꿈틀거려야 할 자신의 두 다리는 온데간데없이, 모든 것이 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순간의 고열에 익어 버린 자신의 전신에서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랐다.
투욱. 투우욱.
이윽고 살점들이 마치 힘없는 젤리처럼 흘러내리기 시작하며, 몸이 무너져 내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이카젤라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레드를 쳐다보았다.
자레드가 마나를 뿌려 둔 것?
알고 있었다.
9클래스의 마법사가 어찌 그것도 모르고 전투에 임할 수 있겠는가? 진즉에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질 마나 번과 마나 익스플로전?
한 번에 두 개를 쓸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이것 역시 꿰뚫어 보고 있었다.
매개체가 될 마력을 뿌렸으니, 당연히 그것을 이용한 공격을 펼칠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전신을 강철처럼 단단하게 변화시키는 7클래스 흑마법, 아이언 메이크를 썼다.
대응은 성공적이었다.
강철화로 인해 신체의 기동 능력은 꽝이 되겠지만, 두 마법에 대한 교과서적인 대처였다.
그런데.
“우웨에에엑!”
이카젤라가 허공에서 흔들거리고 있는 자신의 창자를 내려보다가 결국 토악질을 해 댔다.
강철화가 뚫려 버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솟구친 고열로 인해 강철 그 자체가 녹아 버린 것이다.
덕분에 허리 아래의 모든 것이 열과 함께 녹아 사라져 버렸다.
-멍청한 놈…….
-네 오만방자함이 기어이 이런 사달을 내고 마는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거늘.
-버리는 패에 배팅한 패배자의 최후인 게지. 클클클.
가호를 내린 인간의 죽음을 예감한 악신들이 저마다 ‘유언’을 남기기 시작했다.
이카젤라는 아직도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내가, 8클래스의 자레드에게, 그것도 일격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린다고……?’
자레드의 특수한 태생을 알 리 없는 이카젤라의 치명적인 패착이었다.
초월 마법의 위험성은 알고 있었지만, 그 마법의 합주로 만들어진 ‘버그’는 알지 못했다.
자레드의 모든 수를 꿰뚫어 보지 못한, 애초부터 패배가 정해져 있던 이카젤라의 결과였다.
슈아아아아.
자레드가 플라이 마법으로 가까이 다가왔지만, 이카젤라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쿨럭! 쿨럭!”
이카젤라는 허공에서 피를 토해 냈다. 무의식중에 몸이 유지하고 있는 플라이 마법이 현재 이카젤라가 시전하고 있는 유일한 마법이었다.
“눈을 뜬 순간부터 오늘을 기다려 왔어. 오직 나만이 아는 지식. 그것을 오늘처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날을 말이야.”
자레드가 웃으며 말했다.
사실 이카젤라와의 전투에서 쓰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카젤라가 자신의 헬파이어를 되돌려 받으며 당황했던 그 순간.
시간으로 따지면 2초?
아니, 그것보다 훨씬 짧은 순간의 흔들림과 망설임이 지금의 결과를 가져왔다.
게다가 나름대로 자신의 믿는 구석인 ‘광폭화’에 돌입하면서, 이제 자레드에게 본때를 보여 주겠노라고 생각했던!
그 착각이 지옥문으로 향하는 보증 수표가 되어 버렸다.
“……내가 죽는다고 끝날 것 같으냐.”
“당연히 아니지. 너도 내가 가는 길을 가로막고 서 있던 한낱 작은 장애물일 뿐이야.”
“……뭐라고?”
“대단한 인간이라도 되는 것처럼 으스대지 말란 얘기야.”
터업!
“커헉!”
자레드가 이카젤라의 목을 움켜쥐었다. 어차피 죽어가는 몸이지만, 자신의 손으로 끝을 내고 싶었다.
“지옥에서 네놈이 모셨던 악신과 함께 지켜봐. 마왕 레크나트도 꼭 네 곁으로 보내 주마.”
“……끄르르륵.”
이카젤라가 피가 잔뜩 고인 침을 흘리며, 눈을 까뒤집었다.
독기에 찬 무슨 말 한마디라도 내뱉고 싶었지만, 그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우웅! 우웅! 우웅!
이윽고 크러싱 피스트로 강화시킨 자레드의 두 주먹이 다시금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터업! 터어업!
한 손은 이카젤라의 머리를, 나머지 한 손은 이카젤라의 어깨를 붙잡았다.
위이잉.
이어진 텔레포트.
자레드의 모습이 나타난 곳은 교단의 단원들과 자레드의 동료들이 격전을 벌이고 있는 제단 근처의 전장 한가운데였다.
그리고.
“너희들이 신처럼 모시던 마탑주는 내 손에 죽었다!”
쫘아아악……!
자레드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카젤라의 머리를 몸에서 분리시켜 버렸다.
사방으로 흩날리는 선혈.
“…….”
“…….”
그 순간.
전장 전체에 적막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