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7
제 27화
10장. 미다스의 손 – 2화
짐승들.
그것은 고블린에 대해 사람들이 지닌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또한 오랜 시간 동안 굳어져 온 편견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세계의 삶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레드에게는 그런 닫힌 생각이 없었다.
오픈마인드!
자신과 영지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짐승이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기꺼이 손을 잡겠다는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있었다.
“그들은 우리 영지에 큰 도움이 될 것이오. 내가 장담하지.”
“하지만…….”
가신들이 말끝을 흐렸다.
자레드의 옆에서 위협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훑고 있는 라키스의 눈빛 때문이었다.
“편견을 깨러 갑시다. 속는 셈 치고, 날 믿어 보시오.”
자레드가 웃었다.
일말의 걱정조차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눈빛. 영문을 알지 못하는 가신들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레드의 뒤를 따를 뿐이었다.
* * *
레드 고블린 부족이 사는 영토까지는 꽤 긴 거리를 가야 했다.
델루크를 공격하기 위해 방문했던 카스가드 설산보다 반나절 이상을 더 가야 나오는 곳이었다.
나와 가신들은 고블린을 만나러 가기에 앞서, 악몽의 숲 인근의 마을에 잠시 들렀다.
몬스터 헌터들이 몰리고 있다는 아빌라의 말도 있었고, 직접 변화를 관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아키의 상단이 열심히 물건을 파는 광경을 살폈다.
“손님, 반갑습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여기서 치료제를 구입한 동료가 깨끗하게 나았다는 소식을 들었다네. 39골드에 치료제를 구할 수 있는 곳은 크리비아 영지밖에 없는 건가?”
“그렇습니다! 어딜 가셔도 이 가격에 치료제를 구하실 곳은 없을 겁니다. 얼른 로넬라 병을 치료하시고, 던전에 가셔야지요!”
“그러게 말이네. 여기 오기 전에 살짝 악몽의 숲을 둘러봤는데, 때가 별로 묻지 않은 곳이더군. 헌터들이 엄청 좋아하겠어.”
“확실히 악몽의 숲이 공략의 메리트가 있지 않습니까?”
“맞아. 사실 이 영지가 예전부터 워낙에 영주의 악명이 높아서 오지 않았었네만…… 지금 보니 잘못된 소문이었군! 마요르카 영지에서 성행하는 불법 노예 매매도 없고, 마을의 분위기도 매우 평화롭고 말이야.”
“그렇습니다. 저희 영주님만큼 영지에 애정을 갖고 계신 분도 드물지요. 저는 확신합니다. 크리비아 영지는 곧 수많은 헌터의 새로운 메카가 될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양질의 치료제와 포션, 그리고 순도 높은 마정석을 한꺼번에 구입할 수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으니까요!”
힘주어 말하는 아키의 눈빛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바로 그때.
한 무리의 헌터들이 달려와서는 앞을 다투어 아키에게 말을 걸었다.
“치료제! 치료제 혹시 여분 있나? 나, 그게 정말로 필요해! 이 재수 없는 병을 빨리 치료하고 싶다고!”
“이티마 제국 놈들! 이번에 얘기 들어 보니, 치료제 수요가 늘어나니까 가격을 200골드로 올리려고 한다더군! 그런 양심 없는 놈들의 배를 불려 줄 수는 없지. 난 앞으로 악몽의 숲을 새로운 목표로 삼을 예정이야!”
“잘 오셨습니다. 치료제는 넉넉히 있습니다. 가격도 변함없고요. 단, 외부 유출은 안 되니 여기서 복용하셔야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어서 팔아 주게! 빨리 치료해서 악몽의 숲을 공략하고 싶다고!”
“하하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치료제를 드시면 몇 시간 만에 예전의 원기를 되찾으실 겁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크리비아 영지에서 비로소 목숨을 건지는군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 약초 배합법을 영주가 개발했다던데 사실인가?”
“예, 그렇습니다. 초반에 대외비를 위해서 잠시 숨기기는 했었지만요. 영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많은 놀랄 거리를 여러분들에게 드릴 수 있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한지인 곳이라서 솔직히 많이 무시했었는데, 반성해야겠군. 참, 자네 이름이 아키라고 했었나?”
“예, 그렇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단골이 될 테니,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하는 대행도 맡아 주게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저만 믿고, 언제든 요청해 주십시오! 영주님께서 헌터 여러분들을 위한 많은 편의 시설을 곧 지으실 예정이라고 하니, 언제든 들러 주십시오!”
그들의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나는 물론이고 모든 가신들이 집중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쉴 새 없었던 그들의 대화가 끝났을 때, 가신들은 모두가 입가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우리 영지의 큰 변화는 전부 영주님의 공이십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됩니다. 몬스터 헌터들이 몰려드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영지의 격을 높일 수 있도록, 저부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들 아키와 헌터들 사이에서 오간 대화를 보고, 큰 감정의 변화가 일어난 모양이었다.
아키는 내 예상대로 훌륭하게 활약해 주고 있었다.
녀석만 곁에 있다면 당분간 약초 판매와 관련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했다.
그로부터 6시간 후.
나와 가신들은 말을 타고 부지런히 동쪽으로 계속 이동한 끝에 드디어 레드 고블린의 영토 안에 들어섰다.
이쪽에 고블린이 있다는 것만 알고 직접 대면한 적은 없는 가신들이 대다수인지라 살짝 겁을 먹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라키스는 이끌고 온 치안대를 양옆으로 나누었다.
그렇게 좀 더 넓은 범위를 호위할 수 있게 대형을 잡았다.
나는 최전방에 있었다.
바로 그때.
케케케! 케케!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그저 평범한 나무와 바위로 보이던 지형지물 틈새에서 고블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블린을 쏙 빼닮은 외모를 하고 있지만, 피부가 매우 붉게 빛나고 있는 그들.
레드 고블린이다.
에서 레드 고블린은 일반적인 고블린과 달리, 높은 지능을 가진 지성체였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고, 레드 고블린 사회의 상층부에 위치한 녀석들만 그러했다.
방금처럼 특유의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고블린은 지능이 현저히 떨어지는 녀석들로 주로 전투 요원으로 소모되는 부류였다.
“모두 방어 태세! 선공 금지!”
나는 순간 동요할 뻔했던 병사들을 일거에 진정시켰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무작위로 선택한 고블린의 상태를 심안으로 살폈다.
[레드 고블린 무파마 – Lv. 2] [근력 : 9][체력 : 9] [마력 : 0][지혜 : 0] [민첩 : 3][매력 : 1] [물리 방어력 : 1] [마법 방어력 : 0] [특수 성향 : 없음] [일반 성향 : 밥, 잠, 똥]‘밥, 잠, 똥. 기가 막히는구먼.’
이런 식이었다.
작정하고 싸우면, 내 선에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약했다. 손가락만 튕겨도 되겠지 싶다.
물론 영토의 최외곽으로 쫓겨난 녀석들이기에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낮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다그닥! 다그닥!
그때, 말발굽 소리와 함께 수풀을 가르며 달려오는 고블린이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면서 형체가 선명해지자, 고블린의 모습이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다.
레드 고블린 로드.
이바니바였다.
“아?”
“이럴 수가…….”
이바니바를 본 가신들이 거의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금이나 은 따위가 아닌, 돌을 여러 개를 이어 붙여서 만든 듯한 왕관. 그리고 전신을 무장한 갑옷 여기저기에 자랑스럽게 박혀 있는 돌멩이까지.
그의 몸을 치장하는 모든 부위에는 우리 영지의 흔한 돌멩이인 나이트메어 스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스톤은 하나하나 오랜 시간 공들여 연마(硏磨)한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고, 이바니바는 그런 스톤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뿌듯해하는 모습이었다.
“설마?”
무언가 짐작이 가는 것이 있는지, 뒤에서 지켜보던 아빌라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제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이해할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눈치가 없는 가신들은 아직도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지만.
“모두 말에서 내리시오. 우리가 공격하지 않는 한, 저들이 우리를 공격할 일은 없소. 그러니 날 믿고 모두 내려와 예를 갖추시오.”
가신들에게 지시를 내린 뒤, 나는 바로 말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여전히 말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바니바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가신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만도 못한 고블린에게 인사를 하는’ 광경이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 체면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허례허식은 필요 없다. 알량한 자존심은 더더욱 필요 없고.
영주인 내 명령은 절대적이다.
쭈뼛거리던 가신들도 이내 체념한 듯, 나와 똑같이 이바니바에게 예를 올렸다.
그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반갑습니다, 로드. 이웃해 있는 크리비아 영지에서 로드를 찾아온 영주 자레드라고 합니다.”
“레드 고블린의 영토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낯선 이여. 나는 나의 훌륭한 고블린들을 굽어 살피는 깨우친 고블린, 이바니바요.”
뭔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환영 멘트 같은데?
어쨌든 이바니바는 무척이나 우호적인 눈빛으로 나를 반겼다.
그는 나와 말이 통했다.
내가 따로 고블린의 언어를 연구한 적은 없었으므로, 그가 나스 대륙어를 학습한 것이 확실했다.
이내 그도 말에서 내렸고, 나와 눈이 맞았다.
고블린의 특징이라고 불리는 낮은 신장 때문에 눈높이가 맞지 않을까 신경 쓰였는데.
막상 말에서 내려오니 나와 같았다. 180cm가 넘는 것이다.
“로드, 공식 수교 관계를 맺은 다음에 레드 고블린이 가지고 있는 금과 철을 본 영지의 자원과 교환하고자 합니다.”
내 제안에 이바니바가 솔깃했는지, 관심을 보이며 살짝 앞으로 다가섰다.
나는 이어서 내용을 덧붙였다.
“본 영지의 자원인 나이트메어 스톤을 같은 비율의 금과 철로 교환하고 싶습니다.”
“영주님!”
“그건 말도 안 되는…….”
그 순간, 등 뒤에서 당황한 듯한 가신들의 목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여 들려왔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하찮은 돌멩이를 가져와 귀한 금과 철로 바꿔 가려고 하다니!
가신들은 그냥 넘어가면 다행이나, 자칫 잘못했다가 심각한 도발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 * *
‘갑자기 현명하시던 영주님이 도대체 왜?’
라키스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간 자레드가 어떤 명령을 내려도, 어떤 판단을 해도 군말 없이 따랐던 라키스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이해할 수 없었다.
레드 고블린이 가지고 있는 금과 철을 얻기 위해 그만큼의 금화라던가 마정석 따위를 건네는 것이면 몰라도.
당장에 크리비아 영지에 오면 악몽의 숲 근처에 차고 넘치는 돌멩이를 교환의 대상으로 내밀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라키스는 고블린 로드 이바니바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다.
갑자기 나타난 인간들이 공식 수교를 원한다면서, 금과 철을 돌멩이로 사 가겠다고 하면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자레드가 자신을 무시하고 깔봤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리고 로드의 위엄을 실추시켰으니, 그에 걸맞은 보복을 할 듯했다!
‘위험하다.’
스르릉.
라키스가 천천히 검을 빼내기 시작했다.
여차해서 고블린들이 자레드의 목숨을 노리려 하면, 바로 달려들어 보이는 대로 목을 벨 생각이었다.
그 생각은 함께 온 가신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만약을 대비해 몸속에 숨겨 온 호신 무기들을 꺼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
놀라운 상황이 벌어졌다.
“아주 좋소. 우리 레드 고블린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나이트메어 스톤을 가지고 이 자리까지 직접 와 준 자레드 영주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바요!”
갑자기 이바니바가 고개를 숙이더니, 허리까지 굽혀 가며 거꾸로 자레드에게 예를 올리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그 순간, 가신들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과 황당함,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악이 담겼다.
현물로서의 가치가 하나도 없는 돌멩이를 철과 금으로 바꿔 내는 진정한 연금술사가 영지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영주라는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