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275
제 275화
87장. 심해의 왕 – 4화
그로부터 10분 후.
‘물이라는 핸디캡이 자레드에게 그리 큰 위협이 되지 않는 건가?’
무르테스는 자레드와의 전투 내내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맹공에 꽤 고전하고 있었다.
자레드는 물이라는 특수한 공간으로 인해 생길 수밖에 없는 약점을 두 가지 방법을 이용해서 효과적으로 메우고 있었다.
첫째는 바로 공간 왜곡 마법인 디멘션 도어였고, 둘째는 수분 증발 마법인 윌트였다.
자레드가 집중해서 펼쳐 내는 디멘션 도어로 인해 무르테스가 전개하는 물의 충격파는 전부 헛수고가 되고 있었다.
자레드에게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싶으면, 디멘션 도어를 이용해 경로를 바꿨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그 물의 충격파가 차원문을 따라 오히려 자신에게 날아와서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인간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들었지만, 자레드의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물이라는 공간 자체를 전혀 부담스러워하지 않는군.’
자레드의 속마음을 알 리 없는 무르테스는 그의 침착한 대응에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사자인 자레드는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시간을 초, 아니 그 이하의 단위로 쪼개어 대응 중이었지만 말이다.
‘무르테스의 공격은 9클래스의 마법사인 나도 정면으로 맞으면 죽기 딱 좋은 위력이네.’
한편 자레드 역시 속으로 무르테스의 공격력에 크게 감탄하고 있었다.
체감상 그가 펼치는 물의 정령술은 최소 7클래스 마법사 이상은 되는 듯했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토네이도 같은 것도 마법으로 치환하면, 아쿠아 토네이도(Aqua Tonado) 같은 하이클래스 마법과 유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레드가 아슬아슬하게 회피한 정령술이 바다 생물들을 덮치게 되면.
퍼엉! 퍼엉!
작은 물고기든, 거대한 상어든 무엇이나 가릴 것 없이 풍선처럼 터져 나갔기 때문이다.
무르테스가 자레드의 실력에 더욱 놀란 것은 바로 윌트 마법이었다.
일전에 나스 대미궁에서 아마라를 잡을 때 사용했던 윌트 마법을 자레드는 이번에도 썼다.
용도는 전장을 일시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트랜센던스 윌트를 이용해서 주변의 물을 순식간에 증발시키면, 1초 정도 무수(無水) 상태의 공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자레드는 무르테스와의 거리를 계산하며, 그것에 맞게 윌트의 초월 강화 수준을 조절했다.
그렇게 윌트를 이용해 일시적으로 수분을 날려 버린 뒤, 막간을 이용해 무르테스에게 마법을 퍼부었다.
물에서는 무르테스가 왕 중의 왕일지 몰라도, 반대의 경우라면 얘기가 달랐다.
물이 없는 곳에서 무르테스는 물의 정령술을 전혀 활용할 수 없는 존재였다.
설령 정령을 소환한다고 하더라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기존의 1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자레드의 윌트 응용에 무르테스는 몇 번이나 빈틈을 노출했다.
그 결과.
꾸드득! 꾸득!
“크헉…….”
황금 갑주가 찌그러졌다.
제아무리 내구성 높게 만들어진 갑주라고 한들, 자레드의 마법이 명중하면 견뎌 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크으으……. 약이 오르는군!”
무르테스는 신경질적으로 입고 있던 갑주의 이음새를 끊어서는 옆으로 벗어 던졌다.
찌그러진 갑주는 오히려 입고 있는 것이 방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매우 정교하면서도 계산된 움직임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막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불리한 상황인데, 전혀 주눅 들지 않았어.’
무르테스는 자레드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육지의 존재인 자레드가 물에서 싸우게 되면 자신보다 서너 배 이상은 불리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자레드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봤다.
그만큼 물이라는 것은 모든 생명체에게 소중하면서도, 그 안에서 생존할 때는 가혹한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아클라니아인들은 물속에서도 능히 숨을 쉬고, 타고난 강인한 육체로 수압을 버텨 내지만.
평범한 인간은 절대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숨도 쉴 수 없고, 수압을 버틸 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레드는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디멘션 도어와 윌트를 이용한 공세로 자신에게 부상을 입혔다.
잠시 암묵적으로 서로에게 찾아온 소강상태.
자레드가 웃으며 무르테스에게 물었다.
“대왕, 항복입니까?”
“항복은 무슨! 이제부터 시작이오!”
“좋은 전투입니다. 온몸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역시 심해의 왕의 품격은 다르군요.”
“나 역시 인간 마법사인 당신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소. 날 열 받게 했으니, 그 대가를 치를 준비나 하시오.”
“얼마든지 받아 드리지요.”
“하아압!”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 무르테스가 이번에는 양손을 한데 모아 공격을 전개할 준비를 했다.
구구구구! 구구구구!
그러자 주변 전체가 일렁이기 시작하며, 동시에 심해저에서 기포가 밀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산 넘어 산이군.’
또 한 번의 힘 개방.
자레드는 무르테스가 1차 각성(?)에 돌입했음을 깨닫고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제부터는 더 고난도의 집중과 컨트롤이 필요할 것 같았다.
방심하면, 죽는다.
* * *
무아지경.
늘 전투에 몰입하게 되면 내가 이르게 되는 경지.
극한의 상황이라는 압박감은 자연스럽게 나를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조금이라도 다른 곳에 정신을 팔면, 말 그대로 정말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모든 감각은 오롯이 무르테스의 움직임을 좇아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무르테스는 디멘션 도어를 활용한 내 공격에 무척이나 고전했다.
처음에는 트랜센던스가 아닌 일반 디멘션 도어 마법을 이용해 차원문 두 개를 활용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차원문의 개수를 대폭 늘렸다. 변수 창출을 위해서였다.
이는 즉흥적이고 호전적이며, 앞뒤 재기보다는 난타전을 원하는 것으로 보이는 무르테스에게는 상극이었다.
차원문의 수가 많아지자, 무르테스는 각각의 차원문이 어떤 연결 고리를 갖고 있는지 놓치기 시작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시전자인 내 눈에는 어떤 차원문이 입구고, 어떤 차원문이 출구인지 보인다.
그렇기에 경로를 계산하거나 설계하는 것이 가능한데, 여기에 무르테스는 영 맥을 못 췄다.
뭐랄까.
무르테스를 잡기 위해서 내가 쓴 힘은 역설적으로 ‘무르테스의 힘’이었다.
그가 쓴 물의 정령술을 차원문을 이용해 되돌려 준 것이 태반이었다.
거기에다 이따금씩 치명적인 일격이 필요할 때면, 윌트로 수분을 걷어 내고 마법 하나를 연계하는 식으로 그를 괴롭혔다.
“허억, 허억, 허억. 제길…….”
무르테스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를 힘겹게 노려보고 있었다.
초반의 독기와 투지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것이다.
나도 내색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친 상태였다.
단기간의 집중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정말 눈 하나 깜빡이는 것까지 신경 쓸 정도로 무섭게 집중하고 있는 상태.
이런 전투가 30분을 넘게 이어졌으니, 탈진에 가까운 상태가 되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에, 에이이잇……!”
그래도 승부를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무르테스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내게 쇄도했다.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는 모습은 마치 대양을 힘차게 가르는 돌고래를 보는 듯했다.
‘그렇다면.’
나는 데큐플 트랜센던스 크러싱 피스트 마법을 캐스팅했다.
마력 8만을 순식간에 소모하는 주먹 강화의 마법.
지금까지 줄곧 마법적인 대응과 활용에만 전념해 왔던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꺼낸 변수였다.
“…….”
숨을 죽이고 그가 접근하기를 기다렸다.
크러싱 피스트를 이용해서 주먹 공격을 가하면, 퍼펙트 실드도 무너지고 말 것이다.
자구책이 필요하다.
일단은 순간적인 시간차를 이용해 스톤 스킨이든 아이언 스킨이든 사용할 생각이었다.
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아아압!”
순식간에 다가온 무르테스가 내게 주먹을 뻗었다.
“하!”
나도 지지 않고 맞섰다.
힘껏 강화된 주먹을 내질렀다.
단순한 주먹이 아니라, 정말 9클래스 마법에 준하는 위력을 가진 초강력 ‘핵주먹’을 말이다.
그리고.
뻐어엉!
두 주먹이 충돌한 순간, 마치 대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 힘에 휘말린 바닷물도 쭉 원형으로 밀려났고, 일시적으로 물이 없는 상태가 만들어졌다.
‘이걸 내가 놓쳤군.’
나는 바로 데큐플 트랜센던스 퍼펙트 실드를 전개했다.
마력을 아낌없이 썼다.
밀려난 물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엄청난 수압이 그대로 내 몸을 덮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미래를 준비하는 사이.
“끄허어억…….”
무르테스는 현실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크러싱 피스트를 활용한 주먹의 강도를 예상조차 못 했는지, 거품을 물고 심해저로 추락하고 있었다.
축 늘어진 몸으로 봐서는 충돌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시간차를 두고.
“우욱!”
나도 몸속에서 참을 수 없는 구역감이 확 밀려 올라온 탓에 그만 헛구역질을 했다.
몸에 무리가 간 걸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래를 내려다보니, 복부를 중심으로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망할.”
강하게는 아니지만, 아슬아슬하게 복부를 강타당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깊숙하게 타격을 받았다면, 내장이 진탕이 되는 수준을 넘어서 한두 군데 터졌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급격하게 떨어지는 체력을 대회복으로 빠르게 끌어올렸다.
내 몸이 직접 보내는 경고 신호를 느끼지 못했더라면, 발견이 늦어질 뻔했다.
어쨌든 급한 불은 껐다.
무르테스와의 전투에서 일분일초도 방심하지 않고 집중한 것이 확실한 효과를 봤다.
만약 무르테스가 전투 경험이 풍부했다면, 혹은 내가 트랜센던스 마법을 쓸 수 없는 마법사였다면.
자신 있게 말하건대 패배하는 것은 내 쪽이었을 것이다. 전투를 통해서 그것을 여실하게 느꼈다.
‘새로운 전장에서의 정말 특이한 경험이었어.’
두고두고 뼈와 살이 될 경험이 될 것 같았다.
마왕 레크나트가 현신하게 되면, 전장이 어떻게 바뀔지는 지금으로선 예측조차 할 수 없다.
저주가 내린 땅은 숨 쉬기 힘든 독지가 될 수도 있고, 용암이 부글부글 끓는 죽음의 땅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대륙 전역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부를 휩쓸 해일이 밀려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무르테스와의 전투를 통해 ‘변수’를 경험했다는 것은 내게 큰 도움이 될 듯했다.
“일단 승자의 기쁨과 함께 뒷수습을 하도록 할까?”
나는 끝없이 침잠하고 있는 무르테스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세 좋았던 시작을 생각하면 살짝 모양 빠지는 끝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반지를 넘기겠다는 약속만 지킨다면, 유혈 사태를 일으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 * *
그로부터 10분 후.
“받으시오. 약속은 지켜야지.”
자레드의 힐을 통한 치료 덕에 정신을 차린 무르테스는 눈을 뜨자마자, 미련 없이 자레드에게 영혼 격리의 반지를 건넸다.
약속의 실천이자 피가 끓는 전투에 대한 열망과 열의를 만족시켜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자레드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그는 일말의 변명이나 토를 달지 않고 순순히 반지를 넘겼다.
그것은 자신이 뱉은 말의 무게를 알고, 신의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심해의 왕이 보인 품격이었다.
그리고 자레드가 성마 대전을 준비하기 위한 첫 번째 퍼즐 조각을 맞추는 순간이기도 했다.
확실한 보험이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