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
제 3화
2장. 꼼수는 나의 힘! – 1화
-너! 감히 나를 희롱해?
“무슨 희롱을 했다고 그래? 중요한 것을 생각하라며. 그래서 떠올렸을 뿐이야. 그게 잘못됐어?”
-아니, 세상에 어떤 미친X이 가장 중요한 것을 자신의 첫키스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런 놈, 네 앞에 있잖아?”
성난 이자벨라의 물음에 자레드가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완벽하게 당했다.
이자벨라는 분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상대에게 소중한 것을 묻는 것이 계약의 의식이었고, 그것을 무조건 취하는 것이 계약의 이행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계약의 내용을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걸까? 놀라우면서도 무서웠다.
미리 알지 않고서야 저런 것을 떠올릴 리 없었으니까.
미치지 않고서야 자신의 입술 – 심지어 빼앗긴 적도 없는 첫키스 – 을 갖다 바치다니! 원하지도 않았는데!
어쨌든 완전 손해 보는 장사를 했다.
심안의 능력을 적선한 셈 치고 그냥 떠날 수도 있었지만, 이자벨라는 분하고 열이 올라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안 되겠어.
“뭐가 안 돼?”
-네가 죽어서 심안의 능력을 다시 회수할 때까지 널 따라다닐 거야. 귀찮게 할 거야! 이 치욕스러운 경험이 잊히는 날까지 널 괴롭혀야 속이 풀리겠어!
이자벨라는 콧김을 푸욱 뿜어내며, 거칠게 감정을 드러냈다.
그녀는 다시 유령의 모습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일 것 같지는 않았다.
악령은 보통 어떤 매개체를 이용해 소환해 낸 사람에게만 보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전담 귀신 같은 개념인 셈이다.
“뭐, 따라다니든가. 난 목표 달성했으니까 괜찮아. 편할 대로 해. 그럼 이만!”
이자벨라를 향해 심드렁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는 바로 집무실 밖으로 향했다.
꼼수로 목적을 저렴하게 달성한 마당에 자레드로서는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집무실 밖으로 나온 자레드가 향한 곳은 지하실이었다.
당장 영지에 대해서 현황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꼼수들을 써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심안 스킬 획득에 이어, 자레드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것은 바로 다이어트를 위한 꼼수였다.
이 육중한 거구와 더불어 찾아온 초고도비만의 상태 이상을 해결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선택이었다.
어쩌면 영지를 관리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었다.
-심안 내놔! 내 눈 내놔!
이자벨라가 집요하게 자레드의 귓가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하지만 자레드는 룰루랄라, 휘파람을 불며, 유유히 복도를 따라 지하실로 내려갔다.
* * *
“한번 활성화만 해 두면, 체중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할 테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 두자. 지금이 최적기야.”
지하실에 내려온 나는 ‘거사’를 치르기에 앞서서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전생에 를 할 때도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지만, 체중 감량에 있어서만큼은 효과를 보았던 꼼수를 쓰기 위함이었다.
철컥.
일단 지하실의 철문을 굳게 잠갔다. 그리고 입고 있던 옷을 훌훌 벗어 던졌다.
옷 벗고 이상한 짓거리를 하려고 그런 것이냐 하면 절대 아니고.
지금부터 사용하려는 방법이 알몸인 상태에서 진행해야 하는 작업이기에 그런 것뿐이었다.
그래서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지하실로 온 것이다.
혹시라도 하녀들이 들어올지도 모르는 내 방이나 집무실에서 시도했다가 들키면, 변태 취급을 받기 딱 좋았으니까.
‘지방 분해침.’
다이어트를 위해 시도하려는 것은 지방 분해침이었다.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고, 에서 동료에게 어깨너머로 배운 사짜 침술이었다.
원리 자체는 간단했다.
가장 많은 지방이 집중되어 있는 복부와 허벅지 등 곳곳에 침을 꽂는다.
그 전에 소독은 반드시 해야 한다. 필수다. 사전 소독 작업은!
마침 침과 유사한 용도로 쓸 수 있는 아주 가는 바늘이 지하실에 있었기에 준비를 마무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쨌든 그렇게 놓은 침은 각각의 침마다 마나를 통해 4원소의 힘이 불어넣어져 체내 지방의 분해 및 작용 활성화를 돕는 것이다.
아마 지금 이 세계에서 이런 방식으로 다이어트를 시도하려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애초에 침술이라는 것이 등장하지도 않는 세계관이니까.
게임 에서 침술사라는 치료 직업이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한참 이후의 일이니, 이세계도 같을 것이다.
침술 꼼수가 생기게 된 과정은 간단했다.
한의원을 개원한 뒤, 남는 일과 시간에 를 즐기던 한의사 유저가 침술 스킬을 개발해 내는 데 성공했다.
그 유저는 취향이 특이했다.
침술을 치료에 사용하지 않고, 캐릭터를 날씬하게 만드는 지방 분해 커스터마이징을 실현하는 데에 몰두했던 것이다!
그 결과.
몇 달을 전념한 끝에 침을 이용한 지방 분해 스킬을 획득하는 데 이르렀다.
그것이 바로 지방 분해침의 태동이었다.
에서 지방 분해침은 가성비가 좋은 꼼수였다.
체중 감량 효과는 매우 좋았지만, 비용은 거의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상인이나 게임 마켓에서 판매하는 체형 변화 약물은 워낙에 고가라서, 좀처럼 지갑을 열기 힘들었다.
이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살을 빠르게 빼기 위해서는 대신관이나 대사제로부터 ‘고난의 축복’이라는 버프 주문을 부여받아야 했다.
문제는 버프 주문을 사용해 주는 대가로 대신관들이 요구하는 금액이 천문학적 숫자라는 것이다.
희소성이 높은 주문이다 보니 부르는 게 값이었다. 서민의 집 한 채 가격에 육박할 정도로.
게다가 그 돈을 지불한다고 해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신성력 소모가 어마어마하게 큰 탓에 한 명의 대사제가 하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어서였다.
영지의 재정 상태가 썩 좋지 않은 나로서는 그림의 떡이었다.
‘효과는 최소 1달에 15kg.’
우선 지방 분해침이 효과적으로 발동되면, 한 달의 최소 감량 체중은 15kg 이상이 된다.
게다가 적재적소에 침을 잘 꽂아 넣으면, 즉각적으로 체내 지방과 노폐물이 분해되어 분비되는 효과도 존재한다.
이때는 즉각 체중이 내려간다.
내가 심안을 얻자마자, 침을 놓기 위해 벼락같이 지하실로 내려온 이유다.
미리 안배를 해 둬야, 나중에 마냥 시간이 흐르기를 목 빠져라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오, 신이시여. 제발.”
나는 믿지도 않는 신을 찾아가며, 잔뜩 긴장한 손길로 첫 번째 침을 뱃살에 놓을 준비를 했다.
허벅지에 놓는 것도 따갑긴 하지만, 가시적으로 두려움을 주는 부위는 역시 배였다.
주사나 침을 남이 놓아 주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는데, 내 눈으로 똑똑히 보고 놓으려니 죽을 맛이었다.
이 작업은 전생에 게임에서 수도 없이 했었지만, 여전히 극복되지 않는 나와의 싸움이자, 극기 훈련이었다.
“하, 거울 보니까 자괴감 드네.”
무심결에 앞을 본 내 눈에는 알몸이 된 상태로 엉거주춤하게 선 채, 뱃살을 힘껏 움켜쥐고 거기에 침을 놓으려는 내 모습이 보였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고.
뱃살 때문에 절대 시선을 내려서는 볼 수 없는 나의 두 발이 거울을 통해서는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마나 순환량을 늘려서 효과를 배가시키려면 깊게 꽂아야 해.”
나는 침의 1/2 지점에 표시해 둔 선을 확인했다.
효과를 약하게 보려면 1/4 지점까지 넣어도 되지만, 최대 효과는 깊숙하게 절반을 넣어야 한다.
게다가 지방 분해 활성화를 돕기 위해서 지하실 밖으로 나서더라도, 수시에 복부와 허벅지에 마나를 불어넣어야 한다.
아마 남들이 볼 때는 계속 배와 사타구니 사이를 주물거리는 망측한 광경처럼 보이겠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그렇게 활성화를 꾸준히 유도해야 지방 분해침의 효과가 극대화되면서, 끊임없이 노폐물이 체외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안 아프다. 절대 안 아프다. 그냥 따끔할 뿐이다. 따끔…… 크아아악!”
침이 뱃가죽의 피부를 뚫고 지방층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비명을 질렀다.
제법 잘 꽂았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영 좋지 않은 곳을 찌른 느낌이었다.
“후아, 괜찮아. 이 몸이 처음이라 그런 걸 거야. 자, 다음. 다음. 아프지 않다. 따…… 꺼으악!”
따끔할 뿐이라는 자기 세뇌 주문은 온데간데없이 쓰라린 고통이 뱃살을 따라 퍼져 나갔다.
비명을 지를 때마다 뱃살이 출렁이는 것은 덤이었다.
에서는 고통을 느낄 수 없어 이 정도인지 몰랐는데, 직접 경험하니 딱 죽을 맛이었다.
“아, 아직도 배에만 여덟 개를 더 찔러야 해. 여기서 허벅지까지 버틸 수 있을까?”
식은땀이 흘렀다.
가뜩이나 뚱뚱한 몸이라 그런지, 땀이 조금 난 것 같은데도 온몸이 불덩이가 된 느낌이었다.
“후아, 후아, 후아.”
아플수록 나는 침놓기에 더욱 집중했다. 아프다고 대충 놔 버리면, 효과는 반 토막 난다. 아니, 어쩌면 효과가 아예 없을지도.
그렇게 나는 무아지경에 빠진 채, 다이어트를 위한 남모를 고통과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 * *
그 시각.
‘갑자기 영주님이 무슨 생각이신 걸까? 회의가 없으면 가지도 않으셨던 집무실에도 들렀다가 또 다른 곳으로 가셨다니?’
하녀 헤이즈는 청소 도구를 챙기기 위해 지하실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은 영주 저택의 많은 하인, 하녀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요 근래 몇 개월을 방에서 두문불출하다시피 했던 영주 자레드가 문을 열고 나왔기 때문이다.
가신 회의도 방으로 가신들을 불러 대충 서명하고 끝내고, 늘 방에 처박혀 있다시피 했던 그라 모두가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실……. 예전에 여기서 참 많이 울었었는데.’
헤이즈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에게 지하실은 일종의 비밀 공간과도 같은 곳이었다.
하녀로 일하면서 슬프거나 감당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조용히 내려와서 소리 죽여 울던 곳이었다.
특히 자신에게 험한 말을 하고, 물건을 내던지던 자레드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때마다 여기로 내려와 울면서도 늘 기도를 하고, 다시 올라가곤 했다.
우리 영주님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총명하고 생기 넘쳤던 그 시절로 돌아오게 해 달라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 마치 그 꿈이 이루어진 듯했다.
잠에서 깨어난 영주 자레드를 마주 보았을 때, 예전의 총기와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던 것이다.
비록 살은 쪘고 무거운 몸인 것은 맞지만, 눈빛이 달랐다.
매번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세상 귀찮은 표정을 짓던 그가 아니었다. 생기 넘치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떠올리는 모습이었다.
“영주님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신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 영주님의 허전한 옆자리를 내가 채워 드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영주님, 제발 꼭 돌아와 주세요. 기다리고 있어요!”
헤이즈가 두 손을 꼭 모아 기도를 올렸다.
이 저택에 하녀로 들어왔을 때부터 시작된 그녀의 짝사랑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모두가 살이 잔뜩 찐 자레드를 챙기는 것을 피하려 들었지만, 헤이즈는 한 번도 그런 마음을 먹은 적이 없었다.
자레드가 화를 낼 때도, 웃을 때도, 히스테리를 부릴 때도 헤이즈는 늘 곁에 있었다.
“영주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셨을 때, 침실부터 깨끗하게 청소해 놔야겠어. 암, 그건 내 몫이니까!”
헤이즈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지하실 문 앞에 다가섰다.
한데 바로 그때.
지하실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지하실을 찾아온 것이기는 하지만, 여기는 어지간해서는 아무도 안 오는 곳이었다.
청소 도구 관리는 헤이즈의 전담이었기 때문에 다른 하녀들이 올 일도 없었다.
“……?”
헤이즈는 지하실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아! 아! 아, 정말 미치겠어. 돌아 버릴 것 같다. 정말! 하악!”
‘영주님?’
목소리의 톤이나 말투가 아무리 봐도 자레드의 것이었다.
그런데 들려오는 목소리의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그래, 거기! 왜 거기를 못 찾느냐고! 진작에 시원하게 넣었으면 좋았을 것을 왜 이리 뜸을 들이다가 고생하느냐고, 이 멍청아!”
“응……?”
헤이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