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25
제 325화
101장. 수많은 인연들 – 2화
발데스를 만난 곳은 황도가 아니라 제국 남부에 위치한 대도시 중 하나인 칸도모라였다.
이곳은 예전에 칸트라 제국에서 제2의 수도로 칭하고 관리했을 정도로 규모가 큰 곳이었다.
발데스가 그곳에 가 있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선전 활동을 위해서다.
아니나 다를까.
그를 찾아간 자리에서는 이미 열띤 연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청중의 수도 어림잡아 1만 명은 넘길 정도로 무척 많았다.
“들으라! 크리비아 제국의 위대하신 황제 폐하가 계시지 않았더라면, 그대들에게 지금의 평화가 있었겠는가?”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 모두가 마왕이 세상에 나타난다고 했을 때, 좌절하고 절망했었다. 심지어 가족을 버리고 도망친 어리석은 자도 있었다!”
“우우우우!”
“하지만 폐하께서는 과거 천 년 전, 용마 대전에서 대륙을 구했던 용사처럼 홀연히 마왕을 대적하고 세상을 구하셨다. 심지어 본인의 목숨을 걸고, 너희들을 구하신 것이다!”
“황제 폐하 만세!”
“크리비아 제국 만세!”
“모두 감사하라! 폐하께서는 백성 한 명, 한 명을 모두 소중히 여기신다. 지난 1개월 내내, 폐하께옵서 여기에 얼마나 많은 구슬땀을 흘리셨는지 알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황제 폐하의 이름 아래 모두 단결하면, 우리 제국의 미래는 한없이 밝을 것이다. 그러니 나와 함께 굳센 결의로 나아가자. 어떤가, 그대들은!”
“함께하겠습니다!”
“모든 열정을 바치겠습니다!”
‘역시…….’
자레드가 흡족한 표정으로 연단을 내려오는 발데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인적이 없는 연단 뒤에서 조용히 그를 지켜보고 있었기에, 발데스도 자신의 등장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퀘스트 대상 : 발데스] [퀘스트 내용 : 그의 공적을 치하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열정을 다시금 자극하십시오.] [보상 : 그의 모든 특수 성향을 SSS 랭크로 급상승시킵니다.]퀘스트의 내용이 이럴진대, 발데스를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과거도, 지금도 여전히 유능한 선전 장관이었다. 심지어 쉬지 않는 폭주 기관차와도 같았다.
이윽고 발데스가 뜨거운 숨을 토해 내며 연단 뒤로 내려오는 순간.
“발데스 경!”
“폐, 폐하?”
자레드가 얼떨결에 손을 내민 발데스와 악수를 나누고는 그를 힘껏 끌어안았다.
그간 고생해 준 그에 대한 진심 어린 치하이자 감사의 인사였다.
“경이 보고 싶어 찾아왔소.”
“아니, 폐하. 보잘것없는 신을 위해서 이렇게 먼 거리를 행차하시는지요!”
“하하하, 텔레포트가 있잖소. 마음만 먹으면 단숨에 올 수 있는 것을. 걱정할 것 없소.”
“부족한 연설을 직접 들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얼굴이 다 화끈거립니다…….”
“최고의 연설이었소.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오. 그대 같은 연사(演士)는 대륙에 없을 것이오.”
“폐하, 황공하옵니다.”
“같이 이야기나 좀 나누도록 합시다. 발데스 경과 하고 싶은 말이 많소.”
“예, 폐하. 마침 인근에 신이 잠시 머물고 있는 임시 숙소가 있으니…….”
“그럽시다.”
얼마 후.
자레드는 발데스와 작은 통나무 집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신이 준비를 제때 하지 못하여 죄송스럽습니다.”
“아니오. 갑자기 찾아온 것은 그대가 아닌 짐이니 신경 쓸 것 없소. 난 이런 곳이 더 편하오.”
“역시 검소하십니다. 폐하.”
“얼마 전에 결혼을 했다고 들었소. 신혼 생활은 어떻소?”
“정말 좋은 배필을 만났습니다. 항상 응원과 도움을 아끼지 않는, 인생 제일의 친구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발데스 경에게 가까운 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군.”
“하하! 그렇습니다.”
“그간 계속 황도를 비우고 있었던데, 무엇을 하고 있었소?”
“성마 대전이 끝난 이후, 전국을 돌면서 계속 오늘과 같은 연설을 해 왔습니다. 폐하의 멋진 무용담이 담긴 영상도 문화계의 거장들과 함께 제작 중입니다.”
“정말 바쁘게 보냈군.”
“예, 폐하. 아울러 지난 6년 동안 폐하의 업적을 다룬 저서를 집필 중이었습니다. 다만…… 폐하께서 사라지셨던 1년에 대한 공백이 남아 조만간 폐하께 말씀을 청할 생각이었습니다.”
“내 업적이라……. 별것 없는데 너무 일을 크게 벌이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는군.”
“세상을 구한 용사의 업적을 논하지 않는다면, 누구의 업적을 논해야겠습니까? 모든 백성이 폐하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발데스의 말을 들으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자레드였다.
그를 처음 만났었던 옛날이 떠올라, 한껏 미소도 지어졌다.
크리비아 펍(Pub)에서 만났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훌쩍 흘렀다.
그때만 하더라도 크리비아 영지는 제국은커녕, 왕국의 꿈도 꿀 수 없는 작은 곳이었다.
“경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오. 언제나 찬사를 아끼지 않고 이를 널리 알려 주는 그대에게 진심으로 감사하오.”
자레드가 고개를 숙여 진심 어린 감사를 발데스에게 표현했다.
그러자 발데스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차가운 바닥에 부복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신이 직접 선택한 길인데, 어찌 폐하께서 이리 감사를…….”
“그대의 소중함을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소. 다만 그대를 자주 챙겨 주지 못해 미안할 뿐이오.”
“폐하…….”
이내 발데스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단지 감사 인사를 받은 것뿐이었지만, 발데스는 그것이 자신의 인생 전부를 보상받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감격스러웠다.
황제와 신하라는 관계를 초월해서 진심이 담긴 감사를 받는 그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고맙소, 발데스 경.”
“신, 발데스. 죽는 그날까지 본분을 잊지 않고, 제 온몸을 불살라서라도 폐하를 찬양할 것입니다.”
“정말 고맙소.”
그와 진한 포옹을 나누는 동안, 자레드는 확인할 수 있었다.
[특수 성향 : 유려한 화술 SSS / 선전용 웅변 SSS / 광신적 추종 SSS / 대중적 문화학 SSS / 집단 최면 SSS]그의 모든 특수 성향이 순식간에 폭등하여 완벽에 준하는 경지에 다다랐음을.
물론 발데스의 특수 성향을 일깨우기 위해서 연기를 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은 진심이었다.
그저 퀘스트는 자레드가 신하들에게 진심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동기부여’를 해 줬을 뿐이다.
“황도에는 언제 올라올 예정이오?”
“이제 남부의 세 곳만 돌면 남부 중심지의 순회가 끝납니다. 2주 정도 걸리지 않을까 합니다.”
“2주라……. 그럼 황도로 올라오는 대로 부인과 함께 황궁에 입궐하시오. 같이 오찬을 즐깁시다.”
“감사합니다, 폐하.”
“항상 모자란 짐의 곁에 있어 주어 고맙소.”
“모자란 신을 거두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폐하.”
훈훈한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그렇게 자레드는 아끼는 신하와의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치하하고 있었다.
무척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 * *
이후.
나는 가까이, 그리고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부터 빠르게 만났다.
발데스에 이어 만난 것은 사나레 성지에서 여전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마룬-마리 남매였다.
그들은 여전히 내가 세워 준 성지의 병원에서 열심히 의료 행위를 하며, 성지를 찾아온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있었다.
특히 마리의 경우에는 1년 전, 라디우스 대신전에서 기도를 드리던 중에 치유력을 얻었다고 했다.
아마 돈독한 신앙심이 그녀에게 변화를 만들어 낸 듯한데, 그래서 치유사의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많은 조언을 헤이즈에게서 구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디바인 원에서부터 차곡차곡 성장해 온 헤이즈이니만큼, 마리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의 고생을 거듭 치하하고, 충분한 대화를 하고 나자.
제법 많은 신성력과 의료 성향이 강화되며, 선순환의 그림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그다음으로 만난 것은 루크와 게니츠 제독이었다.
성마 대전에서 내가 바다 걱정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명장인 그들 덕분이었다.
그들은 성마 대전 직후의 혼란을 틈타 나스 대륙 서쪽에 위치한 수많은 도서(島嶼) 지역에 자리 잡은 해적들을 소탕하고 있었다.
이것은 3년 전부터 추진한 해군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다.
다만 해적의 조직 구조상 점조직 형태로 꼬리를 자르기 좋게 해 놨거나.
혹은 서해에 위치한 수많은 섬을 기반으로 삼아 장기간 은신하는 일을 반복해 왔기 때문에.
이를 한꺼번에 일망타진하기 위해서 물밑에서 조용히 작업을 준비해 왔던 것이다.
내가 두 제독을 만나러 갔을 때도 한 차례 해적과 전투 중이었고, 갑판에는 백병전에서 목이 대거 잘린 해적의 수급이 가득했다.
그들 역시 발데스, 마룬, 마리가 그랬듯…….
나와의 속 깊은 대화에서 크리비아 제국과 함께하게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신의 모든 꿈을 펼칠 수 있게 해 준 내게 정말 감사하다고까지 했다.
과거 보누스, 말루스 왕국에서 그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생각하면 이해가 가는 반응이었다.
[특수 성향 : 항해술 SSS / 조선술 SSS / 전략적 해전술 – 대함대 SSS / 전략적 해전술 – 소함대 SSS / 조류도, 해류도 작성 SSS / 함포 개발 SSS]덕분에 루크와 게니츠 역시 내가 만족할 만한 성장을 이뤄 낼 수 있었다.
그들과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를 추억하는 감회가 참으로 새로웠다.
소중한 사람들.
비록 내 곁에 있지는 못해도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항상 최선을 다하는.
나의 충신들이었다.
* * *
스슥. 스스슥. 스슥.
선선한 봄바람이 부는 오후.
오늘은 행정부가 일을 쉬는 공휴일이었기에 율리안은 늘 그랬듯이 자신의 별장에서 춘화를 그리고 있었다.
예전에는 취미 삼아서 그리던 것이었는데, ‘고정 고객’이 생긴 후로는 일과 이후의 부업이 됐다.
심지어 오늘은 그 고객이 함께 옆에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로드, 굳이 이렇게까지 열성적으로 찾아오실 필요가…….”
“마냥 그림이 그려지길 기다리기가 현기증이 나서 말이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바로 현장에서 수령하려고 왔소. 후후.”
율리안의 옆에 턱까지 괴고 엎드린 채로 그림이 그려지는 전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바로 레드 고블린 로드 ‘이바니바’였다.
크리비아 영지 시절부터 자레드와 우호 관계를 맺어 온 레드 고블린의 수장.
성마 대전에서도 크리비아 제국군, 타타르 아일랜드의 다크 엘프와 연계하여 북부의 마왕군을 상대한 멋진 왕이기도 했다.
똑똑.
그때, 율리안의 별장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율리안와 이바니바가 흠칫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보통 부르지 않으면 율리안의 호위 기사든 이바니바의 호위 고블린이든 기척을 하지 않는데.
이를 무시했다는 것은 ‘충분히 무시해도 되는’ 누군가가 왔음을 뜻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폐하?”
“자레드 대왕?”
방문자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본 율리안과 이바니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바니바 님은 왜 여기서 나옵니까? 아니, 설마 춘화 때문에 여기까지 직접……?”
그것은 율리안의 옆에 보란 듯이 서 있는 이바니바를 본 자레드의 반응도 매한가지였다.
반가운 얼굴이 둘이나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