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37
제 336화
104장. 심판의 창 – 3화
류원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한번 되물었다.
“정말 서방 대륙에서 오신 것이 맞습니까?”
“외모만 봐도 확실히 다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 제 입 모양과 언어가 다른 것도 보이실 테고요. 통역 마법을 쓰고 있으니까.”
“아…….”
수준 높은 통역 마법이라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들렸기에 알아채지 못했던 류원석이었다.
확실히 다시 살펴보니 들리는 언어와 입 모양이 묘하게 맞지 않았다.
“이런 만남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이것도 운명인가 봅니다.”
“저희가 그토록 다가올 재앙을 알리고자 했던 그곳에서 직접 지도자가 찾아오실 줄이야…….”
류원석의 표정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다가올 재앙.
그것은 얼마 남지 않은 대재앙이기도 했다.
결계가 무너지는 순간, 수많은 군대가 차원의 벽을 넘을 테니까.
우우웅!
바로 그때.
멀지 않은 창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드론 무리들이 보였다.
수가 적지 않았다.
붉은 신호를 점멸하며 접근하는 드론의 양 날개에는 작지만 공격이 가능한 소형 무기도 장착돼 있었다.
“잠시.”
자레드가 모두를 멈추게 했다.
저 녀석들은 정찰용이 틀림없어 보이는 만큼, 이왕이면 한 번에 처리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트랜센던스 디멘션 브레이크.’
그래서 꺼내 든 선택지는 공간을 통째로 비틀어 버리는 공간 왜곡 마법, 즉 디멘션 브레이크였다.
다음 순간.
드론들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광범위한 공간에 아주 작은 실선이 생겨났다.
꿀꺽-.
자유의 날개 단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단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임을 암시하는 듯했기 때문이다.
탁!
이윽고 자레드가 손가락을 한 번 튕기자.
끄드드드득!
시야 안에 들어오는 모든 공간이 마치 종이를 인정사정없이 구기는 것처럼 심하게 찌그러졌다.
찰나의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이내 보이는 가시 공간은 원래의 맑았던 하늘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투둑. 투둑. 툭. 툭.
셀 수 없이 많은 조각으로 산산이 부서진 드론 군단은 하나도 남김없이 지상에 추락했다.
제대로 된 정보 하나 전송할 틈도 없이 벌어진 상황이었다.
“와…….”
“저것은 어떤 무공입니까?”
“무공보다는 마법이라는 명칭에 더 가깝죠. 이 세계에서는 주로 무공을 씁니까?”
“대자연의 기감을 빌려 저마다의 특색 있는 무공을 펼치지요.”
“역시…… 그렇군요. 경공이나 보법, 검술, 체술, 각법 등등의 그런 다양한 기술들이겠죠?”
“맞습니다.”
자레드의 머릿속에서 얼추 차원 베디세트, 즉 동방 대륙의 콘셉트가 정리됐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주요 기술을 무공으로 가진 세계.
이것은 동방 대륙이라는 단어에 들어맞는 콘셉트이기도 했다. 완전한 무림은 아니지만.
“일단 여기를 벗어나는 게 좋겠네요. 드론을 보냈다는 건, 곧 사람을 보낼 수도 있다는 뜻이라.”
“안전하게 우회할 수 있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 좀 더 확실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이용해 보도록 하죠.”
자레드가 아공간에서 꺼낸 타트라 넥스를 단원들에게 빠르게 연동시켰다.
타넥스를 직접 착용하지 못한 단원들은 양팔에 꽉 껴안아 커버하는 식으로 인원을 채웠다.
“오오…….”
“이런 문물이 있었습니까?”
“인공지능이 보조할 겁니다. 출력으로 나갈 방향만 잡으면 됩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알겠습니다.”
류원석이 쭈뼛쭈뼛하며 타트라 넥스를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이내 감을 잡은 듯 전진했다.
마력이 가득 충전된 상태의 초월체였기 때문에 순간 최대 가속에 돌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베르하드 님, 혹시 다른 의견이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아니다. 네 판단이 가장 좋아 보인다. 이견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지. 눈치 볼 이유는 없으니.”
“네, 감사합니다.”
“실마리는 단순 정찰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듣는 귀중한 정보들에 있을 것 같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자레드와 베르하드가 빠르게 뒤를 따랐다.
* * *
류원석을 따라 이동하는 내내, 나는 여기저기서 세기말의 풍경과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마천루가 즐비한 도심은 이들의 보금자리가 아니었다.
외곽으로 한참을 빠져나온 곳은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보통 도심을 떠올릴 때 답답한 매연을 생각하고, 교외를 떠올리면 자연 속의 풍경을 연상하지 않는가?
하지만 동방 대륙에서는 아니었다.
도심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스모그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매캐한 연기가 우리를 반겼다.
거세게 몰아치는 모래 폭풍은 그나마 애교에 속했고, 지상에는 온갖 독성 물질이 가득했다.
그 와중에 색깔이 그래도 아름다워 보이는 강이 있어서 무엇이냐고 물어봤더니, 온갖 산업 폐기물을 모아서 만든 인공 호수란다.
저 안에 들어가면 – 물론 들어갈 미친놈도 없겠지만 – 1시간도 못 버티고 죽는다고 했다.
공기의 질은 물론이고, 보이는 강이나 계곡의 수질도 최악이었다.
깨끗하고 안전한 수로는 전부 저들이 장악하고 있어, 자유의 날개 단원들은 지하수로 겨우 연명하는 실정이라고 했다.
그것도 시간이 갈수록 고갈되고 있어 걱정이라는 말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이런 최악의 환경 탓인지 좀 더 안으로 들어가자, 종종 보이던 드론도 나타나지 않았다.
류원석의 말에 따르면, 여긴 사람이 살기에 최악의 장소라 저들도 탐색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즉, 시간이 흐를수록 죽음의 땅에서 알아서 죽어 갈 테니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실로 잔인하고 끔찍한 얘기였다.
그렇게 얼마나 더 들어갔을까.
클린 마법을 아무리 시전해도 금세 오염되는 공기에 눈살이 잔뜩 찌푸려질 무렵.
류원석과 단원들이 멈춰 섰다.
“여기입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도 돔(Dome) 안에서는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을 겁니다.”
류원석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과연 반구 모양의 건물이 있었다.
하지만 거점 전체에 구성된 지역은 아니고, 극히 제한적인 면적에 두 곳만 마련되어 있었다.
얼마 후.
류원석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돔의 안쪽 깊숙한 곳에는 애꾸눈의 한 남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는 쉰 전후로 보였지만, 백발 때문에 좀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자였다.
“우리의 오랜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군요…….”
언뜻 험상궂게 보이는 인상과 달리, 남자는 나와 베르하드를 보자마자 감격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마치 오랜 시간을 그리던 연인을 만난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반갑습니다. 서방 대륙에서 온 자레드 폰 유칼레스라고 합니다. 함께 온 이분은 베르하드 자일 카르파 님입니다.”
“반갑소이다. 편하게 베르하드라고 불러 주시오.”
베르하드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사를 나눴다.
워낙에 평생을 홀로 살아온 몸이라 새로운 인연을 대하는 것이 영 데면데면한 부분이 있었다.
“진선평입니다. 통역 기술이 없었으면 단 한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을 뻔했군요.”
“마법의 힘이죠.”
“그래서 더욱 서방 대륙에서 오셨다는 사실이 실감이 납니다. 이것 참……. 정말 얘기가 길어지겠군요. 도대체 어떻게 결계를 넘어오실 수 있었던 겁니까?”
진선평의 눈빛이 반짝였다.
궁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이 그토록 넘고 싶어도 죽음을 담보하지 않으면 넘지 못했던 것이 ‘결계’니까.
한데 바로 그때.
별생각 없이 심안으로 진선평과 주변의 사람들을 훑고 있던 내게 뭔가가 보였다.
위장을 간파할 수 있는 진실의 눈. 그리고 착시를 막을 수 있는 환상 차단.
이 두 가지 옵션의 교집합으로 걸린 한 남자의 이질적인 모습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자리에서 딱히 자신의 모습을 숨길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중으로 위장을 한 모습이었다.
나는 십중팔구 그 남자가 첩자라고 생각했다. 적들이 내부에 심어 놓은 첩자.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될 첩자가 하나 있는 것 같군요.”
“……?”
내 지목을 받은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최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딱 그런 반응.
“마력을 활용해서 얼굴의 형태를 변용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환상을 덮어 둔 얼굴이 보이네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진실하지 않은 모습을 시종일관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딱 하나뿐. 본모습을 들키면 안 될 때.”
“……제길!”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남자는 지면을 박차고 몸을 날리더니, 빠르게 전신을 은신 상태로 만들었다.
인비저빌리티 같은 마법은 아니고, 아티팩트나 특수한 도구를 이용한 듯한 은신이었다.
점수를 주자면 꽤 높게 쳐줄 만한 깔끔한 은신이기는 했다. 다만 문제는 내 심안을 피할 수는 없다는 것뿐이다.
녀석은 순식간에 사람들 사이를 가르며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었지만.
빠직! 빠지직!
나는 정확히 녀석의 등 뒤를 노리고 있었다.
바로 달라붙지 않았던 것은 굳이 가까이서 피를 묻히지 않고도, 멀리서 처리할 방법이 있어서다.
빠지이이이익!
이윽고 하나의 굵은 줄기가 되어 날아간 트랜센던스 라이트닝 스톰의 전류가 그를 덮쳤다.
애먼 사람이 엮이지 않도록 최대한 응축시켜 날렸는데, 생각대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끄가아아아악!”
정타로 얻어맞은 녀석은 움직일 생각조차 못하고 제자리에서 부르르 떨었다.
다음 순간.
휘리리릭!
쇄액! 쇄액! 쇄애애액!
바람 속을 거닐 듯 부드럽게 공간을 가르며 날아간 진선평의 검이 남자를 베었다.
그것은 매우 절제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유려한 공격이었다.
이리저리 번잡하게 몸을 움직일 필요 없이, 제자리에서 한 손으로 내뻗은 일격이기도 했다.
“꺼헉…….”
멈춘 표적과 같았던 남자는 진선평의 검격에 순식간에 여러 개의 고깃덩어리가 되어 흩어졌다.
나는 미련 없이 검집에 검을 척 밀어 넣는 진선평을 향해 말했다.
“알고 계셨군요. 이 사람이 배신자라는 것을.”
“맞습니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거짓 정보를 역으로 들어가도록 일부러 방치를 해 뒀던 것뿐입니다.”
꽤 예리한 노림수였다.
단지 첩자를 제거하는 것은 일차원적인 단죄인 만큼, 한 번 더 비튼 것이다.
“하지만 자레드 님은 어떻게? 사전에 그에 대한 정보를 알고 계신 것도 아니었을 텐데…….”
되묻는 진선평의 눈빛은 옆에 함께 있는 류원석을 비롯한 다른 이들처럼 호기심에 반짝였다.
“제가 가진 특이한 능력이 있습니다. 상대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능력이죠.”
“……?”
내 옆에 있던 베르하드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긴, 지금까지 심안이 있단 얘기를 한 적이 없으니 그럴 법도 하다. 딱히 말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기도 하고.
“매우 특별한 능력이군요. 솔직히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만…….”
“불청객이 사라졌으니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한결 수월해진 듯합니다.”
“저놈의 시체를 치워라. 어차피 그간 역정보도 제대로 안 먹히는 것 같아서 곤란하던 참이었다.”
“예, 단장!”
단장인 진선평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류원석과 부하들은 남자의 시체를 수습해서는 밖으로 나갔다.
덕분에 이제 자리에는 나와 베르하드, 진선평만이 남았다.
나는 먼저 운을 뗐다.
“전쟁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곧 임박했다는 것도 알고 있고, 대비도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비극이 본토에서 벌어지는 것을 막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결계를 넘어왔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게 들려주십시오. 이 세계에서 제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그리고 진선평 님께서 반드시 수호하고자 했던 평화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인류 통합 연맹, 약칭 인통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야만 할 것입니다.”
인류 통합 연맹.
그렇게 난생처음 들어 보는 단체에 대한 이야기가 진선평의 입에서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