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38
제 337화
105장. 인류 통합 연맹 – 1화
인류 통합 연맹.
마치 전 세계의 모두를 아우를 것처럼 거창하게 보이는 이름.
이들은 차원 베디세트, 그러니까 동방 대륙 전역을 일통한 세력이라고 했다.
대륙 전체의 규모는 진선평의 말로 미루어 짐작하면, 나스 대륙의 절반 수준인 듯했다.
물론 정확한 측정을 한 것은 아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오히려 내가 전생에 살았던 ‘지구’가 대단히 크게 느껴질 정도였다.
오대양 육대주.
대륙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지구가 크기는 더 컸다.
어쨌든 인통연은 동방 대륙의 주류 세력으로 예전부터 강성 분자들이 많았다고 했다.
그 말인즉, 서방 대륙이라고 불리는 나스 대륙에 대한 야욕을 드러낸 것이 아주 최근의 일은 아니라는 얘기였다.
“인통연이 ‘나스 대륙’과의 전쟁에서 자신감을 갖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바로 각성자의 존재죠.”
“특수 능력을 개화한 사람들을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다양한 고유 기술과 무공을 사용하지요. 이들은 일반인은 물론 군인들까지 능가하는 힘이 있습니다.”
“자레드, 나스 대륙의 헌터와 비슷한 개념이 아닌가 싶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헌터들이 따로 어떤 능력을 얻었다기보다는 스스로 강해진 케이스라면…… 이곳의 각성자는 일종의 선택을 받는 듯합니다.”
“맞습니다. 그것을 모두들 ‘신의 선택’이라고 부릅니다. 선택받은 자만이 각성자가 될 수 있다고 여기지요.”
나와 베르하드의 대화에 진선평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저희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인통연이 침략 전쟁의 근거를 수립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신의 계시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이 아닌 초월적인 존재가 건네준 실마리였습니다.”
“신의 개입이라는 겁니까?”
나는 놀라지 않고 진지하게 진선평의 말을 경청했다.
이미 신들의 대리전이나 다름없었던 성마 대전을 치른 마당이 아니던가?
당황스러울 것도 없었고, 또한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동방 대륙이라고 신의 입김이 닿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하잖은가?
“맞습니다. 침략의 근거와 확신을 마련해 준 듯하더군요. 아울러 전쟁에 대한 광기까지 말이죠.”
“신의 영향을 받았다…….”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그들이 전쟁광이 된 것은 바로 ‘신의 계시’를 받은 것으로 확인된 시점의 직후였으니까요.”
“그놈의 망할 신들.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먼. 이래서 신전이고 뭐고 다 부숴 버려야 한다니까.”
베르하드가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에게는 드래곤도 절대 고귀한 존재가 아니었고, 신도 우러러봐야 할 존재가 아닌 듯했다.
사실 내 생각도 비슷하다.
완전무결할 것이라고 믿었던 존재들이 역설적으로 빈틈투성이라는 사실을 체감했으니까.
이제 흑막의 정체는 알았다.
쉽게 비유하자면, 인통연은 우리 나스 대륙에 있던 마도국, 마탑의 조합과 비슷해 보인다.
잘못된 신념을 주입받은 자들이 똘똘 뭉쳐 만든 집단. 그들이 바로 인통연인 셈.
“인통연의 컨트롤 타워는?”
“사진을 보여 드리죠.”
진선평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 한옆에 말려져 있던 두루마리를 쫙 펼쳤다.
그러자 자줏빛 첨탑 형태로 보이는 건축물의 사진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지상에서부터 낮게 깔린 구름에까지 닿을 정도로 높은 건물이었다.
“연맹의 탑이라고 불리는 첨탑입니다. 구조가 특이해서 1층에서부터 들어가는 것이 아니면 외부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이어 진선평이 영상 하나를 틀어 주었다.
그러자 하늘을 나는 괴수가 일제히 첨탑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보였다.
익룡처럼 생긴 녀석들은 위압감 넘치는 날갯짓으로 첨탑의 꼭대기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
샤아아아악.
첨탑을 둘러싼 자줏빛의 역장에 닿자마자 괴수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지우개로 지워 버린 듯 순식간에 종적을 감춰 버리고 만 것이다.
“이 특이한 역장 때문에 외부에서 침투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인통연은 이것을 신의 가호라고 부릅니다.”
“공간 이동 기술이나 무기를 활용한 파괴는?”
“둘 다 불가능합니다. 시도해 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써 봤지만, 전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우리 나스 대륙보다 신이 좀 더 깊숙하게 개입한 버전이군.’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도대체 이놈의 신이 뭔지.
왜 자꾸 일을 꼬이게 만들까.
단지 자신의 유희를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인간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여기로 대다수의 반대파들이 끌려가서 살해를 당합니다. 일종의 인체 실험을 당하죠.”
“…….”
일찌감치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이런 악행은 악당들의 전매특허인 모양이다.
“간부들 대다수가 여기에 있으며, 인통연의 리더인 증강우도 항상 이곳에 상주합니다.”
“증강우라……. 그가 인통연의 수장입니까?”
“맞습니다. 사실상 우리 대륙의 최강자이기도 하죠.”
증강우.
목표로 정해야 할 상대의 이름이 확실해졌다.
이어서 진선평이 출력한 화면에는 증강우의 전투 영상으로 보이는 장면이 줄줄이 올라왔다.
“가공할 만한 움직임이군.”
가장 먼저 감탄하는 반응을 보인 것은 베르하드였다.
평생을 다양한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르하드다. 움직이는 모습만 봐도 상대의 실력을 알 수 있을 터.
나 역시 집중해서 보니 과연 보통 움직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공과 마법이 하나로 결합된 느낌이랄까?
가까이 있으면 있는 대로, 멀리 있으면 있는 대로 현란한 공격을 적에게 퍼붓는 것이 가히 일품이었다.
증강우의 공격 앞에서 수많은 자유의 날개 단원들은 가루처럼 흩어졌다. 즉사했다는 뜻이다.
바로 그때.
쿠웅! 쿠웅! 쿠웅!
갑자기 지축이 뒤흔들렸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
여기도 안전지대가 아닌 걸까?
바로 그때, 단원 하나가 달려와 황급히 보고를 했다.
“동쪽 제1 방어선에서 가드낙스 무리가 나타났습니다! 워프 능력을 이용해서 던전에서 바로 보내진 것 같습니다!”
“제X, 또 그 짓거리인가?”
진선평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내가 물으려 하자, 진선평이 바로 설명을 이어 갔다.
“던전 안에서 현실 공간에 원하는 위치를 연결할 수 있는 능력자가 인통연에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던전 속의 괴수들을 원하는 위치로 이동시켜 공격하게 만드는 겁니까?”
“그렇지요. 이 능력으로 인해서 피해를 자주 입고 있습니다. 손대지 않고 코를 푸는 방법이죠.”
“혹시 차원문이 열린 상태로 존재합니까?”
“열려는 있지만 워낙 나타나는 괴수의 위력이 대단한 상황이라. 가드낙스는 엄청난 놈입니다.”
“나가 보죠. 베르하드 님, 만약에 차원문을 통해서 추적할 수 있다면 이쪽을 부탁드려도 됩니까?”
“얼마든지. 주도권은 네게 있다. 편하게 내게 무엇이든 지시해도 상관없다.”
“감사합니다. 진선평 님, 안내해 주십시오. 요격을 나가 봅시다.”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일단 이 세계의 돌아가는 구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인류 통합 연맹과 증강우, 그리고 그의 배후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정체불명의 ‘신.’
이것이 이 세계의 흑막이자 나스 대륙을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없애야 할 목숨이기도 하다.
* * *
같은 시각.
크와오오! 콰오오!
“제길! 모두들 방어선을 폭파하고 후퇴해! 매설해 놓은 폭탄들을 모두 터뜨리고 놈들을 묻는다!”
현장에서 가드낙스를 상대하고 있던 자유의 날개 단원들은 아연실색한 표정이었다.
몸의 길이가 무려 30m에 달하고, 전신이 갑옷처럼 단단한 외피에 둘러싸인 가드낙스들.
흡사 거대한 공룡을 연상케 하는 녀석들에게는 무공이고 총탄이고 제대로 통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힘의 격차 때문에 발생한 일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두 눈을 멀쩡히 뜨고도 손쓸 방도가 없었다.
매번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단원들이 수십, 수백씩 죽어 나가는 일이 흔했다.
때문에 인통연은 의도적으로 게릴라전을 노리는 자유의 날개와 전면전을 치르지 않고도.
점점 말려 죽이는 형태로 그들의 힘을 약화시켜 가고 있었다.
무리하지 않고 서서히 고사(枯死)시키는 방법을 선택한 증강우의 계책이었다.
“점화 준비 중입니다!”
단원들이 미련 없이 방어선을 버리고 후퇴할 작전을 짜려는 바로 그때.
위이잉.
“잠깐!”
공간 이동과 함께 여러 사람이 동시에 옆에서 나타나며, 그들의 점화를 막았다.
현장에 도착한 사람은 자레드와 베르하드, 그리고 멀티 텔레포트로 데려온 단원들이었다.
“저희의 전력으로는 역부족입니다! 그것보다 이분은 누구……?”
자레드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단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찰나.
우웅! 우웅! 우웅!
먼저 베르하드가 9클래스의 마법인 헬파이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파앗!
동시에 자레드의 몸이 용수철처럼 앞으로 튕겨 나가며, 위용을 뽐내고 있는 가드낙스 무리의 중앙으로 향했다.
‘보인다.’
과연 가드낙스의 이동 경로로 확보된 듯한 차원문이 한눈에 들어왔다.
단순 워프 개념이 아니라 연결 통로를 뚫어 놓고 이동시킨 뒤, 순차적으로 닫는 개념인 듯했다.
‘점점 줄어드는군.’
차원문이 좁아지고 있었다.
이런 형태라면 사실상 괴수가 나타나자마자 현장에 도착해서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 접근할 수 없는 형태의 차원문이었다. 그간 단원들이 왜 고생을 했는지 알 만했다.
화르르륵!
이윽고 베르하드가 만들어 낸 지옥의 불이 맹렬한 속도로 가드낙스를 향해 날아갔다.
자레드가 초월 마법이라는 위력적인 마법을 지니고 있어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것은 맞지만.
베르하드 역시 나스 대륙에서 힘의 서열을 매긴다면, 무조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막강한 존재다.
자레드는 베르하드의 노련함을 믿었고, 그는 충분히 이곳의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봤다.
‘불확실한 것은 맞지만 그래서 더욱 공격적으로 미지의 세계에 무엇이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자레드는 플라이 마법의 속도를 트랜센던스를 활용해 최대치로 높였다.
콰과과과!
이윽고 사방으로 열풍이 뻗어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베르하드의 헬파이어가 가드낙스 무리의 중심에 적절하게 떨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굳이 현장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상호 교감이었다.
후웅! 후웅!
그 와중에 우악스러운 가드낙스의 발길질이 자레드가 있는 곳을 아슬아슬하게 훑고 지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이 거대 도마뱀 같은 녀석들에게 마법을 아낌없이 퍼붓고 싶었지만.
자레드의 관심은 오로지 정면에 보이는 붉은빛의 차원문에만 쏠려 있었다.
결과에는 원인이 있는 법.
자레드는 차원문 너머에 이 일을 만들어 낸 원흉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쑤우욱!
차원문 안으로 자레드의 모습이 완벽하게 사라졌다.
“아……!”
동시에 진선평이 탄성을 터뜨렸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접근할 수 없었던 마의 공간.
괴수들의 방해 때문에 닿을 수 없었던 곳으로 자레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드낙스와 같은 거대 괴수의 존재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듯했다.
실로 편하게 보이기까지 했던 공중 이동.
그것은 진선평을 포함한 자유의 날개 단원들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쾌속 접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