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51
제 350화
109장. 시련 혹은 성장 – 2화
“후우.”
흑암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 나자, 그제야 참았던 한숨이 터져 나오며 몸의 힘이 쭉 빠졌다.
푸르고 아름다운 빛깔로 다시금 가득 찬 공간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정말 좋은 깨달음을 얻었다.”
의미 있는 첫 시련이었다.
시각을 박탈당한 상황에서 흑암과 멋지게 싸워 낸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한편으로는 얼마든지 내게 핸디캡이 주어질 환경이 마련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섬뜩했다.
역시 세상에는 영원한 강자도, 유리함도 없는 법. 한 번 더 긴장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한데 바로 그때.
[조력자의 보상이 주어집니다.] [조력자는 당신이 첫 번째 시련을 멋지게 극복해 냈음을 기뻐하고 있습니다.]“조력자의 보상……?”
조력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시스템창을 통해서 직접 표기되니 왠지 갑작스러운 느낌이었다.
정말 조력자가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그가 이 시련을 설계한 걸까? 아니면 시련 속에 보상이 들어가도록 몰래 숨겨 둔 걸까?
어쨌든 흥미로웠다.
나 혼자만 싸우고 있는 게 아닐 것이라는 생각은 정말 현실이 됐다!
[조력자의 보상을 확인하시겠습니까? 하나의 시련을 극복할 때마다 하나의 보상이 주어집니다.]“그걸 말이라고.”
성공의 대가로 주는 보상을 마다할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나는 바로 수락의 뜻을 밝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내게 주어질 보상을 확인했다.
[조력자의 보상 – 어둠을 초월한 자 : 보이지 않을수록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샤아아아…….
보상 목록을 보는 순간.
두 눈이 시원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변화가 일어났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다크니스.”
그래서 시험 삼아 다크니스 마법을 이용, 반경 2m의 공간을 어둡게 만들었다.
“오!”
보였다.
분명 모든 빛을 뺏기고 어둠으로 점철된 공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부 다 보였다.
빛이 있을 때 보는 것과 전혀 차이가 없는 현장이었다.
든든한 보상이었다.
앞으로 흑암을 상대했을 경우와 같은 상황이 벌어져도, 더 이상 당황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는 시련이 오히려 진정한 성장의 장이구먼.”
그럴듯한 보상을 얻으니, 방금까지의 도전이 더욱 의미가 있는 듯 느껴져 뿌듯해졌다.
다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었다.
시련은 주신 로케발이 불청객을 차단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 공간에 로케발이 보상을 넣었을 리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그렇다면 보상은 ‘조력자’가 만들었다는 얘기인데, 대체 어떻게 여기에 이런 간섭을 할 수 있었던 걸까?
그리고 그는 도대체 누구이기에 시련에 대한 도전을 지켜보며, 기뻐할 수 있었던 걸까?
“…….”
나도 모르게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 하늘 위로 시선을 올려다보게 됐다.
누군가가 흥미롭게 나를 내려다보거나, 혹은 지켜보고 있을 듯해서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상이 있다면, 시련에 도전할 동기부여를 더욱 불러일으키지.”
이런 형태라면 시련의 다음 층계, 그다음 층계에도 분명 보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조력자의 지원이 어디까지, 그리고 어떤 형태로 계속 이어질지 기대하며.
샤아아.
드디어 열린 차원문 앞에 섰다.
아마도 이 차원문으로 들어서면, 두 번째의 시련에 직면하게 되겠지.
* * *
화르르륵! 화르륵!
“불지옥인가, 이번에는?”
차원문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반긴 것은 피부를 온통 태워 버릴 듯한 뜨거운 열기와 거센 불길이었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반경 10m가량의 안전지대를 제외하면.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정확히는 발을 디딜 공간조차도 없었다.
지면은 온통 부글거리는 용암으로 가득했고, 불길이 활활 타올라 착지할 공간도 없어서다.
[두 번째 시련, 겁화(劫火)]“이름 한번 잘 지었네.”
이번 시련을 상징하는 상태창의 표시에 나는 감탄했다.
겁화.
세계가 파멸할 때 일어난다는 큰불이라는 뜻처럼 눈에 보이는 광경은 그 말과 딱 일치했다.
“플라이 마법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체공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면 죽으라는 얘기네.”
뒤를 돌아보니 들어온 차원문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이제 두 번째 시련을 극복해 앞서 흑암처럼 이 시련의 왕을 처치해야 비로소 다음 층계가 열릴 것이다.
공중 기동을 완벽에 가깝게 하지 않으면 무조건 추락하기 때문에 꽤 까다로운 시련이었다.
내가 시련의 끝에 도달하기까지 그저 날아가기만 해도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생각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키헤에에에!
가까이 보이는 화산 너머에서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나타난 녀석들이 있었다.
전신이 활활 불타오르는 상태로 존재하는, 익룡을 쏙 빼닮은 녀석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불덩이였다.
후웅! 후웅!
그리고 거칠게 날갯짓을 할 때마다 사방으로 불꽃이 비산하면서 뜨거운 열풍이 불어닥쳤다.
“이런 녀석들은 보통 화염에 대응 능력이 좋지. 일반 몬스터라면 정석대로 가는 게 좋겠어.”
전략을 따로 세웠다.
이번 시련의 보스 몬스터를 상대로는 새로운 ‘노림수’를 써야겠지만.
일반 몬스터를 상대로 굳이 처음부터 나만의 대응법을 노출하지는 않기로.
다만 꾸준히 체공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인 만큼, 플라이 마법 전개에 더욱 집중하기로 했다.
너무 전투에만 집중하게 된다면 언제고 속절없이 지옥의 불길 속으로 고꾸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가 볼까!”
파아앗!
지면을 박차고, 힘껏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확실히 상공으로 떠오르니 지상에 비해서는 열기가 덜했다.
체감온도만 10도 이상은 낮아진 느낌.
키에엣! 키에엣!
이윽고 불꽃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익룡들이 내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불닭이지.”
나는 피식 웃으며, 놈들을 단숨에 쓸어버릴 선택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역시 불맛에는 시원한 얼음물이 제격인 법.
“트랜센던스 아이스 스톰.”
정석 중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빙결 폭풍으로 대응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꾸드드득!
내 손끝을 떠난 빙결 구체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며, 주변의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평범한 빙결 마법이었다면 제대로 뻗어 나가기도 전에 지면의 열기에 휩쓸려 그만 녹아 버렸겠지만.
트랜센던스로 초월 능력을 부여한 마법은 지속력 부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월등했다.
그래서 열기와 불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순식간에 차가운 냉기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헤엑……?
그 바람에 기세 좋게 날아들다가 그만 얼어붙은 ‘불닭’들이 속절없이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매직 미사일.”
꽁꽁 얼어 버린 녀석들을 향해서 무심히 매직 미사일을 전개했다.
얼어붙은 몸을 산산조각 내 주는 것은 아주 작은 충격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카칭! 치잉! 파치치칭!
이윽고 얼어붙었던 불닭들이 매직 미사일에 조각조각이 나며, 속절없이 지면으로 추락했다.
애초에 이런 녀석들로 내 앞길을 가로막으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었다.
나는 9클래스의 마법사이자, 인간으로서 마법사의 극의에 도달한 존재다.
어설픈 실력을 가진 존재들로 내 앞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신속히 상황을 정리한 나는.
파아아앗!
냉랭한 기운을 잔뜩 머금은 긴 꼬리를 만들어 내며 빠르게 동쪽으로 전진해 나갔다.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졌다.
이 거대한 불길 어딘가에 똬리를 틀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이 시련의 두 번째 왕이.
‘누구라도 상관없어.’
하지만 자신 있었다.
적어도 난 이 정도의 시련에서 멈출, 보잘것없는 놈은 아니니까!
* * *
같은 시각.
자레드가 시련을 극복해 나가면서 증강우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을 나아가는 동안.
서쪽 전선에서 교전 중인 진선평과 베르하드는 막간의 휴식 시간을 이용해 한 영상을 보고 있었다.
정보원을 통해서 입수한, 첨탑 인근에서의 ‘대폭발’에 대한 영상이었다.
공식으로 발표되지 않은 정보.
하지만 이로 인해, 백련대와 청위군을 비롯한 모든 정규군이 진군을 멈췄을 정도였다.
아마도 후방에서 발생한 문제 때문에 새로 상부의 명령을 하달 받느라 진군을 멈춘 듯했다.
어쨌든 진선평은 첨탑을 제외한 모든 것을 증발시킨 자레드의 ‘일격’에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믿기지가 않는군요.”
“메테오. 운석을 소환하는 마법이네. 보통 건물 몇 채를 부술 정도의 초소형 운석이지만…….”
“눈에 보이는 저 운석은 초소형이라기보다는 영화나 소설 속에서 보는 거대한 운석 같습니다.”
“그게 자레드의 강점이라네. 일반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마법에서 수준을 더 높인 마법을 쓰지.”
“그 말은 베르하드 님께서도 쓸 수 없는 마법이라는 뜻입니까?”
“자레드는 그 부분에서는 이미 인간의 경지를 넘어섰다네. 과장을 조금 보태서 반신의 경지라고 할 수 있네.”
베르하드가 가감 없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냈다.
같은 마법사로서 인정하는 자레드의 경지에 대한 솔직한 속마음이었다.
지금의 자레드라면 드래곤이 아니라, 드래곤 로드가 와도 능히 무찌를 확률이 높아 보였다.
애초에 트랜센던스 마법이 용언 마법의 구현 범위나 강도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아무리 첨탑을 위협하려고 해도, 주변 시설에도 작은 생채기조차 제대로 입힌 사람이 없었습니다.”
“후후, 그땐 자레드가 없었기에 그런 것이지. 이제 이런 일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네.”
베르하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진선평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담은 영상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첨탑 주변에 배치된 전력은 증강우의 최정예 전력인 데다 다수의 기계화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단순히 각성자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현대화된 장비로 더욱 강력해져 있는 셈이었다.
한데 각성자들은 물론이고, 모든 장비까지 순식간에 초토화로 만들어 버렸으니…….
증강우로서는 뼈아픈 타격을 입은 셈이었다.
어림잡아도 핵심 전력의 3할 이상은 잃은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그들의 전투적 경험이나 노련함을 생각한다면 더 큰 손실이라고 볼 수 있었다.
“우린 우리의 일을 하세. 여전히 전황은 우리에게 불리해. 우리가 시간을 오래 끌어 주어야 자레드가 좀 더 수월하게 매듭을 지을 수 있다네.”
“예,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베르하드의 말에 눈이 탁 트인 진선평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이제 남은 방어선은 넷.
최종 방어선까지 무너지면 정말 발 디딜 곳 없이 망망대해의 바다로 내몰려야 할 판이었다.
배수진을 칠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그로부터 1시간 후.
“……이럴 수가 있는가?”
증강우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불과 몇 시간 전, 첫 번째 시련이 극복된 것을 알리는 붉은색 불빛이 나온 것에 이어서.
방금까지 푸른색이었던 두 번째 시련을 상징하는 불빛도 이내 붉은색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자레드가 두 번째 시련까지 극복했음을 의미하는 불빛이었다.
지금껏 수많은 침입자가 두 번째 시련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불의 지옥으로 알려진 이 시련은 증강우도 기동 슈트가 없다면, 결코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런데 자레드는 너무 쉽게 두 번째 시련을 극복해 버렸다.
파죽지세!
증강우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단어는 이것밖에 없었다.
“마스터,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러자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던 마영후가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