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52
제 351화
109장. 시련 혹은 성장 – 3화
[조력자의 보상 – 어둠을 초월한 자 : 보이지 않을수록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조력자의 보상 – 열화(烈火)의 힘 : 25만 마력을 소진하여 모든 것을 녹이는 불길을 만듭니다.]“와우, 25만 마력을 소모하는 신기술이라니. 내가 아니었더라면 누가 얻었어도 절대 쓰지 못했을 능력이네.”
나는 여전히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로브의 끝자락을 후후 불어 내며, 상황을 정리했다.
두 번째 시련이었던 ‘겁화’는 걱정했던 것과 달리, 오히려 흑암보다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다.
이유인즉, 사전에 녀석과 비슷한 몬스터를 상대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스 대미궁 44층에서 동료들과 함께 마주친 적이 있던 얼음의 왕, 아이슬라.
모두가 화염으로 제압하는 방식을 떠올렸을 때, 나는 아이슬라를 더 얼리는 방법으로 대응했었다.
에서 학습한 꼼수를 활용한 방법으로, 아이슬라를 깔끔하게 처리했던 것이다.
겁화에 대한 접근법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몬스터들을 빙결 마법으로 상대했던 것과 달리, 겁화에는 더 강렬한 화염 마법으로 대응했다.
-불의 왕인 짐에게 이런 불길이 과연 위협이 될 것 같으냐!
겁화는 시작부터 코웃음을 치면서, 내 방식을 비웃고 조롱했지만.
-불의 왕인 짐이…… 짐이 이 불길을 버티지 못하고 이렇게 녹아내리게 되다니…….
그로부터 얼마 후, 결과는 겁화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나왔다.
트랜센던스를 활용하여 극한으로 끌어올린 화염 마법에 결국 겁화가 녹아내려 버린 것이다.
불을 더 큰 불로 잡아먹는 ‘포식’ 형태의 대응법이었다.
그렇게 겁화는 내가 만든 불길에 잡아먹혀, 영원히 소멸해 버렸다.
이번에도 조력자의 보상은 쏠쏠하게 주어졌고, 내 기대치를 한껏 높여 주었다.
매 층마다 이런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최종 층계에서는 과연 어느 정도의 보상일지 예측도 안 될 정도.
“마침 열화의 힘을 사용해 보고 싶던 차에 잘됐군.”
시련 3층에 올라온 나는 광활하게 펼쳐진 초원 위에 모습을 드러낸 수많은 몬스터를 보았다.
언뜻 보기에는 고블린이나 오크 따위로 보였지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파파팟! 팟!
“……왜 이렇게 빨라?”
움직임이 빨라도 너무 빨랐다.
일반적인 고블린이나 오크의 움직임을 최소 16배속 이상으로 빨리감기를 한 느낌이었다.
[세 번째 시련, 광란(狂亂).]“시련 명칭 좀 보게?”
세 번째 층계의 콘셉트를 알리는 상태창의 표기가 보란 듯이 눈앞에 나타났다.
광란.
그 말에 전혀 부족함 없이 눈에 보이는 모든 몬스터들은 매우 빠른 상태로 폭주하고 있었다.
마치 시간을 분초 단위가 아니라, 그것보다 더 짧은 단위로 나누어 활용하는 느낌이었다.
‘눈으로 좇으면 늦어.’
모든 것이 빨리감기로만 돌아가는 세상에 들어와 있는 느낌.
세 번째 시련에 대한 체감이 확실하게 됐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세계였다.
“정말 시련이 맞나……?”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불청객을 처단하기 위한 시련이 아니라, 나를 성장하게 만들기 위한 발판이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물론 공략은 쉽진 않았다.
끝에 가서는 해결을 하더라도 중간에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갖은 고생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즐거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극복하는 과정에서 희열과 쾌감을 느꼈을 정도다.
‘왜 인통연의 녀석들은 이 시련을 한 번도 자신들을 강하게 만들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은 걸까.’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주신이 직접 ‘만드신’ 시련이니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시련은 한 사람을 강하게 자극하고 단련시키기에 너무 좋은 무대였다.
물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해 보였다.
“어쨌든 또 극복하는 거다.”
엄청난 속도로 접근하는 몬스터를 보며, 그 속도에 맞게 대응할 마법의 경로를 짰다.
이번 세 번째 시련의 화두는 속도였다. 모든 속도와 대응을 그것에 맞추지 않으면 내내 고전할 것이다.
* * *
그로부터 30분 후.
“후우, 후우, 후우.”
자레드는 가쁜 숨을 연신 몰아쉬었다.
모든 몬스터가 정말 미치광이처럼 최대 가속 상태에 돌입해 있는 터라 상대하기가 몹시 껄끄러웠다.
그들의 파괴력이나 위력이 문제가 아니라, 빠른 움직임을 눈으로 좇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였다.
무시하고 시련의 끝을 향해 가자니, 그것은 또 용납할 수 없는지 자꾸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래서 일일이 무너뜨리면서 이동하느라, 체력과 마력의 소진이 생각보다 컸다.
“생각해 보니 증강우가 이런 고속 기동이 가능한 슈트를 착용하고 있었지. 나중에 상대하기 껄끄럽겠어.”
새삼 가속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자레드였다.
일반 몬스터에게도 이렇게 고전할진대, 더 빠르고 신속한 움직임을 가진 적이라면……. 보통 껄끄러운 상대가 아닐 듯했다.
바로 그때.
“……?”
묵묵하게 3층 시련의 종착점인 북쪽으로 향하던 자레드는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 섰다.
찰나의 순간.
등 뒤 어딘가에서 짙은 살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강한 살기였다.
‘개입이구나.’
상대가 기척을 드러내지 않아도 직감할 수 있었다. 시련에 외부인이 올 수 있는 건 알았으니까.
‘많이 급한 모양이군.’
자레드는 증강우가 더 지켜보지 못하고 자신의 수하 중 하나를 보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왔다.
나쁘게 말하면 시련 외의 위기가 닥친 셈이지만.
좋게 말하면 도전자의 입장에서 또 한 번의 ‘전투력 측정’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여겼다.
진선평의 말에 따르면, 증강우의 심복들은 그와 같은 EX랭크의 각성자라고 한다.
그 말인즉, 심복을 제압할 수 있다면 이후 증강우와의 전투도 충분히 해 볼 만하다는 뜻이 될 터.
자레드는 증명하고 싶었다.
진선평에게 인정받은 ‘EX랭크 수준’의 실력자로서, 확실하게 적을 제압할 수 있는지 말이다.
자레드는 시야에 보이지 않지만, 기감의 흐름에는 정확히 보이는 상대를 지칭하며 말했다.
“다 알고 있으니까 그만 나오지?”
“제법이군. 제3의 눈이라도 있는 건가? 기척을 상당히 숨겼거늘…….”
자레드의 말에 몸을 ‘은신’ 상태로 두고 있던 상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영후였다.
“자신 있어? 내가 알기로 날 죽이지 못하면, 개입자도 돌아가지 못하는 것으로 아는데?”
“참 어리석은 서방 대륙의 황제로군. 네가 사는 세계에서 일인자였다고 해서, 여기서도 일인자일 것 같은가?”
“응. 그럴 것 같은데?”
한 차례 더 업그레이드된 도발로 응수한 자레드의 말에 마영후가 양미간을 찌푸렸다.
“죽기 전에 할 말은?”
“곧 돌아가실 분의 자기소개나 좀 들을까?”
되지도 않는 유언을 들으려는 마영후의 말에 자레드가 역으로 맞받아쳤다.
마영후의 자신만만한 표정에서 자레드를 깔보는 감정이 대놓고 드러났다.
“나는 마영후다. 인류 통합 연맹의 마스터인 증강우 님을 마스터로 모시고 있지.”
“증강우 따까리다, 이거네.”
“입이 거칠군, 황제.”
“증강우가 마영후 네 목숨을 걱정해 주지는 않던가? 첨탑 주변이 그렇게 된 것을 보면 제정신은 아닐 텐데.”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계신다. 네놈의 수작질은 다 간파하고 계셨다.”
“그렇구나. 그래서 첨탑 주변에 배치되어 있었던 부하들과 시설이 다 쓸려나가도 평온했구나?”
“…….”
정곡을 찌르는 자레드의 지적에 마영후가 할 말을 잃고서 입을 다물었다.
증강우는 마영후에게 자레드를 조심하라고 말했지만, 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마법이라는 것이 각성자의 재능과는 달라서 이번 일처럼 ‘재앙’을 만들어 낼 수는 있다고 봤다.
하지만 이런 대단위 마법을 밥 먹듯이 쓸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마영후의 생각이었다.
만약 아무 때나 난사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면, 진즉에 대륙 전체가 불바다가 되지 않았겠는가?
이런 마영후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초월 마법 형태의 메테오 스톰은 재사용에 하루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일반 마법 형태의 ‘메테오’라면 언제든지 시전할 수 있었다. 아무런 제한 없이.
그런데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애먼 데 힘을 뺄 것 없이, 적의 심장부만 노리려는 자레드의 노림수 때문이었다.
증강우와 그 휘하의 부하를 증오하고 미워하지만.
애꿎은 이 세계의 민간인들까지 자신의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동방 대륙의 기형적인 지배 구조를 볼 때.
각성자가 아닌 평범한 민간인은 시키면 따를 수밖에 없는, 완벽한 약자(弱者)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잘 왔어. 마침 실력 측정을 해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덤벼 봐. 전력으로 상대해 줄게.”
“오랫동안 푹 쉬었던 내 만월검의 검날에 고귀하고 고결하신 황제의 피를 묻히게 생겼군.”
마영후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혀끝으로 입술을 핥았다.
“검을 잘 쓴다고 했나?”
“그렇다. 이 세계에서 나보다도 더 검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마스터밖에 없다.”
“좋아. 그럼 마법의 1인자로서 친히 검의 2인자에게 가르침을 하사하도록 하지.”
“그 오만함을 치욕과 모욕, 수치로 바꾸어 주마, 황제!”
“뭐 이리 말이 길어! 덤벼, 이 버러지 같은 XX야!”
확실한 도발!
그렇게 자레드와 마영후의 전투가 시작됐다.
그로부터 약 30분 후.
‘갈라딘은 마영후에 비하면 어린애였네. 확실히 동방 대륙의 검술 수준이 높아.’
자레드는 전투 내내, 마영후의 검술에 감탄하고 있었다.
일전에 상대했던 소드 마스터 갈라딘과 비교해도 그 실력이 적어도 두 수 이상은 높았다.
검의 움직임은 간결하지만 파괴력이 훨씬 더 막강했다.
오러 블레이드와 유사한 개념의 검술도 눈에 띄었다. 이것을 마영후는 검강 혹은 검기라고 불렀다.
‘이래서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는 거겠지. 경험하지 못했다면 아무것도 몰랐을 테니까.’
마영후가 펼쳐 낸 검술의 세계는 자레드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덕분에 한 차례 부상도 입었고, 고통을 수업료 삼아 악착같이 마영후의 검술을 눈에 익혔다.
지금 익혀 두어야 나중에 증강우를 상대할 때, 유사 형태의 공격에 더 이상 고전하지 않을 듯해서였다.
그렇게 자레드는 구슬땀을 흘려 가며 마영후의 모든 공격 패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물론 몇 차례 마영후에게 역습을 가할 기회가 있었지만, 일부러 공격 타이밍을 늦췄다.
마영후를 교재 삼아.
아직 정식으로 싸워 보지 못한 증강우에 대한 간접경험을 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자레드가 마영후의 검술과 공격 패턴을 점점 흡수하기 시작할수록.
‘……무너지지 않는 벽 같다.’
마영후는 당황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제법 빈틈을 드러내며 노림수를 허용하기도 했던 자레드가 점차 변화를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실시간으로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컴퓨터’를 보는 느낌이랄까.
점점 발전하면서 빈틈을 메워 가는 자레드의 모습에 마영후의 표정은 흙빛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1시간도 안 되는 시간 사이에.
자레드는 한 단계, 두 단계, 아니 그 이상으로 훌쩍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단지…… 자신을 상대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