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6
제 36화
14장. 발톱을 숨기다 -1화
그 시각.
마요르카 영지의 영주 성에서는 두 우두머리의 회동이 있었다.
바로 마요르카 영지의 영주인 호르구스와 로넬라 영지의 영주인 바트만의 대화 테이블이었다.
최근 두 영지는 수입이 크게 줄어, 영지 운영에 큰 애를 먹고 있었다.
다수의 헌터들이 크리비아 영지로 떠났고, 헌터 길드 본부까지 옮길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판도가 뒤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로넬라 병의 치료제를 독점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크리비아 영지가 돈을 쓸어 담고 있다는 소식이 매일같이 들려오는 상황이었다.
대화의 장에서 먼저 말문을 연 것은 호르구스였다.
“바트만 영주, 우리가 비록 오랜 시간 으르렁대며 반목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모든 것이 다 각자의 영지를 위해서가 아니겠소?”
“솔직히 감정의 앙금이 없다고는 못 하겠소. 하지만 그렇게 골이 깊은 것은 또 아니지. 편하게 말해 보시오.”
“최근 크리비아 영지로부터 제법 많은 선물을 받지 않았소?”
“제법 받았지. 앞으로도 우호 관계를 계속 유지하자면서, 잘 봐달라고 각종 특산물을 보내더군. 영지의 재정이 제법 풍족해졌는지, 금도 많이 보내던데.”
“역시……. 그 영악한 놈이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 같소. 바트만 영주, 잘 생각해 보시오. 왜 그동안 조용했던 자레드 놈이 갑자기 꼬리를 치겠소?”
같은 영주였지만, 그들에게 있어 자레드는 ‘놈’이었다. 호칭에서부터 이미 그들은 충분히 자레드를 깔보고 있었다.
“요즘 영지의 돈벌이가 좋아져서 그런 거겠지. 우리 영지에 있던 헌터의 2할이 빠져나갔소.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이지. 자레드 놈은 우리 영지의 근간을 뒤흔들려고 하고 있소!”
쾅!
열이 바짝 오른 바트만이 테이블을 내리쳤다.
로넬라 영지의 주 수입원은 헌터들이 지불하는 세금과 통행료, 던전 이용료였다.
로넬라 영지도 크리비아 영지처럼 대륙 북부에 위치한 영지라 농업 분야가 형편없이 낙후되어 있었다.
그래서 예전부터 헌터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산업으로 영지의 재정을 대부분 충당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자레드가 치료제 독점 판매와 더불어 대대적인 헌터 유치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정말 하루가 다르게 상주 인원이 줄어드는 것이 보일 정도로 헌터가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들은 고스란히 크리비아 영지로 이동했고, 악몽의 숲에 자리를 잡았다.
악몽의 숲은 제법 규모가 큰 던전이었기에 다수의 헌터들을 수용하는 데에 문제가 없었다.
“놈은 두려운 거요. 영지는 발전하고 있지만, 그만큼의 준비는 안 되어 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돈으로 평화를 사겠다는 생각을 했을 거요.”
“내 생각도 비슷하오.”
“다수의 정찰대를 보내 크리비아 영지를 살펴보았는데, 군사는 300명 정도로 극히 적소. 이 정도면 우리 두 영지가 힘을 합치면, 어렵지 않게 접수할 수 있을 정도요. 사실 한 끼 식사나 다름없지!”
“300명이라……. 너무 적은데?”
“그러니 돈으로 평화를 사려는 게 아니겠소? 많은 돈을 바치면, 우리가 만족하고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 터.”
“배짱인가?”
“그래서 수석 마법사인 아크론을 보내 뒀소. 우리 쪽에서도 친교의 뜻을 밝히기로 한 거요.”
“그게 무슨……?”
바트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창 적대적인 얘기를 꺼내 놓고는 결론이 친교로 맺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호르구스가 껄껄 웃으며 호탕하게 말했다.
“오늘부로 우리는 크리비아 영지와의 전쟁을 준비할 것이오. 기간은 한 달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다음, 기습적으로 영지를 공격할 것이오. 선전포고? 그것은 뭐, 사후에 해도 상관없겠지. 클클클!”
“평화를 원하는 척한 다음에 방심한 틈을 노려, 놈들의 허를 찌른다?”
“그렇소. 바트만 영주, 연합 전선을 형성합시다! 어설프게 정복해서는 안 되오. 자레드와 그 일당의 씨를 말려야, 무난히 영지와 던전을 접수할 수가 있소.”
“허허,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더니! 딱 호르구스 영주가 나는 놈이었구려? 자레드의 어설픈 공작을 받아들이는 척하며, 오히려 큰 그림을 그리는 노림수라니!”
“서로 영지군을 합치면 3000명은 족히 되지 않겠소? 기본 수비 병력을 제외한다고 해도 말이오.”
“그렇소. 그쯤은 움직일 수 있지. 소집과 군량 확보만 끝나면 되오.”
“함께 공격합시다. 자레드를 짓밟읍시다. 더 나아가 던전을 빼앗아 우리 것으로 만듭시다! 그러고 나면, 최근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크리비아 영지의 과실을 빼앗을 수 있소.”
“좋소. 연합합시다.”
바트만과 호르구스가 서로 손을 맞잡았다.
언뜻 보기에는 의기투합하여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뜻을 통일한 것 같았지만.
‘다음은 너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잡아먹히는 법. 너희 영지까지 모두 차지해 주마!’
동상이몽이었다.
하지만 진심을 숨긴 두 사람은 어느 때보다 진하게 악수를 나누며, 감정을 교환하고 있었다.
* * *
허름한 접견실.
나는 그곳에서 마요르카 영지에서 온 아크론과 그의 사신단을 만났다.
내가 왕이나 황제였다면 으리으리한 대전에서 그들을 맞이했겠지만, 소영지의 영주니 아직까지 그런 것은 사치다.
사실 허름한 곳에서 만난 것은 의도한 바도 있었다.
그만큼 영지가 열악한 곳에 있고, 얼마나 작은 곳인지를 시각적으로 깨달을 수 있게 해 주니까.
“안녕하십니까, 영주님. 마요르카 영지에서 온 아크론이라고 합니다. 영주님의 친서를 전하고자 직접 찾아왔습니다.”
‘아크론……. 초면에 미안하지만, 얼굴을 만들다가 말았네. 개발진이 귀찮아서 그리다가 대충 붙여넣기 했나?’
나는 아크론의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빵떡같이 큰 얼굴에 단춧구멍같이 작은 눈, 심각한 들창코에 비대칭인 입술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추남의 공식을 모두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걸 보면, 엑스트라였던 자레드의 외모에 개발진이 공을 들여 준 게 참 고맙단 말이야?’
내심 뿌듯해졌다.
매우 주관적인 헤이즈 피셜이긴 하지만, 헤이즈는 내 얼굴이 마치 조각상을 쏙 빼닮았다고 했다!
볼 때마다 항상 짜릿하고, 새롭고, 잘생긴 게 역시 최고임을 느끼게 한다나 뭐라나?
어쨌든 아크론의 외모는 기대 이하였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그에게 느껴지는 독기가 더 짙게 느껴졌다.
[아크론 – Lv. 35] [근력 : 19][체력 : 14] [마력 : 428][지혜 : 66] [민첩 : 12][매력 : 3] [물리 방어력 : 3] [마법 방어력 : 13] [특수 성향 : 난전 유도 B] [일반 성향 : 실험, 물욕]‘오호라.’
심안으로 아크론의 상태를 살폈는데, 전반적으로 나보다 스탯이 낮았다.
격차가 현저히 나는 부분은 마법 방어력과 마력이었다. 각각 60과 600의 차이가 났다.
확실히 델루크의 은신처를 공격해서 아티팩트를 대거 취한 효과가 있었다.
꾸준히 강화된 버그 수련법을 이용해서 마력과 마법 방어력을 올려 온 결과물이기도 했다!
특수 성향도 난전 유도 하나뿐.
마법 연사에 제법 능하다는 것을 알리는 성향인데, B등급이면 썩 높은 것은 아니다. 종종 제 꾀에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
바로 그때.
퀘스트 하나가 활성화됐다.
[퀘스트 ‘용호상박(龍虎相搏)’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상대는 당신과 같은 4클래스의 마법사입니다. 그를 제거할 경우, 지혜 15를 획득합니다.]‘그러고 보니 용호상박의 조건이 성립되는구나. 그간 곁에 4클래스의 마법사가 접근할 일이 없어서 발동되지 않았었군.’
깨알같이 퀘스트도 생겼다.
말 그대로 호적수를 만났을 때 발동된다.
지혜 15의 상승이라면, 스탯 75의 가치를 하는 만큼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어서 오시오. 방문을 환영하오. 지난번에 드린 선물을 영주님께서는 만족하셨소?”
“매우 만족하셨습니다! 진즉에 마요르카 영지와 크리비아 영지의 평화를 바라 왔다고 하시며, 자레드 영주님의 결단을 크게 치하하셨습니다.”
‘얼씨구, 이제 공식 표현에서도 대놓고 자기가 위다, 이거지?’
‘치하’는 엄연히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표현이다.
그 말을 공공연하게 사용했다는 것은 놈들이 우리 영지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 주는 것이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석한 라키스가 살기 어린 눈빛을 쏘아 댔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런 대화를 예상하고 있었기에, 그로 하여금 감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강하게 지시했었다.
“만족하셨다니 참으로 다행이오. 그럼 서신을 볼 수 있겠소?”
“예, 여기 영주님께서 직접 쓰신 친서입니다.”
라키스를 통해 친서를 전달받은 나는 바로 내용을 확인했다.
‘미친X, 쇼하고 있네.’
나는 읽자마자 서신 속에 날을 벼르고 숨겨 놓은 죽창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호르구스, 이 자식.
누굴 호구로 보는 거야?
평화를 염원하는 서신 속의 강한 어조만큼, 나는 곧 임박할 전쟁의 피 냄새를 진하게 맡았다.
이 친서를 보낸 시점부터 분명 전쟁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단언컨대, 로넬라 영지와 연합 전선을 구축할 가능성이 100%였다.
이이제이(以夷制夷)는 지금과 같은 춘추전국시대에서 흔한 전술, 전략 중의 하나였으니까.
내가 경험이 일천한 사람이었다면, 이 친서를 곧이곧대로 믿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믿기 싫어도 믿었겠지. 그렇지 않으면 영지에 다가올 전쟁을 피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나로서는 오히려 확신의 증거가 된 듯하여 마음이 후련해졌다.
나는 평소보다 훨씬 더 밝게, 그리고 부드럽게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아크론을 향해 양손을 활짝 펼쳐 보이며, 크게 소리쳤다.
“나는 누구보다도 서로의 평화를 깊게 바라고 있소. 내 조만간 최고의 순도로 세공된 크리비아 마정석을 보내 드릴 터이니, 부디 두 영지의 우호의 증표로 삼아 주길 간절히 바라오.”
“하하, 여부가 있겠습니까? 영주님께서 매우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 서신을 잘 보관하여, 우리의 우호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도록 하겠소.”
“저 역시, 오늘과 같이 기쁜 소식이 있으면 직접 영주를 찾아뵈러 오겠습니다.”
“언제든 환영이오!”
속내를 하나도 모르는 듯한 순수한, 아니 멍청한 영주의 연기를 하느라 꽤 집중했다.
그렇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뒤돌아서서 나가는 아크론을 보자, 그제야 다가올 전쟁이 실감 났다.
곧 전장에서 상대하게 될 적수에 대한 사전 조사도 끝난 것이 됐고 말이다.
아크론과 사신단이 물러간 뒤.
충분히 시간이 흐르고 적막이 찾아들자, 라키스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영주님, 왜 저자세로 일관하시는 것입니까? 영지의 전력은 충분히 저들을 능가할 수 있을 만큼 대폭 성장하였습니다. 그들의 비위를 언제까지 맞추실 필요는 없잖습니까?”
“그렇지. 그것이 옳은 말이오.”
“한데 왜…….”
이것이 생각의 차이인 걸까.
한편으로는 내 가신인 라키스마저 보란 듯이 속여 넘겼으니, 저들 역시 똑같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벅. 저벅. 저벅.
나는 자리에서 내려와 라키스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아직 분이 풀리지 않는 눈빛을 하고 있는 그의 어깨를 조용히 두드려 주었다.
라키스의 적개심은 이해할 수 있었다. 마요르카 영지는 온갖 범죄 조직의 거점이자 영주부터 부패한 최악의 영지였으니까.
“라키스.”
“예.”
“잘 들으시오. 전장에서 적을 만난다면 응당 검을 뽑아 드는 것이 맞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웃는 것이오. 왜냐, 진정한 의미의 검은 허리춤의 검집이 아니라 실없이 웃고 있는 얼굴 속에 숨기는 것이 가장 예리하기 때문이오.”
“아…….”
“우리가 호의를 베풀수록 더욱 저자세로 일관할수록 저들은 방심할 것이오. 그들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아무런 준비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겠지.”
“그 말씀은 적을 방심하게 하기 위해, 발톱을 숨긴다는 그런 말씀이십니까?”
“바로 그것이오. 진정한 일격은 최후의 일격, 단 한 번이면 충분하니까. 과정에 담긴 굴욕이나 굴종에 의미를 두지 마시오.”
“영주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저들이 마수를 드러내는 그날까지 우리는 묵묵히 준비합시다. 스스로도 완벽히 속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