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65
제 364화
113장. 신을 죽여라 – 4화
그로부터 얼마 후.
“이, 이건…….”
로케발은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을 망연자실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핀치에 몰아넣었고, 손쉽게 목숨을 앗아 가면 될 자레드를 죽이기는커녕.
“커헉…….”
오히려 자신이 당한 것이다.
그의 얼굴, 그중에 반쪽이 시원하게 사라져 버렸다.
자레드가 ‘초월’에다가 ‘열화의 힘’을 더해, 위력적인 일격을 가했던 것이다.
로케발의 몸 전체는 단단한 외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앞서 자레드와의 전투에서 헬 파이어나 파이어 스톰 같은 다양한 화염 마법에 노출됐고.
심지어 최상급 화염 정령까지 불러낸 일격에 몇 번이나 당하기도 했지만.
화상을 제법 입었을 뿐 몸이 녹아내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살짝 탄 정도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자레드의 손길이 닿은 얼굴 반쪽은 순식간에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없어져 버렸고.
사방으로 뻗어 나간 열기에 노출된 로케발의 외피는 순식간에 쪼그라들어 버렸다.
“분명…… 분명 나의 승리였는데…….”
믿기지 않았다.
자레드에게 최후의 공격을 할 때만 해도 자신에게 빈틈은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설령 빈틈이 있다고 해도 자레드가 반격을 할 수 있는 여지는 없었다.
이미 한쪽 팔의 힘을 잃고, 균형이 무너진 상태였기에 반격의 수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맞아. 첫 공격은 네 승리로 끝나는 그림이 맞았어. 하지만 내게는 이번 공격이 두 번째거든.”
“뭐라고……?”
힘겹게 말을 잇는 로케발의 몸이 비틀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얼굴의 절반이 통째로 날아간 탓에.
뇌수와 피가 한데 얼룩져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로 절명하지 않은 것이 더 이상할 정도로.
“시간을 되돌렸어. 네 첫 번째 공격에 내가 꼼짝없이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역행을 시켰지.”
“시간을…… 되돌렸다?”
“시간과 공간을 부리는 힘은 그래서 무서운 거야. 그래서 내게도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노림수였고.”
“…….”
그제야 의문이 풀리는 듯했다.
현재를 경험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 현재의 실수를 보완하고 노림수를 만들어 다시 노렸던 것.
“지긋지긋한 전쟁, 이제는 끝내고 싶어. 악신이건 누구건 이제는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아. 질린다.”
자레드가 고개를 저었다.
진심이었다.
지금의 마음은 그저 나스 대륙의 백성, 동료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지구로 가서 가족을 만나, 함께 만남의 기쁨을 누리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정의 구현, 질서 확립. 다 좋지만!
사서 고생을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
로케발과 증강우도 나스 대륙을 건드리지만 않았다면, 눈빛조차 섞지 않았을 인연들이었다.
“…….”
“신도 결국은 더 높은 신 아래에서는 또 다른 장난감일 뿐이야. 지금처럼 말이야.”
자레드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푸슈슛! 파스슷!
로케발은 죽어가는 와중에도 자레드를 공격하기 위해 몇 차례의 능력을 발현시켰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상대도 인간이 아닌, 잠시뿐이지만 신의 경지에 오른 존재니까. 무의미한 공격이었다.
“죽어라.”
퍼어엉!
자레드가 시간을 더 줄 것도 없이 로케발의 머리 한가운데에 썬더 스트로크 마법을 전개했다.
그러자 한 줄기 벼락이 로케발의 얼굴 위로 내리치며, 그의 얼굴을 수박처럼 쪼개 버렸다.
우매한 인간 하수인들을 장난감 삼아서 최악의 유희를 즐겼던 신의 비참한 최후였다.
“후아.”
풀썩!
두 다리의 힘이 빠진 자레드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보통 전투가 끝나면 승리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을 복기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복기하는 것조차 두려울 만큼, 정말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떻게 첫 번째 상황을 인지하고, 다시 시간을 되돌려 반격했는지도 모를 정도.
어느 순간부터는 무아지경에 빠져서 몸과 머리가 이끄는 대로 본능적으로 따라간 듯했다.
어쩌면 애초부터 그게 정답이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멋지군, 자레드.
“다신 이런 전쟁, 전투는 하고 싶지 않아. 내 그릇에 맞지 않는 삶이야.”
진심이었다.
나스 대륙의 황제.
딱 거기까지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인 것 같았다.
신들의 세계에 끼어든다?
단 1초도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악신 로케발을 처치했습니다!] [차원의 균열이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균열의 정상화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입니다.] [정상화가 완료되면 기존의 결계가 생성되고, 두 차원계의 거리가 다시 벌어지게 됩니다.] [악신 로케발의 눈에 양손을 가져다 대고, ‘신의 눈’이 가진 고유의 힘을 얻으십시오.]“신의 눈?”
-챙길 수 있는 건 다 챙겨 둬. 내가 이 세계에 힘들게 개입해서 넣어 둔 보상들인데.
“이런 상태창 시스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모양이네.”
-처음 만났을 때도 얘기했잖아. 이 넓은 우주에는 지구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고.
상태창 시스템도 마찬가지. 너에게만 상태창이 특별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
그렇기에 얼마든지 연구할 방법이 있었고, 이 세계에 조심스럽게 밀어 넣을 수 있었던 거다.
자레드는 여기에 덧붙여 시시콜콜한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이런 안배를 할 수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결과였다.
이번 일의 원흉이었던 증강우와 로케발을 차례대로 황천길로 보내 버렸고.
차원 균열의 문제는 이제 완벽하게 해결됐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자레드는 싸늘하게 식어 가고 있는 로케발 시신의 한쪽 눈 위에 양손을 얹었다.
[‘신의 눈’을 얻었습니다!] [차원의 움직임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해당 차원과 연결되거나 충돌할 수 있는 다른 차원을 통찰할 수 있습니다.]“정말이네.”
신의 눈을 얻는 순간, 자레드는 점점 멀어져 가려고 하는 차원 ‘베디세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호빵 두 개를 합쳐 놓은 것처럼 붙어 있던 차원이 점점 떨어지면서 접촉 면적이 줄어드는 중이었다.
-어서 돌아가라.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그래야겠어.”
-이건 연결용 차원석이다. 이걸 이용하면 나스 차원에서도 나를 한 번 소환할 수 있을 거다.
“같이 못 가는 거야?”
-첨탑 밖으로 나가서 내가 활보하는 순간, 그 차원은 붕괴되는 거야. 아직 원리를 잘 모르는군.
“내가 알 이유가 없잖아.”
-하긴.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보면 하도록 하지. 곧 떨어질 베디세트 차원이 애먼 다른 곳과 연결되지 않게 해야겠군. 그럼.
파앗!
이윽고 박도혁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와 긴 말을 나누기엔 지금의 상황이 촉박했다.
1시간이 지나면, 아예 나스 대륙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또한 여전히 나스 대륙 동부에서는 증강우가 파견한 대함대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터였다.
“가자. 시간이 없다.”
자레드는 바로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쪽으로 쭉 가야만 이들이 서방 대륙이라 부르는 나스 대륙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로케발의 죽음과 함께 첨탑 꼭대기에 만들어진 특수한 공간마저 사라진 이곳은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자레드는 마지막으로 치열했던 전장의 흔적을 두 눈에 담고는.
파팟! 팟! 팟!
미련 없이 첨탑을 빠져나왔다.
이제는 마음 놓고 텔레포트 마법을 시전할 수 있는, 방해꾼 하나 없는 안전한 이동이었다.
* * *
끝없이 서쪽으로 이동했다.
상공을 고속으로 주파하고 있는 내 아래로 동방 대륙 문명의 흔적들이 보였다.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하나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기까지 했다.
아마도 각성자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손가락 한 번만 까딱해도 손쉽게 몰살을 시킬 수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증강우를 위시한 지도자들이 잘못된 짓을 저질렀다고 해서 일반인까지 죄가 있는 건 아니니까.
물론 저 중에는 인류 통합 연맹의 대의에 동조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목청 높여 서방 대륙의 침공을 주장한 사람도 있을 테지.
하지만 그런 사소한 것에 일일이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무너진 차원의 균열이 복구된다면 저들과 다시 엮일 일은 없을 테니까.
“인류 통합 연맹이 무너지고 난 후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은 저들의 몫이겠지.”
머지않아 증강우의 죽음이 알려지고, 핵심 세력이 모조리 몰살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지면.
동방 대륙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될 것이다.
피의 숙청이 일어날 수도 있고, 제2의 증강우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건 나도 장담할 수가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그저 동방 대륙 사람들의 자정과 정화를 믿을 뿐이다.
그로부터 5분 후.
장거리 텔레포트를 이용해 서쪽 해안가에 단숨에 도착했다.
그리고 상공으로 한참 높이 날아오르자, 그 아래로 훤히 내려다보이는 것이 있었다.
“이걸 두고 갈 순 없지. 만약을 위해서라도.”
바로 심판의 창이었다.
마력은 다 회복됐다.
워낙 회복량이 좋다 보니 첨탑에서 소모했던 전량의 마력을 되찾은 상태.
곧바로 심판의 창의 핵심부인 인공섬을 향해 데큐플 트랜센던스 메테오를 캐스팅했다.
차원 균열의 원흉이기도 하기에 남겨 두고 떠나고 싶지 않았다.
심판의 창을 파괴한다는 것은 동방 대륙과 악연을 끊는다는 상징적인 의미이기도 했다.
얼마 후.
콰아아아!
소환된 거대한 운석이 섬을 향해 맹렬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새빨간 불의 꼬리를 만들어 내며 떨어지는 메테오의 힘은 평소보다도 훨씬 더 강력했다.
“잘 가라.”
잠시 상공에 멈춰선 나는 심판의 창이 사라지는 모습을 두 눈에 담기로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의 악연이 되길 바라면서.
쿠콰콰콰콰!
이윽고 섬에 충돌한 메테오가 거대한 버섯구름을 일으키며 주변의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충돌과 동시에 인공섬은 흔적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산산조각이 나서 사라졌고.
카치이잉! 파칭! 쿠콰콰콰쾅!
심판의 창 ‘본체’와 연결된 다른 인공섬의 보조 장치들도 연쇄 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외부의 테러나 지진, 해일 등에 대비하기 위해 아주 두껍고 안전하게 설계된 구조물들이었지만.
섬과 해수면 전체를 강타한 운석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애초에 시공을 할 때, 운석이 하늘에서 떨어질 것까지 계산하고 만들지는 않았을 테니까.
“끝났어.”
도미노 현상처럼 계속해서 터져 나가는 구조물들을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차원의 균열이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균열의 정상화까지 남은 시간은 20분입니다.]마지막으로 남은 시간을 확인해 보니, 20분의 여유가 있었다.
“돌아간다. 다들 기다려.”
이제 서쪽으로 보이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대양뿐이었다.
더 이상 동방 대륙의 땅덩어리를 볼 일은 없을 듯했다. 앞으로 영원히.
이제 마지막 문제가 남았다.
증강우가 사랑하는 내 백성들을 짓밟고자 서쪽으로 파견한 자신의 군대들.
그들을 모두 죽이고, 진정한 나스 대륙의 평화를 되찾을 시간이다!
드디어 눈앞에 끝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