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67
제 366화
114장. 몰살 – 2화
“하하하! 서방 대륙 놈들! 현란하게 공격만 하면 뭘 하나!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을!”
“저 용(龍)들을 보십시오. 파멸의 창에 속절없이 추락하는 것을 보니 용이 아니라 지렁이였던 모양입니다!”
“크하하! 마스터께서 우리의 활약을 얼마나 흡족하게 보시겠느냐! 곧 오실 테니, 그때까지 서방 대륙 놈들에게 우리 무적함대의 힘을 제대로 보여 주자!”
최전방의 제1 함대 사령관인 서문혁은 속절없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적의 모습에 만족해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차원석을 ‘떡칠’을 해서 만든 제1 함대는 다른 함대와는 수준이 달랐다.
화력은 물론이거니와 방어 역장을 구현해 전방위 방어가 가능했다.
최대 출력까지 올리면 드래곤의 브레스까지 견뎌 낼 정도였으니 말 다한 수준.
“폐하는 도대체 어디에…….”
“아아, 희망은 없는가?”
한편, 방어선에 주둔 중인 크리비아 제국군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었다.
이미 후방에서는 만약을 대비한 긴급 피난이 진행 중이었다.
첫 번째 방어선이 뚫리면.
두 번째 방어선까지 가는 중간 지점에 있는 거주 구역이 초토화될 것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륙한 적들이 텔레포트 마법진을 이용해서 제국 전역으로 뻗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첫 번째 방어선 주변에 설치된 장거리 텔레포트 마법진 둘은 해체 직전의 상태였다.
언제든지 신호가 오면 마법진을 해체하고, 사용 불능 상태에 빠지게 만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무기력할 수가 있는가. 폐하께서 내게 중임을 맡겨 주셨거늘…….”
“죄송해요. 마법사단의 단장으로서 면목이 없을 따름이에요. 정말 전황이 이렇게 흘러갈 줄은…….”
라키스와 함께 싸우던 나오미의 표정 역시 어두웠다.
그녀가 열심히 마법을 퍼부어 보았지만, 통곡의 벽과 같은 저 벽을 뚫지 못했다.
그녀도 결국 9클래스 마법사가 아니다 보니, 대단위 공격 마법의 부재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주요 화력이었던 블랙 드래곤들은 계속 이탈 중이었고, 베르하드는 부상이 심했다.
“왜, 도대체 왜……!”
분노하고 있는 것은 가까이에서 싸우고 있는 이자벨도 예외가 아니었다.
드레자 주술단이 죽을힘을 다해서 광역 주술진을 펼치며 상륙하는 적군을 요격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저 멀리서 함대가 내뿜는 함포와 파멸의 창에 주술사들이 속절없이 죽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함대 전체를 단숨에 무력화시킬 수단이 없기에, 피해는 계속 누적되어 가는 상황이었다.
“무기력하다…….”
아슈르의 표정도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쿠구구궁! 구구궁!
여기저기서 격추당한 타트라 넥스들이 속절없이 바다 위로 추락하고 있었다.
모두가 무력감을 느꼈다.
이 자리에 없는 한 사람.
그 사람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온몸으로 느끼게 된 것이다.
한데 바로 그때.
번쩍!
모두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하는 일이 일어났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에서 섬광이 번쩍이더니 시뻘건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폭발 자체는 이 전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다.
문제는 이 폭발이 노리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슈르르르르…….
갑자기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바닷물.
빠져나가는 조류에 휘말린 군함들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좌우로 흔들리는 찰나.
“X발, 저게 도대체 뭔…….”
사령관 서문혁이 수평선 끝에서부터 밀려오기 시작하는 거대한 ‘벽’을 보고는 욕을 내뱉었다.
그것은 단단한 벽이 아니라 파도, 그러니까 해일이 만들어 낸 거대한 물의 벽이었다.
“폐하! 폐하께서 오셨다!”
“와아아아!”
목소리를 들은 것도, 누군가가 알려 준 것도 아니었지만, 모두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런 엄청난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존재는 나스 대륙에서 유일무이하게 오직 자레드밖에 없다는 것을.
“모두 제1 방어선 북부를 두고, 중부까지 후퇴한다! 고지대로 움직인다!”
라키스가 즉각 병사들을 독려했다.
애초에 고지대에 만들어진 방어선은 어지간한 해일에 버틸 수 있을 만큼 방벽이 높았다.
처음에는 왜 고지에 터를 잡고, 방벽까지 높게 건설하는지 의아해했던 사람들이었지만.
이제 그 이유가 명확해졌다.
이 한 방을 노리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물의 힘으로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몰살’을.
당연한 얘기지만.
자레드는 자신의 공격으로 인해 유발될 해일의 폭과 거리를 계산하고 공격을 펼친 것이었다.
아무리 마음이 급하다고 해도, 사랑하는 백성들과 병사, 동료들을 수장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쿠아아아아……!
적절한 지점에서 최고점을 찍은 해일이 몰려오고 있었다.
애초에 대폭발이 일어난 위치가 전장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라, 피할 시간 자체는 충분했다.
문제는 방향이었다.
해일이 몰려오는 방향으로 피하는 일이야 당연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이고.
반대로 지상으로 상륙하는 대피 루트를 생각하자니 군함을 버려야만 했다.
“대장! 대장, 어떻게 합니까?”
“빌어먹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마스터께서는, 마스터께서는 대체 어떻게 된 거냔 말이다!”
서문혁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해일은 빠르게 거리를 좁힌 상황.
하지만 군함 위에 있다가는 해일에 휘말리는 순간, 그대로 뒤집혀 바다에 꽂힐 판이었다.
“퇴함! 퇴함한다! 배를 버리고, 상륙정으로 빠르게 상륙을 전개한다! 적의 진지가 고지에 있으니 경공을 전개하면서 기동하면 해 볼 만해!”
뿌우우!
결정을 내린 서문혁이 모든 함대에 퇴함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아…….”
갑판으로 나온 서문혁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밀려들고 있는 해일과는 별개로 자신의 머리 위의 상공에 한 남자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레드였다.
그리고.
“내가 있는 한, 너희는 살아서든 죽어서든 몸 하나 눕힐 곳이 없을 거다. 그냥 죽어라.”
화르르륵!
자레드의 분노가 섞인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불기둥이 서문혁의 위에서 하강했다.
화아아아악!
함대 자체의 방어 역장도, 서문혁이 자체적으로 펼친 방어 역장도 아무 쓸모가 없었다.
자레드가 펼친 초월 마법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게 ‘종잇장’ 신세가 될 뿐.
서문혁은 비명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선 채로 그대로 녹아 없어져 버렸다.
데큐플 트랜센던스 헬 파이어에 최상위 화염 정령까지 불러낸 이 일격으로.
서문혁은 아예 ‘증발’을 해 버렸고, 군함의 한가운데는 단숨에 녹아내려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자레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현란하게 상공을 수놓고 다니면서 제1 함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공격? 방어?
모두 자신 있었다.
몰려오는 해일?
어차피 상공으로 높이 날아오르면 되니 걱정 없었다.
자레드의 목적은 거대한 해일로 군함을 집어삼키고 박살 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으로 시선만 끌고, 배를 버리고 도망칠 적을 각개격파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메테오로 유발시킨 해일은 각개격파 한 적들을 빗자루처럼 쓸어 담을 마지막 한 방이었을 뿐이다.
“폐하…….”
“폐하……!”
어두운 밤하늘에도 불구하고 홀로 빛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자레드 폰 유칼레스였다.
전장을 지켜본 모든 군인과 동료들은 하나같이 자레드를 연호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한 줄기 빛처럼 나타난 자레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초토화시켰다.
그가 가르며 지나가는 공간에는 그 어떤 것도 살아남아 숨을 쉬지 못했다.
모조리 죽었고, 파괴됐다.
설령 자레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적이 있었다고 해도 그들은 몰려온 해일에 휩쓸려 물고기 밥이 됐다.
전장에 새로이 추가된 것은 단 ‘한 사람’일 뿐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자레드가 동방 대륙에서 나스 대륙으로 돌아와 바다 위에서 홀로 우뚝 선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스 대륙에 발자국을 남긴 동방 대륙의 모든 군인들은 목숨을 잃었다.
단 한 명도 남김없이 모조리 황천길로 떠나 버린…… 그야말로 몰살이었다.
그들은 완벽히 수장(水葬)됐다.
* * *
“베르하드 님…….”
“아니, 영웅은 내가 아닌데 왜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향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모두 최선을 다했지만, 특히 베르하드 님이 이 전선에서 정말 잘 버텨 주셨습니다.”
전장을 완벽하게 정리한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간 이는 다름 아닌 베르하드였다.
물론 동료들 중 어느 누구 하나도 고생하지 않고 활약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부상을 감수하면서까지 최전선에서 내 역할을 대신해서 싸워 준 베르하드는 분명 전투 시간을 최대한 지연시킨 1등 공신이었다.
“헤이즈, 아니 황후 마마의 치유술 덕분에 상처는 거의 다 아물었다. 체력만 회복하면 될 뿐.”
“다행입니다, 정말.”
“황후 마마라고 불러 놓고, 정작 황제 폐하 앞에서는 반말이라니……. 이놈의 말버릇 좀 고쳐야 하는데.”
“됐습니다. 그냥 편하게 부르세요. 자레드든 황제 폐하든, 그게 무엇이 중요하단 말입니까.”
베르하드의 손을 꼭 잡았다.
드디어 전쟁은 끝났다.
‘신의 눈’으로 본 베디세트 차원은 이제 아득히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오히려 정체불명의 다른 차원이 더 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질 듯하니, 너를 오매불망 기다리셨던 황후 마마부터 찾아가거라. 노인네와 소꿉장난은 이 정도면 되었다.”
“정말 괜찮으십니까?”
“너무 괜찮아서 한숨 늘어지게 자고 싶을 정도이니, 전혀 걱정할 것 없다. 정말이다.”
“그럼…… 알겠습니다.”
베르하드를 편히 쉬도록 둔 채, 나는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다들 전후 복구에 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카스트로를 위시한 블랙 드래곤들은 해안가로 떠밀려 온 군함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었다.
내 마법 공격에 당하지 않고 순수 해일에만 휘말린 군함들 중에는 멀쩡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카스트로는 이것들에 대한 수집 및 공동 연구를 요청했고, 나는 흔쾌히 응했다.
그리고 인간을 위해, 대륙의 운명을 위해 아낌없이 희생해 준 드래곤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물론 말 몇 마디가 오간 가벼운 감사 인사였기에 머지않은 시일에 공식적인 자리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부상을 입은 드래곤은 제법 있었으나, 죽은 드래곤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나스 대륙 전역에서 손에 꼽을 만큼 수가 줄어든 드래곤이었기에.
그들의 존재는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했다.
“폐하…….”
“헤이즈.”
“폐하……!”
베르하드의 막사를 나선 나는 밖에서 두 손을 모은 채 기다리고 있던 반가운 얼굴을 보았다.
내 하나밖에 없는 사랑.
항상 날 바라봐 주는 해바라기.
고통에 신음했을 수많은 인명을 자신의 손길로 직접 살려 내고 힘을 불어넣어 줬을 최고의 치유사.
헤이즈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헤이즈!”
뒤돌아 볼 것도 없이 한달음에 달려가 헤이즈를 꼭 껴안았다.
따뜻했다.
그녀에게만 맡을 수 있는 체취가 느껴지자, 이제야 진심으로 실감이 났다.
돌아온 것이다.
나스 대륙으로.
그리고 죽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 시선을 마주한 채, 온몸이 부서질 듯이 꼭 끌어안을 수 있었다.
“보고 싶었어!”
“저도요.”
“정말…… 보고 싶었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체리향이 물씬 풍기는 헤이즈의 입술 위로 내 입술을 포개 버렸다.
달콤한 꿀을 탐하는 듯한.
진하고도 깊은 키스.
우리는 한참을 꼭 끌어안은 채.
서로를 마주 본 얼굴의 양쪽 볼이 발그레해질 때까지 긴 키스를 나눴다.
누구 하나 엿보는 사람 없는, 달빛 아래 로맨틱한 키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