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69
제 368화
115장. 지구로 향할 준비 – 2화
“후아, 후아.”
“폐하, 긴장되세요?”
“내가 나스 대륙에서 눈을 뜬 지도 6년이 지났어. 그러면 지구도 마찬가지일 거야.”
“6년……. 짧은 시간은 결코 아닐 거예요. 하지만 아버님과 여동생분은 여전히 폐하를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그렇겠지. 못난 아들이기는 했지만…….”
다음 날.
나는 헤이즈와 함께 지구로 향하는 차원문 앞에 서 있었다.
옛 크리비아 영지의 저택에 만들어진 이 통로는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통로이기도 했다.
주변에 다양한 알람 마법진부터 해서, 불청객이 들어올 요소를 완전히 차단해 둔 상태였다.
게다가 황제인 내가 살았던 생가(生家)이기도 해서 함부로 출입할 수도 없었다.
여행객들이 많이 찾아오긴 하지만, 모두 저택 밖에서 둘러보고 가도록 되어 있을 뿐이었다.
애초에 물 샐 틈 없이 경비병들이 경계를 서는 곳이기도 하고.
들어오는 길에 경비병들을 하나하나 치하하면서 두둑하게 포상까지 내려 준 상태였다.
나의 충성스러운 병사들이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태풍이 부나 잘 지켜줄 것이다.
어쨌든 이동에 앞서 나와 헤이즈는 그럴듯한 현대식 복장으로 바꿔 입은 상태였다.
나는 아키를 통해서 직접 주문 제작한 현대식 정장으로 말끔하게 차려입었고.
헤이즈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무릎까지 단정하게 내려오는 화이트 원피스 차림으로 정했다.
언뜻 본다면 결혼식에 하객으로 가는 복장 같은, 살짝 튀긴 하지만 정돈된 옷차림이었다.
“당황하지 마. 보이는 모든 것은 내가 설명하고 알려 줄 테니까. 알겠지?”
“네, 폐하. 걱정 마세요.”
“가자.”
망설이다가는 첫발도 내딛지 못할 것 같았기에 나는 헤이즈의 손을 꼭 붙잡고 차원문을 넘었다.
그러자 마치 우주 한복판에 내팽개쳐진 듯한 느낌과 함께 어두운 배경이 우리를 감쌌다.
“흐름에 몸을 맡겨. 괜찮아.”
“네. 그러고 있어요.”
헤이즈와 다정하게 붙잡은 손을 따라, 그녀의 체온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정말 좋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생각한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을 차원문의 통로 안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또 기다릴 즈음.
“아!”
“아앗!”
나와 헤이즈의 두 발에 전혀 새로운 세상의 차가운 아스팔트 지면이 무심하게 닿았다.
그리고.
헤이즈가 뭔가를 느낀 듯, 흠칫 놀라며 내게 말했다.
“폐하, 마력의 양이…….”
“생각보다 많은 느낌인데?”
“그렇죠, 폐하? 그렇게 느끼고 계신 거죠?”
“응. 나스 대륙과 달라.”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내가 신태풍으로 살던 시절에는 ‘마력’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었으니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마법의 끝, 극의에 다다른 존재였기에 아주 작은 기척이라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었다.
지구의 마력은 나스 대륙을 기준으로 하면 2배 정도라고 해도 될 정도로 그 양이 많았다.
“일단 헤이즈.”
“네, 폐하.”
“당분간은 오빠라고 불러. 현대의 지구에선 폐하라는 호칭을 쓸 일이 거의 없어.”
“오빠…… 라고 부르라고요? 지금껏 폐하를 폐하나 영주님, 공작님 외의 말로 불러 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불러.”
“알았어요. 오, 오오, 오쁘으으으…….”
“오빠!”
“네, 오빠! 오빠!”
“아버지와 여동생을 만나도 그 앞에서 오빠라고 부르는 게 그림이 좋을 것 같기도 해서.”
“알겠어요, 오빠.”
헤이즈의 말대로 그녀에게서 공작 각하, 영주님, 폐하 이외의 호칭을 들어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빠라는 호칭을 듣자, 기분이 새로웠다.
물론 여동생 유희에게서도 살아생전에 오빠라는 말을 많이 듣기는 했지만.
현실 남매였던 우리 사이에 오간 오빠의 뉘앙스는 부드럽기보다는 거칠었다.
헤이즈는 내가 직접 통역 마법을 세공한 목걸이를 차고 있기에 누구든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대한민국의 땅 위에서는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으로 통역이 되니까.
유심히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목걸이에서 통역되는 목소리가 얼추 입에서 나온 것으로 들린다.
“와, 외국인인가 봐! 둘 다 잘생기고 예쁜 선남선녀인데?”
지나가던 행인들이 나와 헤이즈의 모습을 보고는 신기한 듯 말했다.
여기가 어딘가 싶어서 살피니, 명동 한복판이었다.
내가 신태풍으로 살았을 때 명동을 자주 오긴 했지만.
이동 장소가 여기로 지정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우리가 온 차원문 통로는 어떻게 된 거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안전하게 도착한 것은 다행이지만, 나중에 돌아갈 길도 미리 생각을 해 둬야 하기 때문이다.
상태창에 뭔가가 보였다.
[차원 연결의 반지] [해당 포인트에서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으면, 원래의 장소로 복귀할 차원문이 활성화됩니다.이 차원문은 차원문 통과가 허가된 10명의 사람에게만 보이며, 그들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아, 그런 거였군.’
차라리 잘됐지 싶었다.
다시 말해서 나스 대륙과 지구를 잇는 연결 통로는 오로지 나만이 활성화시킬 수 있고.
여길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은 나와 헤이즈를 포함, 총 10명이 전부라는 얘기였다.
아직 빈자리가 여덟 개 있지만, 여기에 누구의 이름을 채우게 될지는 생각해 봐야 할 듯하다.
“와, 저 에메랄드색 머리 봐! 흉내 내고 싶어도 못 내겠는데?”
“모델이다, 모델!”
명동 시내를 활보하는 젊은 사람들은 나와 헤이즈에게 잔뜩 눈이 팔려 있었다.
사실 외모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우리 부부였기에 그런 시선은 당연했지만…….
그래도 갑자기 사람들의 관심이 확 쏠리니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다.
“오빠.”
“일단 조용한 데로 빠져나가자.”
헤이즈의 손을 붙잡고, 사람들이 많은 명동 거리를 빠져나와 외곽으로 향했다.
그리고 적당히 눈치를 본 다음, 빠르게 인비저빌리티 마법을 시전하여 우리의 기척을 감췄다.
어차피 우리나라, 아니 전 세계를 구경할 기회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많다.
오늘은 우선 옛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여행이든, 감상이든, 산책이든 이런 것들은 나중에 할 일이지 오늘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샤아아아아.
펄럭펄럭. 펄럭펄럭.
나와 헤이즈는 빌딩 숲 위의 상공을 가르며, 여유로이 비행 중이었다.
인비저빌리티를 유지한 상태이기에 아무도 우리의 움직임을 눈치챌 수 없었고.
아울러 실드로 주변을 보호하고 있어 나나 헤이즈가 입은 옷이 흩날리거나 헝클어지지도 않았다.
“오빠, 예상은 했지만 이곳은 나스 대륙과는 너무 다른 풍경이네요. 여기 이름이 지구라고 했죠?”
“응. 지구라고 부르지. 영어로는 어스(Earth)라고 해.”
“나스와 어감은 비슷하네요. 그런데 영어가 뭐예요?”
“우리 나스 대륙은 방언이 있긴 하지만 사실 대부분 나스어라는 공통 언어를 사용하잖아?”
“맞아요. 편해요! 이종족과 대화를 나눌 일만 없다면 의사소통이 안 되는 일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지구에는 언어가 정말 많아. 과거 우리 나스 대륙에 비유하자면 각 왕국, 제국마다 쓰는 말이 전혀 다른 셈이야.”
“아……. 정말 불편할 듯해요!”
“그렇지. 그중에 영어라는 언어가 가장 널리 쓰이고 있어. 그래서 공용어라고도 하고.”
“오빠가 통역 마법을 세공한 목걸이를 만들어 주지 않았다면 계속 벙어리 신세였겠어요.”
“그러게. 의사소통의 문제가 바로 해결이 되어서 다행이랄까.”
헤이즈와 함께 서울 하늘을 가르는 느낌은 생소하면서도 즐거웠다.
애초에 서울 하늘을 ‘날고’ 있다는 자체가 신기한 것이다.
전생의 신태풍에게는 이런 능력 따위는 없었으니까.
그저 에 접속해서 열심히 캐릭터를 육성하고 레이드 하던 아저씨만이 있을 뿐.
‘그러고 보니 는 여전히 서비스 중이려나?’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일단 시간이 흐른 것은 맞다.
나스 대륙에서 내가 자레드의 몸으로 6년을 보낸 것처럼, 지구도 똑같이 6년이 흘렀다.
내가 과로사 했을 때가 2020년이었는데, 지금은 2026년.
빌딩 꼭대기에 설치되어 있는 대형 전광판을 확인한 날짜이니 오류는 없을 것이다.
‘동방 대륙은 물론이고, 그럼 내가 전혀 모르는 내용도 엄청 패치가 되었겠는데?’
시간은 훌쩍 흘렀지만, 게임에 집중하던 기억과 감각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나도 모르게 마우스를 클릭하듯, 헤이즈의 어깨에 살포시 올려 두었던 손가락을 까딱였다.
도 여유가 생기면 한번 접속해 봐야겠다.
6년이 지났으면, 기존의 계정은 사라졌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닉네임만 변경되고 데이터로 남았을 수도.
‘과연 에서의 동방 대륙은 어떻게 구현되었고, 이후에는 무슨 소식이 있으려나?’
물음표가 한가득했다.
가족과의 만남을 무사히 마친 뒤, 궁금증을 하루라도 빨리 해결하고 싶었다.
다시 돌아온 지구.
하고 싶고, 해야 하고, 알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다.
* * *
그로부터 얼마 후.
중화역 인근에 위치한 옛 아파트에 도착한 자레드는 헤이즈와 조심스럽게 집으로 향했다.
주변 풍경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옛집에 그대로 가족들이 살고 있는가의 문제였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편함을 열어 우편물을 조심스럽게 확인해 보았다.
그런데.
“이사를…… 안 갔구나.”
우편 수신자의 이름에 아버지와 여동생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폐하, 아니 오빠가 살았던 집에 여전히 두 분이 살고 계신 거예요?”
“응, 그런 것 같아. 따로 우편물이 쌓인 것도 아닌 것을 보면…… 여전히 살고 있어.”
자레드의 손끝이 떨렸다.
긴장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족이 정말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쿵쾅거렸다.
만나면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싶었다.
신태풍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나스 대륙인의 얼굴을 하고 있는 이 모습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설픈 설명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신태풍’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믿어 줄 터였다.
“잘 설명해 드릴 수 있다면 분명히 매우 기뻐하실 거예요. 두 분 모두.”
헤이즈가 손을 꼭 붙잡고 자레드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문이 열립니다.]이윽고 1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자레드는 헤이즈와 함께 꼭대기 층에 있는 옛집으로 향했다.
고층 건물이 익숙하지 않은 헤이즈에게 지구의 엘리베이터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헤이즈는 오는 내내 신기한 것들을 정말 많이 봤다.
자레드에게는 아무런 감흥이 없는 자동차, 지하철, 비행기, 스마트폰이 그녀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던 것.
하물며 20층까지 불과 몇 초 만에 고속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다 왔어.”
“심호흡하세요, 오빠.”
“그래야지.”
자레드가 문 앞에 섰다.
2001호.
퇴근하면 축 처진 몸을 이끌고 센서가 달린 복도 등을 줄줄이 켜면서 걸어오던 20층 통로의 끝.
그가 조심스럽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현관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0. 4. 0. 6. 1. 0. 1. 0.”
아버지와 여동생의 생일을 합쳐서 만든 비밀번호였다.
그리고.
딸깍.
드디어 문이 열렸다.
6년 만에 다시 가족에게로 향하는 감격스러운 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