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7
제 37화
14장. 발톱을 숨기다 -2화
다음 날 아침.
나는 날이 밝자마자 라키스와 치안대 일부를 데리고, 영지 외곽의 숲 지대로 사냥을 나갔다.
숲을 누비고 다니며 꽤 많은 동물을 사냥했다.
그리고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숲 인근에 자리를 펼치고 고기와 함께 술을 곁들인 잔치를 벌였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영지민들과의 접촉도 있었다.
숲에 장작을 구하러 온 영지민도 있었고, 약초나 버섯 따위를 구하기 위해 온 영지민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도 모두 초대했다.
맛있는 고기와 맛 좋은 술을 우리만 차지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은 더 큰 이유가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았다.
‘어디 보자…….’
나는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의 상태를 심안으로 살펴봤다.
대다수는 진정한 우리 영지의 병사와 영지민이 맞았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예상한 변수가 있었다.
[토프 – Lv. 7] [근력 : 12][체력 : 12] [마력 : 0][지혜 : 3] [민첩 : 25][매력 : 5] [물리 방어력 : 3] [마법 방어력 : 1] [특수 성향 : 꼼꼼한 탐색 C] [일반 성향 : 정찰, 위장]지게 위에 장작을 잔뜩 싣고 있는 영지민들 중에 유독 성향이 눈에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외형은 거짓말을 해도, 내면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상대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심안은 그런 부분에서 확실한 감별 수단이었다.
‘역시 첩자를 심어 놨군.’
내가 함정을 파놓기는 했지만, 저들이라고 바보는 아니었다.
아무리 전쟁에서 우위를 자신한다고 하더라도, 침공할 영지에 대해 사전 조사를 안 할 리가 만무했다.
확실히 위장은 깔끔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영지민 같았고, 심지어 부인이라고 해서 함께 데려온 여인 역시 첩자의 성향을 띠고 있었다.
전략, 전술에서 가장 무서운 점은 무엇일까?
바로 상대의 생각을 속속 꿰뚫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을 때다.
이미 부처님 손바닥 보듯, 상대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 가장 크게 방심을 하게 된다.
나는 첩자들에게 그들이 보고 싶은 것을 집요하게 연출하여 보여 줄 생각이었다.
술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 나였지만, 그럴 듯한 연출을 위해 도수가 높은 술을 몇 잔이나 단숨에 들이켰다.
순식간에 취기가 올라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냉정함과 이성을 유지할 정도는 됐다.
나는 라키스에게 말했다.
“라키스 경, 이번에야말로 우리 영지를 부유하게 만들 시점이 된 것 같소! 마요르카, 로넬라 영지와의 관계가 돈독해졌으니 앞으로 전쟁 걱정은 크게 덜어 낸 것이 아니겠소?”
“여부가 있겠습니까. 실로 오랜만에 영지에 황금기가 찾아오는 듯합니다.”
라키스가 맞장구를 쳤다.
그에게 별도로 언질은 하지 않았지만, 평소의 나와 다른 행동으로 보아 눈썰미 있게 내 의도를 파악한 것 같았다.
“앞으로 주변 경계의 병력을 줄이고, 그 인원을 영지의 치안 유지 및 악몽의 숲 근처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투입하도록 하시오.”
“사실 지금은 과도하게 외부 경계를 하고 있는 상태이기는 합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악몽의 숲의 관리에 더욱 집중하겠습니다.”
“두 영지를 자극하지 않도록, 군사 훈련도 통상 기본 훈련 외에는 자제하도록 하시오.”
“옛. 조심하겠습니다.”
“태평성대가 따로 없구려. 진작에 이런 시기가 왔어야 했거늘!”
나는 벌러덩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리고 벌컥벌컥 술을 몇 잔 더 들이켰다.
제법 취기가 오른다.
누가 봐도 세상 근심 하나 없어 보이는 듯한 평온한 미소가 술기운에 의해 자연스럽게 지어진다.
흘깃 살펴보니, 토프는 내가 하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모두 매섭게 관찰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순한 외모로 전혀 첩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상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분명 남들과는 달랐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으며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기까지 했다. 누가 봐도 영지민인 것처럼 말이다.
그 뒤로도 사냥은 계속됐다.
그리고 몇 번을 마주친 영지민들 사이에 첩자가 꽤 있다는 것을 파악하게 됐다.
나는 그때마다 흐트러짐 없이, 일관된 태도와 말로 그들을 속였다.
평화를 노래하고, 상업 부흥을 우선시하려는 듯한 속내를 거듭 비쳤으며, 스스로 풀어진 모습도 잔뜩 내비쳤다.
그렇게 첩자들은 정보를 얻은 뒤, 자연스럽게 영지 밖으로 빠져나갔다.
땔감이 될 나무를 구하러 온 것처럼 위장했기에, 숲 지대로 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 * *
이윽고 해가 질 무렵.
나와 라키스는 숲에 단둘이 남았고, 치안대의 병사들은 모두 영지로 돌려보냈다.
그와 둘이 할 이야기가 있기도 했지만, 동시에 몇 가지 전략을 점검할 필요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 띵하고 지끈거리는 느낌이 찾아오는 관자놀이 부분을 꾹꾹 누르며, 신음을 토해 냈다.
“으윽, 간만에 과음을 했더니 머리가 좀 아프군.”
“괜찮으십니까, 영주님? 진즉에 제가 영주님을 적극적으로 말렸어야 했는데…….”
“아니오. 이 정도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애초에 의심이 많은 첩자들은 더 깊게 나를 살피려 했을 것이오.”
“어리석은 놈들, 영주님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요.”
“후후, 그렇겠지. 자, 나를 따라와 보시오. 지금부터 할 이야기가 있소.”
“옛. 영주님이 가신다면, 어디인들 못 따라가겠습니까.”
앞장서는 내 뒤를 라키스가 부지런히 따라왔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숲지대 전역이 막힘없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능선이었다.
나는 뻥 뚫려 있는 대로(大路) 하나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 갔다.
“두 영지에서 연합군을 편성하여 보낸다면, 그들은 저 길을 선택할 것 같소?”
“제 생각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본 영지에서 즉각 병력을 보낸다면, 대로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변에 매복을 하기에 용이하고, 지대가 낮아 접근 과정에서 다수의 병력을 잃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누가 본다고 해도 우리에게 유리한 지형으로 구축되어 있소. 저들도 같은 생각을 할 것이고.”
“예, 그렇습니다.”
“남은 하나의 선택지는?”
“우회 경로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이긴 합니다만, 영지를 꼼꼼히 살펴보았다면 능히 발견할 수 있는 샛길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로가 우리 영지로 들어오는 정공법이라면, 샛길은 일종의 꼼수다.
라키스의 말대로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이다.
우리 영지에서 제법 오래 산 토박이만이 알고 있는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로처럼 우리 영지의 내부로 접근할 수 있는 통로라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제법 실력 있는 첩자라면 분명 샛길을 발견했을 것이오. 나무꾼 행세를 하고 있었으니, 우회 경로를 집중적으로 탐색했을 테고.”
“예, 영주님. 제가 적군의 지휘관이라면 주요 공격로가 막혀 있을 경우, 미련 없이 우회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샛길은 매복하기도 힘들 정도로 지형이 험준하다 보니, 오히려 적에게는 유리하지요.”
라키스의 판단은 예리했다. 내 생각도 완벽하게 같았고.
“그래서 나는 샛길에 이것들을 설치할 것이오.”
품속에서 마정석을 휘감아 만든 장치 하나를 꺼냈다.
내가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밤을 새워 가며 제작한 마법 함정이었다.
현대식으로 비유하자면 지뢰다.
밟는 즉시 터지도록 제작된 것인데, 화력은 4클래스의 파이어 월 마법을 10초간 펼치는 정도로 강력하다.
거기에 함정 안에 다수의 쇠구슬을 박아 넣어, 폭발과 동시에 주변 인명을 살상하는 기능까지 탑재되어 있다.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 밤새 1초도 쉬지 않고 함정을 만들며 제작 레벨을 올렸다.
숙련도 증가를 위한 소유권 리셋 버그를 활용하기 위해, 밤새 헤이즈가 고생했다.
덕분에 그녀는 아침에 잠이 들었다. 아마 이제 막 깼을 것이다. 밤낮이 완전히 바뀌었겠지.
“이런 물건은 처음 봅니다. 어떤 원리인지 구경할 수 있겠습니까?”
라키스는 마법 함정, 아니 자레드 지뢰를 살폈다. 이름은 내가 붙여 준 직설적인 명칭이었다.
“내 뒤에 서시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키스가 등 뒤에 자리를 잡고 섰다.
나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먼저 흙구덩이를 판 다음, 그 안에 자레드 지뢰를 심고 흙을 덮었다.
그리고.
지이이잉!
실드 마법을 이용해 두껍게 방어 공간을 형성했다.
충분한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나나 라키스가 지뢰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없었다.
“자, 자레드 지뢰라고 명명한 이 마법 함정이 발동되면 어떻게 되는지 봅시다.”
나는 매직 미사일 마법을 캐스팅했다. 인체는 아니었지만, 지뢰의 폭발을 유도하기에 충분한 추진력은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슈아아아.
이윽고 매직 미사일 구체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고, 이내 정확히 지뢰의 상단부에 있는 흙더미를 타격했다.
바로 그때.
콰아아앙!
폭음이 일었다.
동시에 열화와 같은 뜨거운 불길이 수직 상승했고, 폭발로 대폭 동력을 얻은 쇠구슬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팍! 파팍! 팍!
발사된 쇠구슬들이 주변에 있는 나무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절반은 박혔고, 절반은 관통했다.
인근의 나무들 중에 성한 나무는 하나도 없었다. 쇠구슬은 마치 산탄처럼 가까이 있는 모든 것을 박살 내 버렸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엄청난 병기입니다!”
라키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도 백전노장이자 베테랑이지만, 이런 마법 병기를 접한 적이 없었기 때문일 터이다.
“이 녀석을 이용해 연합군을 일망타진할 것이오. 우리 영지가 전쟁터가 될 일은 없을 것이오. 모두 숲에 뼈와 살을 묻어 버릴 테니까.”
“실로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영주님.”
라키스가 내게 경외의 시선을 보냈다. 나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내용을 덧붙였다.
“앞으로 영지민을 인솔해서 이 일대에 집중적으로 나무를 심고, 일부 평지는 개간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치안대는 샛길로의 모든 통행을 제한하도록 지시하시오.”
“그 말씀은 즉, 첩자로부터 함정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소. 오늘부터 그곳은 지옥의 황천길이 될 것이오.”
나는 차갑게 눈빛을 밝혔다.
주어진 예상 시간은 한 달.
그 정도면 충분했다.
발톱을 확실히 숨기고,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넉넉한 시간이었다.
‘나스 대륙의 역사에 드디어 첫 시작점을 찍게 되겠구나.’
드디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데뷔전을 치를 때가 왔다. 그것도 영지전으로.
그날 이후.
모든 것은 착실히, 그리고 체계적인 계획 아래 하나둘 준비되어 갔다.
꾸준히 매일 함정 제작의 숙련도를 대폭 올린 나는, 2주가 지난 시점에서 연계형 폭발 지뢰까지 개발해 내는 데 성공했다. 숙련도 레벨의 힘이었다!
한편 지뢰의 존재는 철저하게 숨겼고, 실수로라도 오폭을 일으키지 않도록 장치의 활성화를 원천 차단해 두었다.
하지만 여기에 마력을 불어넣는다면, 금세 수많은 인명을 살상할 폭발 지뢰가 될 터였다.
* * *
그렇게 한 달이 흐르고.
1414년 4월 29일, 새벽.
“전군 진군!”
“크리비아 영지를 공격한다!”
다각다각! 다각다각!
거친 말발굽 소리와 독기를 잔뜩 품은 두 영지의 병사들이 야음을 틈타 대거 진군하기 시작했다.
타깃은 크리비아 영지.
협상이나 화친은 전혀 없을, 완벽한 섬멸(殲滅)을 목표로 한 전쟁의 서막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