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72
제 371화
116장. 상봉 – 3화
좀 더 뉴스의 내용을 경청했다.
“현재 보도 화면으로 공유되고 있는 시간은 정체불명의 단체가 지구에 예고한 심판의 시간입니다.
보시다시피, 이제 막 D-365에 접어들었습니다. 정확히 1년이 남았다는 뜻인데요.
전문가들은 이들이 외계 생명체가 아니라 일반인들의 혼란을 야기하기 위해 장난을 치는.
대단위 해커 조직이나 반사회적 단체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현재 인공위성 및 우주 관측 망원경을 남김없이 동원해도 접근하는 소행성이나 미확인 물체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음모론이 있지만, 그 실체가 거의 없다시피 한 만큼 시민 여러분께서도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영화나 소설과 다르게 현실의 삶은 반드시 구분되어야 할 우리의 일상이니까요.”
“흠.”
후속으로 이어지는 시민들의 인터뷰도 무료한 일상을 달래기 위한 참신한 장난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채널들을 틀어 봐도 보도의 논지가 거의 비슷했다.
게다가 만우절이 얼마 남지 않아, 만우절 장난의 예고편에 불과할 것이라는 얘기도 많았다.
하지만.
“X발…….”
창문 앞에 서서 진지하게 하늘을 올려다본 나는 그 순간 바로 욕지거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신의 눈’을 통해서 보이는 차원계의 어지러운 움직임 때문이었다.
문제는 앞서서 베디세트 차원이 나스 대륙과 충돌했을 때처럼, 다른 차원계가 이쪽으로 접근하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 다시 TV를 보자, 인터뷰에 이어서 ‘음모론’의 내용이 흘러나왔다.
“내용인즉, 마카키스 차원계의 차원 총연합이 행성 지구를 정복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풍족한 지구의 물자와 청결한 공기, 풍부한 마력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아울러 또 다른 예고는 지구인을 구하기 위해 알레이트라는 차원계에서 보조 시스템을 연동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세부 내용은 아래의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유쾌하게 즐길 수가 있습니다. 꽤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앵커는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은 채, 정말 유쾌한 ‘농담’을 하듯 내용을 보도했다.
하지만 지켜보는 내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가고 있었다.
‘이 구도, 나스 대륙에서 벌어졌던 악신과 선신의 구도랑 똑같잖아. 성마 대전의 태동이었던.’
사전 학습 효과가 있는 내게는 결코 저 말이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았다.
애초에 근거가 명확했다.
남에게는 보여 줄 수는 없지만 내 눈에는 확실하게 보이는 차원계의 접근이 바로 그 증거였다.
더 큰 문제는 또 있었다.
‘마카키스 차원계, 차원 총연합?’
차원 하나가 아니라 연합이라는 언급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하나의 차원, 하나의 문명이 연결되려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지구 단일인 이곳과 달리, 상대는 연합군이라는 소리다.
“…….”
채널 몇 개를 돌려봤지만, 다들 이 사건을 해외 토픽이나 세간의 화제 정도로 다루는 수준에 그쳤다.
게다가 과학적으로도 우주에서 관찰된 그 무엇도 없었기에 더욱 터무니없는 소리로 치부됐다.
애초에 차원 간 침공이라는 사실 자체가 익숙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나 소설에서 너무 많이 봐 온 소재인 탓에 정말 ‘공상과학’으로 여긴다는 점도 문제였다.
‘돌아온 내 고향에 이런 문제가 생기고 있을 줄이야…….’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
동시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내가 성마 대전, 차원 대전에서 승리하고 지구로 돌아와 가족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예고된 1년 후의 침공이 현실이 됐을 때, 우리 가족이 어떤 험한 꼴을 당하게 될지.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머릿속에 훤히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대재앙 앞에서 대다수의 인간은 그저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
나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접근하는 차원계의 움직임에 정신을 집중했다.
충돌까지 공식적으로 예고된 시간은 1년. 과연 사실일까?
한참을 차원계의 미세한 움직임에 집중했고, 나는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었다.
365일이라는 카운트다운은 진실이었다. 약간의 오차는 있을지언정, 그때면 충돌이 확실했다.
“흐응…….”
그사이 일어난 헤이즈가 부스스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와서는 뒤에서 나를 꼭 끌어안았다.
나 혼자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헤이즈에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한데 바로 그때.
스파아앗!
갑자기 아무것도 없던 하늘에서 섬광이 번쩍이더니.
쉴 새 없이 많은 선이 지상에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뭐, 뭐야?”
“폐하! 저만 본 거 아니죠?”
“응, 나도 봤어.”
찰나의 순간, 벌어진 일이었다.
섬광이 터져 나온 것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중 가까운 곳으로 향한 빛줄기가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저놈은 또 뭐냐.”
나는 21세기 현대 문명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괴하게 생긴 괴수를 볼 수 있었다.
방금 섬광이 번쩍인 것은 운석이나 유성 같은 것이 아니라, 모종의 이유로 공간 이동을 한 ‘괴생명체’였다.
“몬스터가 여기에……?”
당황한 것은 헤이즈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순식간에 어림짐작으로 본 빛줄기의 개수만 해도 수십 개에 달했다.
이런 현상이 시야 밖의 다른 곳에서도 벌어졌다면……. 이런 괴수가 한둘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헤이즈.”
“네.”
“나오지 말고 아버지와 유희 지켜. 혹시 모르니 집 전체에 퍼펙트 실드 마법을 활성화시킬게.”
나는 아공간에서 꺼낸 ‘장인 불릿의 마도구’를 이용해서 거실 한가운데에 마법진을 그렸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나무 바닥에 때 아닌 낙서를 하게 된 셈이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 마법진이 있다면 최악의 상황에서 집이 무너지더라도, 우리 가족의 안전은 지켜줄 수 있었다.
그만큼 마법은 과학적인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기적을 보여 줄 수 있다.
“괜찮으시겠어요?”
“나, 마왕도 때려잡은 사람이야. 저런 놈들은 문제없어. 나 대신 가족을 지켜줘.”
“알겠어요.”
스윽. 슥. 슥.
빠르게 퍼펙트 실드 마법진을 완성하고 마력을 불어넣자, 역장이 든든하게 활성화됐다.
다행히 아버지와 유희는 여전히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헤이즈에게 만약을 대비해서 긴장은 하되 두 사람을 깨우지는 말라고 눈짓을 줬다.
“다녀올게.”
쪽.
헤이즈가 짧게 내게 입을 맞춰 줬다.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됐다.
“후아.”
힘이 나는 것과 별개로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평온할 것만 같았던 지구에서의 삶이 막 꼬이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나온 한숨이었다.
* * *
같은 시각.
“크하하! 겁쟁이들만 그득한 것 같은 냄새가 나는군. 여기가 지구인가? 마력의 힘도 풍부하고 공기도 아주 청정해. 과연 우리의 새 거점으로 부족함이 없다!”
반경이 10m는 족히 될 듯한 구덩이 위에 우뚝 선 괴수 켈페디오가 소리쳤다.
이들은 차원 에너지 증폭 장치를 이용해서 마카키스 차원계에서 보내진 ‘선발대’였다.
차원 장치 특유의 심각한 정신력 붕괴 현상을 묵묵히 버텨 낼 수 있는 전사이기도 했다.
즉, 정신과 육체가 온전한 상태에서 차원을 넘어올 수 있는 용맹스러운 전사만이 선발된 것이다.
-무사히 안착 완료.
-주변 탐색에 들어간다.
-가까운 곳에 생체 신호가 감지된다. 죽이면서 분석해 보지.
켈페디오가 무선 교신 장치를 이용해, 가까운 곳에 상륙한 동족과 대화를 나눴다.
장거리 통신은 불가능하나 반경 500m 정도의 거리에서는 서로 연락할 수 있는 장치였다.
꾸득. 꾸드드득.
켈페디오가 전신의 혈류를 대폭 활성화하며, 강철보다 더 단단한 수준으로 내구성을 끌어올렸다.
방심하지 않았다.
지구의 인간에게도 자신이 생소하겠지만 그 반대로 자신 역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방심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켈페디오는 아칼루스 종족에서도 상위 1%에 속하는 전사 중의 전사.
종족 내의 크고 작은 전쟁에서 193전 193승을 기록한 무패 무쌍의 전사였다.
바로 그때.
파팟.
“어이.”
“어? 네놈은 누구냐?”
켈페디오는 눈앞에서 번쩍하더니 갑자기 나타난 한 남자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방금 전까지는 없었는데?
“죽는다.”
“뭐라고?”
이미 말을 건네는 순간에 자레드는 양손을 앞으로 모은 채 마법을 캐스팅한 상태였다.
텔레포트로 가볍게 거리를 좁힌 뒤, 불과 10m도 안 되는 근거리에서 대담하게 준비한 것이다.
땀내 물씬 풍기는 주먹질과 칼질이 일상인 아칼루스 종족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마법이었다.
콰아앙!
이윽고 자레드의 손을 떠난 윈드 스피어의 마법 구체가 굉음을 내며 돌진해 왔다.
“훗, 잔재주가 좀 있군.”
켈페디오는 여유 만만했다.
같은 행성은 아니지만.
마카키스 차원계의 다른 행성에서 이것과 유사한 능력을 사용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켈페디오는 기껏해야 거센 폭풍 정도의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되리라 여겼다.
그래서 별다른 고민 없이, 성인 남성의 몸집만 한 양쪽 팔뚝을 사선으로 겹쳤다.
맷집으로 버티기 위함이었다.
한데 다음 순간.
서걱! 서걱! 서거걱!
퍼서석!
“……!”
한 방에 모든 것이 끝났다.
켈페디오를 매섭게 덮친 바람의 창은 그의 양팔을 단숨에 잘라내고, 바로 머리를 터뜨려 버렸다.
적극적으로 방어에 임한 당사자가 문제를 느끼기도 전에 벌어진 참사였다.
풀썩.
“죽는다고 했잖아.”
탁. 탁탁.
자레드가 모락모락 열기가 피어오르는 양손을 털어 내며 여유롭게 말했다.
너무 자신만만하게 대응하기에 무적의 외피라도 갖고 있나 싶었더니 기우였다.
-켈페디오, 그쪽은 어때?
“생긴 것은 몬스터에 가까운데 사용하는 문명의 이기는 현대식에 가깝네.”
자레드는 죽은 켈페디오라는 녀석의 귓가에서 들리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통역 마법이 이래서 편하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이나 종족을 만나도 쉽게 대화를 하거나 내용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나타난 괴수들이 이놈 한 놈이 아니다, 이거지. 일단 전부 다는 아니더라도…….”
주변을 확실히 ‘청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꺄아악! 꺄아악!”
“괴물이다! 괴물이야!”
“아아!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으아아아!”
주변에 있다가 아수라장에 휩쓸린 사람들은 비명과 절규를 내지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여기저기서 괴수들이 대규모로 출몰하는 현상까진 아닌 듯하다는 점.
“하, 이번은 또 어떤 장난질인 걸까?”
자레드가 하늘 어딘가를 올려다보며 투덜거렸다.
왠지 지구와 엮이고 있는 저 차원계의 뒤에도 뒷배처럼 믿는 ‘흑막’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기에.
그 이후.
자레드는 켈페디오를 시작으로 가까운 곳에 출몰한 아칼루스 종족의 괴수들을 처치하기 시작했다.
다들 자신감 하나만큼은 넘쳐 보였지만, 자레드 앞에서는 종잇장 신세를 면치 못했다.
-가스투스, 왜 대답이 없어?
그런 탓에 괴수들은 동료에게 자신의 죽음을 미처 알릴 틈도 없이!
속절없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