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73
제 372화
117장. 필멸자 바르가스 – 1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진짜! 저놈들이 여기 있는 게 현실이야? 이거 꿈 아니냐고!”
“이게 꿈이면 전국 각지에서 저런 괴수들이 나타났겠습니까? 하아, 진짜! 겨우 권총 하나 들려 주고 현장에 보내는 건 미친 짓 아닌가? 진짜 미치겠구먼.”
다급하게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순경 박기태와 정성희의 얼굴은 흙빛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장 영상이랍시고 인터넷에 올라온 몇몇 영상을 이미 본 탓이었다.
괴수들은 마치 총탄에 완벽한 면역을 갖고 있는 것처럼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차라리 외피에 박히는 느낌이라도 났으면, 화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총탄과 같은 물리적인 화기에 마치 저항력이 있는 것처럼 아예 외피에 닿지도 않았다.
자기장에 막혀서 지구를 휩쓸지 못하고 무력화되는 태양풍처럼 총알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총알이 외피 부근에 닿을 때마다 투명한 막이 형성되면서 허무하게 총알을 떨구어 버렸다.
그래서 영상 속에 등장한 경찰들은 현장에 출동하자마자 괴수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이 여과 없이 온라인 영상으로 올라왔고, 그것을 본 모두가 패닉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민간인들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경찰의 역할이 필수적인 만큼.
박기태와 정성희도 일단 현장에 출동한 상태였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던져진’ 것이다.
콰가가각!
“크아아악!”
“으아아! 이게 뭐야!”
저 멀리서 괴수가 힘껏 팔을 휘저었을 뿐인데.
순식간에 날아온 강렬한 역장이 두 사람이 탄 순찰차의 중앙을 정확히 가르고 지나갔다.
마치 비스킷 과자처럼 톡 하고 갈라진 순찰차는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흐으으!”
“주, 죽기 싫다, 진짜…….”
새하얗게 변해 버린 머릿속.
두 사람은 겨우 권총을 든 채로 차 밖으로 나왔지만, 한 걸음도 나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쿠웅! 쿠웅!
하지만 괴수는 점점 북쪽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그곳은 상업 지구로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었다.
“제기라아아아알!”
박기태가 악으로, 깡으로 소리치며 괴수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 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흉포한 괴수가 일분일초라도 더 빨리 상업 지구에 접근할수록.
이제 막 긴급 경보를 듣고 대피 중인 힘없는 민간인들이 더욱 많이 죽어 나갈 것이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달려들 수밖에 없는, 경찰의 사명감이 만들어 낸 용기였다.
“아아아, 젠장!”
결국 정성희도 합세했다.
하나보다 둘이면 시간을 두 배로 벌 테니까.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두 사람은 숭고한 희생정신으로 이를 꽉 깨물고 질주하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가소로운 놈.
“으으으.”
“으드드.”
괴수와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염(念)을 통해 전달한 그들의 의지가 느껴졌다.
박기태와 정성희는 한없이 무력해짐을 느끼고 절망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 괴수를 이길 방법 같은 건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만들어 낸 절망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괴수와 눈빛이 마주친 것만으로도 마치 온몸이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불가항력!
석화(石化)라도 일어난 듯, 지면에 우뚝 선 몸은 앞뒤로 전혀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하아, X발…….”
“결혼도 못 했는데…….”
“지금 그게 할 소리냐…….”
“어차피 죽을 건데 뭔 말인들 못 합니까, 젠장.”
죽음이 확실시되자, 되레 여유가 생기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농담을 건넸다.
지금 이런 상황은 비단 이곳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었다.
권총 같은 무기는 아예 통하지도 않았고, 군인들이 출동해서 중화기나 대전차포를 활용해야만 겨우 제압이 가능한 상황.
당연한 얘기지만, 그 과정에서 무차별적으로 돌진한 괴수의 손에 수많은 군인들이 죽어 나갔다.
이곳 역시 그런 수많은, 그리고 일방적인 희생의 현장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
슈아아아아!
“뭐, 뭐야?”
박기태와 정성희는 상공에 붉은 점 하나가 찍히더니, 맹렬하게 날아오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것은 단지 불빛이 아니라, 뜨겁게 타오르는 거대한 화염구 같은 것이었다.
거대한 공에 기름을 잔뜩 묻히고, 그 위에 불씨를 던져 불길을 만든 느낌이라고 할까?
그만큼 강렬하고 빨랐으며, 또한 뜨겁고도 파괴적이었다.
-웬 놈이……. 크학!
콰지직! 우드드득!
별생각 없이 위를 쳐다보던 괴수가 갑자기 날아든 화염구를 정통으로 얻어맞고 절명했다.
그냥 죽은 것이 아니었다.
화염구 자체의 열기에 녹고, 압력에 짓눌리면서 그야말로 곤죽이 되어 죽어 버렸다.
자신의 힘으로 일으킨 바람만으로도 자동차를 가르고, 권총에도 끄떡도 않던 몬스터가 죽은 것이다.
“와…….”
“저건 도대체 뭐지?”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에서 볼 법한 ‘마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두 사람은 그 단어를 쉬이 떠올리지 못했다.
“괜찮아요?”
“아……. 네, 괜찮습니다.”
상공에서 서서히 착륙하며 모습을 드러낸 남자, 자레드의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깜짝 놀랐다.
아무리 보아도 이국적인 외모를 하고 있는 남자가 건넨 말은 분명 한국어였으니까.
“중무장이 가능한 고급 전력이나 군인이 아니라면 절대 이놈들을 상대해서는 안 됩니다. 오기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에요.”
“예, 예예. 그렇습니다.”
이미 두 눈으로, 온몸으로 실감한 두 사람에게 자레드의 충고는 완벽한 확인사살이었다.
어떻게든 상부에 보고를 해 의미 없는 싸움을 하다가 개죽음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지 싶었다.
“한 가지 더. 이 녀석들은 수평 형태의 공격은 가능하지만 위를 바라보는 형태의 공격은 안 됩니다. 다시 말해서 눈높이에 맞춘 횡(橫)적 공격만 가능하단 거죠.”
자레드는 자신의 눈높이와 똑같은 가로선을 손으로 긋는 것으로 설명을 보탰다.
앞서 수십 마리의 괴수들을 처치하면서 얻은 분석값이었다.
큰 변수가 없다면, 다들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였다.
이유인즉, 앞서 황천길로 떠난 한 놈을 ‘고문’해 본 결과 괴수 전원이 ‘아칼루스 종족’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종족의 특성이라면 변수가 없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아…….”
“모든 라인을 총동원해서 상부에 보고해 주세요. 그리고 이쪽 일대의 괴수는 제가 처리했습니다.”
“아!”
그저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는 상황. 박기태와 정성희는 자레드의 등 뒤에 왠지 후광이 비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럼.”
파팟!
이윽고 자레드의 모습이 눈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텔레포트 마법의 존재, 아니 그 정체도 알 리 없는 두 경찰은 그저.
“와아…….”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저 넋 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두 사람은 황급히 스마트폰을 켰다.
눈앞의 영웅이 남기고 간 중요한 말을 어떻게든 상부에 전달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에.
* * *
같은 시각.
“아이고, 태풍아!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오빠, 괜찮은 거야? 지금 이 상황, 만우절 장난 같은 거야? 그런 거야?”
집으로 다시 돌아온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아버지와 유희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격렬한 부정, 혹은 회피.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적이나 상황과 마주했을 때, 인간이 보이는 전형적인 방어기제다.
벌어진 상황을 두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으니 부정하거나 모른 척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두 사람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인간은 원래 나약한 존재니까.
아마 내가 아닌, 전생의 신태풍이었다면 아버지나 유희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현실 그대로예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일단 집에 계시면 안전할 거예요.”
“이게 다…… 마법인 거냐?”
“맞아요.”
아버지와 유희는 신기한 듯 퍼펙트 실드의 형태로 구현된 역장을 손으로 더듬었다.
접촉해도 문제는 없었다.
내외부의 출입도 자유롭다.
내가 지정한 사람에 한해서만.
나는 우선 이 마법진의 발현 기전과 기능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집 안에만 있으면 설령 아파트가 무너지더라도 이 안은 안전할 것이라는 강조도 했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기에 나는 아공간에서 타트라 넥스 1기를 꺼냈다.
이 녀석은 인공지능까지 탑재하고 있으니, 아버지와 유희를 충분히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유사시에 두 사람뿐만 아니라, 이 일대의 사람들을 돕는 구원자의 역할도 할 수 있으리라.
“아버지, 제게는 이 상황을 해결할 힘이 있어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집에 계세요.”
“알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영화나 소설 속에서만 보던 일이 어찌 현실에서…….”
내 말이.
나도 자레드 폰 유칼레스의 몸으로 환생한 이후, 그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죽고 나서 다른 이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은 정말 ‘판타지’스러운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21세기 지구에서 지금처럼 생경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도 전혀 놀랍지 않다.
바로 그때.
나는 뉴스 속보를 통해 보도되고 있는 내용 중 유독 심각해 보이는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장은석 기자입니다!
현재 강남대로 한복판에 나타난 건물 5층 높이의 이 괴수는.
주변의 모든 빌딩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현장에 긴급 출동한 기동대가 이제 막 괴수를 상대하기 시작했으나……. 아아아앗!”
“꺄아아악!”
“맙소사…….”
여과 없이 화면을 통해 그대로 보도된 잔혹한 장면에 유희가 비명을 지르고, 아버지는 고개를 떨궜다.
그도 그럴 것이 날이 바짝 벼려진 괴수의 오른팔 – 팔이라기보다 숫제 도끼에 가까운 – 공격에.
횡대로 늘어서 있던 기동대원 10명이 그 자리에서 반토막이 난 채 죽어 버렸기 때문이다.
비명조차 지를 새도 없이 단숨에 당해 버린 이른바 ‘끔살’이었다.
“헤이즈.”
“네.”
“우리가 저기로 가는 게 좋겠어. 저런 놈이면 벌써 현장에는 부상자가 엄청 많을 거야.”
“알겠어요. 제가 현장의 부상자들을 돌볼게요.”
“할 수 있지?”
“그럼요.”
같이 마왕군과 맞섰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헤이즈의 표정에는 약간의 두려움도 없었다.
나는 다시 아버지와 유희의 손을 꼭 잡아 주고는 안심해도 된다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말씀드렸잖아요. 여기서는 평범한 아들이 저쪽 세계에서는 영웅입니다. 하하.”
“정말 괜찮겠느냐?”
“물론입니다. 죄 없는 사람들이 더 희생되기 전에 구하고 오겠습니다. 아버지.”
“내 아들……. 정말 장하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버님.”
“며늘아가, 부디 몸조심하거라.”
“네, 아버님.”
“언니, 정말 조심해야 돼요! 알았죠? 언니도 우리 오빠만큼 이제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이에요.”
“고마워요.”
훈훈한 대화가 오가고.
잠시 이별의 시간이 왔다.
나타난 괴수는 한둘이 아닐 터.
그렇다면 당장 눈에 보이는 몇 놈들만 잡는다고 해서 끝날 문제는 아닐 것이다.
선택과 집중을 할 생각이었다.
우선 가장 위협적인 놈들을 먼저 처리하기로. 그리고 국내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말이다.
“헤이즈, 준비됐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텔레포트를 하고 나면 바로 치열한 전투가 시작될 것이다.
새로운 ‘재앙’과 맞설 전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