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80
제 379화
119장. 원정대 결성 – 2화
그 후로도 나는 동료들과 좀 더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그래야만 했다.
옆 동네로 잠깐 마실을 나가는 것도 아니고, 차원을 두 번이나 뛰어넘는 험난한 여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일은 오로지 ‘나를 위해서’ 동료들이 움직여 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성마 대전이나 차원 대전은 나스 대륙의 수호라는 공통된 목표로 움직였다고 한다면.
이번의 ‘원정대’ 결성은 전적으로 내 고향인 지구를 돕는 그들의 희생만을 필요로 해서다.
감동스러우면서도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든 것은 어느 누구도 내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눈치를 보고, 싫은 내색을 하기 힘들어 억지로 수긍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
진심으로 돕고 싶어 했다.
다들 나에게 크고 작은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듯, 꼭 그 빚을 갚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반가워했다.
그동안 마음 한구석에 묻어 두기만 했던 불편한 마음의 빚을 이번 기회에 시원하게 털어 내고 싶은 듯했다.
다만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저마다 조금씩 달랐고, 다소 과격한 경우도 있었다.
아마도 내 마음을 좀 더 가볍게 해 주기 위한 그들의 의도된 안배였으리라.
“폐하, 아시다시피 저는 금전적인 부분에 무척 약해요. 그 차원계에서 돈 될 만한 것을 얻는다면 제가 가져도 되겠죠?”
“돈뿐만이 아니라 경의 힘에 도움이 될 만한 것도 얼마든지 챙길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오.”
누가 한 말인지 짐작할 수 있겠는가? 바로 엘라다.
그녀와의 첫 인연은 클로이와 함께 우리 크리비아 영지에 머무르며 내게 돈을 받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레나의 스승으로 만들기 위한 안배였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레나는 대륙 최고의 탱커가 되었고, 엘라는 우리 제국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인이 되었으니까.
스토리에서 성마 대전 무렵에 치정 관계에 엮여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던 미래를 생각해 본다면.
별 탈 없이 홀로 싱글 라이프를 즐기면서 살고 있는 지금의 모습은 보기 좋았다.
아울러 비극으로 얼룩진 미래와 멀어진 듯하여, 안심하게 되는 구석도 있었다.
사건 발단의 원인이 되는 성마 대전의 마, 그러니까 마왕군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다.
“맡겨 주세요. 불혹이 코앞이긴 하지만, 아직 녹슬지 않은 검의 참맛을 보여 주겠어요.”
아, 그랬지.
처음 만날 때만 해도 엘라의 나이가 서른둘이었는데, 어느덧 서른여덟이 됐다.
그러고 보니까 라키스의 나이가……. 아냐, 생각하고 싶지 않다. 늙고 있다는 걸 가끔 부정하고 싶다.
“잘 부탁하오.”
“특히나 폐하께서 마나를 활용한 공격에 약한 적이라고 하셨으니, 패는 맛은 일품이겠네요.”
“그건 확실할 것이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라와 레나가 서로를 마주 보며 웃었다. 스승과 제자로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의 관계는 지금까지도 그 누구보다 강하게 엮여 있었다.
그것은 옛 제자였던 클로이도 마찬가지여서 세 사람이 모여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었다.
“폐하, 저는 뭐…… 언제든 곁에 있을 뿐입니다. 이번 기회에 폐하께 입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고 싶습니다.”
“아슈르, 정말 큰 힘이 되는군.”
“폐하의 고향을 침범하려는 놈들에게 화살의 참맛을 보여 줘야죠. 세상이 참…… 좁지 않네요.”
“그러게 말이오. 많은 것이 얽히고설킨 관계지. 내 상황을 이해해 줘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오.”
“폐하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고 늘 생각했는데……. 역시나였군요.”
아슈르의 반응이 사실 다른 동료들의 반응과 비슷했다.
차원 ‘지구’에 대한 얘기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나’라는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이기에 왠지 납득하게 되는 구석도 있다는 것이다.
즉, 자레드 폰 유칼레스라는 존재 자체를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했기에 특별한 일 하나가 더 있어도 딱히 이상할 게 없다는 얘기였다.
“그곳에서 좋은 재료를 구하면, 꼭 그대에게 최고의 활을 만들어 주지. 모이즐과 아세로라면 힘을 합쳐 신궁을 만들어 줄 것이오.”
“그 부분은 나중에 생각하겠습니다. 지금은 폐하의 곁을 안전하게 지켜 드리는 것만.”
아슈르가 고개를 숙였다.
나스 대미궁에서 만났던 과거가 떠오른다. 죽을 뻔했던 그를 구해 주고 인연을 만들었지.
이카젤라의 암흑 교단을 노릴 때 중요한 전환점을 아슈르가 만들어 주었기에.
그에 대한 고마움 역시 늘 잊지 않고 있었다.
뒤늦게 나와 인연을 맺기는 했지만, 그 깊이가 다른 동료들에 비해서 절대 얕지 않았다.
“전적으로 이번 원정은 내 호기심에 따라 출발하는 것이다. 딱히 네 마음에 들려고 하는 수작질이 아니니 괜히 착각하지 말거라.”
“아무렴요. 그러셔야지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 노망난 늙은이가 대신했군. 이하 동문이다.”
베르하드와 카스트로의 반응은 판박이처럼 똑같았다.
둘이 티격태격하면서도 늘 함께하는 것은 그만큼 서로의 마음이 잘 통하기 때문이겠지.
카스트로는 괜찮은데, 베르하드를 볼 때마다…… 나는 조금씩 미래가 걱정된다.
사실 그레이 엘프의 터전에 있을 포르미도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모두 일흔을 넘긴 나이이고, 일흔은 나스 대륙에서 결코 적지 않은 나이다.
지구의 평균 나이대에 맞춰 생각한다면, 이미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와 같은 셈.
두 사람 모두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는데, 내 마음처럼 하늘이 허락해 줄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요즘 오브렌에게는 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담 주치의를 둘이나 붙여 주었다.
그 어떤 응급 상황에서도 확실하게 오브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함이다.
소중한 인연들.
단 한 명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욕심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서 내려놓을 수 없는 감정이다.
“폐하, 이번 일은 미아와 메리에게는 비밀로 해 주십시오. 마음 편히 다녀오고 싶습니다.”
“알겠소. 라키스 경의 뜻이 그렇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 괜한 걱정을 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는 것을 아오.”
“예, 폐하. 아슈르가 그랬듯, 신 역시 폐하의 호위에만 전념하고 싶습니다. 가족 생각은 잠시 접어 두고 말입니다.”
“그렇게 합시다.”
“폐하, 얼마나 고단하고 힘드셨습니까! 신이 헤아리지 못한 듯하여 그저 면목 없을 따름입니다.”
“아니오.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비밀은 아니지만, 또한 떠벌릴 일도 아니라서 말을 아꼈을 뿐이오.”
“제게 폐하는 어떤 이름을 가졌건 어디에서 오신 분이건 위대하신 존재이십니다.”
척!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라키스에게서는 항상 그랬듯이 무한한 지지와 충성이 느껴졌다.
망나니였던 시절의 자레드가 혹독하게 내치고, 한직으로 쫓아냈음에도 충심을 잃지 않았던 자.
나는 라키스에 대한 고마움과 감사함을 무한대에 가까울 정도로 가지고 있다.
현생, 그러니까 자레드로 다시 살게 된 삶에서 라키스와 헤이즈의 존재를 뺀다면?
내게 남은 것이 거의 없다.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나는 라키스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또한 마음을 많이 줬다.
그렇게 저마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속 깊은 한마디씩을 내게 남기고는 다시 한곳에 모였다.
마지막으로 내 앞에 선 것은 이자벨. 다들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한마디씩 남기곤 했지만.
“…….”
이자벨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 역시 침묵한 채 그녀를 응시했고, 우리는 꽤 긴 시간을 말없이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만감이 교차했다.
우리의 인연은 시작부터 남달랐고, 그 과정도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 참으로 파란만장했다.
새로운 육신을 얻고, 주술을 연성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변해 가기 시작한 그녀의 모습을 기억한다.
또한 전생의 슬픔을 딛고 일어서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몰입하던 모습도 기억난다.
우리는 좋은 ‘연인’은 되지 못했지만, 분명 최고의 ‘인연’은 됐다.
다만 아직 가슴 한편에서나마 추억처럼 자리 잡은 감정이 있기에 이러는 것이다.
물론 나도, 그녀도 안다.
각자 가야 할 길과 함께할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이자벨이 나에게 특별한 사람인 것은 맞지만, 그래도 헤이즈보다 앞설 수는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극한까지 수련한 주술의 매운맛을 보여 주겠어요. 그간 활약할 기회가 없었는데.”
“기대하겠소, 이자벨 단장.”
“밥값은 확실하게 해야죠. 훗.”
이자벨의 웃음과 함께.
출정을 위한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한 명의 이탈자 없이 완벽하게 구성된 10인의 ‘차원 원정대’ 결성이었다.
나스 대륙 전체에서 10인으로 추렸을 때, 최정예가 모두 모인 셈이었다.
준비는 완벽했다.
* * *
이틀.
옛 크리비아 영지의 저택에 있는 통로를 이용해 지구로 가기 전까지 모두에게 주어진 준비 시간이었다.
다들 분주하게 준비에 들어갔다.
자레드의 자세한 브리핑은 옛 저택에서 이뤄질 예정이었다.
자레드는 이틀 뒤 만나기에 앞서 좀 더 확실한 이해를 위해서 하루 종일 박도혁의 를 정독했다.
소설 속에 나오는 한 글자도 잊어버리지 않고 외우고 있어야 모든 변수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를 할 때에도.
신태풍은 눈을 감고도 보스 몬스터의 패턴에 대응하고, 공격 타이밍을 잡을 수 있을 만큼 살아 있는 ‘고인물’로 활약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고인물, 즉 작가나 다름없는 소설의 이해도를 보여 줘야만 승리의 확률을 높일 수 있었다.
어쨌든 다른 아홉의 동료가 부지런히 최종 준비에 들어간 동안.
자레드는 잠시 짬을 내서 다크 엘프의 터전으로 왔다.
우선 사비오에게서 타트라 넥스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겸사겸사 다크 엘프와 레드 고블린 일족이 성마 대전, 차원 대전에서 세운 공을 치하하기 위해서였다.
따앙! 따앙! 따앙!
해안가는 분주했다.
원정을 왔던 인류 통합 연맹의 군대로부터 획득한 군함을 해체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해체, 분석 작업에는 엄청난 수의 엘프와 고블린이 동원됐다.
그뿐 아니라, 대륙 남동쪽에 소수만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드워프 기술자까지 와 있었다.
그간 썩 좋지 않았던 이종족 간의 관계가 블랙 오크의 멸망 이후 화해 무드로 접어들었고.
최근에 와서는 이종족 간의 협력이 부쩍 늘어나 이렇듯 보기 좋은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폐하께서 이렇게 왕림해 주시니 정말 기쁘군요.”
“매번 참 이 존대는……. 어색하군.”
“하하, 저도 종종 그럴 때가 있습니다만 예의는 종족을 불문하고 지켜야 할 덕목이지요.”
“예전처럼 말을 편하게 하는 건 별로인가?”
“그러면 제가 엘프 로드에게 불호령을 듣습니다.”
“하긴. 다른 무엇보다 예를 중시하는 분이니까.”
“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사실 이번에 직접 자네를 찾아온 것은…….”
“아! 안 그래도 꼭 보여 드리고 싶은 신무기가 있습니다. 군함에서 분리해 낸 ‘파멸의 창’ 말입니다.”
“파멸의 창. 살상 분해 광선에 그들이 붙인 공식 명칭이었지. 그 부분에 진전이 있었나?”
“그렇습니다! 타트라 넥스에 파멸의 창을 장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기종에는 불가능하지만, 10기 정도의 타트라 넥스에는 장착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정말인가?”
사비오가 자레드에게 꺼낸 소식은 그 무엇보다 기쁘고 반가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