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81
제 380화
119장. 원정대 결성 – 3화
그렇게 자레드는 사비오에게 이틀 후까지 타트라 넥스에 최대한 파멸의 창을 장착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생산공정을 사비오와 함께 점검한 뒤, 앞으로도 지속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왔다.
현대의 과학도 그렇지만, 애초에 이런 연구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를 기대하며 조급해해서는 안 된다.
그런 반면, 필요로 하는 투자 비용은 어마어마하므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면 도중에 연구가 무산되기 일쑤다.
자레드는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사비오가 듣자마자 입을 떡하니 벌릴 만한 투자를 약속하고는 돌아왔던 것이다.
“오랜만에 한글을 보면서 이것을 나스 대륙어로 번역하려니까 머리가 터질 것 같네. 하하.”
한편, 그날 황궁으로 돌아온 자레드는 박도혁에게서 넘겨받은 를 번역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처음에는 이 소설 내용을 동료들에게 말로 설명해 볼까 했지만, 그러기엔 내용이 너무 방대했다.
소설이 하나의 공략집이기 때문에 어설프게 말로 전달하는 것보다는 활자로 읽는 것이 더 낫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번역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한글에 집중하면 할수록 마치 그것이 외계어처럼 느껴졌다.
그간 나스 대륙에서 ‘파라디소 노트’를 쓸 때를 제외하고는 한글을 쓸 일이 없었던 탓이다.
“한글이 위대하기는 참 위대하단 말이야. 나스 대륙어도 중국어만큼이나 어려워. 성조부터 시작해서…….”
새삼 느끼는 국뽕(?)에 자레드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한데 바로 그때.
-뭐 하냥.
자레드의 어깨 위로 묵직한 무언가가 올라와서는 푹신푹신한 느낌으로 그의 목덜미를 꾹꾹 눌렀다.
검은 고양이, 데리였다.
가파지스의 원념이 주입된 데리는 에서 나오는 펫처럼 친밀한 5인에게 버프, 주술을 걸 수 있는 존재였다.
동시에 적에게는 디버프와 저주를 걸 수 있는 전천후 동반자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녀석과 꽤 친밀하게 지냈는데, 언제부터인가 헤이즈의 손길을 많이 타게 됐다.
자레드가 워낙 일로 바빴던 데다가 애완동물을 다루는 것이 서툴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나타나서 존재감을 뽐내곤 했었는데,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뭐 하긴, 일하지.”
-자레드는 참 나쁜 사람이당.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면서도 자주 대화를 하지 않는당.
“그러게. 내가 참 못된 놈이긴 해. 인정!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제라도 좀 많이 놀아 줘랑. 데리라는 이름을 지어 준 것도 자레드, 너였잖냥.
“그랬지.”
자레드는 자신의 어깨에 올라타 있는 데리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헤이즈가 항상 관리를 잘해 주고 있는 덕분인지 털이 보드랍고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
게다가 고개를 돌려 자세히 보고 있으니, 알게 모르게 헤이즈를 닮아 가는 것 같기도 했다.
아이는 부모를 닮는다는데 반려동물도 그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동자가 헤이즈랑 똑같았다.
바로 그때.
데리와 잠시 눈을 맞추고 녀석을 유심히 살피고 있자.
갑자기 상태창 하나가 활성화됐다.
[시스템은 오랜 시간 당신과 교감을 한 ‘데리’를 영원한 동반자로 인정한 상태입니다.] [한 마리에 한정, 영원한 동반자이자 애완동물인 존재는 ‘인원수 제한’의 영향을 받지 않고 던전이나 기타 여러 곳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음? 인원 제한에 적용이 안 된다고?’
그 말인즉, 지구로 향하는 차원 통로에도 10인의 제한에 걸리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10인을 다 채우고 나서도 데리는 특별 전형(?)으로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다는 소리다.
데리가 단순한 애완동물이라면 사실 아무 생각도 안 했겠지만.
녀석은 누구보다 빠르게 암흑 기와 인기척을 탐지할 수 있고.
버퍼이자 디버퍼로 다양하게 활동할 수 있는 존재였다. 생각보다 활용 가치가 무궁무진했다.
게다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날쌘 부분도 있고 말이다.
“데리.”
-왱.
“혹시 나나 헤이즈 누나와 같이 여행할 생각 없어? 그냥 여행은 아니고 좀 복잡하고 위험할 수도 있는 그런 여행인데.”
-여행! 지금까지 자레드는 날 한 번도 여행에 데려가 준 적이 없당! 나쁜 자레드! 이제 와서 여행을 가자고 하면 내가 좋아할 줄 알았냥?
“싫어?”
-아닝. 엄청 좋징. 쥐잡기도 이제 지루하공……. 사람 구경도 너무 뻔해졌엉.
데리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반짝이는 눈망울로 자레드를 바라보았다.
사실 지루한 것은 없었다.
다만 자레드, 헤이즈와 오랜만에 뭔가를 같이해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것은 두 사람에게 정이 많이 든 데리의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주인과는 무엇을 해도 같이하고 싶고, 그것이 설령 위험하더라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럼 우리.”
-웅.
“이번에는 셋이 같이 움직이자. 몸 좀 풀어 둬. 정말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할 거야.”
-기초운동은 정말 많이 해 놨당. 잘 봐랑.
데리는 자레드의 책상 위에서 고무줄처럼 몸을 쫙쫙 늘렸다.
종종 고양이를 두고 ‘고무줄’이라고 부를 때가 있는데, 그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몸이 쭉 늘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호이짜!
특이한 추임새와 함께 데리가 몸을 날리자, 생각한 것 이상으로 멀리 도약했다.
이 정도면 맹수의 도약이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힘찬 도약이었다.
“열심히 운동했네, 우리 데리?”
-뭐든지 맡겨만 줘랑. 츄르도 많이 챙겨 주공. 사랑을 많이 달란 말이당!
“그래, 좋아. 그러면 이번 여행은 같이 다니자. 오케이?”
-좋당!
그렇게 또 한 명의 동반자, 아니 동반묘가 늘어났다.
* * *
지구로의 출발을 하루 앞둔 날 새벽.
나는 동료들에게 번역을 완전히 끝낸 의 인쇄본을 건넸다.
애매한 표현은 최대한 나스 대륙어의 표현에 맞춰 현지화해서 번역했고.
오탈자의 경우는 원작자인 박도혁이 의도한 바가 있을까 싶어서 한글과 나스 대륙어를 병기했다.
일찌감치 차원 이동 통로가 있는 옛 크리비아 저택에 도착한 동료들은 각자의 방에서 쉬면서.
소설의 탐독에 들어갔다.
어느 누구도 이번 여정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기에 모두 소설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와 헤이즈는 저택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별장에서 잠시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
최근 들어 부쩍 ‘뜨거운 사랑’을 자주 나누었다.
나도 그렇고 헤이즈도 그렇고, 우리 부부는 2세를 갖기 위한 의지를 열심히 불태우고 있는 중이었다.
부모의 ‘노력’ 없이 삶의 축복인 아이가 찾아오지는 않기에.
우리는 매일, 아니 매시간, 틈만 나면 서로를 향한 사랑을 불태우며 모든 것을 불살랐(?)다.
그렇게 창문에 잔뜩 낀 성에가 조금씩 사라지고, 그 사이로 달빛이 은근하게 스며들 즈음.
침대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누운 우리는 손을 꼭 잡은 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폐하.”
“음?”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딸, 아들 상관없이 나스식 이름과 한국식 이름을 같이 짓고 싶어요.”
“양쪽 이름으로?”
“네! 언어도 둘 다 가르치고요.”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저에게는 나스 대륙도 소중하지만, 폐하의 고향인 지구도 소중하니까요. 특히 한국, 혹은 대한민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라면 더욱더 말이에요.”
“한국식 이름이라…….”
전생에서도 상상으로라도 생각해 본 적 없는 2세의 이름이었기에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신태풍의 아들 혹은 딸.
어떤 이름이 좋을까?
“신혜지……. 신해주…….”
헤이즈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꾸고 거기에 자신의 성에 붙여 보았다.
혜지, 괜찮을 것 같았다.
해주라는 남자 이름은 좀 더 생각해 봐야겠지만…….
어쨌든 누군가의 남편이 되어서 자식의 이름을 상상해 본다는 것.
처음 해 보는 경험이라 그런지 매우 가슴 떨리면서도 설렜다.
“엄마가 되는 경험……. 정말 신비로울 것 같아요. 신이 주신 선물로 찾아올 아이는 어떨지 너무 기대돼요.”
“나도 기대돼. 얼굴은 꼭 엄마를 닮아서 예뻤으면 좋겠어. 아들이건 딸이건 상관없이.”
“외모는 당연히 폐하를 닮아야죠! 저는 못난 구석이 많답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괜히 백성들이 황후 마마님은 여신이시다! 라고 하는 게 아니라고.”
“에? 정말요?”
“이렇게 항간의 소문에 어두워서야……. 크리비아 제국의 미의 기준은 헤이즈, 너야.”
자레드가 한 말은 빈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최근 헤이즈가 입는 옷, 치장하는 액세서리, 헤어스타일과 헤어 컬러는 전부 제국의 트렌드가 되고 있었다.
이는 의도적으로 유행을 노린 아르케네스의 수완도 한몫했지만.
그만큼 헤이즈의 외모가 받쳐 주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부끄러워요. 달리 꾸미거나 치장한 것도 없는데…….”
“그게 문제라는 거야. 뭘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도 예쁘니까. 내 사랑, 정말 예뻐.”
헤이즈를 꼭 끌어안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이었기에 서로 간의 따뜻한 체온과 체취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가슴팍에 헤이즈를 조심스럽게 끌어안고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늘 그렇듯, 숨기지 않고 드러낸 애정 표현이었다.
“사랑해, 헤이즈.”
“저도요.”
“그리고 고마워.”
“저도 늘 제 곁에 있어 주시는 폐하께 감사해요. 많이많이, 정말 많이 사랑해요.”
서로를 꼭 껴안은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안고 있었다.
그렇게 새벽이 무르익어 가고 어느덧 정점을 찍는 순간.
다시, 또다시…….
별장의 창가에는 희뿌연 성에가 끼기 시작했다. 늘 그랬듯이, 그리고 딱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말이다.
* * *
다음 날.
우선 나 혼자만 먼저 지구로 넘어왔다.
일단 지구에서 초월의 돌을 이용하여 비카르나 행성으로 이동하기에 앞서.
유사시에 나와 동료들이 임시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동시에 마지막으로 박도혁과 내가 이해한 바와, 녀석이 소설에서 구현한 바가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공간 확보는 쉽게 끝났다.
본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오랫동안 공실로 비어 있었던 대형 지하 창고를 구했다.
저택처럼 으리으리하거나 호화롭지는 않지만, 공간이 넓어 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위치였다.
또한 인적이 드문 곳이라서 이국적인 외모를 지닌 우리 일행의 모습이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
비용은 아공간에서 꺼내 현물로 갖다가 판 ‘금(金)’값으로 해결했다.
매스컴에 알려진 얼굴의 문제는 이미지 카피를 활용해 임시로 바꾼 얼굴로 해결했다.
어쨌든 여전히 금값은 비쌌다.
그리고 내가 가진 대량의 금은 지구에서는 가장 품질이 좋은 순금이기도 했다.
그렇게 임시 거처에 대한 안배를 마친 뒤.
나는 박도혁을 만나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이번 대화가 실전에 앞선 마지막 브리핑이자 최종 확인이 되는 셈이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시간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저들과의 전쟁을 피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루의 시간을 주면, 그만큼 수많은 적들의 힘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고스란히, 그 시간만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