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85
제 384화
121장. 계속되는 성장 – 1화
같은 시각.
“이게 무슨………?”
“이것, 저만 보이는 건 아니죠?”
나는 동료들에게 일제히 활성화된 상태창을 보고 있었다.
나도 당황했지만, 당사자들은 더욱 놀란 반응을 보였다.
애초에 상태창이 눈에 보이는 것은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시스템이니까.
상태창은 이미 대상자의 ‘소속’을 알고 있는지 처음부터 나스 대륙어로 표기되어 있었다.
“헤이즈도 활성화됐네?”
“네, 폐하. 보시겠어요?”
“응, 일단 보자.”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나는 금세 이 상태창이 동료들에게 나타난 의미를 눈치챌 수 있었다.
이는 바로 동료들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누가 어떻게 연동을 시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답보 상태에 있던 동료들의 성장을 촉진할 수단이 생긴 것이다.
헤이즈의 상태창을 엿봤다.
[대상 ‘헤이즈’에게 특별 퀘스트가 활성화됩니다.] [비카르나 행성의 아칼루스 종족, 투사들을 제압하여 성장 포인트를 얻으십시오.한 명의 투사를 제거할 때마다 1점의 성장형 포인트가 지급되며, 성장 포인트는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 자유롭게 투자 가능합니다.]
“음, 다들 잠시 주목.”
모두 내게 집중하도록 했다.
이건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짧게 핵심만 짚어서 설명해 주면 된다. 왜 이런 게 생겼는지 논의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지금부터 이 창은 여러분의 성장을 가이드하고 체크할 수 있게 만드는 창이 될 겁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싶어 헤이즈의 상태창을 엿봤지만, 자신의 레벨이나 스탯을 볼 수는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특수 상태창의 인식이 끝났습니다. 이제 외부인에게 개인의 상태창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상태창의 공유도 사라졌다.
내가 나의 상태창을 동료들에게 보여 줄 수 없듯, 그들도 더 이상 자신의 상태창을 내게 보여 줄 수 없게 된 것이다.
상관없었다.
나는 이런 시스템의 메커니즘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설명을 계속 이어 갔다.
“아마 포인트가 쌓이면 이를 분배할 수 있는 창이 활성화될 겁니다. 그러면 자신의 주요 능력에 가까운 포인트에 투자하면 돼요.”
“폐하, 그럼 저의 경우는 신성력에 투자를 하면 되는 건가요?”
“확인했어?”
“포인트가 0이라고 되어 있기는 한데, 시선을 집중하니까 분배할 수 있는 종류가 여럿 보였어요.”
“맞아. 자신의 주된 능력에 맞게 포인트를 분배, 성장을 유도하는 거지. 레나처럼 방어에 특화된 검사라면 물리, 마법 방어력도 괜찮겠지. 근력도 좋지만 말이야.”
“와……!”
각각의 표정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신기해하는 모습은 다들 똑같았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상태창을 처음 경험해 보는 사람이 이를 신기해하지 않으면 그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적응 시간이 좀 필요하기는 할 터였다.
처음에는 상태창이 이물질처럼 느껴져서 괜히 허공에 손을 휘저었던 일도 많았다.
“언제든 궁금한 게 있으면 제게 질문해 주세요. 자세하게 설명해 줄 수 있으니까. 핵심은 앞으로 있을 우리의 전투가 자신의 성장과 직결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나는 힘주어 말했다.
특수한 상태창이 활성화된 것은 나도 마찬가지여서 어디에다 추가 포인트를 넣을지 고민하고 있다.
마력은 충분히 차고 넘치게 올려 둔 것 같으니 이제는 지혜에 올인할까 싶은 생각도 있었다.
바로 그때.
쿠웅! 쿠웅! 쿠웅!
미진했던 지면의 떨림이 어느 순간부터 지축의 울림으로 증폭되기 시작했다.
시야에 보이지는 않지만.
엄청난 인원의 군단이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놈들은 마나를 이용한 공격에 매우 약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풍부한 이 행성의 마나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죠.”
“맞아요.”
“그러니 주눅들 것 없이 정면 돌파를 하도록 합시다. 광역 방어는 모두 내게 맡겨요. 나머지는 공격에 집중.”
확실하게 역할을 분담했다.
아칼루스 종족의 괴수들이 외형은 무섭게 생겼지만, 약점은 분명한 녀석들이다.
비카르나 행성에서야 투사라고 불리지, 우리 앞에선 터지기 좋은 물풍선 신세를 면치 못할 뿐이다.
“전진!”
아홉으로 구성된 최정예의 진격이 시작됐다.
그리고.
-내 곁을 지키고 있는 모두에게 힘을! 파이팅! 파이팅이당!
데리의 금빛 버프가 영롱한 빛을 내며 우리의 머리 위에서 축복처럼 쏟아져 내렸다.
기분 좋은 진격의 시작이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바로 아칼루스 종족의 ‘투사’들과 마주했다.
내가 지구에서 보았던 그 괴수와 똑같이 생긴 녀석들이었다.
박도혁의 의 설정대로 이루어졌음이 확실한 증거였다.
‘비카르나 행성에서 보낸 괴수종들은 지구의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고 큰 피해를 일으켰다.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괴수종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지성이 있었고, 인간들은 이를 얕보다가 더 큰 피해를 입었다.’
원작 속의 내용이었다.
박도혁을 믿었지만 직접 확인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것으로 소설과 완벽히 일치함을 확인했다.
또한 지구에서 이미 상대해 본 만큼, 우리의 대응법이 틀리지 않았음도 자연스럽게 검증됐다.
나는 전투 개시에 앞서 상공으로 훌쩍 날아올라 미리 아군의 대열에서 빠져나왔다.
책임 회피가 아니었다.
만일 내가 중요한 목적으로 전장을 이탈할 경우.
남은 8인이 적을 상대로 호각세를 이룰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지금까진 나도 완전히 개점휴업 상태였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제1 동부 방어선이라고 불리는 시설을 통째로 날려 버린 사람은 내가 아니라 베르하드였다.
마력의 양이 풍부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비카르나 행성은 마법사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이유인즉, 마법을 캐스팅할 때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의 마나를 쓸 수 있었다.
원래 마법을 쓰게 되면 주변의 마나까지 모두 끌어당기면서 일시적인 ‘공백’ 상태가 유발되는데.
비카르나 행성은 마나가 너무 풍부해서 공백이 생길 틈도 없이 곧바로 다른 마나가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캐스팅 시간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면, 그에 비례해서 더욱 폭발적인 마법을 시전하는 게 가능해진다.
그래서 베르하드는 9클래스 공격 마법인 메테오를 사용했지만.
충분히 긴 캐스팅 시간을 확보하면서 마법의 강도를 높이자, 메테오 스톰과 같은 효과가 난 것이다.
즉, 마법 자체가 한 단계, 아니 세 단계는 업그레이드된 파괴력을 보인 셈이었다.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모든 동료들이 나에게 하나하나 든든한 사람들이지만.
그중 가장 듬직하고 고마운 사람은 역시 베르하드였다.
내가 없는 자리에 나를 대신해 충분히 활약해 줄 수 있는 최고의 마법사이니까.
마법의 화력 자체는 내가 베르하드보다 강할 것이다.
하지만 평생을 쌓아 올린 경험의 노련함은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경지다.
그에게는 ‘대마법사’라는 칭호가 전혀 아깝지 않다.
동시에 나이를 초월하여 맺어진 나의 소중한 인연이자 동료이기도 하다.
“몸만 큰 멍청한 놈들아! 이런 공격력으로 감히 우리를 이기겠다고? 자신 있으면 나부터 뚫어 봐라!”
가장 적극적으로 적진에 파고든 것은 레나였다.
통곡의 벽, 레나.
에서 마왕군의 선봉으로 악명이 자자했었던 위용이 여실히 뿜어져 나오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이상이었다. 마왕군 소속의 레나는 그래도 제법 빈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라라는 걸출한 검술 스승 아래에서 성장한 지금은 분명 ‘완성형 탱커’라는 수식어를 붙여 줘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우와아앗! 쿠와아아앗!
약이 바짝 오른 투사들이 레나를 포위하고는 들고 있던 거대한 몽둥이로 미친 듯이 후려쳤지만.
투웅! 투웅! 투웅!
강철 방패를 두드리는 가벼운 몽둥이인 양 힘없이 퉁퉁거리는 소리를 내며 튕겨져 나갔다.
그사이.
레나가 몸을 회전하면서 검으로 호선을 긋자.
솨아악! 쇄애액!
끄아아아아!
순식간에 몸에서 두 다리가 분리된 투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었다.
레나의 움직임은 화려했고 주목을 끌 만한 강한 임팩트가 있었다.
그래서일까?
“……!”
어느 누구도 공중을 훌쩍 뛰어넘어 이동하고 있는 클로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푹! 푸푹! 푹!
끄억! 커헉! 꺽!
클로이가 무심히 찌른 세 번의 일격에 투사 셋이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피를 흘리지만 죽지 않거나, 고통을 견디면서 버틴다?
클로이의 앞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클로이의 단검이 지나간 곳에서는 반드시 ‘죽음’이라는 결과가 도출됐다.
예외는 없었다.
클로이는 그렇게 죽음의 사도가 되어 어둠의 동선을 그리며 투사들의 목숨을 쉽게 앗아 갔다.
레나의 화려함과 주목도를 활용해 만들어 낸 클로이의 임기응변이자 노림수였다.
‘잘 싸우네. 역시 내가 없으면 위험하지 않을까 했던 생각은 기우였어.’
나는 팔짱을 낀 채, 좀 더 상황을 살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무시하고 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대열을 이탈할 때부터 노림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적의 심장부를 직접 노리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동료들이 뒤에서 버텨 줘야 했기에 그 능력이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끼리리릭! 피피핑!
이어서 아슈르가 전개하는 마법 화살이 상공을 아름답게 수놓으며 멀리 날아갔다.
마법 화살의 장점은 화살이 없어도 발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마궁수는 나스 대륙에서도 매우 희귀한 직업이니만큼 흔한 기술은 아니었다.
하지만 궁술의 극의에 이른 아슈르에게 다양한 마궁술은 어렵지 않게 전개할 수 있는 선택지였다.
푸욱! 푸우욱! 푸욱!
끄어어어!
매섭게 날아드는 마법 화살을 손이나 팔뚝 따위로 막으려던 투사가 그대로 험한 꼴을 당했다.
애초에 마법 저항력이 형편없는 몸뚱이로 막으려고 하니 통할 리가 없었다.
마치 연한 두부에 꽂히는 송곳처럼 인정사정없이 살점을 꿰뚫고 화살이 박혔다.
눈, 양미간, 이마, 정수리, 목울대, 심장, 복부 할 것 없이 여기저기가 벌집이 됐다.
심지어 한 번에 열 개의 투사체까지 만들어 낼 수 있는 마법 화살은…… 말 그대로 1타 10피가 가능한 공격 수단이기도 했다.
바로 그때.
우우웅.
하늘을 검붉게 수놓은 먹구름이 만들어졌다.
진짜 구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은, 정말 바로 머리 위에 있다고 말해도 될 정도의 구름들.
거기서 스멀스멀 피어 나온 연기가 이내 투사들을 감싸기 시작하더니.
헤에…….
이내 투사들이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입고 있던 갑주와 속옷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허공의 어딘가를 바라보며 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나는 경험만큼 기억에 생생한 이자벨의 주술이자 주특기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색욕의 주술!’
이자벨이 마법 저항력을 수련할 때, 나를 무척이나 괴롭혔던 바로 그 주문!
머릿속 온갖 망상과 성욕을 극대화시키는 바로 그 주술이 수백 명의 투사들을 모조리 휘감고 있었다.
헤에! 헤에에! 으헤헤!
그렇게 수백의 투사는 순식간에 전의를 모조리 상실한 채 헐벗은 표적이 됐고.
“한심한 놈들!”
“쓸어버리죠!”
라키스와 엘라의 오러 블레이드 속에 허무하게 몸이 반으로 갈라지며 죽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