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87
제 386화
121장. 계속되는 성장 – 3화
쿠우우웅…….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왕궁을 중심으로 주변의 모든 건물이 초토화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몇 초밖에 안 되었다.
지상을 덮친 재앙의 열기 폭풍은 인정이라는 것을 두지 않고,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순식간에 휩쓸어 버렸다.
방금까지만 해도 생기가 넘쳤던 거리 풍경은 순식간에 죽음의 현장으로 변했다.
하지만.
“후, 후후. 후후후. 역시. 역시 내가 만들어 둔 이 방어용 시스템이 제 몫을 해냈다.”
콰직!
폐허 속에서 크메르주는 머리 위를 잔뜩 덮은 콘크리트 더미를 밀쳐 내고 얼굴을 내밀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재색의 먼지와 부스러기들로 가득했지만.
크메르주의 말처럼 방어용 시스템이 제 몫을 해낸 덕에 아주 경미한 부상을 입은 선에서 끝났다.
“크으으으으.”
“제X랄…….”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와 더불어 몸을 일으키는 자들이 있었다.
철십자단.
크메르주가 아끼는 부하들로 이제 막 출격을 앞두고 있던 최강의 전사들이었다.
“모두 괜찮으냐?”
“몸이 무겁기는 합니다만…… 괜찮습니다.”
“역시 나의 자랑스러운 전사들이구나. 어서 빠르게 수습하고 적을 찾아 제거하자.”
크메르주가 몸을 일으켰다.
한 행성계를 통치하는 군주답게 크메르주의 몸은 한눈에 보기에도 단단해 보였다.
그것이 크메르주를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도록 만든 원천이기도 했다.
절대 뚫리지 않는 방패.
그것은 모든 것을 뚫는 창만큼이나 위대한 것이었고, 그런 만큼 크메르주에게는 분명 왕의 자격이 있었다.
한데 바로 그때.
“너희들을 제외하곤 전부 재가 되어 죽었는데, 여기서 무슨 때 아닌 신파극을 찍고 있냐?”
홀연히 상공에 모습에 드러낸 자레드가 팔짱을 낀 채, 딱한 표정으로 크메르주에게 말했다.
“이, 이, 이 XX!”
욕이 절로 나왔다.
당장에 눈앞의 자레드를 요절내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크메르주는 도약력이 부족했다.
그 대신.
“하아압!”
오른팔 위에 자연스럽게 만들어 낸 강철의 창을 힘껏 움켜쥔 뒤.
후우웅!
바로 자레드를 향해 날렸다.
투창(投槍)!
크메르주가 즐겨 쓰는 공격법이었다. 동시에 전광석화와도 같은 공격이라 흔히 ‘절명 공격’이라고도 부르는 노림수였다.
깡!
“아니?”
하지만 자레드는 퍼펙트 실드를 전방에 펼치는 것으로 손쉽게 창을 막아 냈다.
제법 많은 힘이 실린 창이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마나의 힘을 담아 던진 것도 아니고, 오로지 완력만으로 던진 창에 당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네가 받아 봐라.”
퍼펙트 실드로 창의 이동을 차단한 자레드가 바로 창을 움켜쥔 뒤, 방향을 거꾸로 돌렸다.
그다음, 자신의 주특기 중 하나인 윈드 스피어 마법에 강철의 창을 실어 단숨에 날려 보냈다.
방향만 달랐지 방식은 똑같은 반격이었다.
“내가 이런 물러 터진 공격에 당할 것 같……. 크악!”
자신만만하게 자레드의 반격을 받아 내려던 크메르주에게 아주 큰 변수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저, 전하! 전하!”
양팔을 교차해 막아 내려던 크메르주의 두 팔을 꿰뚫어 버린 자레드의 창이었다.
“이, 이럴 수가…….”
“크메르주, 네 계획은 거기까지다. 네 놈을 지구의 이름을 빌려 확실하게 단죄하겠다.”
“지구……? 설마 그럼 네놈은?”
“그래. 지구에서 온 원정대다.”
크메르주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차원 연합의 사전 분석에 따르면, 지구는 한없이 약해 빠진 종족인 ‘인간’이 사는 세계였다.
물론 다른 차원계의 어딘가에서 그들을 도와줄 수도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기는 했다.
욕심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매번 ‘정의’만을 부르짖으며 착한 일만 하려고 하는 천사들이었다.
물론 차원 연합은 그들을 ‘위선자’라고 불렀다. 돕는 척하면서 종국에는 인간들을 집어삼키려는 더 큰 계획이 있는 음흉한 자들이라고 욕하기도 했다.
어쨌든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제외하면 인간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제압이 가능한 존재였다.
부족한 건 시간이었다.
차원 연결을 위해 필요한 절대 시간이 흘러야만 연결이 될 수 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연결만 되면 곧바로 지구를 휩쓸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거꾸로 지구의 생명체가 이곳에 나타났다.
더 큰 문제는 지구에서 왔다는 놈이 비카르나 행성을 이 꼴로 만들어 놨다는 점이었다.
“대왕을 지켜라!”
“전부 집결!”
사방에서 슬슬 정신을 차린 철십자단이 크메르주를 지키기 위해 모여들고 있었다.
“누가 왕인지는 확실히 확인했으니, 이제는 끝을 봐도 무방하겠군.”
자레드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크메르주와 달리 나누고 싶은 대화는 없었다. 이미 에서 알아야 할 것은 다 알아 뒀으니까.
크메르주는 차원 연합의 버림패다. 언제든 이용 가치가 떨어지면 자폭시킬 수 있는 패.
그래서 아는 것도 가장 적은 녀석이었다. 그저 다음 행성으로 가기 위한 교두보 역할만 할 뿐.
“날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럴지 아닐지는 직접 네놈이 경험해 봐라.”
바로 승부수를 띄웠다.
[조력자의 보상 – 열화의 힘]그것은 바로 동방 대륙 원정에서 관리자 박도혁을 통해 얻은 초월적인 힘이었다.
양손 앞에서 타오르는, 세상의 모든 것을 녹여 버릴 불길을 보면서 자레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신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그것이 인간의 왕, 황제 혹은 최강의 영웅이든 손쉽게 죽여 버릴 수 있는 힘.
그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고 마음껏 ‘유희’와 ‘관조’를 즐기는 존재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어쨌든, 상관없어.’
이내 자레드는 상념을 털어 내고 활활 타오르는 열화의 불길을 크메르주에게 쏘아 냈다.
“대왕을 지켜라!”
“모두 방어 대열을 형성……. 크아아아악!”
다급하게 철십자단의 일원들이 크메르주를 둘러쌌지만, 무의미한 움직임이었을 뿐이다.
아이스크림 위에 또 다른 아이스크림을 얹는다고 해서 뙤약볕 아래 녹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단지 아주 약간의 시간차만 존재할 뿐이다.
“끄으……!”
그것이 자레드가 크메르주에게서 들은 마지막 한 마디이자 비명이었다.
자레드가 모든 마력을 소모해서 구현해 낸 ‘열화의 힘’은 왕궁 전체의 남은 흔적마저 모조리 쓸어버렸다.
화르륵! 화르르륵! 화륵!
마치 먹이를 탐닉하듯 구석구석 생명의 흔적을 찾아 나서는 지옥의 불길이 빠르게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가장 참혹한 광경이지만, 동시에 가장 고통 없이 죽어 가는 광경이기도 했다.
불길이 닿는 순간, 죽음으로 치닫는 고통을 채 인지할 틈도 없이 몸이 녹아 버렸기 때문이다.
툭. 투툭.
그리고 죽은 크메르주 – 정확히는 크메르주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 – 에서 초월의 돌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다음 순간.
피이잉!
높은 하늘 위로 주황색 점이 활성화됐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바카지에나 행성] [차원계에 대한 인지가 활성화되었습니다. 해당 행성은 초월의 돌을 활용해 이동 가능합니다.]새로운 행성에 대한 알림으로 나타났다.
바카지에나 행성.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거대화’되어 있는 행성이었다.
‘형, 그 행성에 가면 형은 물론이고 모든 동료들이 먼지 같은 존재가 될 거예요.’
박도혁이 남겼던 당부가 생각났다. 자신의 소설이 현실이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 흥분해서 열변을 토하던 녀석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나중에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풀이 잔뜩 죽은 채로 시무룩해져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다음의 행성으로 향하는 징검다리를 확실히 얻었다.
자레드는 ‘무디두스의 기도’를 활용해, 즉시 마력을 전량 회복했다.
그리고 곧바로 초월의 돌을 활성화시켰다. 어차피 초월의 돌을 활성화하면, 이동 준비까지 정확히 24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초월의 돌이 완벽한 형태로 활성화되었습니다.] [초월의 돌이 가리키는 좌표의 행성은 ‘바카지에나 행성’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3시간 59분 59초 후, 초월의 돌이 반경 30m 내의 모든 인원을 바카지에나 행성으로 이동시킵니다.]“일단 이동 준비는 완벽하게 끝났고, 이제 남은 것은 나중에 지구로 워프 게이트를 여는 장치를 파괴할 시간인가?”
자레드는 폐허가 된 왕궁을 버리고 홀연히 플라이 마법으로 훌쩍 날아올랐다.
이미 열화의 힘이 훑고 간 왕궁에는 생존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열화의 힘 자체가 살아 있는 생명체의 숨결을 느끼고 ‘찾아가는 서비스’인 만큼.
크메르주보다 더 강한 존재가 없다면, 생존자는 절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12.5%.”
자레드가 다음 목적지로 설정된 바카지에나 행성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여덟 개 목표 중 하나를 끝냈다.
진행률 12.5%.
본격적인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 *
이후의 전투는 싱겁게 끝났다.
모래주머니를 잔뜩 차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적들.
그리고 날개를 단 것으로도 모자라 부스터와 추가 화력 아이템까지 잔뜩 착용한 것이나 다름없는 우리.
시작부터 실력이 확연히 차이가 났기에 적들은 결코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왕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워프용 코어도 무난하게 박살을 냈다.
지키고 있는 군인들이 제법 있었지만, 초반의 탐색전 몇 번에 모두 항복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방금 왕궁 쪽에서 솟아오르는 거대한 버섯구름과 현장의 참혹함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 번은 ‘저항’을 했다는 제스처 – 아마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최소한의 이유를 만든 것이었겠지. – 만 취하고 모두 백기를 들었다.
워프용 코어는 원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했다.
우리가 이 행성을 떠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만큼, 일말의 가능성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날 밤.
모든 후속 처리를 끝내고 폐허가 된 왕궁에 도착한 우리는 주변에 베이스캠프를 쳤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깔끔히 죽어서 사라진 자리였기에 역설적으로 주변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첫 전투치고는 너무 싱거웠다. 새삼 문명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격차를 만들어 내는지 알 것 같군.”
베르하드가 운을 뗐다.
그뿐만이 아닌 모두가 느낀 감상이었을 것이다.
“다들 얻은 성장 포인트는 자신의 주 분야에 투자해요. 그리고 1포인트만 넣어 보고 얼마나 오르는지 체감해 보고.”
모두에게 적절한 코멘트도 해 주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들이 선택할 몫이다.
본인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야 후회도 없고, 무엇보다 확실히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아깝게 다른 곳에 포인트를 투자하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다 필요한 과정이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랬다.
바로 그때.
“와, 와, 와아아아……!”
일행 중에서 가장 먼저 허공에 열심히 손짓을 하던 레나가 연신 탄성을 내질렀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겉으로 드러난 그녀의 몸의 혈관이 살짝 팽창하며 푸른빛이 감돌았다.
나는 짚이는 바가 있었기에 피식 웃으며 레나에게 물었다.
“레나, 물리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에 전부 투자했구나?”
“네! 방패의 최우선 덕목은 역시 더 단단한 방패죠!”
레나가 긴 머리를 질끈 묶으며 힘주어 말했다.
근데 레나의 어깨가 이렇게 넓었었나? 어느새 녀석의 어깨는 나보다 더 넓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