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89
제 388화
122장. 작은 고추의 매운맛 – 1화
대왕 오랑우탄 ‘팔프칸’은 파리처럼 앵앵거리며 날아드는 자레드를 보고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박수 한 방이면 가루가 되어 사라질 것이 자명한 녀석이 겁도 없이 달려들고 있어서다.
바카지에나 행성에서 살지 않는 불청객, 즉 외부 행성의 침입자라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긴장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자레드 일행 전체를 ‘하찮게’ 보았기 때문이다.
쿠오오오!
팔프칸이 고함을 내지르며 자레드를 향해 양손을 힘껏 내뻗었다.
그의 움직임은 충분히 눈으로 좇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 정도면 좋게 봐줘도 빗나가지만 않는다면 한두 번의 손놀림으로 반드시 잡을 수 있을 듯했다.
박수치는 손의 강도만 잘 조절하면 녀석을 죽이지 않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도 있으리라.
그러면 두 팔과 다리를 몸에서 떼어 내고, 몸통만 이리저리 굴리면서 갖고 놀 생각이었다.
쿠흐흐.
행성 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재밌는 놀잇감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에 팔프칸은 웃었다.
그리고 접근해 오는 자레드를 향해 입맛을 다시며 몸을 움직였다.
한데 바로 그때.
콰앙!
파공음을 내며 자레드가 탑승한 타트라 넥스가 가속에 가속을 거듭했다.
그웍……?
그것은 팔프칸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초고속, 아니 그 이상의 움직임이었다.
어찌나 빠르던지 잔상조차 좇지 못한 채 자레드의 위치를 완벽하게 놓치고 말았다.
“하여간 몸뚱어리만 커졌지 대가리는 같이 커지지 않아서 허술하기 짝이 없네!”
자레드는 팔프칸을 향해 일침을 날리고, 거침없이 그의 얼굴을 향해 돌진했다.
꾸워어어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자레드의 모습에 깜짝 놀란 팔프칸이 급하게 양손을 휘저었지만.
이미 때늦은 반응이었다.
가속이 걸릴 대로 걸린 자레드와 타트라 넥스는 이미 한 몸이 되어 팔프칸의 콧구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워억? 워어억?
상상도 못 한 전개!
팔프칸은 자레드가 외부에서 자신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갔음을 알고 심히 당황했다.
밖에 있는 적은 싸워서 죽이면 된다지만, 몸 안에 들어간 적을 도대체 어떻게 죽인단 말인가?
와악! 와아악!
당황한 팔프칸은 때가 잔뜩 낀 양팔의 손가락으로 다급하게 콧구멍을 쑤셔 댔다.
하지만 자레드는 일찌감치 손가락이 들어갈 만한 깊이 이상으로 들어갔다.
푸에취! 푸에에에취!
팔프칸은 미친 듯이 코털을 뽑아 가며, 어떻게든 재채기를 하려고 애썼다.
자기 딴에는 콧속에 들어간 자레드를 밖으로 내보내겠다는 고육지책 중 하나였지만…….
그 재채기는 콧속 어딘가에서 나오다가 막혔다. 자레드가 실드를 두껍게 펼친 탓이었다.
와악! 와아악!
패닉에 빠진 팔프칸은 어쩔 줄을 모르고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그런데.
우워……?
갑자기 두 눈의 안쪽, 정확히는 뇌 어딘가가 찌릿해지는 감각과 함께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호워?
뭔가 뻥 뚫린 듯하면서도 기분 좋은 느낌이 들기에 팔프칸은 이제 자레드가 죽었구나 싶었다.
하긴 그 엄청난 힘과 압력으로 재채기를 했으니, 작은 미물이 안에서 멀쩡할 리가 없었다.
쿠하! 쿠하하하!
방금까지 겁에 질려 있던 모습과 달리, 팔프칸은 허리까지 뒤로 젖혀 가며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면 그렇지, 하는 반응이었다.
주변을 슥 둘러보니, 열심히 전투 중인 동족들은 자신의 ‘민망한 꼴’을 보지 못한 듯했다.
대장의 꼴이 우습게 될 뻔했는데 잘됐다 싶었다. 아무 일도 없이 넘어갈 수 있을 듯했다.
그런데.
‘……?’
그 순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 * *
같은 시각.
“폐하! 폐하!”
라키스가 자레드를 찾았다.
약속된 브리핑 대로의 전략이기는 했지만, 혹시나 자레드가 실수하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걱정이 ‘자레드 걱정’이라지만, 신하된 도리로서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다들 멋지게 교전 중이었다.
몸의 크기만 놓고 봤을 때는 비교가 무의미해질 정도로 압도적으로 덩치가 큰 녀석들이지만.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것은 오히려 놈들이었다.
타트라 넥스를 활용한 현란한 기동에 다들 넋이 빠져 연신 허공에다 손만 허우적대고 있었다.
“라키스 경, 걱정할 것 없어요. 폐하가 가는 길에는 늘 정답만 있으니까요.”
눈빛이 흔들리는 라키스의 걱정을 잠재운 것은 헤이즈였다.
능숙하게 타트라 넥스를 조작하며 라키스의 옆에 붙은 헤이즈가 환하게 웃어 보였다.
“죄송합니다, 황후 마마. 도대체 누가 누구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인지…….”
“폐하의 전략은 도박수가 아니랍니다. 완벽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노림수죠.”
“맞습니다, 황후 마마.”
바로 그때.
끄워어어어!
“어떠냐, 이놈들아! 나스 대륙의 신궁이 배달하는 불화살 맛이!”
아슈르가 정조준해서 날린 일격에 목젖을 관통당한 오랑우탄 하나가 멱따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바로 죽지는 않았지만, 쌕쌕거리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는 것이 결코 가벼운 부상은 아니었다.
“오우!”
“아슈르! 멋지군!”
일순간 모두의 관심이 아슈르에게 쏠리는 듯했다. 분명 유의미한 일격을 날렸기에 충분히 그런 대우를 받을 법도 했지만…….
“어?”
곧바로 모두의 시선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바로 방금까지 정신없이 움직이며 온갖 발광을 해 댔던 팔프칸이 돌연 움직임을 멈췄기 때문이다.
제자리에서 멈춰 버린 팔프칸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멍하니 정면에 시선을 두더니.
끄오오오!
고통스럽게 머리를 움켜쥐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귀, 코, 입을 가리지 않고 모든 곳에서 연기가 흘러나왔다.
압력밥솥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처럼 강한 에너지를 이겨 내지 못하고 토해 내는 연기처럼 보였다.
그리고.
꺼어!
외마디 비명과 함께.
퍼서서서석!
팔프칸의 머리가 그만 터져 버렸다.
몇 조각으로 터진 수준이 아니라, 아예 목 위로 머리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믿기 힘들 정도로.
수백, 수천 개의 불씨로 터져 흩날리는 광경이었다.
이 불씨의 근원이 머리의 살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마치 폭죽놀이라도 하나 싶을 정도로 화려하고 찬란한 폭발이었다.
슈우우우!
그리고 연기 사이를 힘차게 뚫고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자레드였다.
“후우, 다들 많이 기다렸죠?”
“폐, 폐하! 역시! 역시, 폐하이십니다! 와……!”
라키스가 탄성을 터뜨렸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이런 거인형의 몬스터를 상대로 머리를 터뜨려 버릴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평범한 구조물이 아니라 오랑우탄의 인체 내부가 아니던가.
내부에서 타트라 넥스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조정하면서 공격을 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일은 자레드밖에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대마법사인 베르하드도 불가능했다.
“라키스 경, 짐이 대형화는 뭐라고 했소?”
“약점도 대형화가 된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렇소. 그 결과물이 바로 눈앞에 있지.”
득의양양하게 말하는 자레드의 목소리에 모두의 사기가 대폭 올라갔다.
반면에 대장의 폭사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본 나머지 오랑우탄들은 표정이 어두워졌다.
전의를 상실했지만 어떻게든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내빼려고 하는 모양새였다.
“정리합시다. 대장을 잃은 병사들은 십중팔구는 오합지졸이 되기 마련이니까.”
자레드는 그새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오랑우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웃으며 손끝을 가리켰지만.
그것은 놈들에겐 완벽하고도 확실한 ‘사형 선고’였다.
* * *
놈들에게는 ‘재앙’이었겠지만.
우리에겐 끊임없는 ‘성장’의 발판이 될 전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공략법을 확실히 알고 있는 우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안타깝게도 바카지에나 행성의 몬스터들은 자신들의 거대함을 최고의 무기라고 믿는 듯했다.
물론 그것이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제법 잘 먹혀들었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농구를 할 때에 골밑 싸움에서 키 큰 사람이 유리한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니까.
하지만 ‘점수 생산’의 측면으로 살피면 꼭 큰 키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큰 키가 발목을 잡아서 상대에게 손쉽게 빈틈을 허용하고 점수를 내주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전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거대함이 무기인 녀석들의 약점만을 집요하게 노렸고, 여기에는 오차가 없었다.
설령 한두 번 막히더라도, 그다음에는 반드시 성공시킬 수 있는 노림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컨드, 서드 플랜이 전혀 없는 이 녀석들에게 우리의 존재는 그야말로 생지옥을 만드는 악마나 다름없었다.
거대 잠자리 군락.
거대 거미 군락.
이렇게 두 군락(群落)을 기가노스가 위치한 북쪽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마주쳤다.
언뜻 보기만 해도 거대한 날개와 몸통이 위압적일 수밖에 없는 곤충들이었지만.
우리는 더 빠르게 진격했다.
잠자리 군락의 경우.
베르하드의 현란한 화염 마법을 앞세워 잠자리들의 날개를 모조리 녹여 버렸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내가 사방으로 뿌리는 매직 미사일을 더해 주니 장관이었다.
어지간한 불길에는 녹지 않을 듯 보였던 잠자리들의 날개도 나와 베르하드 앞에서는 촛농 신세였다.
불길에 야들야들해진 잠자리 육질(?)은 라키스와 엘라의 오러 블레이드 연계에 술술 잘려 나갔다.
마치 날이 잘 드는 칼로 고기를 사정없이 썰어 대는 느낌이었다.
애초에 날개를 잃고 추락하거나 바둥거리는 거대 잠자리들의 목을 치는 형국이었기 때문에.
라키스와 엘라의 입장에서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표적을 내려치는 셈이었다.
이 정도면 ‘학살’이라는 단어를 써도 충분히 어울릴 상황이었다.
이어서 마주한 거미 군단의 경우에는 이자벨과 헤이즈, 아슈르가 맹활약을 했다.
온몸이 검은빛인 바카지에나 행성의 거대 거미는 그 자체가 암흑 기 덩어리였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자벨의 주술에는 친화력이 너무 좋아 아주 작은 현혹술에도 잘도 걸려들었고.
아울러 상극인 헤이즈의 치유술에는 닿는 즉시 전신이 녹아내릴 정도로 반응이 격렬했다는 사실이다.
이자벨은 색욕의 주술, 현혹의 주술, 환시의 주술 등을 이용해서 거미들이 동족을 서로 공격하도록 만들었고.
헤이즈는 그런 거미들이 한곳에 무리지어 뭉치기 시작하면, 그 위로 치유술의 축복을 내렸다.
물론 우리에게나 축복이지 놈들에게는 대참사였을 테지만.
그다음.
아슈르는 거미들의 유일한 피아 판별 및 정보 수집 수단인 ‘홑눈’을 저격해 무력화시켰다.
몇몇 눈치 빠른 거대 거미들이 아슈르를 가장 껄끄러운 적이라고 여기고 달려들기도 했지만.
“여긴 못 지나간다!”
레나의 방어에 번번이 막혔다.
이자벨과 헤이즈의 합공에 전투력을 대거 상실한 거미들은 레나의 벽을 뚫지도 못했다.
나는 이따금씩 거미들이 우리를 옭아매기 위해 쏘는 거미줄 방출을 적극적으로 차단했다.
워낙 한 번에 뽑아내는 거미줄이 많아, 일단 당하면 속수무책으로 꽁꽁 묶이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직 미사일, 윈드 스피어, 윈드 토네이도와 같은 다양한 바람 마법으로 응전하자.
키에엑! 키게엑!
거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쏜 거미줄을 되레 뒤집어쓰며 자승자박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연전연승!
모든 것이 완벽했다.
거침없이 전진하는 우리들 앞에서 적들은 엄청난 크기와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속절없이 무너져 갔고.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이건 말도 안 되는 ‘사기’라는 말을 몇 번이고 주문처럼 입에 올릴 정도로 정말 많은 성장 포인트를 쓸어 담았다.
앞서 비카르나 행성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폭풍 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