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9
제 39화
15장. 방심은 금물 – 2화
“아크론, 뭘 이리 겁을 먹어?”
“빌어먹을 X! 지금까지 네놈이 우리에게 보인 모습은 전부 위장된 연기였나?”
“그걸 이제 알았어? 멍청하네.”하지만 그간 수련을 꾸준히 해온 덕분에, 현재 내 마력 스탯은 1214를 기록하고 있었다.
마력 위주의 투자를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마력을 여유롭게 쓰지는 못했을 터다.
“크아아악, 제기랄!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가려는 거야! 살려 줘, 제발!”
그 시각, 나와 아크론은 끝없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플라이 마법은 초당 20의 마력을 소모한다.
벌써 상승을 거듭한 지도 30초가 지났고, 덕분에 마력은 600이 넘게 소모된 상태였다.
하지만 그간 수련을 꾸준히 해온 덕분에, 현재 내 마력 스탯은 1214를 기록하고 있었다.
마력 위주의 투자를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마력을 여유롭게 쓰지는 못했을 터다.
428에 불과한 아크론의 마력 스탯을 생각하면, 같은 클래스임에도 3배에 가까운 차이가 나는 셈이었다.
고도가 지나치게 높아지자, 아크론이 식은땀을 흘렸다.
지상에서는 은신을 풀고 나온 병사들이 지뢰 공격에 당한 연합군을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게다가 라키스가 이끄는 병력까지 합세해 정면과 측면에서 들이치자 연합군은 패주하고 있었다.
지뢰가 폭발한 시점에서 이미 1000명에 가까운 연합군 병사가 비명횡사했다. 심지어 즉사였다.
지뢰가 피할 새도 없이 터져 버린 데다가 워낙에 지뢰를 촘촘하게 박아 두었던 터라 피해 규모가 엄청났던 것이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이미 전의를 모두 잃고,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우리 병사들에게 맞서기는커녕, 앞을 다투어 도망치기 바빴다.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동료들을 뒤로 끌어당기면서까지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이었다.
“이쯤이면 괜찮겠군.”
그때, 나는 아크론의 멱살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후아악!”
그 순간, 아크론의 몸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나는 플라이 마법의 시전을 중단하고, 오로지 아크론의 몸만 집중해서 보았다.
내가 선택한 첫 번째 공격 수단은 4클래스 마법, 아이스 스톰이었다.
빙결 계열로 상대를 일거에 얼어붙게 만드는 마법.
나는 아크론에게 양자택일의 예시를 던졌다.
이제 그는 선택해야 한다.
추락을 막기 위해 플라이 마법으로 제동을 걸거나, 아니면 아이스 스톰에 대응할 실드를 펼치거나.
‘눈앞의 두려움이 우선이지.’
지이잉!
예상대로 아크론은 실드를 펼쳤다. 4클래스 마법을 방어해야 하는 입장에선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 순간.
나는 응집되어 있었던 아이스 스톰의 구체를 해체시키고, 하강 속도를 높여 아크론의 몸을 감싸 안았다.
“마, 망할……! 망하아아아알!”
아크론이 절규했다.
제대로 겁을 집어먹은 모양이다.
* * *
보통의 대(對)마법전은 기품 있게 – 죽는 것도 기품 있을 리는 없지만 –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서로가 거리를 두고 탐색하듯 마법 공격을 주고받다가,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나면 접근하여 맹공을 퍼붓는 식이었다.
사실 이것이 정석이었다.
마법사 입장에서 근접전은 변수에 대한 적극 대응이 어렵고, 빠르게 날아드는 마법 구체를 놓치기 쉬워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이놈은 미친X인가?’
아크론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자레드는 마법사의 상식과도 같은 정공법을 완전히 비틀었다.
의도적으로 거리를 좁혔고, 마법을 제대로 시전할 수 없도록 플라이 마법을 사용해 하늘로 급상승하며 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그리고 고점을 찍은 뒤, 낙하하면서 오히려 역공을 가했다.
떨어져 죽는 것도 위험하지만, 공중에서 얼어 버리면 아예 손도 쓸 수 없게 되기에 아크론은 실드로 대응했다.
그리고 재차 마법 공격이 이어질 것을 대비해, 실드를 좀 더 두껍게 펼쳤다.
한데 예상이 또 빗나갔다.
자레드는 마법을 연계하려던 자세를 거둬들이고, 자신을 힘껏 껴안아 버렸다.
속절없는 추락이었다.
아예 몸이 바짝 붙어 있는 탓에 마법 공격을 하기도 애매했다.
무엇을 사용하건 간에 같이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겨우 짜낸 매직 미사일을 시전했지만, 타점이 어긋나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동반자살이라도 하려는 건가? 그럴 리는 없을 텐데. 내가 죽는다고 해서 놈이 얻는 것이 있나?’
아크론은 냉정하게 생각했다.
자레드의 행동에는 다음이 없어 보였다. 마치 죽음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각오가 엿보였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영지를 지키겠다고 마법사와 동귀어진하는 영주가 어디 있는가?
그러면 영주를 잃은 영지의 미래는 뻔하지 않은가?
바로 그때.
자신을 껴안고 있는 듯했던 자레드의 양손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하나의 수인을 맺었다.
살짝 고개를 돌린 아크론은 자레드의 노림수를 볼 수 있었다.
‘디멘션 도어였어!’
4클래스 마법, 디멘션 도어.
입구가 될 차원문을 먼저 열고, 그다음에 100m 내 임의의 장소에 출구가 될 차원문을 여는 공간 활용 마법.
이것을 이용하면 아무리 추락을 하고 있던 도중이라 하더라도, 다시 높은 곳으로 도약하는 것이 가능했다. 출구를 고지대로 설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추락하게 두고, 네놈은 디멘션 도어를 이용해 목숨을 구하겠다? 무늬만 4클래스인 줄 알았더니, 제법 응용까지 할 줄 아는 놈이었군.’
아크론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흘렀다.
적의 노림수를 파악하고 나니, 지금껏 자신만만하고 과감했던 이유가 충분히 이해됐다.
‘자레드가 차원문을 열었다는 것은 자신이 활용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일 터. 그런 차원문을 내가 먼저 들어간다면 따라올 수는 없겠지. 들어오는 그 즉시, 내 반격에 당하게 될 테니까.’
아크론이 거리를 쟀다.
이대로 수직 낙하를 한다면, 정확하게 차원문에 빨려 들어갈 수 있을 듯했다.
화르르륵.
이윽고 자레드의 양손에서 맺어진 수인이 열화와 같은 화염 구체가 되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당할 것 같으냐!”
아크론이 온 힘을 다해, 스트랭스 마법으로 근력을 극대화시킨 주먹을 자레드에게 내뻗었다.
뻐억!
“으헉!”
제법 큰 소리가 났다.
그리고 자레드가 신음을 토해 내며 허공에서 균형을 잃고, 경로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아크론은 중심을 잃은 자레드를 향해, 거꾸로 파이어볼을 되돌려 줄 생각을 했다.
낙하 경로는 정확했고, 마음 놓고 자레드를 노리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화르르륵!
이내 만들어진 강렬한 화염구가 직선을 그리며 자레드에게 날아갔다.
“제길!”
자레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급하게 실드로 파이어볼을 막아 냈다.
그 바람에 자레드는 다른 방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디멘션 도어의 차원문은 아크론이 선점할 수 있게 됐다.
아크론이 다시 몸을 돌려 아래를 내려다봤다. 차원문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너의 꼼수는 틀렸다!”
아크론이 회심의 미소를 만면에 머금은 채, 순식간에 차원문 안으로 진입했다.
자레드가 혼자 내빼기 위해 만든 출구인 만큼, 닫히지만 않는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 여겼다.
쑤우욱.
안정적인 통과!
이내 아크론의 몸이 차원문을 지났고, 공간의 반대편에 위치한 출구로 나왔다.
바로 그때.
푸욱.
“……?”
아크론은 이마 한가운데에 빙하처럼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박힌 듯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아……. 으아? 어으?”
어떤 말이라도 뱉어 내고 싶은데, 머리가 말을 듣지 않는지 입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크론이 천천히 시선의 방향을 위로 올렸다.
분명 이마 부근에서 영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쉬이이이이.
등 뒤에서 바람을 가르며 지면에 안착하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볼 수는 없었지만, 누군지는 뻔했다.
플라이 마법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을 제외하면 한 사람, 자레드밖에 없으니까.
“내가 무슨 꼼수가 틀렸다는 건데? 그 얘기 들으려고 내려왔어.”
덤덤하게 말을 내뱉는 자레드의 목소리가 그렇게 얄밉게 들릴 수가 없었다.
순간 욱하고 열이 오른 아크론이 살짝 머리를 뒤로 당겨 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끄아아아아……!”
정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이마에서 시작됐다.
이내 뇌 전체가 망치를 두드려 맞은 듯이 울렸고, 뒷골부터 목까지 뻣뻣해지는 오싹함을 느꼈다.
“이런 말이 있지. 누가 봐도 좋은 기회라는 건, 말 그대로 누가 봤기 때문에 절대 좋은 기회가 아니라는 것.”
“즈, 즈…… 즈르드!”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 네놈을 모든 피해자들을 대신해서 엄히 단죄해 주마.”
터업!
자레드가 바로 아크론의 뒤통수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날카로운 대못이 이마에 관통해 있는 아크론의 머리를 그대로 힘껏 아래로 잡아당겼다.
다음 순간!
쫘아아악!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기분 나쁜 소리가 나며, 나무에 박혀 있던 대못 아래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
아크론의 숨이 끊어졌다.
머릿속이 그야말로 반 토막이 난 마당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레벨업! Lv. 8 달성!] [퀘스트 ‘용호상박’을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지혜 15를 획득하였습니다!]“무슨 용호상박이라는 거야? 입고 있는 로브에 흠집도 못 낸 놈인데.”
자레드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이렇게 마요르카 영지에서 파견된 3클래스 마법사 둘, 4클래스 마법사 하나가 죽었다. 주요 전력이 모두 목숨을 잃은 것이다.
‘본인이 똑똑하다고 확신을 하면, 필요 이상으로 과신을 하게 되는 법이지.’
아크론의 패착은 그것이었다.
자레드가 디멘션 도어 마법으로 만들어 둔 차원문이 탈출용이 아닌 유인용이라는 사실을 전혀 간파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누가 봐도 디멘션 도어 마법은 추락하는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것은 완벽한 위장술이었다.
그 결과.
아크론은 죽음으로 대가를 치렀다. 좋게 말하면 허를 찔렸고, 나쁘게 말하면 개죽음이었다.
“추격해 볼까?”
자레드가 시선을 돌렸다.
이제 남은 것은 황망하게 도망치고 있는 두 영지의 연합군과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으로 전장을 바라보고 있는 두 영주뿐이었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 *
도망쳤다.
정말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아크론마저 자레드에게 비명횡사하는 순간, 호르구스는 모든 것이 잘못됐음을 느꼈다.
이끌고 온 연합군 3000명의 군세는 정확히 반 토막 났다. 그것도 작은 부상 따위가 아니라 사망 아니면 최소 중상이었다.
그만큼 자레드가 심어 놓은 지뢰의 화력은 엄청났고, 병사들은 자신들이 무엇에 당했는지도 모른 채 목숨을 잃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인원도 전의를 상실해서, 영혼마저 이탈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호르구스, 이 멍청한 자식! 그렇게 많은 정찰대를 보냈으면서, 이런 함정을 몰랐다고?”
불과 십여 분 전까지만 해도 덕담을 주고받았던 바트만은 기가 막히게 태세전환을 하고, 호르구스를 맹비난했다.
“치안대의 관리하에 영지민이 나무를 심고, 밭을 갈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그쪽까지 살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샛길에 저 어마어마한 것들이 숨겨져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정찰은 우리에게 떠맡겨 놓고, 왜 이제 와서 지랄이야, 지랄을!”
존대는 사라지고, 고성이 정신없이 오갔다.
이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었다.
크리비아 영지군은 맹렬히 연합군의 후위를 쫓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자의가 아닌 타의로 후위대가 된 연합군의 병사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무조건 항복하겠습니다!”
“항복! 항복!”
그나마 싸우다가 죽은 병사들은 마지막 불꽃이라도 태운 셈이 됐지만, 극히 소수였다.
대다수는 영주군의 추격권 안에 들어오자마자, 앞을 다투어 무기를 던지고 항복했다.
“크아아, 빌어먹을!”
호르구스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느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런 상황은 그의 머릿속에서 단 1%의 가능성으로도 그리지 않았던 시나리오였다.
한데 지금 받아 든 성적표는 대패였다.
퇴각을 시작한 몇 분 사이에 병력의 1/3이 재차 증발했다.
남은 것은 약 1000명.
여기서 연합군이 반으로 갈라졌다. 각각 영주를 따라 마요르카 영지와 로넬라 영지로 방향을 꺾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호르구스의 근처에는 500명도 채 되지 않는 패잔병들만이 남게 되었다.
바로 그때.
우우우웅!
“히이이익! 마법사다!”
“자, 자, 자레드다!”
등 뒤에서 겁에 질린 병사들이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분명 처음 가리킬 때만 해도 자레드의 위치는 등 뒤였는데, 어느새 머리 위를 지나서는 앞을 추월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호르구스는 세상의 그 어떤 무서운 얘기보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험을 했다.
“영주님, 그간 무탈하셨는지요?”
“히이익!”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
그것은 말을 타고 전력을 다해 도망치는 자신의 옆에서, 플라이 마법으로 눈높이까지 맞춰 가며 소곤거리는 자레드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