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93
제 392화
123장. 거침없는 진격 – 1화
“망할……!”
거대한 몸을 버리고 기가노스의 뇌부에서 빠져나온 모이라트가 전속력으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모습과 유사하지만 날개가 달린 모이라트는 순식간에 속도를 올리며 빠르게 멀어져 갔다.
하찮은 ‘미물’의 몸으로 기가노스라는 절대적 존재의 거대한 몸을 차지했을 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인생에서 더 이상 패배나 좌절 같은 단어를 떠올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자레드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농락당한 모이라트는 결국 모체를 잃고 말았다.
“으아아아!”
모이라트는 절규했다.
거대한 껍데기를 내려놓는 순간부터 한없이 작아진 자신을 느낀 탓이다.
그는 전력을 다해 도망치고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이미 자레드가 그 뒤를 따라잡고 있었다.
아니, 여유 있게 거리를 좁혔다가 벌렸다가를 반복하며 마치 상황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포기하지?”
“닥쳐라!”
후우웅!
모이라트가 힘찬 날갯짓을 하자 제법 날카로운 칼바람이 자레드를 향해 휘몰아쳤다.
그냥 바람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무수한 가시가 섞여 있는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하지만.
투웅! 퉁! 퉁!
자레드는 너무나도 쉽게 바람의 장벽으로 그것을 막아 냈다.
“넌 정신적 능력이 뛰어나다지? 널 활용해서 다른 행성계를 공략해야겠어.”
“으으으!”
모이라트는 모든 것을 다 꿰뚫어 보는 듯한 자레드의 눈빛이 너무나도 기분 나빴다.
사실 자레드 일행에게 처음 공략을 당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느꼈던 감정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숨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이 완전히 다 까발려진 느낌.
피조물이 신의 앞에 서면 느끼게 되는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일까?
숨기고자 하는 마음까지도 모조리 간파 당해 무기력함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데큐플 트랜센던스…… 패럴라이즈.”
“으끅! 으끅!”
최대치의 초월 상태에서 패럴라이즈, 즉 마비 마법을 정통으로 맞은 모이라트가 비명을 질렀다.
물론 이 비명은 이제 시작에 불과할 뿐이었다. 온몸이 굳어 버린 모이라트는 더 이상 날 수가 없었다.
“크허…….”
탄식과 절망이 뒤섞인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모이라트는 속절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다른 적이었다면 진즉에 맹공을 얻어맞고 가루가 되어 흩어져 죽었겠지만.
모이라트는 ‘대리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여기서 대리전이란.
해당 행성계에 ‘직접’ 이동하지 않고도 마치 이동한 것처럼 전투를 치를 수 있게 되는 것.
즉, 일종의 ‘빙의’된 개체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빙의체와 본체는 모든 감각을 공유한다.
단,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빙의체가 죽어도 본체는 죽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정신적 타격과 부상을 입을 수는 있으나 절대 즉사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 점이 매력적이었다.
모이라트가 기가노스의 뇌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도 빙의체를 미끼로 던져 줬기 때문이다.
기가노스의 정신이 거기에 팔린 사이, 핵심 부위를 장악해서 완벽하게 기생에 성공한 것이었다.
“일단 끝내자?”
소름 끼칠 정도로 평온한 자레드의 목소리가 들리고.
“크으으으!”
모이라트가 최후의 비명을 내지른 뒤.
퍼억!
묵직하게 뒤통수 어딘가를 후려갈기는 느낌과 함께 모이라트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자레드가 힘을 최소화한 크러싱 피스트로 마지막 일격을 가한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 행성의 주인인 기가노스는 기생체였던 모이라트가 떠나면서 목숨을 잃었다.
애초에 모이라트가 본체의 흔적을 남겨 두지 않았기에 생긴 불상사였다.
그런 후 모이라트 자신도 황급히 탈출을 시도했다가 자레드에게 잡혔으니, 완벽하게 배드 엔딩.
그렇게 바카지에나 행성도 10명으로 구성된 자레드 팀에 의해 완벽히 제압되고 말았다.
* * *
그날 밤.
전투를 갈무리한 우리 일행은 각자의 변화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었다.
다들 상태창을 통해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하는 것도 가능했다.
“두 행성을 공략하는 동안에 일어난 변화는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두려울 정도입니다.”
성장 포인트를 ‘근력’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라키스’의 경우, 수치가 두 배로 상승하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다.
이미 그 전에 소드 마스터나 다름없는 존재였지만, 지금은 그 경지마저 아득히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신은 몰라도, 이렇게 차원계를 마음대로 주물러 댈 수 있는 존재가 확실히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
비슷한 반응은 베르하드에게서도 나왔다.
모든 포인트를 ‘마력’에 투자한 베르하드는 매번 고질병처럼 느꼈던 마력 부족 문제를 말끔히 해결했다.
수십 년을 노력해도 이루지 못했던 변화를 불과 며칠 만에 이뤄 낸 것이다.
상태창과 레벨업에 익숙한 나에게는 사실 놀라울 것이 없는 광경의 연속이었지만.
이런 경험이 처음인 다른 동료들은 모든 순간이 신기하면서도 영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꿈은 아니겠죠?”
헤이즈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보아 비슷한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기회가 왔을 때 확실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법입니다. 지금에 충실하죠.”
분위기를 환기했다.
힘은 언제나 중요하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든.
혹은 내가 살고 있는 조국이나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든.
누군가와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힘이 없는 자의 말로는 비참할 뿐이다.
“이자벨.”
“네, 폐하.”
“푹 쉬고 나면, 이제 이 녀석을 이용해서 대리전을 치러야겠어. 정신을 완벽하게 통제해야 이 녀석을 써먹을 수 있는데, 괜찮겠어?”
“문제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말이네.”
이자벨의 어깨를 두드리며 힘껏 격려를 해 주었다.
대리전의 핵심은 안정적인 연결이다.
다음 목표 행성인 ‘무스카트’ 행성은 우리가 직접 이동하지 않고, 빙의체를 활용해 전투를 치를 계획이다.
물론 그 빙의체는 우리와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목표 행성의 현지에서 대신 임무를 수행할 모체를 찾아 전투를 치르게 만드는 것이니까.
하지만 연동되는 과정에서 모체의 능력 9할을 넘겨받을 수 있으니, 사실상 힘의 손실도 없는 셈이었다.
‘하여간 박도혁 녀석…….’
왜 녀석의 소설 가 인기가 없었는지 알겠다. 설정이 너무 복잡했다.
녀석은 신나서 열심히 추가했을 것 같은데, 직접 경험자로서 스토리를 겪어 보니 아주 복잡해 골치가 다 아팠다.
‘빠르고, 신속하게.’
비록 성장의 기반이 되는 전장이긴 했지만, 여기에 오래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이 순간에도 나스 대륙과 지구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쉴 새 없이 달려온 나와 동료들에게 제법 긴 ‘휴가’를 주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
‘부디 마지막 여정이길.’
먼 하늘, 우주의 어딘가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좌충우돌, 동분서주!
‘자레드 폰 유칼레스’의 몸으로 환생한 이후 정신없이 살아온 나를 돌볼 시간이 어서 빨리 주어지기를.
그 바람이 어서 닿길 간절히 바랐다.
* * *
파죽지세.
그 말이 딱 어울릴 만큼 자레드 일행의 활약은 실로 눈부셨다.
모이라트의 정신계 능력을 활용한 빙의체 생성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때부터 대리전이 시작됐다.
무스카트 행성을 시작으로, 차원 연합의 일곱 번째 행성계까지 자레드의 손에 차례대로 무너졌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힘의 균형이 전혀 맞지 않았다.
원작자인 박도혁은 이번 원정에서 꽤 고전할 것이니 부디 조심하라는 당부를 몇 번이고 했지만.
자레드 일행 앞에서 차원 연합의 적들은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해 보지 못하고 힘없이 무너졌다.
그것은 바로 자레드와 베르하드가 연계해서 힘껏 쏟아 내는 9클래스 마법 때문이었다.
인간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어 ‘재앙’으로 강림하는 9클래스 마법.
그것을 심지어 초월 마법의 형태로 쓸 수 있는 자레드 앞에서 적들은 그저 무기력할 뿐이었다.
-이건 사기야!
자레드의 손에 목숨을 잃은 무스카트 행성의 왕이 남겼던 최후의 유언이었다.
그 말이 얼마나 와 닿던지.
자레드는 숱한 전투를 치르면서 자신이 가진 힘이 ‘인간’이 갖기에는 너무 과분한 힘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서 ‘조력자’ 박도혁이 그토록 자신에게 관심을 가졌던 걸까.
잊을 만하면 생각나는 조력자 박도혁에 대한 기억이 자레드의 머릿속을 간질였다.
* * *
“검 하나로 태산을 베고…….”
후우웅! 콰과과과!
“대지에 꽂아 넣은 검이 지진을 일으키니…….”
푸우욱! 콰지이익!
“수만의 적 앞에서도 나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시이이이잉!
“좋소. 아주 멋있소!”
짝짝짝.
우리는 차원 연합의 마지막 행성에 진입하기에 앞서 숨고르기를 하는 중이었다.
애초에 이동용 차원문이 활성화되기까지 사흘이라는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들 각자의 공간에서 자신의 힘을 테스트하고 있었고, 내가 가장 먼저 유심히 살핀 건 라키스였다.
그가 중얼거리듯 읊었던 문구는 나스 대륙에서 오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한 남자의 말이었다.
소드 마스터 안트록스.
홀로 남은 전장에서 조국인 ‘베르디스 제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기도 했다.
영웅의 이야기가 보통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데 반해, 안트록스의 이야기는 그의 장렬한 죽음으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천 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고.
대개 남자라면 한 번쯤은 그 문구를 입에 올릴 만큼, 안트록스는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아 심금을 울렸다.
그런데 방금 라키스는 그 문구를 되뇌기만 한 게 아니라, 그것을 현실로 이뤄 냈다.
라키스의 앞에는.
그의 오러 블레이드에 의해 쪼개진 언덕길과 가지를 치듯 쪼개진 지면이 널리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만들어 낸 오러 블레이드는 초승달 모양의 진한 섬광을 뿜어내며.
쿠아아아!
지금도 저 멀리 지평선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즉, 지면을 딛고 서 있는 적이 있다면 오러 블레이드에 의해 모조리 죽어 나갈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게 수십 명이든 혹은 수만 명이든 간에.
“폐하,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미래의 거대한 재앙이 될 적들을 막아 낸 보상이라고 생각하면, 사실 당연한 것이기도 하오.”
“제가 이 힘을 올바르게 쓸 수 있을지……. 아니, 반드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사명감을 잊지 않겠습니다.”
“아직 다 끝난 건 아니니 끝까지 자만하지 않도록 합시다. 마지막 최종전이 남았소.”
“예, 폐하.”
내 주변의 동료들은 저마다 많은 변화를 겪었다.
특히 ‘전투 요원’들은 극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엄청난 변화를 경험해 왔다.
그중에서 눈부신 인생 역전을 이뤄 낸 것은 단언컨대 라키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처음 그를 봤을 때만 해도 라키스는 경비대장, 딱 그 수준에 걸맞은 실력만 가졌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제는 드넓은 공간을 압도적인 검격으로 갈라내는 무적(無敵)의 존재가 되었다.
‘역시…… 혼자 가는 게 낫겠지.’
나는 최종 결정을 앞두고 마지막 고민에 빠져 있었다.
박도혁이 내게 건넨 원작의 내용에는 적혀 있었지만, 동료들에게는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문구.
그것은 바로.
‘불청객이 늘어날수록 그들을 둘러싼 마기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에 원정대의 인원 감축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많은 인원을 행성 원정에 투입할수록 독이 된다는 원작의 문구 때문이었다.
그 말인즉.
최소한의 인원이 필요하며, 당연히 그에 적합한 인원은 단 한 사람임을 암시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