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398
제 397화
124장. 최종전 – 3화
폭발.
그럴듯한 표현이다.
뭔가 강력해 보이고 상대에게 큰 위협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도 그런 부분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전투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때는 바로 이 ‘폭발’이 일어날 때다.
그 엄청난 위력만큼이나 다양한 변수가 일어나기에 딱 좋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폭발은 필연적으로 거센 열풍과 연기를 만들어 내기 마련이고, 이는 시야를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변수를 만들어 내기에 가장 좋은 최적의 환경이 되는 셈이다.
나는 글래버가 아티팩트를 이용해 폭발을 일으키는 순간,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물론 녀석의 속내를 충분히 읽을 수 있었고, 또한 이해할 수도 있었다.
계속 내 페이스로 진행되는 전황이 영 신경 쓰였을 것이다.
초 단위도 잘게 쪼개서 타이트한 전투를 치르는 고수의 세계에선 주도권이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0.1초, 0.01초를 앞선다는 것은 대단히 큰 위협이 되고, 또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글래버는 손쉽게 분위기를 반전할 수단을 노린 것이었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뒈져 버려라!”
쿠콰콰콰콰!
내가 지켜보고 있는 것은 정면에서 공격을 퍼붓고 있는 글래버가 아니라, 바로 녀석의 뒷모습이었다.
녀석은 폭발과 함께 내가 제자리에 만들어 놓고 간 나의 완벽한 분신, 시뮬라크럼을 공격했다.
완벽하게 타이밍을 읽고 남겨 둔 내 분신이기에 글래버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크아아악!”
시뮬라크럼으로 만들어진 내 분신이 우악스럽게 입을 벌리며, 나름대로 열심히 신음을 토하고 있었다.
조금 어설픈 구석이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오히려 더 당황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
나는 폭발이 일어난 시점에 ‘블링크’를 활용해서 글래버의 등 뒤로 이동해 있었다.
물론 도처에 마력 간섭이 가득해서 위험했지만, 모든 공간에 간섭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이는 애초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기도 했다. 마음만 먹으면 타이트하기는 해도 얼마든지 블링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드는 ‘설계’를 하기 위함이었다.
내가 폭발을 반겼던 이유는 그 폭발에 많은 것을 묻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글래버의 후방으로 블링크를 이용해 이동함과 동시에 나는 뮤트 마법으로 소리까지 지웠다.
그래서인지 녀석은 후방에 전혀 관심도 두지 않고, 오로지 내 분신을 맹폭 중이었다.
물론 넉넉하게 지켜만 봐도 될 정도로 녀석이 바보는 아니다. 다음으로 바로 넘어갈 필요가 있다.
‘보인다.’
노렸던 바가 보였다.
내가 처음부터 계속 찾고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였다. 어떻게 하면 글래버를 구성하고 있는 아티팩트를 모두 해체하느냐는 것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열화의 힘 같은 능력으로 전부 녹여 없애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투를 통해서 확신했다.
글래버는 절대 그렇게 만만한 놈이 아니라고. 왼팔을 날린 것은 녀석이 방심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녀석은 더 이상 마음을 느슨하게 먹지 않았고, 그래서 나도 같은 방법을 구사하지 않았다.
다만 전투 내내 글래버가 내게 단 한 번도 뒤를 보여 준 적이 없어서 그게 의아했다.
후방 회피를 할 때는 뒷걸음질치듯 빠지기도 하지만, 고속 회피가 필요할 때는 아예 뒤돌아서는 것이 훨씬 더 빠르다.
적에게 등을 보여 줘서는 안 된다는 논리는 구식 전투에서나 통하는 말이다.
우리처럼 순간적인 가속이 가능한 존재들에게는 작정하고서 뒤를 보이고 후퇴하는 게 훨씬 낫다.
한데 글래버는 어떻게든 전면만을 내게 보여 주려 애썼으며, 몸을 비트는 행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녀석이 등 뒤를 절대 보이지 않고 싶은 이유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방금 막 그 이유를 찾아냈다.
전신을 휘감은 아티팩트의 향연 속에 유일하게 빈틈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모든 아티팩트를 하나로 묶어 주는 접합부임과 동시에 가장 취약한 연결부였다.
다음 순간!
처억!
글래버의 등 뒤, 빈틈에 양손을 얹었다. 동시에 전력을 다해 마법을 전개했다.
데큐플 트랜센던스 쇼크 웨이브.
초월의 최대 한계까지 이끌어 낸 충격파 마법을 연달아서 네 번이나 시전했다.
순간 전량의 마력이 소진되었지만 문제는 없었다. 무디두스의 기도로 마력을 회복하면 그만이니까.
다음 순간.
꽈드득! 꽈득! 카드드득!
“크어……!”
글래버의 비명과 동시에 등 뒤에서 기괴한 소리가 났다.
그것은 마치 얽히고설킨 철판을 떼어 낼 때 들리는 것과 같은 쇳소리였다.
그리고.
카치치칭! 치잉! 카치잉!
아슬아슬한 형태로 쌓아 놓았던 도미노가 한순간에 무너지듯이!
글래버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할, 각 부위를 구성하고 있던 아티팩트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쏟아져 내린다!
그 말이 아닌, 다른 어떤 표현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허물이 벗겨지듯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당황한 글래버의 외침이 생생하게 내 귓가를 파고들었다.
스르륵 벗겨지는 자신의 아티팩트를 바라보는 글래버의 표정에는 당황이 묻어났다.
마치 수많은 인파 속에서 훌러덩 하의가 벗겨져 버린 사람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보는 듯했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
화르르륵!
나는 다시 한번 열화의 힘을 활용해 거센 불길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남은 마력을 아낌없이 쓸어 모아 정령 마법 역시 최대치로 구현해 냈다.
크하아아아……. 카샤아아…….
소환된 다섯 속성의 최상위 정령들이 열화의 힘 구체에 뒤섞여 거대한 불길을 만들어 냈다.
잠시 시선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실명(失明)할 것 같을 정도로 강렬한 불길이었다.
“잘 가라.”
미련 없이 글래버를 향해, 죽음의 화염구를 날렸다.
“…….”
녀석의 얼굴이 흙빛이 됐다.
차라리 글래버가 마법사였다면, 지금 이 순간에 마법을 사용해서 현장을 벗어났을 것이다.
마력 간섭이 있고 없고는 둘째 문제이고, 어쨌든 선택할 수 있는 회피 수단은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아티팩트를 모두 무장해제 당한 글래버에게는 더 이상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티팩트가 자신을 구성하는 전부이고, 그래서 자신의 목숨과 같았던 글래버의 치명적인 허점이었다.
“내가 이렇게…….”
체념한 듯한 목소리와 함께 글래버가 두 눈을 감았다.
세상에 무적은 없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단 한 번도 내 스스로를 완벽하다고 여겨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글래버는 아티팩트의 힘을 너무 과신하고 있었던 듯했다.
그 증거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아티팩트의 무장이 해제되며 드러난 글래버의 알몸은 평범한 성인 남자의 수준도 못 됐다.
왜소하고 앙상했으며, 핏기 하나 없을 만큼 창백한 몸이었다.
일전에 기가노스를 사칭(?)했던 모이라트도 그랬듯이.
화려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격차가 심한 내부의 진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죽고 싶지 않…….”
만감이 교차되는 듯한 글래버의 마지막 말도 결국 끝을 맺지 못했다.
화르르륵!
거센 불길에 휘말린 글래버는 그 자리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녹아 버린 것이다.
분명 그가 가진 아티팩트의 힘은 차원 연합의 총수(總帥)가 되기에 충분했지만.
안타깝게도 드러난 약점 앞에서는 한낱 허약한 ‘피조물’일 뿐이었다.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했다.
[모든 임무가 끝났습니다.] [당신의 곁으로 모든 동료가 자동 워프 됩니다.]다음 순간.
위이이잉!
소환음과 함께 내 옆으로 모두가 소환됐다.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인 것을 보니, 갑자기 납치(?)된 모양이었다.
“폐, 폐하……! 폐하……!”
내 얼굴을 보자마자 가장 당황하면서도 기뻐했던 것은 늘 그랬듯이 사랑하는 내 여자, 헤이즈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헤이즈는 단숨에 달려와 폴짝 뛰어서는 내 품에 안겼다.
워낙 가벼운 헤이즈였기에 꼿꼿이 서서 그녀를 꼭 안아 주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서.
샤아아아.
내 앞으로 붉은 차원문이 활성화됐다. 이윽고 설명의 툴팁도 활성화되었다.
[금의환향의 차원문] [본래의 세계인 ‘지구’로 되돌아가는 일회성의 차원문입니다. 해당 차원문은 1시간 후에 닫히며, 다시는 열리지 않습니다.차원 연합은 무너졌습니다.
그들의 행성과 지구 사이의 고리를 강력하게 연결하고 있던 차원 연결의 구심점이 해체됩니다.
차원 연합이 구성된 ‘차원단’은 다른 차원단보다 세 배 빠른 속도로 지구와 멀어지게 됩니다.]
‘해방이구나.’
뿌듯하고 흡족했다.
드디어 지구를 구한 것이다.
물론 히어로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 한 일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수십억의 인구를 구한 셈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지구로 추정되는 위치에 있는 점이 매우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다.
아울러 차원의 연결 고리로 보였던 수많은 끈이 툭툭 끊어지는 것도 보였다.
“폐하, 정말 멀쩡하신 거죠?”
“뭘 물어봐. 잘 살아 있잖아.”
“미워요! 정말 미워요!”
짜악!
“크헉!”
생각지도 않았던 헤이즈의 등짝 스매싱에 나는 신음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된 게 글래버의 아티팩트 공격보다 헤이즈의 손이 훨씬 더 아프고 매운 것 같았다.
“이거야 원……. 이제는 신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차원을 마음대로 넘나들면서 그 세계의 패왕을 때려죽이는 존재라면 가히 신이라고 칭할 만하지.”
베르하드와 카스트로가 짧지만 치열했던 전장의 흔적들을 살피며 내게 찬사를 보냈다.
특히 베르하드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글래버의 아티팩트를 열심히 주워 담는 모습이었다.
“전리품을 이리 버려두면 쓰나. 잘 챙겨서 가져가야지. 아티팩트 귀한 줄 알아야 해.”
“감사합니다, 베르하드 님.”
“고생 많았다.”
툭툭.
베르하드가 무심하게 손을 뻗어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을 뿐인데.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행복했다. 그 마음의 묵직한 무게를 느낄 수 있어서일까.
“원래부터 폐하는 신이나 다름없는 분이셨지요. 이번에 한 번 더 입증이 된 셈입니다.”
“동의하는 사람 한 명 추가입니다.”
“저도요!”
늘 그랬듯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라키스의 반응에 아슈르와 레나가 같은 의견을 더했다.
“이게 어찌 나 혼자만의 전공일까. 우리 모두의 공인 만큼 모두에게 공을 돌리고 싶소.”
“걱정은 기우였네요, 역시. 폐하는 항상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이뤄 내는 분이세요.”
“경외와 존경의 심정을 진심으로 표합니다, 폐하.”
이어서 이자벨과 클로이도 내게 고개를 숙였다. 나 역시도 감사한 마음을 담아 예를 표했다.
“제 인생 최고의 전환점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폐하를 만난 것이라고 말하겠어요.”
마지막에 엘라가 말을 보탰다.
의 역사 속에서는 참혹한 최후를 맞이하는 그녀의 말이었기 때문일까?
다른 동료들보다 훨씬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녀의 인생이야말로 원래의 스토리보다 훨씬 더 극적으로 바뀐 것이 맞기에.
“돌아갑시다.”
자연스럽게 운을 뗐다.
이제 이 세계에 더 이상 볼일은 없었다.
남은 자들의 운명은 그들이 알아서 개척해 나갈 몫이다.
오히려 내가 모조리 몰살시키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기고 평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차원 원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인류를 위협할 거대한 적은 사라졌고, 남은 것은 새롭게 열릴 시대겠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지구 사람들은 변화된 환경에 맞게 각자 적응하고 살아갈 방법을 찾을 것이다. 인간이란 원래 적응의 동물이니까.
지구로의 귀환.
우리의 여정은 끝났다.
나스 대륙으로 돌아가 이제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