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40
제 40화
15장. 방심은 금물 – 3화
나는 도망치는 호르구스의 뒤를 쫓은 뒤, 이내 그와 마주친 자리에서 혈투를 벌였다.
호르구스는 검을 즐겨 사용하는 검사였지만, 애석하게 스탯이 썩 좋지 못했다.
검술 실력만 놓고 보면 라키스를 살짝 상회할 정도였다.
물론 그 정도만 되어도, 다수의 일반 병사들을 제압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
문제는 상대가 나라는 것.
호르구스는 풍부한 마력량을 기반으로 맹공을 퍼붓는 내 공격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고, 이내 낙마했다.
나는 호르구스를 지킨답시고 주변에 얼쩡거렸던 병사 다섯을 한 번에 파이어 월로 불태워 버렸다.
위엄을 확실히 보여 주자, 다른 병사들은 죽음이 두려워 더 이상 접근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호르구스에게 절대 근접 거리를 내어주지 않고, 헤이스트로 위치를 꾸준히 바꿔 가며 그를 괴롭혔다.
정말 집요하게 괴롭혔다.
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마법으로 전신을 마사지했다.
심안으로 살폈을 때.
호르구스는 물리 방어력이 제법 높았다.
하지만 마법 방어력은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었고, 덕분에 내 마법 공격은 트루 대미지 수준으로 팍팍 시원하게 박혔다.
“쿨럭, 쿨럭.”
호르구스가 거친 기침 소리와 함께 연신 피를 토해 냈다.
내상이 누적된 탓인지 쏟아져 나오는 피는 전부 다 검은 핏덩이들이었고, 안색도 대단히 나빠져 있었다.
“처음부터 나는 너와 평화 따위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단지 조용히 발톱을 숨기고 있었을 뿐이지. 너희들이 승리에 대한 확신에 취해 겁도 없이 달려들 때까지 말이야.”
“크으윽……. 이럴 수는 없다.”
쿠웅!
호르구스가 기어이 지친 몸의 하중을 버텨 내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그의 병사들은 내가 두려웠는지, 50m 정도나 되는 거리를 두고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호르구스를 지킨답시고 나서게 되면, 죽는 것은 기정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앞선 동료들의 희생으로 학습된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호르구스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시간을 벌어 주거나, 대신 희생하고자 하는 충성스러운 부하가 전혀 없었다.
“네 영지의 모든 것을 갖고, 잘못된 것을 모두 바로잡을 거야. 잔악무도한 영주 아래에서 고통 받는 영지민이 없도록, 누구보다도 깨끗한 영지로 만들 거다.”
“클클클……. 네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나?”
“뭐, 시행착오 정도는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너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사실.”
“개소리 집…….”
푸욱!
“끄억!”
호르구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놈의 무릎 위에 단검 하나를 꽂아 넣었다.
살점을 뚫고 들어가 연골을 그대로 헤집어 놨기 때문에, 최소 다리 불구는 확정이었다.
“내가 죽는다고 끝날 줄 아느냐? 내 외숙부께서 이 사실을 알면, 당장에라도 기사단을 이끌고 네게 복수하러 오실 것이다!”
“아, 브록스 백작을 얘기하는 모양이지?”
“아니……?”
나는 당황한 호르구스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대외비로 되어 있는 자신의 외숙부를 어떻게 아느냐는 눈치였다.
파라디소 노트(Paradiso Note) 덕분이었다.
지난번에 2주 동안 밤을 새워 가며, 한글로 꼼꼼하게 채워 둔 나만의 공략 및 인물 기록집이었다.
그 과정에서 호르구스의 가족도를 정리하던 중, 연결점이 있는 브록스 백작도 알게 됐다.
기억을 되짚어 본 결과.
브록스 백작은 죽었다 깨어나도 조카의 복수를 하러 올 수가 없었다.
애초에 브록스는 자신의 조카들 중에서 아끼고 좋아했던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브록스에게 혈연은 큰 아킬레스건이었다.
끝없이 영전하고 있는 그의 현재 커리어와 달리, 가족이나 친척 모두 악명이 높았다.
현재 이티마 제국의 기사단장으로까지 승진해 있는 그다.
그런 그가 폭군이나 다름없었던 조카의 복수를 위해서 5000km가 넘는 거리를 달려온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내색은 안 해도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아 시원할 것이다.
그나마 5000km가 되는 거리를 이동하려면, 중간에 통과해야 하는 왕국의 수만 네 곳이 넘었다.
영지까지 합치면 십수 곳이 넘어간다.
워낙에 앙숙인 왕국들이 국경을 두고 마주하고 있는지라, 그가 군사를 이끌고 이곳까지 제대로 올 가능성도 적었다.
‘브록스는 성마 대전의 첫 전투가 벌어졌던 그날, 백마기사단과 함께 장렬히 전사했지. 영웅으로 포장됐지만……. 사실 당시 마왕군의 선봉이었던 레나의 아티팩트 소드를 손에 넣으려다가 비명횡사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지.’
명예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에게 조카의 죽음은 아무런 메시지도 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너보다 충분히 많은 수를 내다보고 있으니까 걱정 마. 자, 죽기 전에 할 말은? 마지막 예는 갖춰 주지.”
“X이나 까라, 이 빌어먹을 X.”
온갖 악행으로 점철되고 욕설이 입에 밴 악당답게 마지막 유언도 간결하면서 또한 강력했다.
“잘 들었다. 나머지 소식은 저승 가서 듣고.”
나는 미련 없이 호르구스의 머리 위에 아이스 스톰 마법을 전개했다.
그러자 빙결 구체에 노출된 호르구스의 머리가 순식간에 단단하게 얼어붙었다.
나는 마침 옆에 숨이 끊어진 병사의 손에 쥐어져 있던 도끼를 발견했다.
일개 병사라고 하기엔 제법 가능성 있어 보였던 인재였지만, 악바리처럼 달려든 탓에 결국 목숨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후웅! 후웅! 후웅!
나는 도끼를 양손으로 잡고 휙휙 돌렸다.
이미 얼굴 전체가 얼어붙은 호르구스는 기절하거나,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그에게 저항할 힘 따위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부우우웅! 치이이잉!
이윽고 도끼가 호르구스의 얼굴을 그대로 강타했다.
다음 순간.
호르구스의 얼굴이 작은 유리구슬처럼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퀘스트 ‘첫 영지전 승리’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매력 50을 획득하였습니다! [보상으로 영지의 내정 최대치가 별도의 요구 사항 없이 50% 상승합니다.]“좋아. 바로 반영됐나?”
정보창을 연계해서 확인했다.
[내정 – 농업 : 050 / 075] [내정 – 상업 : 096 / 150] [내정 – 치안 : 188 / 300] [내정 – 과학 : 075 / 150] [내정 – 충성 : 200 / 300]과연 바뀌어 있었다.
이 정도면 영지 등급이 E등급까지는 아니더라도, F+ 또는 E- 등급이라고 할 수준까지는 됐다.
완전 소영지 수준을 벗어나, 은근슬쩍 중소…… 라는 단어를 끼워 넣을 정도는 된 것이다!
“항복! 항복하겠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영주인 호르구스까지 죽은 마당에 병사들이 싸울 정신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남은 400명의 병사들이 일제히 모든 무장을 해제하고, 완벽하게 백기 투항했다.
나는 병사들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회군(回軍)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하나.
이 전쟁을 예상하고 준비해 왔던 처음부터 내 목표는 단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마요르카, 로넬라 영지를 손에 넣는 것이었다.
지금이라면 마요르카 영지는 확정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리고 주요 병력이 궤멸된 로넬라 영지도 제대로 방어할 수 없을 공산이 컸다.
우리나 그쪽이나 장기 농성전을 위한 대규모 요새 하나 없는 것이 사실이었고, 누가 더 머릿수가 많으냐의 차이였기 때문이다.
“모두 이 기세를 몰아 마요르카 영지로 진격하자!”
“와아아!”
아군의 우레와 같은 함성이 들려왔다.
나는 이어서 포로들의 군복을 벗기고 모든 무기를 빼앗았다.
그리고 아군의 일부 병력을 떼어 내어, 포로들을 영지에 있는 감옥에 보내도록 지시했다.
전후 처리가 끝나기 전까지는 포로가 유사시 적군이 될 수 있는 만큼, 확실히 격리할 생각이었다.
그로부터 한나절 후.
우리는 바꿔 입은 군복을 이용한 위장으로 적을 속인 뒤, 단숨에 마요르카 영지의 외곽 경계망을 일점 돌파했다.
손쉬운 승리.
바로 영주 호르구스의 가족들을 모두 사로잡았고, 영지의 모든 병사들은 투항했다.
영지의 주인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잔여 병력 전체의 기수를 돌려, 로넬라 영지로 향했다.
아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천우신조의 기회를 놓칠 이유는 없었다.
* * *
하지만 자레드의 야심 찬 계획은 의외의 인물이 등장하면서 급격히 제동이 걸렸다.
자레드가 생각하지 못했던 인물, 카프리 백작의 등장 때문이었다.
카프리 백작은 로넬라 영지와 맞닿은 접경지대에 있는 미세리아 영지의 영주였다.
모두 소영지로 분류되는 크리비아, 마요르카, 로넬라 영지와는 다르게 미세리아 영지는 중(中)영지로 불리는 곳이었다.
당연히 경제, 상업, 군사 규모에서 세 영지를 충분히 아우를 수 있을 만큼 강한 세를 보유하고 있었다.
자레드는 거침없이 몰아치면 단숨에 로넬라 영지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카프리 백작의 대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랐다.
마치 돌아가는 판세를 분석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이 자레드의 본대가 도착할 무렵, 자신의 병사들을 대거 로넬라 영지에 보냈던 것이다.
군사적 지원? 아니었다.
직접 모습을 내비친 카프리 백작의 말에 따르면 중재를 위해 마련한 자리라고 했다.
긴급히 마련된 회담장에서 카프리 백작은 자신이 이득을 볼 생각으로 개입한 것은 절대 아니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저 자신은 평화를 추구하는 평화론자일 뿐이며, 로넬라 영지가 새로운 학살의 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자레드는 카프리를 보자마자 교활한 술수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확실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로넬라 영지를 언제 공격할까 고민을 하던 차, 자레드가 전광석화와도 같은 움직임을 보이니 당황하여 급히 대응한 것으로 보였다.
급히 마련된 회담장의 분위기는 당연히 좋을 리가 없었으나, 카프리 백작은 여유 가득한 미소와 함께 말을 풀어 나갔다.
“자, 이번 전쟁의 원흉인 호르구스 영주는 자레드 영주의 손에 죽었소. 또한 마요르카 영지를 완벽히 병합했지. 이것으로 원인은 제거되었고, 결과는 확실히 취했소.”
“제 생각은 다릅니다만. 원인 제공을 한 명만 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자레드가 이글거리는 눈빛을 전방에 앉아 있는 바트만에게 쏘아 보냈다.
하지만 선을 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카프리 백작의 영지가 자신의 영지에 비해 규모가 2배 이상은 큰 곳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병사의 규모도 2배 이상이었고, 무엇보다 카프리 백작의 스탯이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카프리 – Lv. 61] [근력 : 335][체력 : 99] [마력 : 25][지혜 : 11] [민첩 : 39][매력 : 11] [물리 방어력 : 125] [마법 방어력 : 125] [특수 성향 : 방패 방어술 A / 질긴 피부 A / 항마 대응 B] [일반 성향 : 회유, 외교, 견제] [아티팩트 ‘적월검’을 보유 중입니다.] [아티팩트 ‘유디트의 갑옷’을 보유 중입니다.]‘빌어먹을, 역시 방심은 금물이었어.’
드러낼 수 없기에, 자레드가 입술을 질끈 깨문 채 달아오른 화와 열불을 속으로 삭였다.
‘나중에 대륙 북부에서 중부 방향으로 진출하려면, 반드시 카프리 백작의 영지를 지나가야 해.’
잠재적인 적이 될 상대가 생각보다 조기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필이면 타이밍도 거지같이.
마음 같아서는 중재를 뒤엎고 한판 붙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카프리 백작의 실력이 좋았다.
카프리 백작 정도면 B-급 무장의 수준은 충분히 된다.
그리고 현재 상태로는 자레드가 그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절대 장담할 수 없었다.
특수 성향인 방패 방어술, 질긴 피부 그리고 항마 대응 모두 방어에 특화된 성향이기 때문이다.
마법의 원료가 되는 마력은 분명 넉넉하지만, 대미지에 관여하는 지혜 수치는 아직 부족하다.
‘지금 상태로 카프리 백작과 싸우면 필패야.’
어설픈 마법 공격으로는 승리는커녕, 시간만 끌다가 종국에 빈틈을 공략당할 가능성이 컸다.
카프리 백작이 좀 더 목소리를 높였다. 중재라기보다는 살짝 강압적인 뉘앙스가 담긴 목소리였다.
“바트만 영주가 배상금을 지급하는 선에서 정전협정을 맺도록 합시다. 평화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영지 주변이 화마(火魔)에 휩싸이는 것을 절대 볼 수가 없소!”
‘……카프리 이 새끼, 내가 나중에 반드시 네 목도 따 주겠어.’
자레드가 분노를 억누르고, 참을 인 세 번을 가슴속에 깊이 새겼다.
새로운 방해꾼의 등장.
탄탄대로를 걷는가 싶었던 자레드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