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400
제 399화
125장. 에필로그 – 2화
얼마 후.
“와……. 진짜 폐하예요! 예전에 귀여우셨던 시절의 폐하 모습 그대로예요!”
“헤이즈, 다시 말해 봐. 어땠다고?”
“귀여우셨던 때요!”
“이게 어떻게 귀여운 때야……. 완전 흑역사지.”
안의 내 캐릭터인 플레이어 ‘로하드’를 움직여 크리비아 영지에 도착한 자레드는 경악했다.
영지를 시찰 중인 게임 속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영락없는 환생 초기의 모습이어서다.
“저 망할 돼지 영주……. 안 죽나? 저승사자는 뭐 하나 몰라.”
“지금도 시찰하는 척하면서 별장에 술 마시러 가는 거라지? 아버지의 발톱의 때만도 못한 자식…….”
“바렛 자작님이 그립다. 어디서 저런 망나니 같은 놈이 영주가 되어 가지고…….”
영지민 NPC들은 하나같이 자레드를 향해, 악담의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었다.
“글라가스 경이에요, 폐하!”
“글라가스 경이라니, 놈이지. 저놈은 백번 죽어도 모자랄 것이 없는 녀석이었어.”
“맞는 말씀이에요, 폐하.”
헤이즈가 가리킨 자리는 말 위에 타고 있는 자레드의 바로 옆이었다.
즉, 라키스와 같이 가장 충성스러운 가신의 위치라는 얘기다.
한데 그 자리에는 라키스가 아닌 글라가스가 잔뜩 술에 취한 얼굴로 타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라키스, 오브렌, 아빌라를 위시한 충신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네.”
“저는 없을까요?”
“……저기 같은데?”
헤이즈가 열심히 화면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았지만, 아무리 봐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내가 겨우 찾아냈다.
자세히 보니 일행들과 한참 떨어진, 아니 아예 영지민들보다 훨씬 더 먼 자리에 있었다.
헤이즈는 연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는데, 어찌나 울었는지 얼굴에 검은 얼룩이 가득했다.
“어머, 어머, 어머.”
“진짜! 자레드, 저 쓰레기 같은 자식!”
“폐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때아닌 자아비판(?)을 하자, 헤이즈가 화들짝 놀라서 나를 말렸다.
말해 놓고 나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렸다. 자레드가 자레드에게 독설을 하는 광경이라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벤트를 수행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니고, 크리비아 영지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온 것인데.
내가 환생하기 전 모습을 그대로 빼닮아 있었다. 너무 똑같아서 놀라울 정도로.
“미안해, 헤이즈. 참 많이 힘들었지, 그때?”
“아녜요, 폐하. 그저 폐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간신들이 원망스러웠을 뿐이에요.”
붉게 충혈된 헤이즈의 두 눈은 글라가스의 모습을 원망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웬만해서는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 그녀지만, 글라가스만큼은 용서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생각이 많아지네. 훗날에 내가 아닌 내 후손이라도 저런 모습을 반복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
“옳으신 말씀이에요.”
“간신을 가까이하고, 백성을 업신여기고 등한시하는 자에게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으니까.”
“네, 폐하. 그래도 절망적인 게임 속의 분위기와 달리 현실은 정말 행복하고 아름답네요!”
“모두가 노력해 준 덕분이야.”
“폐하 덕분이죠!”
“이제 됐어! 볼 건 다 챙겨 본 것 같아. 에 새로운 패치 예고가 있기는 하지만, 알고 싶진 않네.”
나는 화면 한옆에서 계속 반짝거리고 있는 신규 업데이트 공지에 시선을 돌렸다가 거뒀다.
스치듯 본 광고 문구 몇 줄만 기억이 났는데.
동방 대륙보다 더 스케일이 큰 업데이트가 조만간 있을 것이라는 그런 공지였다.
딸깍. 딸깍딸깍.
나는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쉽게 게임 에서 로그아웃을 마쳤다.
현실은 로그아웃이라는 게 없는데, 게임은 언제든 마음먹은 대로 가능하니 참 편했다.
“헤이즈.”
“네, 폐하.”
“앞으로 나와 함께 나스 대륙과 지구를 오가면서 부지런히 살아 보자. 그리고 행복한 미래도!”
“저는 폐하가 가는 곳이면, 그리고 하시는 일이면 무엇이든 좋아요! 정말 좋아요!”
“이제부터 시작이야. 나스 대륙에 뿌린 내린 소중한 평화를 절대 놓아주지 않을 거야. 반드시!”
“제가 폐하의 곁에서 항상 힘을 보태 드리겠어요!”
“앞으로 더 번영할 우리 크리비아 제국의 품격에 맞는 국모가 되어 줘. 알겠지?”
“매사에 품위를 지키고, 범사에 감사하며, 또한 폐하께서 말씀하신대로 백성을 근본으로 생각하는 민본(民本)을 잊지 않겠어요.”
“고마워, 헤이즈. 나 역시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나는 헤이즈의 양손을 꼭 붙잡으며 다시금 의지를 불태웠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내면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진심이자 다짐이었다.
우려와 근심, 걱정을 불러일으켰던 모든 일은 이제 끝났다.
자레드의 몸으로 환생한 이후에 지상 최대의 과제이자 걱정이었던 성마 대전에서 승리했고.
이어진 동방 대륙과의 충돌에서도 적극적인 공세를 통해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내 고향인 지구를 위험에 빠뜨릴 뻔했던 차원 연합의 원정도 조기에 분쇄했다.
재앙으로 다가왔던, 세 개의 대사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은 것이다. 그래서 뿌듯했다.
이제 내 삶은 두 가지의 삶으로 구체화된다.
하나는 나스 대륙의 통일 제국인 크리비아 제국의 황제인 자레드 폰 유칼레스의 삶이고.
남은 하나는 지구에 살고 있는 신욱철 씨 아들, 신유희의 오빠로 살아가는 삶이다.
아버지와 여동생이 둘 다 각성을 했으니, 앞으로 지구에 와도 심심하지는 않을 듯하다.
특히 유희에게는 체계적인 마법 교육을 시킬 생각이다.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학창 시절에도 전교에서 수석 아니면 차석을 늘 따 놓은 당상처럼 하던 녀석이었으니까.
드디어 시작이다.
거친 시련과 역경의 파도와 고난의 바람을 넘어서 이제는 순풍을 타고 앞으로 나아갈 때가 도래했다.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치열하게 살 것이다.
내 나라, 내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 말이다.
“……후후.”
나는 상태창에서 깜빡이고 있는 내 마나 수련법의 명칭을 다시금 확인하며 미소를 지었다.
정말 나스 대륙에서 나는 수련법의 이름처럼 살았고, 기어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저 이름을 지을 때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지었던 이름이었는데, 결국 그 이름대로 됐다.
‘이젠 플레이어가 아닌 누군가의 남편으로, 황제로, 아버지로.’
달라질 미래를 상상하고 떠올리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휘이이이.
어디선가 불어오는 산들바람.
그것이 앞으로 펼쳐질 내 탄탄대로를 예고하는 듯했다.
그리고 꼭 그러길 바랐다.
반드시.
* * *
그 이후.
시간은 마치 유수와도 같이 흘러.
어느덧 5년이 지났다.
하루라는 단위가 무려 천 번하고도 825번 더 지났지만.
돌이켜 보니 눈 깜짝할 사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갔다.
처음 환생했을 당시에 스물넷의 청년이었던 자레드의 나이는 어느덧 서른넷이 되어 있었다.
겉으로 달라진 것이라고는 눈가에 아주 얕게 생긴 눈주름 정도가 끝이었지만…….
내면은 지난 십 년 동안 몰라보게 달라진 자레드였다.
매월 첫날.
항상 그랬듯, 제국 전체를 살펴보기 위해서 시찰을 나온 자레드는 제국의 상공을 날고 있었다.
새벽 일찍 헤이즈와 단란한 식사를 마치고 나온 홀가분한 발걸음이기도 했다.
“황제 폐하 만세!”
“폐하! 정말 감사합니다!”
예전에는 하늘에 나타난 ‘미확인 비행 물체’를 보고 깜짝 놀랐던 백성들이지만.
이제는 매월 초의 월례 행사가 되다 보니, 어느 누구도 당황하지 않고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원래는 백성들이 엎드려 큰절을 했지만, 과도한 예의는 필요치 않다며 손 인사로 대체하도록 어명을 내렸다.
‘모든 것이 순조롭다.’
상쾌한 봄바람을 맞으며 공중을 비행하고 있는 자레드의 얼굴에는 온통 미소가 가득했다.
뭐 하나 잘못되거나 안 풀리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특히 아버지와 여동생의 소식은 매번 자레드를 기쁘게 했다.
아버지 신욱철은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정말 전투 한 번 없이 오로지 농사 하나만으로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고, 큰돈을 벌었다.
아버지가 직접 개간하고 개량해서 팔고 있는 ‘각성초’는 각성자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신체 능력을 일시적으로 높이는 각성제인데, 부작용이 없어 수요가 많았다.
단,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식물이라 재배하기 까다로웠는데, 아버지에게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던 것이다.
한편, 신유희는 마법계 각성자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며 급성장을 경험하는 중이었다.
대한민국 전체 서열 Top 10에 드는 최상위 각성자.
잘나다 못해 너무 대단한 오빠를 둔 여동생이 걷는 탄탄대로이자 로열로드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유희는 자만하지 않았고, 매번 오빠인 자레드에게 가르침을 청해 들었다.
매번 지구에서 나스 대륙으로 돌아갈 때마다 언제 넘어올 거냐며 보챌 정도였으니까.
어쨌든 지구의 일은 잘 풀리는 중이었다.
재앙이라 부를 수 있는 아웃브레이크도 전혀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흘렀지만, 걱정되는 일보다 기대되는 일이 더 많아진 작금의 상황.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 * *
얼마 후.
“크으, 역시 드래곤 레어는 언제 봐도 멋있단 말이야. 황성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크잖아?”
나는 넓은 시야로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카스트로의 레어를 보며 탄성을 터뜨렸다.
카스트로의 레어에는 5년 전부터 같이 사는 사람이 생겼는데, 다름 아닌 베르하드였다.
티격태격하면서 서로 못 죽여 안달이 난 듯했지만, 사실 두 사람은 마법적인 부분에서 의견 일치를 보는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무엇보다 평생을 마법 연구에 골몰한 대마법사와 드래곤이다 보니, 지식의 깊이가 어마어마해 얘기가 끊이질 않는다고 했다.
그 덕분에 지난 5년 동안 공동 저자로 해서 집필한 책의 권수만 무려 60권에 달할 정도.
매달 한 권의 책을 꾸준히 써 온 셈이다. 이 정도면 영혼을 불태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샤아아아.
진즉에 내가 레어 근처까지 도착했지만, 오늘도 열띤 토론 중인 두 분은 내 방문을 눈치채지 못했다.
애초에 알람 마법진이 있는 곳을 요리조리 피해서 온 터라 기척도 못 느낀 모양이었다.
“카스트로, 몸은 이동하지 않고 영혼만 다른 세상으로 보낼 수 있는 고정 술식이 있을까?”
“멍청한 베르하드 놈아, 네 가까운 곳에 살아 있는 증거가 있는데 그걸 왜 나한테 물어?”
“가까운 곳에 누구?”
“자레드 폰 유칼레스. 이제는 노망이 나서 이름도 기억을 못 하는 게냐?”
“아……. 그렇지! 망할, 빌어먹을, 젠장! 진짜로 노망이 난 건가? 왜 기억이 안 났지? 으아아아!”
“크큭.”
베르하드의 때아닌 허당기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자, 카스트로가 내 존재를 알아챘다.
“웬 놈이냐?”
“조용히 카스트로 님의 레어 근처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접니다.”
“으흠, 올 때마다 재잘재잘 귀찮게 구는 불청객이 찾아왔군.”
카스트로가 눈을 흘겼다.
하여간 저 츤데레 근성은…….
매번 여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