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43
제 43화
17장. 영주님은 다르십니까? -1화
날이 밝기 전에 나와 병사들은 마요르카 영지의 곳곳을 수색하며 범죄 조직들을 일소해 나갔다.
그나마 도주를 시도했던 프루아가 반응이 빨랐던 편이었고, 나머지는 아니었다.
놈들은 내가 이렇게 빨리 움직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지, 저마다 사이좋게 아지트에 모여 있다가 일망타진되곤 했다.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이미 사전에 입수한 정보대로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를 우선적으로 잡아들였다.
그리고 반항하는 놈들은 절대로 살려 두지 않았다.
영지의 기강을 세우고, 범죄를 확실하게 뿌리 뽑기 위해서는 물러터진 선의보다 엄정한 법의 집행이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마요르카 영지에서 개벽이 일어났다.
기존의 감옥으로 모자라, 마구간과 헛간까지 개조해서 임시로 들어야 했을 정도로 감옥에 범죄자들이 넘쳐났다.
크리비아 영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채워지는 범죄자의 머릿수에 나는 경악했다.
그간 전 영주였던 호르구스가 얼마나 영지 관리를 개판으로 했는지 다시금 느낀 것이다.
“꼴좋다, 이 망할 X들!”
“언제까지 너희 세상일 줄 알았냐? 돌이나 받아라, 썩을 X들아!”
“새 영주님 만세! 만세!”
아침이 되었을 무렵.
대규모로 잡아들인 범죄자들을 감옥으로 데려가는 동안, 영지민들은 나를 향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영지민들이 대규모 범죄 조직 소탕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영지민들의 충성도가 13 상승했습니다!] [영지민들이 영주 ‘자레드’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무시하게 됩니다.]덩달아 기분 좋은 알림까지 이어졌다.
전임 영주가 할 수 있으면서도 절대로 하지 않았던 범죄 조직 청산을 하니, 영지민들은 하나같이 행복해하는 모습이었다.
“영주님, 정말 멋지십니다! 오늘 모습은 실로 제왕의 풍모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결정은 날카로우셨고, 실행은 신속하셨습니다!”
라키스가 구슬땀을 닦으며, 내게 뜨거운 감정을 토해 냈다.
제왕(帝王).
그 단어가 왜 이렇게 두근거리게 들리는 걸까?
물론 이제 영지 하나를 손에 넣었을 뿐이다. 그리고 소영지 두 곳을 가졌긴 하지만, 중영지 하나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갈 길은 아직도 멀다.
하지만 제왕이라는 단어는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뜨겁게 하는 힘이 있었다.
“고맙소. 오늘 이후로 치안대를 증원해 줄 터이니, 당분간 마요르카 영지의 치안을 유지하는 데 힘쓰도록 하시오. 크리비아 영지의 치안 유지는 치안관에게 맡기도록 하고.”
“예, 영주님. 우선 마요르카 영지민의 민심을 다독이고, 치안의 정상화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바로 그때.
내게 메시지 하나가 열렸다.
[라키스의 충성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충성도 50이 올랐습니다!충성도가 200이 되어, ‘1차 각성’ 상태에 돌입합니다!]
‘오, 드디어? 영지의 가신들 중에서 처음으로 1차 각성에 들어간 가신이 되는 건가?’
사뭇 진지하고 무거웠던 내 표정이 단숨에 밝아졌다.
1차 각성은 한계점에 도달한 가신이 충성도 200을 달성할 경우, 스스로 내면의 변화를 일으키며 성장하는 시스템이다.
레벨이 대폭 오르면서, 스탯이 덩달아 급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라키스의 나이는 불혹을 넘어 일반적인 육체 성장으로는 변하기가 어려우나, 정신적으로 한계를 뛰어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라키스가 좀 더 성장해 준다면, 영지의 운영은 한결 더 수월해져. 나의 충실한 심복이니까.’
기분 좋은 변화였다.
라키스도 그때 묘한 자신의 정신적 변화를 느꼈는지, 내게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신 라키스, 모든 것을 불태워서라도 영주님을 위해 충성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고맙소. 그대 덕분에 이번 전쟁도 승리할 수 있었소.”
나는 진심으로 라키스를 꼭 안아 주었다. 군신의 관계로서 건네는 애정이었다.
내가 현생을 각성한 순간부터 라키스는 올곧은 충성만을 내게 보여 왔다.
내심 그가 좀 더 쓰임새가 있는 가신이 되길 바라기도 했었다. 지금은 딱 C급 무장의 수준밖에는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1차 각성에 돌입했으니 최소 C+급에서 최대 B-급의 무장이 될 스탯을 가질 것이다.
그럼 그의 쓰임새는 좀 더 많아진다. 내가 아끼는 충신을 더욱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일단 저택으로 돌아가 영지의 상태를 살필 것이오. 경은 내가 별도의 지시를 내리기 전까지는 조직의 잔당을 소탕하고, 영지의 치안을 유지하는 데 전념토록 하시오.”
“예, 영주님. 맡겨 주십시오.”
그렇게 수습은 끝났다.
영지의 안정화와 정상화는 가신들에게 맡길 차례다.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개판 오 분 전이었던 이 영지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저택으로 향했다.
오늘은 헤이즈도 없으니…… 혼자서 열심히 서류들을 확인해야겠지 싶다.
“갑자기 헤이즈가 보고 싶네.”
늘 곁에 있던 사람이 없던 탓일까.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중얼거렸다.
* * *
얼마 후.
나는 내 손으로 직접 식사를 – 아직 크리비아 영지에서 하녀들이 도착하지 않았다! – 만들어 먹고 난 뒤, 방으로 돌아와 획득한 아티팩트부터 살폈다.
[마하트 3세의 눈물] [분류 등급 : 3성] [옵션 1 : 모든 스탯 25 증가] [옵션 2 : 마하트 3세의 무덤의 곳곳에 닫혀 있는 석문을 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열쇠입니다.] [옵션 3 : 마하트 3세의 원혼을 달래어 저주를 털어 낼 경우, 1번 옵션에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단, 시간이 다소 소요됩니다.] [공간 왜곡의 시계] [분류 등급 : 4성] [옵션 1 : 반경 20m 밖에서 날아드는 마법의 속도를 20% 수준으로 크게 낮춥니다.] [옵션 2 : 단, 1번 옵션의 활성화를 위해서 왜곡의 대상을 지정해야 합니다. 최대 1명이 가능하며, 비(非)지정자의 공격에는 왜곡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옵션 3 : 은신 감지 – 은신, 투명화 등으로 모습을 숨긴 적의 실루엣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이즐 : 실패한 99번째 장검] [등급 : 1성] [옵션 1 : 대마법전에 특화된 항마검입니다.]‘마하트 3세의 눈물은 고대 무덤을 공략해서 저주를 풀고 나면, 나중에 최소 5성급으로 올라가게 될 거야. 지금은 스탯이 좀 아쉽지만, 잠재력이 높은 아티팩트를 손에 넣은 것과 마찬가지지.’
나는 마하트 3세의 눈물을 목걸이에 맞춰 착용했다. 그러자 즉각 모든 스탯이 25 올랐다.
나중에 옵션 3번이 발현되면, 올 스탯의 증가치가 대폭 상승한다. 그러면 시너지효과는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터이다.
‘공간 왜곡의 시계가 있으면 마법사와의 전투가 한결 수월해지지. 특히 일대일이라면 더더욱.’
공간 왜곡의 시계도 만족스러웠다. 은신 감지는 쓸 일이 많다.
던전에서도 모습을 숨기거나, 아예 인비저빌리티 마법을 사용하는 녀석도 꽤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투명체들을 마법이나 보조 수단을 쓰지 않고, 형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점이 컸다.
‘모이즐의 검은 레나에게 선물로 주면 되겠다. 모이즐, 우리 언젠가는 꼭 봅시다.’
나는 장검에 새겨져 있는 모이즐의 이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꼭 우리 영지로 데려오고 싶은 대장장이 네임드다.
우스갯소리로 녹슨 철을 갖다주어도, 지상 최고의 명검으로 만들어 낸다는 장인.
그는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과 일에 관한 신념이 강한 사람이라 돈 같은 수단으로는 절대 데려올 수가 없다.
마음으로 진심을 전달할 요소가 필요한데, 그것도 단지 읍소하고 조른다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대륙에서 으뜸으로 손꼽힐 수 있을 대규모 공방을 영지에 만들어 주거나, 아니면 모이즐의 밑에 들어가 제자로 묵묵히 일하면서 진심을 전달하거나.
에서 모이즐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던 유저 – 영주 – 들이 했던 방식이었다.
전자는 백만 골드, 그러니까 전생의 가치로 따지면 1조 원에 해당하는 시설이다.
지금 우리 영지의 사정으로는 절대 무리. 아니,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당분간은 꿈도 못 꾼다.
유일한 방법은 후자인데……. 영지 일을 다 팽개쳐두고, 그의 제자로 들어가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일단 내가 마요르카 영지에서 앞으로 계획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첫째는 고대 무덤을 공략해서 더 많은 힘을 얻는 것.
둘째는 특수 기술자를 찾아서, 지하자원 중의 하나인 ‘켈디아’를 채굴하는 일이다.
켈디아는 철보다 좀 더 높은 강도를 가진 금속으로 아직 나스 대륙에는 등장하지 않은 금속이다.
채굴 기술자의 정교한 채굴 작업이 필요한 데다가 가공하는 작업이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발견한 사람이 없었다.
실제로 등장하는 시점도 한참 후라서, 성마 대전 발발 3년 후다. 앞으로 13년이나 남았다는 얘기.
하지만 일단 켈디아를 이용해서 무기를 생산할 수 있다면, 철보다 강한 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
검으로 같은 무장을 한 병사라고 하더라도, 무기의 수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제련법은 내가 알고 있으니까. 일단 채굴 기술자부터 찾아보자.’
제작보다 앞서 필요한 것은 원석의 채굴. 나는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기술자를 구할 참이다.
* * *
아침.
“정말 개판이네! 호르구스 자식, 영지 재정을 얼마나 사유 재산으로 착복하려 했으면, 직책만 만들어 놓고 사람을 배치하지 않은 곳이 이렇게 많아?”
밤을 꼬박 새워 영지의 서류들을 검토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처음에는 영지 곳곳에 만들어진 직책들이 많아서, 호르구스가 제법 영지 관리를 했던가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전부 유령 직책이었다.
가짜 이름이 적혀 있고, 그곳에 매월 봉급이 꾸준히 지출됐던 것이다.
심지어 그 자료들은 공개 자료에 포함되어, 호르구스가 영지를 꽤 섬세하게 다스린 것처럼 포장까지 되어 있었다.
[농업 담당자의 불만이 극에 달했습니다! 영지의 농업 내정 수치가 즉각 5 하락합니다.] [내정 – 농업 : 006 / 050] [상업 담당자가 배치되지 않은 지 3개월이 지났습니다! 또다시 영지의 상업 내정 수치가 즉각 5 하락합니다.] [내정 – 상업 : 022 / 050]“헐.”
눈앞에서 영지의 내정 수치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나는 입이 떡! 벌어지고야 말았다.
저 수치를 올리기 위해서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몇 달을 고생해야 하는데!
그렇게 힘들게 쌓아 올려야만 하는 스탯이 추락하니, 마치 마음도 덜컹 내려앉는 듯했다.
“미치겠군.”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크리비아 영지에서 내정에 집중하고 있는 오브렌, 아빌라를 이곳에 데려올 수는 없다.
그러면 대체할 인재가 필요한데, 서류를 검토해 본 결과 괜찮은 가신이 하나도 없었다.
마음에 든 사람이 있을라치면, 서류 마지막에 ‘사망’, ‘추방’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도장이 찍혀 있을 뿐이었다.
호르구스가 죽여 버렸거나, 영지에서 추방해 버린 것이다.
“일단 나가자.”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주어진 서류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만한 인재가 없으니, 남은 것은 현장으로 가는 것뿐이다.
종이 조각보다 내 눈과 심안으로 직접 판단하는 것이 더 빠르고 정확할 테니까.
* * *
6시간 후.
“신이 버린 땅인가?”
마요르카 영지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살폈지만 전혀 성과가 없었다.
특히 현재 주어진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내정 담당자들부터 살폈고, 휘하의 사람들도 살폈다.
결론은 없음.
아빌라나 오브렌처럼 적재적소에 배치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일부는 영지와 직책을 버리고, 야반도주를 하기도 했다.
십중팔구 호르구스에게 수혜를 본 가신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내뺀 것이겠지.
“흠…….”
깊은 침음성과 함께 머리가 복잡해졌다.
한데 바로 그때.
마침 영지 순찰을 돌고 있던 라키스가 나를 보고는 황급히 달려왔다.
말에서 내려서도 전력으로 질주해 오는 것을 보니, 전할 소식이 있었던 모양이다.
“무슨 일이오?”
“영주님, 마요르카 영지에 디바니 마을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남서쪽에 있는 마을 말이오?”
“예. 마을에 얼마 전 부임한 관리가 있는데, 일처리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영지민이 눈물까지 흘리며, 제발 마을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게만 해 달라고 제게 애원을 하는 통에…….”
“그렇게 마을을 엉망으로 운영하고도 배짱 좋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거요?”
“그것뿐만이 아니라,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춘화(春畫)를 그리기 바쁘다고 합니다. 정무를 보는 관아에 들어가면 온통 낯 뜨거운 그림뿐이라고 합니다.”
“엄히 다스려 영지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겠구려. 앞장서시오.”
“예!”
나는 라키스를 앞세워 정신 나간 관리가 배짱 좋게 술이나 마시고 있을 관아로 향했다.
엄단!
자신의 본분을 잊은 관리에게 장밋빛 미래는 있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