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46
제 46화
18장. 헤일, 마하트 – 1화
“영주님, 혹시 제가 놓친 게 있나요? 기억을 다시 되짚어 보아도 입구까지의 모든 루트를 놓치지 않고 그려 넣은 것 같은데…….”
“확실히 빠짐없이 잘 그렸어. 헤이즈가 지도 그리기에 이렇게 탁월한 솜씨를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지도를 즐겨 그렸었어요. 좀 특이한 취미죠.”
“지금 내게는 귀중한 취미가 된 것 같다. 정말 고마워.”
“별말씀을요! 저는 영주님이 필요로 하시면 언제든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그녀에게 봉사나 헌신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매번 흠칫하게 된다.
유독 더 많은 희생을 하려는 듯한 의지의 뉘앙스로 들린다고 할까?
어쨌든 마하트 3세의 무덤까지 다녀온 사전 탐색은 괜찮았다.
헤이즈가 주변 지형까지 남김없이 지도에 표시해 준 덕분에 다시 찾아가는 과정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거꾸로 돌아오는 길도 마찬가지고.
왕복하는 동안 수확은 하나 더 있었다. 헤이즈가 사용하는 치유술의 등급이 오른 것이다.
시스템 메시지로 표시된 것은 아니고, 내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전보다 더 짙은 치유의 기운이 스며드는 것을.
확실히 성취가 빠르다.
특수 성향을 든든하게 갖고 있기 때문인지 일반적인 성취 속도에 비하면 10배 이상 빨랐다.
무서운 점은 특수 성향이 잘 세팅되어 있는 유망주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성장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는 것이다.
둔화가 되는 것은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의 얘기고, 그전까지는 멈추지 않는 기관차처럼 폭주한다.
옆에서 불을 잘 피워 주기만 한다면 – 내가 잘 관리하면 – 추진력은 떨어지지 않는다.
“헤이즈.”
“네?”
“메리는 언제 도착하지?”
“요리장님이 생각보다 옮겨야 하는 조리 도구들이 많으신 모양이에요. 이틀 정도 걸릴 것 같아요.”
“음……. 그러면 오늘은 헤이즈가 만든 콩고기 볶음을 좀 먹고 싶은데, 괜찮을까? 간만에 좀 여유 있게 쉬면서 식사를 즐기고 싶다.”
“영주님을 위한 음식이라면, 자다가 일어나서도 만들어야죠! 네, 맡겨 주세요!”
“맛있게! 부탁해.”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히힛!”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헤이즈가 조리실로 달려 나갔다.
함께 무덤까지 다녀오느라 지쳤을 텐데, 그런 내색 하나 없이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준다는 헤이즈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던데, 이게 그런 느낌일까?
그녀의 헌신에 이따금씩 마음이 흔들릴 뻔한 적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깊은 사랑을 받는다는 느낌이 얼마나 행복한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사랑, 분명 좋은 단어다. 설레는 감정이고, 행복한 기억이다.
하지만 아직 나는 이 세계에서 제대로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
마요르카 영지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그래 봤자 대륙 전체의 스케일로 놓고 본다면 작은 군소 세력에 불과할 뿐이다.
영지의 일과 발전, 내정과 군사에만 신경을 써도 모자를 판에 연애까지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면, 확실히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하고 싶었다.
지금은 내 곁에 누가 있든 간에 제대로 마음을 써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연애는 무의미하잖은가?
촤르륵!
나는 다시 지도를 펼쳐, 그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마하트 3세의 무덤.
에 있던 모든 던전이 그랬듯이, 이 무덤에도 버그와 꼼수는 존재했다.
이런 식의 지하 무덤은 나스 대륙에 꽤 많다.
개발진의 취향인지는 몰라도, 고대 관련 던전을 전부 지하에 만들었던 것이다.
나 역시 지상이나 특수 공간형의 던전보다는 지하 던전을 좋아했다.
지하 던전 특유의 눅눅한 습기와 음침한 분위기가 좋아서다.
또한 적당한 긴장을 하게 만들면서, 숨겨진 버그나 꼼수를 찾기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하 무덤은 지하 던전보다 내부 구조가 복잡한 대신에 경우에 따라서는 아티팩트를 좀 더 얻을 수 있어 좋았다.
스스슥.
나는 지도 위에 숫자 3을 썼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나를 제외하고 공략에 참여할 최대 인원의 숫자다.
마하트 3세의 무덤은 특이점이 있다.
바로 입장 인원이 늘어날수록 그들의 수준에 맞춰 내부의 난이도가 올라간다는 것이다.
던전 출시 후 1년 후에 개발진이 집필한 메이킹 노트에 따르면, 인해전술로 공략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고 적혀 있었다.
물론 개발진이 이 사실을 초창기부터 알려 주지는 않았었다.
덕분에 많은 길드들이 머릿수만 믿고 달려들었다가 몰살을 당하고, 경험치와 아이템을 드롭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었다.
나는 개발진이 식은 죽 먹기처럼 쉽게 공략할 수 있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런 마음으로 공략하는 도중에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5인에서 7인으로 바꾸었을 때는 달라졌던 던전의 난이도가, 3인에서 4인이 되었음에도 완벽하게 똑같았을 때가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알게 됐다.
특별한 경우.
즉, 레벨이 낮은 유저가 참가할 경우에는 시스템상에서 그 유저를 ‘깍두기’ 취급한다는 것을.
그리고 다양하게 유저를 교체해서 도전한 결과, 커트라인이 10레벨 이하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지금의 나는 던전에 들어가도 깍두기라는 말씀. 이럴 줄 알고 레벨업을 미뤄 왔지.’
당장에 5클래스 마법사와 한바탕 붙어도 충분히 호각지세를 이룰 수 있는 내가 깍두기 취급이라니!
이를 알면 무덤을 지키는 병사들이 얼마나 황당해할까.
하지만 꼼수와 버그는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8레벨인 나는 당당히 빈틈을 활용할 자격이 있다.
‘문제는 남은 3인을 누구로 뽑느냐는 것인데…….’
완전 정예일 필요는 없다.
마하트 3세를 공략할 약점은 확실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역할 분담을 위해 겹치지 않는 직업군으로 해서, 내가 원하는 3인을 선발할 필요가 있었다.
동시에 외부인이나 출신을 알 수 없는 용병이 아닌, 가까운 사람을 써야 한다.
‘일단 당사자들의 의견이 중요하니, 먼저 물어봐야겠군.’
나는 머릿속으로 3인을 확정 지었다. 내가 원하는 역할로 적재적소에 써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무덤 공략에 대해 골몰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이.
“영주님! 콩고기 볶음과 함께 채소를 듬뿍 준비해 왔답니다!”
긴 머리를 찰랑이며 쟁반 한가득 음식을 준비해 온 헤이즈의 목소리가 들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지!
먹고 해야겠다.
* * *
그 시각, 렌투스 제국에 위치한 소도시 모랄레스.
베르하드는 자신의 앞으로 전달된 서신과 두둑한 금화 주머니를 보고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허, 이 녀석 봐라?”
서신의 첫 줄을 읽은 베르하드의 첫 반응은 헛웃음이었다.
왜냐하면 분명 ‘벨탄’이라는 사람에게 보낸 서신인데, 내용은 베르하드로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보고 금화는 넉넉하게 줄 테니, 이걸로 경비 삼아서 와 달라 이거냐? 하하하!”
베르하드가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여비로 삼기 충분할 정도로 금화를 넉넉하게 부치기는 했다.
여기서 크리비아 영지까지 최고급 마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산해진미를 다 찾아 먹어도 충분히 남을 금화였다.
뭐, 여차하면 텔레포트로 이동할 수도 있다. 마음이 급하면 말이다.
“벨탄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 베르하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장 의문스러운 점은 이것이었다. 누구에게도 알린 적 없는 사실을 자레드가 어찌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말도 이상하지. 5클래스로 뛰어넘을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는 실마리? 무슨 경지가 눈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고, 네놈이 어찌 5클래스의 경지에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단 말이냐?”
베르하드는 서신 속에 적혀 있는 자레드의 이름을 보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이상했다.
마법사의 경지라는 것은 매우 오묘해서 자기 자신이 다음 클래스로 넘어갈 준비가 되었는지 아닌지 절대 알 수가 없다.
그것을 알 수 있다면!
평생을 바쳐서 9클래스의 극의에 닿고자 노력하다가 안타깝게 죽어간 8클래스 마법사들이 그토록 수두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일찌감치 깨닫고, 준비가 안 되었다면 깨끗하게 포기했을 테니까.
하지만 지방의 어느 미친X이 서신을 보냈다고 무시하기에는 동봉해서 보낸 금화의 양이 너무 많았다.
“설마 내가 기억하는 바렛 자작의 아들, 그 망나니 자레드가 맞는가?”
베르하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레드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알고 있는 이름과 동명이인이 아닐까 싶었는데, 영주라고 소개한 내용을 보니 바렛의 아들 자레드가 맞는 듯했다.
장난은 아니겠지 싶었다.
아무리 할 일이 없다고 할지라도, 무례일 수 있는 행동을 함부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은 9클래스의 마법사다.
비록 지금까지 누구를 함부로 죽여 본 적은 없지만, 자신을 욕보인 사람은 절대 가만두지 않는다는 것을 이 녀석이 모를 리 없었다.
“이 녀석……. 날 궁금하게 만들 계획이었다면 성공했군! 좋아, 조용히 이동해 볼까?”
베르하드는 조용히 크리비아 영지로 향하기로 했다.
자레드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그와 영지의 운영 상태를 한 번 지켜볼 요량이었다.
서신을 받고 냉큼 달려가는 것도 확실히 모양새가 좋아 보이진 않았으니까.
자고로 대마법사란…… 무게감이 있어야 하는 법 아닌가?
* * *
그 시각, 크리비아 영지.
“다녀오세요, 스승님! 다녀오세요, 클로이 언니!”
엘라와 클로이가 자레드의 연락을 받고, 마요르카 영지로 출발하고 있었다.
레나는 두 사람을 배웅하고는 자신을 찾아온 미아를 만났다.
“언니, 나랑 연습하러 가요!”
“그래, 미아! 이리 와!”
요즘 미아와 레나는 각각 마법과 방어술 연습에 매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둘 다 실력이 제법 물이 오른 상태였다.
마침 엘라가 미아의 성취를 살펴봤는데, 12살의 어린아이라고 하기에는 빠른 속도로 마법을 습득하고 있었다.
자레드의 속성 가르침이 있었다고는 하나, 벌써부터 매직 미사일 마법을 제법 능숙하게 컨트롤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각따각. 따각따각.
마요르카 영지로 향하는 마차 안에는 엘라와 클로이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바로 이자벨이었다.
그녀 역시 두 사람처럼 자레드의 연락을 받고, 급히 합류한 상태였다.
“네가 이자벨이구나? 자레드 님께 얘기 들었어. 영주 저택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맹훈련 중인 주술사가 있다고 들었는데. 반가워.”
엘라가 먼저 악수를 청했고, 클로이는 옆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
하지만 이자벨은 빤히 엘라를 쳐다본 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러자 엘라가 말했다.
“뭐 해? 민망하잖아?”
“엘라 씨, 우리가 굳이 인사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무 사이도 아닌 데요.”
그 순간, 마차 안에는 짙은 한기가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