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5
제 5화
2장. 꼼수는 나의 힘! – 3화
힘주어 말하는 헤이즈에게서 뜨거운 투지가 느껴졌다.
정말 헤이즈는 해바라기처럼 나만 보고 있었다. 특수 성향에 있는 ‘헌신’의 현신, 그 자체였다.
헌신이 있으면, 헌신할 대상에게 정말 맹목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모든 것을 바치기 때문이다.
목숨, 또는 마음까지.
그 어떤 것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지 파악이 끝나는 대로 헤이즈를 적성에 맞는 옷으로 갈아 입혀야겠어. 저 정도의 특수 성향은 하녀에 머물 낮은 재능이 아냐.’
그녀에게 적성에 맞는 자리를 찾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녀로서의 일은 지금도 완벽하게 하고 있지만, 하녀로 두기에는 그녀가 가진 잠재력이 컸다.
영지를 운영하는 데에 있어서는 한 명의 유능한 하녀보다 한 명의 인재가 더 중요하다.
“헤이즈, 콩고기 가져올 때 영지 서류, 가신 서류들 좀 정리된 것 전부 가져와 줘.”
나는 헤이즈에게 요리 외의 추가 부탁을 했다.
식사가 끝나는 대로, 영지 내부 정보에 대한 심도 높은 파악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일단 먹어 볼까?”
내키지 않는 식단이지만, 나는 힘껏 포크를 들어 야채와 채소들을 양껏 찍어 올렸다.
“으으, 오이 향 싫어.”
“하아, 가지도 있네?”
“당근, 이거 엄청 떫은데!”
“살인범은 하나도 없고 죄다 잡범이네. 아, 진짜! 이렇게 먹고 살아야 하나?”
굳은 결심을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먹으려고 하니 온통 싫어하는 야채와 채소투성이였다.
“울고 싶다, 진짜.”
나는 반쯤 흐느끼며, 억지로 채소들을 한입에 털어 넣고 우적우적 씹기 시작했다.
그러자 알싸한 향과 함께 묘한 맛들이 톡톡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익숙한 야채와 채소를 먹을 때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푸욱……! 와, 이거 무슨 먹다가 버린 썩은 치즈를 씹는 맛이 나냐?”
“이건 한여름에 겨드랑이에서나 날 법한 냄새가…….”
의 세계관 내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식물들 – 이 식물들이 다이어트 효과를 증폭시켜 주기 때문에 반드시 먹어야 한다. – 을 먹을 때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맛이 났다.
썩은 나무껍질만 먹고 사는 애벌레를 산 채로 씹어 먹는 듯한 냄새.
콧물과 함께 흘러내린 코딱지를 같이 씹어 먹는 듯한 괴이한 식감.
상한 우유에 된장을 섞고, 거기에 코를 들이박고 있는 것 같은 지독한 울렁거림까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을 정도로 최악의 맛이었다.
“푸화아악!”
결국 참지 못하고 입에 담았던 것들을 모두 뱉어냈다.
토악질을 하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맛이 고약했다.
“아냐, 시작부터 이래선 안 돼. 다시, 다시 참고 먹자.”
나는 양쪽 볼을 세게 후려치며, 다시금 의지를 다졌다.
“욱. 우욱. 어윽.”
그리고 한참 동안.
집무실에서는 나의 헛구역질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 * *
[멜린 나물을 먹은 효과로 침술을 통해 얻은 ‘지방 분해 활성화’ 상태가 촉진됩니다.] [아스파 잎을 먹은 효과로 ‘신진대사 증진’ 상태로 돌입합니다. 평소보다 2배 이상의 칼로리가 추가 소모됩니다!] [강렬한 자극이 활성화됩니다. 지방 450g이 즉각 분해되어 배출되었습니다!]“우와, 또 빠졌어!”
식사를 마치자마자, 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체중이 빠졌다.
채식을 한 보람이 있었다.
시스템이 체중 감소라는 확실한 보상을 주었던 것이다.
특히 맛이 고약해서, 쌍욕을 하면서 참고 먹었던 멜린 나물과 아스파 잎이 지방 분해의 일등공신이었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도 쓰다더니 딱 그런 모양이었다.
다행히도 식사가 끝날 즈음에 헤이즈가 준비해 온 콩고기가 너무 맛있어서, 안 좋았던 채식의 기억은 말끔히 사라졌다.
당분간은 식사 때마다 그녀에게 꼭 헤이즈표 특제 콩고기 볶음을 메뉴로 주문할 참이다.
식후의 차 한 잔과 함께 식사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을 무렵, 헤이즈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녀의 양손 위로 한가득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아고고고, 죄송해요. 제가 몸도 작고, 손도 작아서…….”
그녀의 말대로 헤이즈는 아담한 스타일이었다. 손도 어린아이처럼 가늘고 작았다.
뭐, 전부 다 작은 것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리 줘. 내게 주면 돼.”
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녀에게서 서류들을 넘겨받았다.
하지만 헤이즈는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영주님! 죄송해요! 제가 제대로 일을 해야 하는데…….”
“왜? 손이 모자라면 내가 도울 수도 있는 거지. 신경 쓰지 마.”
“그게, 예전의 영주님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헤이즈가 말끝을 흐렸다.
나는 바로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 왜냐면 내가 그녀에게 저질렀던 일이었으니까.
예전의 나는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게 만드는 귀찮은 일이 생겨도 미친 듯이 화를 냈던 망나니였다.
하지만 그건 예전의 나지, 지금의 나는 아니다. 앞으로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많이 힘들었지? 미안해, 헤이즈.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 거야. 혹시나 예전의 내가 네게 한 잘못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번 사과할게.”
나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사과를 전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망나니 같았던 예전의 내 곁에서 그래도 늘 불평불만 않고, 헌신해 준 그녀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영주님……. 흐흑. 죄송해요. 감동해서 눈물이 나와 버렸어요.”
“앞으로 많은 것이 달라질 거야. 그만큼 네게도 많은 일이 주어질 테니, 항상 긴장하고 있도록 해.”
“네, 영주님! 얼마든지 저를 찾아 주세요!”
헤이즈는 기합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에너지까지 뿜뿜 넘치는 것을 보니, 당분간은 열심히 굴려도 될 것 같다.
영지 전후 사정을 파악하려면 확인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닌 만큼, 그녀가 좋은 조력자가 되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몇 시간 후.
삐그덕, 삐그덕.
“에라이, 진짜.”
의자에 앉아 서류를 보던 나는 신경질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살이 무럭무럭 찐 탓에 의자가 엉덩이에 꽉 끼었던 것이다.
그래서 대충 바닥에 철퍼덕 앉은 뒤, 계속해서 서류들을 살폈다.
이 서류들은 영지에 관한 정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들로 헤이즈를 시켜 가져오게 했던 것들이었다.
보면 볼수록 내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갔다.
그리고 종국에 이르러, 지도상에 보이는 영지의 위치까지 모두 확인했을 즈음.
“이 영지, 어떤 영지였는지 기억났어. 나, 좀 많이 망한 것 같은데? 후아.”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내가 영주로 있는 이곳, 크리비아 영지.
여기는 영지 중에서도 F급 영지로 분류되는 곳이다.
쉽게 비유할 수 있는 단어로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한기, 척박, 절망, 마수, 가난, 약탈, 습격, 도망, 악몽.
긍정적인 단어가 보이는가?
보이지 않는다면 정확히 본 것이 맞다.
크리비아 영지는 나스 대륙의 최북단에 위치한 곳이다.
일 년의 절반은 겨울이고, 나머지 절반도 겨우 추위를 면할 수준의 초봄 날씨 정도밖에 안 되는 척박한 영지다.
농사? 당연히 안 된다.
씨를 뿌리는 족족 얼어붙기 일쑤고, 그나마 날이 좋아 새싹을 틔워도 해충 때문에 얼마 못 가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영지의 주 수입원은 곡물 생산을 통한 농경, 상업 활동이 아닌 외부 경제 활동이 전부였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크리비아 영지의 북동쪽에 있는 ‘악몽의 숲’의 마수를 잡으러 온 몬스터 헌터들에게 세금과 통행료를 걷는 것.
두 번째, 영지 직영의 상단으로부터 세금과 이익금의 일부를 받는 것.
이것이 영지 수입의 전부였다.
나는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원망하듯 말했다.
‘신이시여, 혹시 두 번 죽으라고 저를 환생시키신 겁니까?’
빌어먹을 영지의 하늘은 흐리고 으스스하기 그지없었다.
일 년에 햇빛이 제대로 드는 날도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면 나는 100% 사망 확정이야. 아니, 두 번 죽을지도 몰라. 자연사로 죽고, 영지민이 반란을 일으켜서 내 시체를 도륙 낼 거라고!’
쾅! 쾅쾅! 쾅!
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몸뚱이부터 영지까지.
하나도 마음에 드는 게 없다.
‘아니지, 아니야. 생각해 보니 크리비아 같은 대륙 외곽 영지에 관련된 무슨 꼼수가 있었던 것 같은데.’
처음에는 기억이 잘 안 났는데,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몇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크리비아 영지처럼 대륙 최북단의 영지는 척박하기는 하지만 다른 형태로 쓸 수 있는 꼼수가 존재한다.
이를테면 지하자원 이벤트 같은 것인데,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특수 광물을 선점하는 것이다!
그러면 고가에 광물이 팔리게 되기 때문에 떼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망할 레벨, 레벨이 문제야. 레벨 1로는 그런 꼼수는 ㄲ도 시작할 수가 없다고.’
나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나는 꼼수들은 참 많은데, 영지에 좋은 것들이 참 많은데!
지금 상태로는 쓸 수가 없다.
레벨업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던전 공략은 필수다.
하지만 마력과 지혜를 제외한 스탯을 놓고 보면 정말 최하급 무장의 수준이었다.
비유하자면 역사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스탯이 워낙 형편없어서, 어디 구석의 한지에 처박아 놓고 존재조차 까먹고 마는 그런 무장의 스탯이었다.
‘진짜 기가 막힐 정도로 완벽하게 엑스트라 포지션이네.’
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나는 늘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 의 세계관에서는 완벽한 엑스트라다.
그나마 영주 엑스트라 69번 같은 번호 명칭 대신, ‘자레드’라는 이름이라도 있는 것이 다행이라 여겨질 정도다.
‘일단 계획의 큰 틀을 잡아 보자. 신세 한탄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 빠르게 이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 시간만큼 나는 도태되는 거야.’
전생에 허무하게 과로사로 죽은 나다. 그것도 회사의 소모품처럼 굴려지다가 죽은, 실로 허무한 최후였다.
현생에서도 그런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울러 세계의 수많은 엑스트라 중 한 명으로 소모되어 사라지고 싶지도 않았다.
다른 지역의 영주가 포로로 사로잡은 나를 보고, 낄낄 웃어대며 ‘참수’ 명령을 내리는 치욕적인 최후를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일단 초고도비만 상태부터 해결하자. 사람을 부리는 영주의 위치에서 매력 수치가 0이라는 건 최악이야. 어느 누구도 내 밑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을 거라고.’
[초고도비만]나는 스탯창에 있는 경고 문구를 보며 생각했다.
초고도비만의 상태 이상을 해제해야 매력 0의 저주가 풀린다.
지금 내 상태는 누가 봐도 인상을 찌푸리게 되며 인간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도 전혀 호감을 느끼지 못하는 매력 0의 상태다.
사람이 사람 취급을 못 받는 것이다. 그런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첫째, 초고도비만의 해결을 최우선으로. 체중 감량 꼼수는 이미 침술로 사용하고 있으니, 여기에 운동까지 확실하게 곁들이자.’
목표 하나, 체중 감량.
지상 최대의 과제로 지금의 내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나는 쓰레기다. 완벽하게 쓰레기!’
강력한 일침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둘째, 내가 알고 있는 버그 리스트와 꼼수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서 반드시 강해져야 해. 다이어트와 심안 꼼수는 시작일 뿐. 앞으로도 강해지기 위해서는 절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목표 둘, 스탯 성장.
폐급이나 다름없는 현재의 스탯 상태를 최소한 구색은 갖춘 상태로 성장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자신을 통솔하는 영주가 생각한 것과 달리 약해빠진 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종종 지방의 소규모 영지에서는 반란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에서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지방 군소 영지의 반란, 쿠데타 소식을 들었다.
그때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이름이 휙휙 바뀌는 영주들의 이름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얼마나 영지 관리를 개떡같이 하길래 부하에게 저리 쉽게 목숨을 잃는가 싶었던 것이다.
근데 지금은 남의 말을 할 처지가 아니다.
딱 그렇게 되기 좋은 꼴을 하고 있는 것이 나니까.
‘셋째, 내 곁에서 힘이 되어 줄 인재들이 많이 필요해. 지금 영지의 상태로는…… 전쟁이 나면 집사가 나가서 지휘해야 할 판이야.’
목표 셋, 인재 등용.
지금 영지의 인재풀은 척박한 영지의 상태만큼이나 처참했다.
내가 각성하기 전까지의 ‘그놈’이 영지 관리를 엉망으로 해 온 탓에 유능한 인재가 곁에 아무도 없다.
일단 F급이든 S급이든 인재를 가리지 않고 영입할 필요가 있다.
꼭 완성된 인재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내 곁에서 그들을 육성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에서 숨은 원석과 같은 인재 NPC를 등용하여 육성시킨 경험이 많았다.
가장 뿌듯했던 기억도 있다.
남들이 F급이라고 부르며 손가락질했던 인재를 A급까지 성장시켰던 짜릿한 경험이 있는 것이다.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것이 과정도 복잡하고 어렵긴 하다.
하지만 내게는 에서 검증된 다양한 루트와 방법이 있으니, 이점을 확실히 가져갈 수 있다.
‘넷째, 어느 정도 인재 영입까지 마치고 나면 영지 강화에 올인 하는 거야. 이른바 부국강병 프로젝트!’
목표 넷, 영지 성장.
사실 이 부분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난제다.
기후, 인구, 입지.
모든 것이 불리한 이런 영지를 환골탈태시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도전이기 때문이다.
물론 꼼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역시나 지금의 레벨 단계에서는 꿈꿀 수 없는 일이다.
‘일단 이렇게 네 개의 큰 틀에서 착실하게 스텝을 밟으면, 최소한 메인 스토리가 시작될 10년 후에는 마족의 공격을 버텨 낼 정도는 되겠지. 그러면 뭐, 나머지는 주인공이 알아서 해결해 주지 않겠어? 명색이 주인공인데?’
나는 일단 생각을 그렇게 매듭지었다.
지금 주인공이 된 것처럼 의기양양하기에는 당장의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기 때문이다.
혹자는 힘든 것은 스토리의 주인공에게 다 떠넘겨 놓고, 혼자 속 편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의 계획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는 철저하게 이 세계에서 엑스트라니까.
‘좋아. 시작하자! 자레드, 일단 너부터 새로 태어나는 거다! 그게 우선이야!’
그렇게 나의 야심 찬 현생 적응 계획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