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56
제 56화
22장. 몬스터 슬레이어 – 1화
시간은 쏜살같이 3주가 흘렀다.
어느덧 6월 30일이 됐고, 시스템이 경고한 마수의 침공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일단 모든 준비는 완벽하게 해 두었다.
차원문 버그 발동에 필요한 마정석들도 모자람 없이 챙겼고, 사전 점검도 끝냈다.
남은 것은 내가 악몽의 숲으로 가서 세팅을 하는 것뿐이었다.
‘군사 훈련도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고, 조만간 로넬라 영지를 공격해야겠어.’
나는 로넬라 영지를 공격할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초의 계획은 6월 중이었지만, 살짝 뒤로 미뤘다.
이번에 악몽의 숲의 몬스터들을 먼저 상대하고 레벨을 충분히 올린 다음에 도모하기로 한 것이다.
사전 작업은 충분히 했다.
이미 바트만 영주의 가신들 중에서 다수의 배신자가 발생했다.
돈 앞에서는 장사 없다고, 금은보화와 함께 달콤한 제안을 건네자 그들은 배신을 약속했다.
달리 생각하면, 현명한 것이다.
내 세력은 떠오르는 해와 같고, 바트만의 세력은 지는 해와 같았으니까.
게다가 카프리 백작이 왕명을 받아, 왕국 서부에 위치한 대규모 산적 토벌에 나선 차였다.
중앙 정계 진출을 끊임없이 꿈꾸고 있는 카프리 백작에게는 달콤한 제안이었을 터.
하지만 덕분에 그는 로넬라 영지를 주시할 수 없게 됐다.
어쩌면 지금은 이미 이런 작은 영지의 다툼에 두고 있던 관심일랑 접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악몽의 숲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훈련 중인 유망주들을 한곳에 모두 모이게 했다.
명령이 전달되기가 무섭게 모두 모였다.
미아, 레나, 이자벨, 헤이즈.
모두가 나의 밀착 관리 속에서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는 인재들이었다.
“영주니이임! 새로운 마법! 마법을 가르쳐 주세요! 바람! 바람의 힘을 마음껏 부리고 싶어요!”
가장 먼저 나를 반긴 것은 역시나 미아였다.
요즘 나는 미아에게 바람 계열의 마법만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미아가 마법을 본격적으로 수련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특수 성향이 하나 더 붙었기 때문이다.
[특수 성향 : 마나 감지 S / 바람의 노래 D / 마나 순환 E]마나 순환보다도 늦게 생긴 성향임에도 성장 속도가 가팔랐다.
마법사는 당연히 모든 속성을 다룰 수 있지만, 개인 선호나 적합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나 같은 경우에도 화염 계열의 마법이 유독 손에 잘 맞고, 다루기가 쉬웠다.
“그럼, 바람길을 만들어 주는 마법을 배워 보자. 속성으로 알려 주마.”
나는 미아에게 바람길, 윈드 웨이 마법을 가르쳤다.
매직 미사일과 같은 1클래스의 마법인데, 공격보다는 보조 수단의 용도로 쓰인다.
이동하는 아군으로 하여금 순풍을 타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뒤에서 추진력을 보태 주는 마법이었다.
매직 미사일의 기본 원리를 살짝 비틀면 되는 것이라서, 속성 강의가 가능했다.
“영주님! 마스터할 때까지 또 열심히 훈련하면 되는 거죠?”
“그래. 눈 감고도 매직 미사일과 윈드 웨이를 부릴 수 있을 때까지 맹연습하도록 해.”
“감사합니다, 영주님!”
여기 모인 네 사람 중에서 미아의 에너지가 가장 넘쳤다.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너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어 행복해하는 느낌이었다.
나도 진즉에 어렸을 때 저렇게 공부를 해야 했는데. 문득 전생의 학창 시절이 떠올라, 괜히 뒷머리를 긁적였다.
미아가 자리를 이탈하자, 바로 이자벨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동안 색욕의 주술에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어! 남녀 불문하고, 가장 치명적인 실수를 유발할 수 있는 주술 같아서 말이야.”
“한번 실험해 볼까?”
나는 바로 고르자스의 목걸이를 벗었다. 그리고 그녀의 주술이 내게 적용되기를 기다렸다.
샤아아아.
순식간에 음침한 회백색의 기운이 나를 감싸더니, 주변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주술의 디테일함이 매우 높아졌어. 예전에는 누가 봐도 인위적인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순간, 한 5초 정도?
나는 이것이 주술의 환상이라는 것을 잊고, 색욕의 주술이 만들어 낸 모습을 감상했다.
주술 속에서 헤이즈와 이자벨은 각각 가터벨트와 검은 스타킹 – 이것은 진리! – 을 착용한 야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미성년자인 미아와 레나에 대해선 주술이 나를 잠식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분명 다행이다.
“후우!”
나는 거칠게 숨을 토해 내며, 주술의 환상을 힘차게 밀어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지혜 스탯이 높아야 한다.
주술을 사용한 주술사보다 지혜가 낮으면 낮을수록, 또한 격차가 클수록 주술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것은 매우 어려워진다.
그런 이유로 나는 최근에 이자벨로 하여금 영지의 병사들을 상대로 가상 실전 형태로 주술을 사용하는 훈련을 시키고 있었다.
자체적으로 캐스팅하고 취소하는 형태로는 경험을 늘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의가 없는 병사들을 상대로 한다면 안전을 유지하면서도, 반복 사용으로 주술의 숙련도와 지혜 스탯을 높이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이내 색욕의 주술에서 벗어난 내가 다시 주변을 둘러보는 순간.
“영주님……. 실망이에요! 물론 제가 가터벨트를 입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그것만 입고, 상의는 아무것도 안 입은 상상을 하신 건 너무 심한 것 아니에요?”
“헤이즈, 새삼스럽게 뭘 그래? 원래 자레드, 쟤 머릿속에는 온통 음탕한 생각으로 가득 찼어! 환상을 얼른 깨는 게 좋을 걸?”
“……저는 못 본 것으로 하겠습니다, 영주님.”
헤이즈와 이자벨, 레나가 차례대로 나를 향해 독설을 토해 냈다.
이자벨이 심술궂게 내가 색욕의 주술로 본 환상을 공개해 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레나는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미안하게 됐다. 어린아이에게 몹쓸 꼴을 보였으니.
“자, 이자벨. 주술 훈련 상태 합격. 하지만 여전히 압도하는 힘이 부족해. 반복 수련으로 위력을 높여 봐.”
“무게 잡지 마, 이 변태야! 하나도 안 멋있거든?”
이자벨은 돌아서는 순간까지 내 정곡을 거칠게 콕콕 찌르고는 심술궂은 미소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레나, 헤이즈. 너희도 당연히 중간 점검을 해야지?”
모양새가 좀 많이 빠지긴 했지만, 나는 진지하게 말을 이어 갔다.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고.
내 유망주들의 성장은 그것대로 책임질 의무가 있으니까 말이다.
* * *
몇 시간 후.
나는 악몽의 숲 안쪽의 깊숙한 곳에 있는 아웃브레이크 포인트(Outbreak Point)에 도착했다.
이곳은 악몽의 숲에서 가장 외지고, 몬스터가 전혀 나오지 않는 곳이라 헌터의 출입이 없었다.
“오는 내내 참 뿌듯했네. 자기 매장을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의 기분이 이런 걸까?”
나는 이동하는 동안 엄청 많은 수의 헌터들과 만났다.
올해 초만 해도 하루 한두 팀, 많아야 세 팀을 넘기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악몽의 숲 입구에서 대기표를 발급받고, 앞서 숲 공략에 들어간 팀이 나오길 기다려야 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덕분에 악몽의 숲 인근에 있는 마을의 모든 여관은 항상 만원이었다.
심지어 가건물(假建物)로 급하게 세운 여관에도 헌터들이 가득 차서, 길바닥에서 노숙을 하는 헌터까지 있을 정도였다.
전년 동월 대비, 50배!
눈부신 변화가 일어난 악몽의 숲은 이제 헌터들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 됐다.
아키를 통해 들은 소문에 의하면, 지금 로넬라 영지가 딱 과거의 내 영지와 같다고 했다.
가끔 오는 뜨내기 헌터나 장기 투숙을 하는 헌터를 제외하면, 주요 전력들은 이미 이탈하고 없다는 것이다.
지난번에 마하트 3세의 무덤을 공략하면서, 그곳도 영지의 던전으로 개방한 영향도 분명 있었다.
‘착실하게, 착실하게 계속 키우는 거다. 자만하지 말고, 초심 잃지 말고.’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 * *
그간 부지런히 구상해 왔던 시설을 하나하나 설치하고, 마법진을 그리며 연동해 나갔다.
덜그럭덜그럭.
딸깍딸깍.
어둠이 짙게 깔린 숲속에는 단 한 사람만이 있었다.
마정석에 마법진을 꼼꼼하게 그려 넣고, 정밀도를 확인하며 작업에 몰두하는 자레드뿐이었다.
‘2천 골드면 싸게 먹히는 거지! 이 돈으로는 비싼 용병 몇 명 고용하면 바로 끝날 테니까. 비교할 필요도 없이 훨씬 이득이야.’
사전 작업을 위해 꽤 많은 예산이 쓰였는데, 특히 지출의 95%는 전부 마정석 구입에 들어갔다.
낮은 등급의 마정석으로는 자레드가 원하는 마법진을 구현할 수 없었으므로, 전부 최상급의 마정석을 사용해야 했던 것이다.
“디멘션 도어, 디멘션 도어…….”
자레드가 계속 같은 마법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마법진의 완성도를 높여 갔다.
‘불릿의 마도구 덕분에 마정석 세공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아티팩트를 선점한 보람이 있었다. 세공 도구인 불릿의 마도구가 없었다면, 차원문 버그는 활용할 생각도 못 했을 테니까.
어느덧 시간은 밤 1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앞으로 1시간 뒤.
그러니까 7월 1일 자정이 되면, 주성 데우스와 객성 벤델라가 천공에서 일직선에 놓이게 된다.
그러면 이를 매개로, 지금 눈앞에 보이는 공간에 차원문 하나가 활성화된다.
마수들의 세계와 크리비아 영지를 직통으로 연결하는 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7월 1일은 늘 크리비아 영지에 재앙을 불러왔던 날이었다.
만반의 대비를 해도 항상 많은 피해자가 나왔고, 조금이라도 방어가 허술했다손 치면 여지없이 뚫렸다.
크리비아 영지가 지방의 소영지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영지가 발전하며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만한 시점이 되면, 몬스터 아웃브레이크가 발생해서 영지를 뒤엎어 버렸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몬스터 아웃브레이크를 능히 방어해 낼 수 있는 강력한 군대를 갖고 싶다는 것이 바렛 자작의 생전 소원이었을까?
“됐다!”
이윽고 모든 세팅을 마친 자레드가 두 손에 가득 묻은 먼지를 털어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위이이이- 위이이이-.
수십 개의 차원문이 특유의 붉은 기운을 뿜어내며, 저마다 이글거리고 있었다.
차원문은 아웃브레이크 포인트가 될 위치를 중심으로 소용돌이 형태를 유지하며 50cm 간격으로 촘촘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차원문마다 좁게 간격을 둔 것은 몬스터들이 반대 세계에서 넘어오기는 하되, 절대 차원문 밖으로는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차원문 버그.
원래대로면 차원문은 이렇게 가까운 범위에 연달아 만들어질 수 없었다.
디멘션 도어 마법을 쓸 때도 입구 차원문과 출구 차원문의 거리가 최소 20m는 넘어야 한다.
하지만 버그가 있었다.
바로 마정석에 마법진을 세공해서 만든 영구 차원문은 거리의 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각의 마정석이 독립된 차원문으로 취급받기 때문이다.
‘성마 대전에서 신성제국군이 즐겨 쓰던 방법이었지. 죽지 않고는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무한 루프.’
자레드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남은 것은 마력을 완충 상태로 두고, 언제든 파이어 월을 전개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뿐이었다.
* * *
7월 1일, 자정.
차원문 앞에 선 블루 오우거의 군단의 군단장, 크런들이 힘차게 소리쳤다.
“캬하하하! 보이는 모든 인간을 죽이고, 재물과 식량을 약탈하자! 신이 우리에게 허락한 축복의 하루다!”
1만에 가까운 군대는 1할의 오우거 군단과 9할의 고블린 군단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저마다 무장을 단단히 한 고급 전력으로, 지금까지 30년을 이어 온 정기 침공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군세였다.
“내가 선두에 선다! 모두 돌격하라!”
“크와아아아! 그와아아아!”
“크왁! 크락! 크왁!”
크런들의 명령과 함께 군단의 대열이 맹렬한 속도로 차원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선두에 선 크런들이 먼저 차원문 안으로 몸을 날렸고, 이내 통로를 지나 반대편에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크하하하!”
인간계 특유의 공기는 늘 그랬듯이 신선했다. 살육을 즐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
근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차원문 반대편으로 넘어와서 계속 앞으로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공간을 계속 맴돌고 있어?”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같은 공간을 계속 돌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명령을 내린 후라, 뒤에서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는 오우거들에게 떠밀려 뒤로 물러설 수도 없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
“어서 와. 이런 함정은 처음이지?”
크런들은 차원문과 차원문 사이의 틈새에서 피어오르는 한 남자의 사악한 미소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화르르르륵!
끔찍한 지옥이 펼쳐졌다.
도망칠 곳도, 밖으로 나갈 곳도 없는! 차원문의 틈새에 끼인 상태로 맞이하게 된 대규모 화형식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