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62
제 62화
24장. 환생 1년 차! – 2화
바로 그때.
“클로이, 무슨 생각 해?”
톡!
“아흐윽.”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그새 뒤를 잡은 자레드가 목 뒤쪽을 손가락으로 살짝 찌르자, 클로이가 민망한 신음을 토해 냈다.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클로이의 얼굴이 새빨개졌을 정도로 리얼한 소리였다.
‘하필이면 거기를…….’
클로이가 쭈뼛쭈뼛 뒤로 물러서며, 얼굴을 붉혔다.
귀 뒤부터 목 뒤까지 이어지는 라인은 클로이가 가장 터치를 싫어하는 부위였다.
자의와 무관하게 몸이 반응하는! 그런 포인트였기 때문이다.
“아니, 나를 노려보고 있는 듯해서 긴장했는데, 자세히 보니 초점이 안 맞는 듯해서. 다른 생각 하나 싶었는데, 그랬나 보네.”
“아, 아닙니다.”
클로이가 급히 고개를 저었지만 자레드가 물러서며, 휴식의 의사를 밝혔다.
“잠깐 쉬었다가 하자. 클로이의 집중력이 평소 같지 않네.”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것까진 없지. 다만 실전처럼 생각하자고 한 건 너였으니까. 만약 지금이 실전이었으면, 넌 이미 목이 날아갔겠지.”
“예.”
“마침 라키스 경이 연병장 앞으로 왔네. 잠깐 얘기하고 올 테니, 숨 좀 돌리고 있어.”
“네.”
자레드의 말에 클로이가 연병장에 마련된 벤치에 한숨을 내쉬며 털썩 주저앉았다.
‘왜 자꾸 딴생각이 드는 걸까.’
마음이 답답했다.
분명 훈련을 위해서만 자레드와 함께하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떻게든 같이 있을 수 있는 이유를 찾아 갖다 붙이려고 했던 것 같았다.
클로이는 이런 감정이 어색했다.
물론 스승 엘라는 고민을 털어 놨던 그녀에게 자신 있게 ‘클로이, 그건 사랑의 시작이야!’라고 힘주어 말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내가 왜?’
왜 하필이면 대륙 외곽의 중영지 하나를 다스리는 영주에게 마음을 빼앗겼나 싶었다.
외모 때문일까?
솔직히 자레드의 외모가 빼어난 용모이기는 했다.
반년 전만 해도 살짝 후덕한 느낌이 있었던 자레드.
하지만 그는 6개월 사이에 피나는 노력으로 더 많은 체중을 감량했다.
몸은 예전보다 슬림하고 균형 잡힌 몸매가 됐으며, 무엇보다 헤이즈가 ‘리즈 시절’이라고 부르던 옛 귀공자의 외모가 돌아왔다.
사심을 보태면, 자레드는 그레이 엘프 중에서 손꼽히는 미남 엘프들보다도 우월한 외모였다.
‘게다가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인재를 돌보면서 육성하고 있잖아.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정답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더불어 실력도 좋았다.
자레드와 사제지간을 맺었다는 미아, 레나, 이자벨, 헤이즈 모두 눈부신 성장을 경험하고 있었다.
특히 최근 부쩍 친해진 헤이즈는 초창기 미숙했던 치유사의 모습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우수한 치유력을 보여 주는 중이었다.
‘들키고 싶지 않아. 남자는 마음을 쉽게 표현하면, 그만큼 가볍게 생각하니까.’
애석하게도 클로이는 개방적인 엘라의 밑에서 가르침을 받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무척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호감이 생길수록.
마음이 더 기울어질수록.
철저히 속내를 숨겼다.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말수를 줄이고, 표정을 최대한 없애는 것뿐이었다.
“하아.”
클로이는 한숨을 길게 토해 내며, 벤치 위에 드러누워 버렸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묘한 감정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 *
“영주님, 새벽에 죄송합니다. 오붓한 데이트를 제가 방해한 것은 아닌지요.”
“전혀! 무엇보다 지금은 데이트가 아니오. 클로이와 훈련 중이지.”
“아, 그렇습니까?”
“영지를 위해 잠까지 반납하며 일하는 경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오. 매번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소.”
“아닙니다. 저는 그저 영주님을 위해 충성할 따름입니다.”
“자, 그럼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바로 화제를 돌렸다.
라키스가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아온 것은 신데르스 왕국의 내전에 관련된 소식을 전달하기 위함이었으니까.
“왕국의 내전이 격화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얼마 전까지는 그동안 주류라고 할 수 있는 귀족가의 소규모 내전 수준이었습니다만.”
“이제 본격적으로 짓밟기가 시작된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사실상 남과 북으로 세력권이 갈린 채, 제2 왕자와 제3 왕자의 전면전이 시작됐습니다.”
“우리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는 것은 맞는 듯하오.”
“예, 영주님이 예견하신 그대로입니다.”
“군사 훈련은?”
“반년 동안 정말 하루도 놓치지 않고 강훈련으로 병사들을 단련해 왔습니다. 이제 신병들도 제법 쓸 만한 전력으로 성장했습니다.”
“용병, 외인부대와의 협력은 어떻소?”
“아시다시피 그들은 돈만 주면 자신의 영혼까지도 파는 작자들이지 않습니까. 두둑한 보수를 챙겨 준 덕분인지 통합 훈련에 함께 참여하여 호흡을 잘 맞추고 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
“게다가 영주님이 특수 제작해 주신 이 검 말입니다.”
스릉!
라키스가 검을 꺼내어 보였다.
이것은 우리 영지의 지하자원으로 있는 ‘켈디아’ 원석을 채굴, 제련해서 만든 검이다.
켈디아는 철보다 높은 강도를 가진 금속으로 아직 나스 대륙에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금속이다.
지금 쓰는 철이 전생의 청동기라 한다면, 켈디아는 전생의 철기라 부를 수 있으리라.
시대의 변곡점을 상징할 수 있는 광석인 것이다.
켈디아가 의 역사에서 등장하는 것도, 성마 대전 발발 3년 후. 앞으로 12년 후의 이야기다.
전문 채굴 기술자를 아직 구하지 못해 대량생산은 불가능했고, 사전 테스트로 내가 직접 라키스에게 제작해 준 것이 전부였다.
“마음에 드오?”
“양질의 철검도 단번에 분쇄해 버릴 수 있을 정도의 멋진 검입니다. 제게 이런 명검을 만들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경의 노력을 조금이나마 치하할 수 있는 물건이 되었으면 하오.”
“이 검으로 앞을 가로막는 모든 적을 베어 버릴 것입니다!”
라키스가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고는 내게 한 걸음 다가서더니, 전보다 훨씬 낮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나는 그의 의도에 맞춰, 뮤트 마법으로 말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을 원천 차단했다.
“영주님, 그리고 은밀히 지시하셨던 감시 말입니다.”
“말해 보시오.”
“유의미한 성과가 있었습니다. 영지 외곽에 설치한 영상 장치의 내용물을 살피는 과정에서…….”
“뭔가가 잡혔소?”
“예, 흑마법사들이 우리 영지 외곽에서 금지된 비술을 펼치려던 것이 포착됐습니다.”
“흑마법사들은?”
“일거에 급습하여 전원을 생포하였습니다. 영주님께서 부여해 주신 재량으로 초동 국문을 해 본 결과, 움브라라는 사악한 암흑 교단의 흑마법사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역시.”
나는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드디어 꼬리를 잡았다.
내가 이 순간을 기다린 이유는 단 하나! 영지 확장을 위한 전쟁의 명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신데르스 왕국이 국교로 삼고 있는 신성 라디우스 교를 제외한 교단, 특히 흑마술에 관련된 교단은 왕국 최우선의 배척 대상이다.
즉, 움브라 교를 믿거나 비호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 누구도 신데르스 왕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왕국과 크리비아 영지 사이에는 특정 국가에 소속되지 않은 중립 영지가 꽤 많았다.
다시 말해 명분만 충분하다면, 복속시킬 수 있는 영지가 많다는 뜻도 된다.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이번 일은 인근의 영주들이 움브라 교단의 영향을 받아, 치밀하게 계획한 일이라는 것을.
“배후는?”
“우선 즉각 파악된 것만 말씀드리자면 아크라 영지, 무들란 영지, 레티카 영지입니다.”
“전부 우리 영지와 인접한 곳들이군.”
“예, 객관적인 전력에서 우리보다 열세에 있으니 비겁한 수단을 쓰려고 했었던 모양입니다.”
“음.”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생각보다 움브라 교단의 확장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다.
내 기억대로라면,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기 9년 전인 지금은 움브라 교가 막 태동했을 시기였다.
내부 교리를 정립하고, 본격적인 포교를 준비하는 그 정도의 시점인 것이다.
그런데 예상보다 행보가 너무 빨랐다. 2배, 아니 3배의 빨리 감기를 한 것 같은 정도로.
제2 왕자와 제3 왕자를 은밀히 후원하고, 국왕 데커드 9세를 암살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영지에 마수를 뻗치기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은 것이다. 나는 3년 정도의 시간을 예상했는데 말이다.
‘움브라 교단에 대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기억들을 조금씩 앞당겨서 생각해야겠어.’
기억을 재조정하기로 했다.
대륙의 역사가 내가 알고 있는 것처럼, 와 100% 일치하는 데칼코마니 양상을 띨 거라고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었으니까.
라키스가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움브라 교단과 관련이 있다고 하더라도, 신데르스 왕국령을 침공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건 왕국과의 전면전이 될 수도 있으니.”
“옳으신 말씀입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제2 왕자와 제3 왕자가 정전협정을 맺고, 손을 맞잡고 대응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어느 국가에도 소속되지 않은 영지는 적극적으로 공략할 것이오. 특히 움브라 교단과 연결된 곳이라면 무조건.”
“명분은 충분하지요.”
“이때를 위해서 경을 통해 영지의 병력을 무리를 감수하면서까지 키워 온 것이기도 하고. 이번 전쟁에는 아그레시오 친위대도 전원 동원될 것이오.”
“현명하신 판단이십니다.”
“적극적인 여론전을 위해서는 증거 영상이 필요하지. 다른 장치들을 이용해서 확보한 영상을 녹화해 두도록 하시오. 본 영지는 물론이고, 신데르스 왕국에도 통보하여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할 것이니.”
“예! 분부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끝냈다.
지난 9월 이후, 4개월간 묵묵히 기다려 온 기회가 드디어 찾아온 듯했다.
이즈엘 왕자의 든든한 후견 세력이 되려면, 지금의 크리비아 영지로는 부족하다.
중영지 하나로는 군벌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애매하니까.
하지만 신데르스 왕국의 북쪽을 반달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는 무소속의 영지들을 모두 복속시킨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왕국의 북부를 위협할 수 있는 대군벌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이즈엘 왕자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고, 다른 왕자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모든 준비가 순조로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이즈엘 왕자와 끊임없이 비밀리에 연락을 주고받았다.
3개월 전, 제1 왕자 이안이 결국 병사한 이후로 이즈엘 왕자는 내 지시에 따라 이안 왕자 측의 가신들과 긴밀한 교류를 늘려 왔다.
그런 한편으로는 계속 제2 왕자와 제3 왕자를 적극적으로 중재하며, 중재자의 이미지를 착실히 심어 왔다.
내전을 원치 않는 가운데, 제2 왕자의 거만함과 제3 왕자의 폭력성에 염증을 느낀 다수의 가신이 제4 왕자 이즈엘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렇게 해서 세를 꽤 불려 놓았다.
하지만 의외로 제2 왕자와 제3 왕자는 이즈엘을 두려워하거나 견제하지 않았다.
추측되는 이유는 하나.
이즈엘에게는 자신들이 꽉 틀어쥐고 있는 군권과 후견 세력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경계 외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프탈린과 제스는 서로를 무너뜨리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 같았다.
즉, 제4 왕자 이즈엘을 쫄보로 봤다는 얘기다.
‘이제 내가 움직일 때네.’
최고의 타이밍이 왔다.
암흑 교단 척결을 전쟁의 명분으로 걸면, 그 어느 누구도 방해할 수 없을 것이다.
방해하는 자체가 암흑 교단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이기에 딱 좋으니까. 그렇게 되면 여론을 조성하는 것도 수월해진다.
신데르스 왕국은 뼛속까지 신성을 숭배하는 국가다.
그렇기에 제2 왕자와 제3 왕자가 한편으로는 무서운 것이다.
암흑 교단을 은밀히 추종하고, 이를 기반으로 왕국의 근간을 뒤흔들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뒤가 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폭주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일단 나는 라키스를 배웅하고, 다시 클로이에게 돌아왔다.
“클로이.”
“네.”
“오늘 훈련은 여기서 그만하자.”
“무슨 일이 있으신 건가요?”
“응,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
크리비아 영지발(發).
대규모 정복 전쟁의 광풍을 불러일으킬 때가 왔다.
전쟁의 명분은 확실하게! 명확하게! 그리고 대대적으로 알릴 생각이었다.
내게는 증거가 있지 않은가?
부인할 수 없이, 확실하고 명확하게 움브라 교단의 만행을 고발할 수 있는 증거 자료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