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63
제 63화
24장. 환생 1년 차! – 3화
1415년 4월 1일.
크리비아 영지군이 이웃 영지에 대규모 선전포고를 한 직후, 3개월이 흘렀다.
연전연승.
아크라, 무들란, 레티카 영지는 저항다운 저항도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크리비아 영지군에게 대패했다.
그 중심에는 크리비아 영지의 아그레시오 친위대와 오랜 기간 훈련해 온 정예 병사가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적의 공포를 불러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크리비아 영지군의 총사령관, 자레드였다.
소문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자레드는 어느새 5클래스 마법사가 되어 있었고, 이것에 세 영지의 마법사들의 허를 찔렀다.
자레드의 올해 나이는 스물여섯.
5클래스에 도달하기에는 분명 이른 나이였고, 어느 누구도 그의 빠른 성장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크리비아 영지군이 파죽지세로 주변 영지를 통합하고 있는 그때.
한 사람이 전쟁에 관련된 소식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신데르스 왕국의 제4 왕자 이즈엘이었다.
이즈엘의 방.
함께 있던 공주 마이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라버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계세요?”
“자레드 영주의 소식을 곱씹어 보고 있었어. 솔직히 영주보다 내가 더 떨리는 것 같아. 걱정돼. 혹시라도 저러다가 자레드 영주가 패배하면 어쩌나 하고.”
“보고에 따르면 평범한 승리도 아닌 대승의 연속인 듯해요. 무엇보다 영지 내에서도 영지민의 봉기(蜂起)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움브라 교단의 수작질이 들켰기 때문이겠지?”
“자레드 영주가 계속 영상 장치를 이용해서 곳곳에서 증거 영상을 상영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당사자들이 음모론을 주장조차 할 수 없도록 빼도 박도 못할 증거를 내밀었지.”
“이것 때문에 우호적인 주변 영지의 세력들도 함부로 나서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오라버니도 아시다시피…….”
“우리 왕국은 라디우스 교단의 완벽한 신성을 추구하는 국가니까.”
“네. 그리고 이번 일은 분명 가서는 안 될 길을 걷고 계시는, 두 오라버니를 향한 확실한 경고가 되겠지요.”
“후. 마이라, 미안하지만 냉수 한 잔만 챙겨 줄 수 있을까?”
“오라버니가 좋아할 만큼의 얼음을 담아서 갖다 드릴게요.”
“고맙다. 매번 고마워.”
마이라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이즈엘의 시선은 창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을 향해 있었다.
지금, 같은 밤하늘 아래에서 수많은 병사가 왕국의 전역에서 싸우고 있을 것이다.
이즈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포지션으로 상황에 임하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왕실과 왕국의 평화를 위해, 중재의 메시지를 보냈다.
프탈린과 제스 왕자에게 직접 서신을 보낸 것은 물론이고, 왕성 전역에도 정전을 요청하는 호소문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그는 군사적인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급하게 군을 모으려는 시도도 절대 하지 않았다.
그저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이안 왕자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측근이었던 가신들을 자연스럽게 흡수하는 중이었다.
물론 이안 왕자에 대한 추모는 진심이었다.
형의 죽음이 곧 자신의 대권 도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생각 따위는 추호도 하지 않았다.
단, 그 생각은 했다.
이안 왕자도 결국 움브라 교단을 추종했던 인물이니까. 살아 있었더라면, 언젠가 국법의 엄정한 심판을 받았을 것이라고.
촤륵!
이즈엘이 서신을 펼쳤다.
은밀한 보안 루트를 통해 전달받은 자레드의 자필 서신이었다.
화르륵.
서신을 모두 읽자마자, 이즈엘이 촛불에 종이를 태워 버렸다.
그간 이즈엘도 꼼꼼하게 많은 준비를 해 왔다.
특히 프탈린과 제스 왕자가 움브라 교단의 제를 올리고, 사악한 의식을 치르며 어둠의 힘을 취하는 모습을 증거로 수집했다.
당장 공개하기만 해도 왕국의 역대급 스캔들이 될 내용이었지만, 이즈엘은 꾹 참고 있었다.
자레드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즈엘이 우유부단해서가 아니라, 판세를 파악하는 능력이 매우 정확한 자레드를 믿기 때문이었다.
‘만약, 아주 만약에 내가 아버님의 뒤를 잇게 된다면…….’
이즈엘은 생각했다.
자신의 두 형의 그릇된 욕망을 바로잡고, 모든 것을 정상으로 되돌리게 되는 날.
그날에 자신이 왕위에 오르면, 과연 자레드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하고.
‘예전에 아버님께서는…….’
그는 아버지 데커드 9세의 과거를 떠올렸다.
피도 눈물도 없는 왕이었던 데커드 9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일등 공신들을 전부 숙청해 버렸다.
소위 토사구팽이라고 말하는 슬픈 결말이었다.
데커드 9세도 내전을 통해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확실한 후견 세력이 있었지만, 그들을 모두 죽여 버린 것이다.
“…….”
이즈엘이 입술을 깨물었다.
사람의 마음이 이래서 간사하다는 것일까.
뭔가 퍼즐이 하나씩 맞춰 가는 느낌이 드니, 그 이후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해 보게 됐다.
그리고 생각의 중심에는.
당연히 전방위적으로 자신을 도울 준비를 하고 있는 자레드가 있었다.
* * *
그 시각, 포지기트 영지.
“자레드, 이놈! 네놈이 나를 죽이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내가 죽어도 교단의 수많은 추종자들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
쇄애액!
나는 상대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라키스가 들고 있던 켈디아 검을 이용해, 그의 목을 베어 버렸다.
투퉁. 퉁. 퉁.
이윽고 지면 위를 구른 것은 내가 네 번째로 복속시킨 포지기 영지 영주의 목이었다.
전쟁에 속도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 확실한 증거와 명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소속된 영지의 영주와 그 친위 세력들이 암흑 교단의 일파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영지민이 크게 분개했다.
그래서 전쟁이 벌어짐과 동시에 내 편에 서서 싸운 영지민들의 수가 상당히 많았다.
그만큼 신데르스 왕국과 주변 영지의 영지민들은 암흑 교단에 대한 혐오가 엄청났던 것이다.
내가 전략적으로, 필요에 의해서 그들의 혐오 감정을 이용한 부분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진심이었다.
나는 암흑 교단이 정말 싫었다.
설령 이 세계의 모든 힘을 가질 수 있는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해도, 마왕과 마족의 개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를 고인물 수준으로 한 유저라면, 얼마나 마왕과 교단이 악랄하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믿을 놈은 단 하나도 없다.
배신은 패시브 스킬과 같고, 부하나 협력자의 목숨을 하찮게 버리는 일도 잦았다.
현생에서 나는 절대 그들의 소모품이 되고 싶지 않았다.
바로 그때.
전령 하나가 빠르게 말을 타고 달려와서는 내게 보고를 올렸다.
“영주님, 보고 드립니다!”
“영주 성의 상황은?”
“영주 성의 모든 친위병이 문을 열고 백기 투항했습니다! 자신들은 절대 움브라 교단에 협력한 적이 없다며, 제발 목숨만 살려 달라고 합니다!”
그간 나는 세 영지를 병합하면서, 움브라 교단에 관한 모든 관계자를 처형해 왔다.
다른 것은 몰라도 협력자에 대해서는 신데르스 왕국의 국법에 준하는 처벌을 내렸기에 대부분 무기징역이나 사형이었다.
그래서 병사들이 벌벌 떨고 있는 것이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평생을 감옥에서 썩거나, 처형당해서 땅에 묻힐 수 있으니까.
“일단 모두 무장해제 시킨 다음에 하옥시켜라. 그들의 잘잘못에 대해서는 적법한 국문 절차를 따라 처리할 것이니.”
“옛!”
“영주님, 드디어 이렇게 네 번째 영지까지 손에 넣었군요. 정말 파죽지세입니다. 누구도 영주님과 크리비아 영지군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내 옆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얼굴에는 피와 땀이 흘렀다가 마르고, 다시 흐른 흔적들이 뒤엉켜 있었다.
나와 함께 전장을 쉴 새 없이 휘젓고 다닌 탓이다.
“…….”
그의 양손을 살펴보니, 손끝이 쉴 새 없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고생 많았소, 라키스.”
“하하, 아닙니다. 영주님이 부족한 제게 소임을 맡겨 주신 이후, 제게는 하루하루가 행복의 연속입니다. 영주님과 전장을 누비며, 적을 처단하고 있는 지금! 군인으로서 살아 숨 쉬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고 있습니다.”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라키스의 스탯 상태를 심안으로 살폈다.
‘처음 라키스를 봤을 때가 14레벨에 스탯 수치도 가장 높은 것이 근력의 43이었던가? 그때를 생각하면 정말 일취월장이야!’
놀랐다. 정말 크게 놀랐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의 나는 라키스의 스탯을 심안으로 보자마자, 잘 성장해야 C급 무장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적한 관점에서 말하자면, 전쟁 중에 잃더라도 크게 아깝지 않을 평범한 무장의 수준이란 얘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B급 무장이라고 해도 될 만큼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여기에 괜찮은 아티팩트만 몇 개 챙겨 준다면, 그는 대영지의 영지군을 이끄는 수장으로도 손색없을 스탯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라키스, 이 기세를 몰아 계속 진격합시다. 신데르스 왕국이 내전으로 정신없는 지금이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오.”
“예! 제게 반드시 선봉을 맡겨 주십시오, 주군!”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주군(主君)이라니.
지금껏 단 한 번도 가신들에게 들어 본 적 없었던, 사실 금기와도 같았던…… 호칭이었다.
해프닝? 아무래도 좋았다.
어쨌든 나는 합법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영지의 세를 불릴 수 있는 지금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마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것만 같은, 하늘이 내린 최고의 무대였다.
그렇게 거침없는 우리 크리비아 영지군의 진군은 계속됐고.
그 이후.
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