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66
제 66화
25장. 킹메이커 – 3화
“커헉! 으헉!”
전투를 개시한 직후부터 프탈린은 딱 한 가지 목소리만 낼 수 있었다. 바로 신음이었다.
신데르스 왕국의 비전 검술은 쾌검과 속검을 기반으로 하지만, 동시에 마법 대응에 특화된 항마 검술이기도 했다.
프탈린은 바보가 아니었다.
자레드가 4클래스라는 마법사라는 사실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자신 있었다.
비전 검술의 집중도를 높이기 시작하면, 마법에 대한 방어력이 현저히 상승하기 때문이다.
이미 프탈린은 예전부터 왕국의 4클래스 마법사를 상대로 대련을 수없이 해 왔다.
자레드와 맞붙은 것도 나름대로 계산이 섰기 때문에 응전한 것이다.
하지만 프탈린은 크게 두 가지 점을 간과했다.
첫째는 내전에만 집중하고 있던 탓에 자레드가 5클래스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
둘째는 자레드의 실력을 일반 4클래스 마법사와 동일선에 놓고 예측했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초장부터 밀렸다.
지혜 스탯만 360에 달하는 자레드는 모든 마법이 기존의 4배에 가까운 화력을 냈다.
초반에 지혜가 100 오르면 대미지 2배, 그다음에 200 오르면 대미지 기댓값이 2배 불어나는 원리에 따른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자레드의 모든 공격이 프탈린이 예상하는 것보다 빠르고 강력했다.
특히 칭호 ‘지옥불의 현신’에 따른 화염 마법 대미지 100% 추가 효과 때문에, 화염 마법을 상대할 때는 정말 죽고 싶을 정도였다.
여기에 조건부 특수 마법인 ‘플레임 버스트’까지 자레드가 사용하면, 도망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하악, 하악, 하아아악.”
프탈린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자레드는 평온한 표정으로 마법 공격을 퍼부으며, 철저하게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성공한 유효 타격이라고는 자레드의 옷 일부를 겨우 검끝으로 찢어 낸 것이 전부였다.
뚝. 뚝뚝. 뚝.
반면에 본인의 상태는 심각했다. 양팔의 옷은 진즉에 타서 없어졌고, 불에 눌러붙은 피부를 따라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레드의 플레임 버스트 마법은 그야말로 생지옥, 불지옥이었다.
마법으로 소환된 불마귀가 닥치는 대로 입이 닿는 몸의 모든 곳을 물어뜯었던 것이다.
아무리 베고 떼어 내려 해도, 애초에 생명체 같은 것이 아니라서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불길에서 멀어지면서 동력을 잃어야만 비로소 사라지는 녀석이었고, 그것마저도 최소 몇 분이 지나야만 했다.
파팟! 팟!
자레드가 지치지 않는 강철 체력을 자랑하며, 다시금 프탈린에게 붙었다.
많은 상처를 입은 프탈린의 집중력은 크게 떨어져 있었고, 전투 초반에 보여 줬던 공격의 날카로움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자레드는 아니었다.
점점 더 집중하고 있었고, 또한 사용하는 마법의 클래스도 점점 높여 가고 있었다.
스윽.
이윽고 프탈린의 등 뒤에 자리를 잡은 자레드가 5클래스의 바람 계열 마법, 포스 미사일을 캐스팅했다.
마법 구체의 수는 5개로, 이것의 5배에 달하는 매직 미사일 구체의 수보다 적지만.
반대로 위력은 매직 미사일 구체의 5배 이상을 상회하는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혹자들은 포스 미사일을 일컬어 바람으로 만든 대포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만큼 충격파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프탈린이 축 처진 몸으로 고개를 돌리려는 시점에.
슈아아아!
이미 바람 구체는 맹렬하게 프탈린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프탈린이 검을 사선으로 들어 올리며, 비전 검술을 이용해 마법을 튕겨 낼 준비를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화아아악!
포스 미사일보다 먼저 도착한 마법 구체가 있었다.
바로 마법들 중에서 구체의 속도가 가장 빠르기로 유명한 플레임 애로우였다.
포스 미사일의 가속 시점이 느리다는 점에서 착안, 자레드가 마법 공격에 변주를 준 것이다.
“젠장!”
티이잉!
프탈린이 다급하게 플레임 애로우의 화살체를 튕겨 냈다.
날아드는 투사체를 본 육체의 반사적인 대응이었다.
문제는 찰나의 시간차를 두고 생긴 허점을 포스 미사일이 바로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플레임 애로우는 효과적으로 쳐냈지만, 정작 중요한 주공(主攻)인 포스 미사일에는 대응하지 못했다.
작은 것을 택하고, 큰 것을 버린 것에 대한 결과는 참담했다.
다섯 개의 바람 구체 중에서 둘은 가까스로 튕겨 내거나 피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뻐억! 뻐어억! 와득!
“크헉!”
세 군데는 피격을 당했다.
하나는 갈비뼈였고,
다른 하나는 왼쪽 어깨였으며,
피격과 동시에 뼈가 으스러진 부위는 무릎이었다.
전부 갑주를 통해서 보호가 되고 있는 부분이었지만, 자레드의 마법은 강판을 그대로 부수고 들어와 버렸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제법 강하게 제련되어 만들어진 중갑주임에도, 자레드의 5클래스 마법을 제대로 견뎌 내지 못했다.
항마 세공에 지나치게 공을 들이면 갑주의 무게가 기하급수적으로 나가는 탓에 적당히 현실적인 타협을 한 것이 독이 된 것이다.
“크아악!”
찌그러진 강판이 뾰족한 송곳처럼 변하면서, 프탈린의 갈비뼈와 어깨를 찔렀다.
쿠웅!
그리고 부러지면서 더 이상 중심을 잡을 수 없게 된 오른쪽 무릎이 굽혀졌다.
“하아앗!”
까앙!
일갈하며 달려온 자레드가 그대로 온 힘을 다한 발길질로 프탈린의 장검을 걷어 내 버렸다.
실패 확률이 있는 텔레키네시스보다는 구식이지만 확실한 ‘발차기’를 선택한 것이다.
“빌어먹을.”
프탈린은 전의를 잃었다.
어떤 수단이든 떠올려 보려 해도,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호각지세를 이룰 것이라 생각했던 검과 마법의 승부는 시작하자마자 금세 끝이 났다.
비율을 아주 높게 쳐줘야 이 대 팔을 겨우 면할까 말까 할 정도로 절대적인 열세였다.
원거리 교전은 검사인 프탈린이 당연히 불리했고, 접근전은 자레드가 허용하지 않았다.
움브라 교단으로부터 쓸 만한 흑마법과 주술을 제대로 전수 받지 못한 프탈린은 아직 ‘마검사’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젠장! 젠장! 젠장!”
프탈린이 분노하며 흙바닥 위를 쾅쾅 내리쳤다.
조금만 자신에게 더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수 있었다.
먼저 제스 왕자를 사로잡아 내전을 끝냈을 테고, 움브라 교단의 대제(大祭)를 통해 어둠의 마나와 흑마법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길어야 1주에서 2주, 이 시간이 자신에게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자레드가 재를 뿌렸다. 아주 시원하게.
그것도 모자라서 목숨을 건 전투에서 시종일관 열세로 몰린 끝에 형편없이 패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프리 백작이 있는 곳을 살폈으나, 그쪽도 답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자레드의 수하인 라키스의 적극적인 저지에 막혀, 전진하지도 후퇴하지도 못하는 모습이었다.
“프탈린 왕자, 항복하십시오. 이미 대세는 기울었습니다. 당신의 패배만 살피지 말고, 주변을 한번 돌아보시지요.”
자레드의 말에 프탈린이 묵묵히 전황을 살펴보았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미 개전과 동시에 곳곳에서 터진 지뢰 때문에 초기 전사자가 엄청난 상황이었다.
애초에 복병이 있을 것이라 예측조차 하지 못했기에, 정말 손쓸 틈도 없이 지뢰밭 위에서 모든 폭발을 받아 내야 했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사방을 포위한 자레드의 군대가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강하게 압박해 들어왔다.
지뢰의 폭발로 혼비백산하여 정신이 반쯤 나간 프탈린의 군대.
그들이 이 상황에서 냉정을 유지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고, 전의를 상실한 병사들은 여기저기서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
특히 프탈린의 주변에서 그를 호위하고 따르던 최정예 병력이 폭발의 희생양이 된 것이 가장 뼈아팠다.
반면에 자레드의 아그레시오 친위대는 적의 핵심 전력을 초기에 격파하며, 대오를 흩뜨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내가 쌓아 올린 공든 탑이 이렇게 무너지는가?”
나머지 한쪽 무릎을 마저 꿇으며 주저앉아 버린 프탈린이 넋두리를 하듯 중얼거렸다.
“정도를 걷지 않고, 암흑 교단의 힘을 빌려 지름길을 걸으려 했던 당신의 업보겠지요.”
“난…… 누구보다 멋진 왕국을 건설할 자신이 있었다. 케케묵은 라디우스 교단의 구식 교리보다 움브라 교단의 교리가 더 합당하다고 여겼었다.”
“여기서 고해성사를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국문장에서도 실컷 하실 수 있을 테니.”
자레드가 프탈린의 말을 끊으며, 그를 향해 패럴라이즈 마법을 시전했다.
이미 싸울 의사를 접은 프탈린은 반항하지 않았고, 그대로 마법 구체를 있는 대로 받아들였다.
“끄륵…….”
무너지지 않기 위해 발악하며 싸웠던 시간이 무색하게, 전의를 잃은 몸이 마비되는 것은 불과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투욱.
그때, 쓰러진 프탈린의 품속에서 무언가가 밖으로 툭 떨어졌다.
[클루제의 적광 목걸이] [분류 등급 : 봉인 상태] [봉인 해제까지 2일 12시간 남았습니다. 그 전까지는 어떤 옵션도 열람할 수 없습니다.]‘클루제?’
아티팩트에서 익숙한 이름을 본 자레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선 심안으로 프탈린을 살폈을 때, 아티팩트 정보가 표시되지 않았던 이유는 알 것 같았다.
봉인 상태면 아무 능력도 발현되지 않으므로, 시스템이 평범한 물건 취급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캔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움브라 교단의 부교주인 클루제의 이름을 모를 수야 없지.’
암흑 교단이라면 치를 떨었던 자레드가 를 즐기면서 가장 공들여 포스팅을 했던 것이 바로 교단의 교주, 부교주에 대한 것이었다.
움브라 교단의 부교주인 클루제는 금지된 술법의 끝에서도 끝, 그 극한에 다다른 미치광이였다.
인간의 머리에 트롤의 몸, 그리고 개조된 마도 공학 병기가 탑재된 양팔과 전차를 연상케 하는 바퀴로 이루어진 하체.
이런 끔찍한 혼종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를 현실로 만든 것이 바로 클루제였다.
다만 예전의 그에게 적광 목걸이라는 아티팩트가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지금은 의 본 세계관이 시작되기 9년 전의 시점이기 때문이다.
스토리에 언급이 되지 않은 아티팩트이기에 용처를 짐작할 수는 없었다.
단,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프탈린에게 준 이 목걸이에 결코 선의가 담겨 있을 리는 없다는 것을.
‘어쩌면 프탈린 왕자의 정신을 장악하려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티팩트의 세부 옵션을 볼 수는 없었지만, 자레드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클루제는 기만, 모략, 거짓 신뢰를 연출하는 것에 능했다.
그리고 필요하면 자신의 핏줄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희생시키는 패륜아였다.
목걸이의 용도도 뻔했다.
프탈린에게 힘을 실어 주기보다는 그를 꼭두각시로 부리기 위한 정신 구속의 장치였을 것이다.
일단 자레드는 ‘클루제의 적광 목걸이’를 챙겼다.
그리고 마비 상태에 빠진 프탈린 왕자를 꽁꽁 묶은 뒤, 다시 한번 패럴라이즈 마법을 걸었다.
중복해서 두 번이나 강화시켜 걸었으니, 아마 10분 이상은 옴짝달싹도 못 할 것이다.
“아직 한 놈 남았다.”
자레드가 한 사람을 응시했다.
라키스와 뒤엉켜 열심히 싸우고 있는 카프리 백작이었다.
심안을 통해, 그가 가지고 있는 두 아티팩트에 대한 정보가 고스란히 노출됐다.
각각 4성의 아티팩트.
모처럼 값비싼 아티팩트를 챙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자레드가 아니었다.
파앗!
생각을 갈무리하기가 무섭게 자레드의 모습이 프탈린의 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한 줄기 바람이 자레드의 빈자리를 훑고 지나갔을 때.
“푸허어어억!”
저 멀리서 라키스와 용맹하게 싸우던 카프리의 입에서 거대한 피분수가 쏟아져 나왔다.
예상치 못한 자레드의 후방 기습을 피할 새도 없이 뒤통수로 가감 없이 받아 낸, 카프리의 치욕적인 결과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