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70
제 70화
27장. 숨은 주인공 찾기 – 2화
화르르륵.
반사적으로 양손에 마력을 힘껏 끌어올렸다가 다시 기세를 낮췄다.
순간적으로 긴장한 나와 다르게 상대에게서는 그런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경 쓰이는 점은 두 가지.
첫째는 루나티쿠스의 가호로 인해 상대에 대한 정보를 전혀 스캔할 수 없다는 것.
둘째는 상대가 ‘신의 가호’를 받을 정도로 중요한 인물임에도, 나는 그가 누군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진(眞) 주인공이야.’
나는 99%, 아니 100%에 가깝게 확신했다.
다시 말해서 이대로 시간이 흘러 성마 대전이 발발할 시점이 올 경우.
메인 스토리의 핵심 인물로 등장하기에 딱! 좋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에서는 주인공 역할을 수많은 플레이어가 했지만, 현생이 된 이 세계는 조용히 성장하고 있는 의문의 인물 ‘X’가 그 자리를 넘보고 있는 것이다.
아마 본인은 모를 것이다.
지금쯤 자신에게 어떤 운명이 다가와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를 것이다.
이 세계의 역사를 모두 꿰뚫고 있는 지식을 가진 이는 오로지 나뿐이니까.
남자가 내게 물었다.
“자리가 없어서 그런데, 합석해도 되겠습니까?”
순간 목소리가 살짝 떨릴 뻔했지만,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그의 말을 받았다.
“자리가 비었으니 문제 될 것은 없지요. 하지만 서로 통성명 정도는 했으면 합니다만.”
“카이클입니다.”
“자레드입니다. 앉으시죠.”
“자레드? 설마 이번에 그……?”
“맞긴 합니다만, 목소리는 일단 낮추시고.”
나는 웃으며 카이클을 자리에 앉혔다.
그의 이목구비를 확인했다.
물기를 머금고 찰랑이는 짧은 금발에 살짝 각진 턱, 그리고 거구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근육질의 몸까지.
확실히 평범한 체구는 아니었다. 다만 카이클이라는 이름이 내 기억 속에는 없었다.
어지간한 이름은 다 꿰차고 있으며, 동명이인이어도 기억하는 내 머리를 생각해 볼 때.
카이클은 에서 단 한 번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없는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한편 카이클이 목소리를 낮추고는 들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이 자리에서 유명인을 뵙다니! 영광입니다. 점원, 여기 맥주 한 잔 부탁해.”
“영광이랄 것까지야. 조용히 왕국의 정취를 감상하며 돌아가던 중이었습니다.”
“정식으로 다시 한번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살리트 공작가의 카이클입니다. 뭐…… 사실상 내다 버린 자식 취급이긴 합니다만. 실제로 출신 성분도 좋진 않지만요.”
“살리트 공작가? 신데르스 왕국 남부에 있는 대영주 바하만 살리트 공작 말씀이십니까?”
“네, 맞습니다.”
바하만 살리트.
그의 자식들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도, 그에 대해서는 잘 안다.
신데르스 왕국 남부의 상권을 손에 꽉 쥐고 있는 재력가로, 여성 편력이 심한 인물로도 유명했다.
워낙에 많은 자식을 두고 있다 보니 카이클에 대해 내가 모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남부를 두고 북부인 이쪽에는 어쩐 일로?”
“맥주 나왔습니다.”
중요한 질문을 이어 가려던 그때, 점원이 맥주를 내왔다.
그러자 카이클이 점원에게 금화를 건네며 말했다.
“나와 이 손님의 맥줏값을 바로 계산해 주게. 남는 돈은 자네 팁!”
“아앗! 감사합니다!”
때아닌 횡재를 한 점원은 만세를 부르며 돌아갔다.
나는 그에게 감사를 표했다.
“괜찮습니다만, 이리 대접해 주시니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나저나 정말 젊어 보이시는군요. 저는 올해로 스물여섯입니다만?”
“그렇습니까? 나이가 같네요.”
“헉, 우리가 동갑이라고요? 이런! 노안은 그저 울어야겠네요.”
“하하하.”
“정말 부끄럽습니다. 아직은 용병단을 전전하며 모자란 검술 짬밥으로 빌어먹고 사는 처지라 대영지를 경영하시는 영주님이 참으로 부럽군요.”
카이클의 눈빛은 사심 없이 부러움만이 가득했다.
신의 가호를 누리고 있는 자의 말과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꽤 자존감이 떨어져 보이는 구석도 많았다.
나는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다시 행선지를 물은 이유는 하나.
진 주인공일 수도 있는 그의 행보를 알고 싶어서다.
자의든, 혹은 운명의 이끌림이든 신이 그를 지름길로 인도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아라크네 용병단으로 갑니다. 조만간 ‘파멸의 지하 동굴’을 공략하기 위해 팀을 구성하고 있다고 들어서 말입니다. 일확천금을 손에 넣으려면 던전이 최고죠.”
익숙한 이름이 연이어 나왔다.
아라크네 용병단은 오로지 돈만 보고 뭉친 실력파 용병들이 가득한 곳으로 어려운 던전에 도전하기로 유명한 집단이었다.
물론 악명도 높았다.
던전 공략 중에 낙오된 팀원들을 구출하거나 돕기보다는 버리고 가는 것으로도 유명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모래알 용병단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실제로 용병 간의 관계는 매우 끈끈했다.
단지, 생존 가능성이 없는 동료를 가차 없이 냉정하게 버릴 뿐.
그리고 파멸의 지하 동굴은 신데르스 왕국 북동부에 위치한 동굴 형태의 던전이다.
에서 악명이 높은 3대 던전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내가 유망주들과 반드시 공략하고 싶은 던전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무사 귀환을 기원하죠.”
“감사합니다. 저 역시 영주님의 영지에 평안이 가득하길 기원하겠습니다.”
짠!
시원한 맥주잔을 부딪친 후 우리는 빠르게 잔을 비웠다.
“잘 마셨습니다. 꼭 앉아서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 덕분에 소원대로 됐네요.”
“벌써 일어나십니까?”
“갈 길이 바빠서요. 잠깐 눈이나 붙일 생각으로 들어왔는데, 앉을 자리도 없으니 말이죠. 그냥 비를 맞으면서 갈까 합니다. 다음 포인트에서 쉬어야겠습니다.”
카이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그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수집하고 싶었다. 심안이 통하지 않았으니.
하지만 그를 붙잡아 앉히기에는 그럴듯한 명분이 부족했다. 다만 여지는 꼭 남겨 두고 싶었다.
“저기, 나중에.”
“예?”
“기회가 닿는다면 크리비아 대영지에 한번 들르시죠. 오늘 빚진 맥주를 꼭 크리비아 맥주로 보답해 드리고 싶군요.”
“감사합니다. 저야 떠도는 대로 가는 인생이니, 언젠가 꼭 들르도록 하지요. 그때까지 무탈하십시오, 공작님.”
“살펴 가시길.”
그렇게 카이클과의 짧고 굵은 만남을 끝냈다.
내가 그에 대해 수집한 정보는 루나티쿠스의 가호를 받고 있다는 점과 달빛을 머금은 신묘한 검 한 자루를 들고 있다는 것이 전부.
그것뿐이었지만 왠지 설레는 만남이었다. 꼭 어떻게든 그를 다시 만나고 싶을 정도로.
그리고 욕심도 생겼다.
이왕이면 그보다 더 앞선 자리에서, 더 강한 힘을 가진 존재로서 자리하고 싶었다.
‘다시 보자, 카이클.’
나는 그렇게 동갑내기 라이벌이 될지도 모를 남자의 뒷모습을 기억에 담고는 맥주를 들이켰다.
“……?”
그런데 그때.
내 이목을 일순간 확 끌어당기는 사람이 있었다.
술집과 여관을 겸하고 있는 이곳은 워낙에 사람이 붐볐고, 그에 따라 특이한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유독 머리부터 발끝까지 풍기는 기운이 특이한 세 사람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시선을 끈 것은 원탁의 중앙에 앉아 있는 여자였다.
포니테일 스타일로 질끈 묶은 머리와 아이라인부터 입술까지 모두 검은색으로 통일한 메이크업.
그리고 검은 가죽 재질로 만들어진, 몸에 쫙 붙는 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가슴골을 노출 시킨 깊게 파인 네크라인 때문에 보는 이의 눈을 아찔하게 만들기까지 한 복장이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다른 테이블에 앉은 남자들이 힐끗힐끗 그녀를 쳐다보는 모습이었다.
나는 우선 양옆에 앉아 있는 두 남자의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수준을 비교하자면, 엘라보다 살짝 낮은 정도의 실력을 가진 남자들이었다.
딱히 주목할 만한 특수 성향은 없었고, 그저 오랜 기간 검술을 연마한 고수들로 보였다.
시종일관 여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그녀의 호위이거나 부하인 듯싶었다.
그런데.
[특수 성향 : 헤레시스의 가호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특수 성향 열람이 불가능합니다.]‘뭐라고?’
좀처럼 잘 놀라지 않는 내가, 이 술집에서만 벌써 두 번 놀랐다.
‘신의 가호 = 진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내게 두 번째 주인공 후보가 바로 나타난 것이다.
헤레시스는 악신(惡神)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 심지어 패륜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저지르기로 유명한 신이다.
그런 악신이 그녀를 비호하고 있는 것이다.
‘숨은 주인공 찾기라도 하라는 거야?’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저들이 있다고 해서 내가 해야 할 일, 나아갈 길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내 신념은 확고하고, 앞으로의 목표도 한결같다.
주인공, 그 이상을 넘어서는 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것. 그뿐이다.
문제는 언제고 다시 마주칠 수 있는 존재 중에 악신의 가호를 받고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특히 헤레시스는 암흑 교단의 태동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의심을 받는 신이다.
스토리상으로 명확하게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의혹만 있는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만큼 질이 나빴다.
그런 신의 가호를 받는 여자라니? 선입견을 떼어 놓고 보려고 해도, 그녀에 대해서는 자연스레 색안경을 낄 수밖에 없었다.
찰나의 순간.
나와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또렷한 그녀의 이목구비를 살펴보면서 기억을 되짚어 봤지만, 역시나 카이클처럼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다가가서 허심탄회하게 서로에 대해서 물을 수 있는 훈훈한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 같지도 않았다.
칼부림이나 안 하면 다행이다.
그때.
찌릿. 찌릿.
이마 안쪽을 콕콕 찌르는 듯한 두통이 느껴졌다.
이것은 단순한 두통이 아니다.
누군가 내게 정신 계열의 디버프 마법이나 주술 등을 시도했을 때에 생기는 현상이다.
일반인이라면 바로 정신을 제압당하겠지만, 내게는 ‘성인 그라시아의 반지’가 있어 면역이다.
다만 면역의 부작용이 살짝 남게 되는데, 그것이 두통이었다.
“…….”
나를 보는 그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내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시선을 마주치자, 그것이 무척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심지어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활짝 편 양손을 받침대 삼아 턱까지 괴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쯤 되면 내게도 어떤 신이라도 좀 손길을 뻗어 줘야 되는 것 아니야?’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제법 승승장구하며 나름 미래를 개척해 나가고 있는데!
이쯤 하면 소소한 접촉쯤이라도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야!
하지만 이는 소리 없는 아우성일 뿐.
“레드 퀸, 가시죠.”
“시간이 다 됐습니다.”
“벌써? 그래, 출발하자.”
그때, 수하로 보이는 남자 둘이 그녀를 불렀다.
레드 퀸(Red Queen).
본명을 숨긴 그녀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카이클, 레드 퀸. 도대체 너희들은 뭐야?’
용건이 생긴 듯 빠르게 자리를 뜨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내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내게서 멀지 않은 곳에 저마다의 독특한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 존재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찡긋.
“…….”
다시금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가 내게 윙크를 보냈다. 소리로는 들리지 않을 입 모양과 함께.
“재밌네. 다시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