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74
제 74화
29장. 마군의 피난처 – 1화
그날 이후.
영지의 선전관으로 취임한 발데스는 바로 두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 추진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첫째는 군사용 선전 영화 제작, 둘째는 나를 주인공으로 한 자서전 제작이었다.
나는 잘 몰랐는데, 가신들 사이에서는 발데스에 대한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알음알음 돌았던 모양이었다.
그 덕분에 임명 과정에서 별다른 잡음도 없었고, 가신들도 딱히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오브렌이나 아빌라 같은 오랜 가신들은 적극 환영하는 의사를 직접 밝혔을 정도였다.
순풍을 탄 배처럼 영지의 운영은 그렇게 순탄히 잘 흘러갔다.
* * *
7월 5일, 이른 아침.
촤륵!
해가 뜨기도 전에 일찌감치 집무실로 나온 나는 어젯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최종 합본(合本)을 완성한 지도를 펼쳤다.
유망주들과 함께 첫 번째 공략 목표로 삼은 지하 던전, 마군의 피난처에 관련된 지도였다.
“확실히 복잡하네요.”
“깜짝이야! 뭐야, 어떻게 들어왔어? 아니, 그것보다 들어오려면 노크는 해야 할 것 아냐?”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클로이였다.
어지간한 기척은 다 감지하는 나인데, 클로이의 기척은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특수 성향 중 하나인 절대 은신이 빛을 발한 듯했다.
절대 은신은 기척을 완벽하게 숨기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깜짝 놀란 내 리액션이 꽤 당황스러웠는지, 클로이도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답했다.
“문이 열려 있어서.”
“그랬나? 그랬군. 나한테 말은 하고 들어온 거야?”
“네.”
“그런데 내가 못 들었다는 말을 뒤에 생략한 거지?”
끄덕.
역시 클로이는 본래의 성격답게 말을 극도로 아꼈다.
예전에는 그런 클로이가 꽤 답답했는데,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저게 클로이의 아이덴티티라는 생각을 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이따가 브리핑할 건데, 굳이 지금 볼 필요가 있겠어?”
“미리 봐 두어서 나쁠 건 없겠죠.”
클로이의 말도 일리가 있었기에 나는 바로 그녀의 말을 수긍했다.
잘됐다 싶었다.
그녀에게 설명을 하면서 브리핑할 내용도 정리하고, 내 기억도 확실하게 점검하기로 했다.
“마군의 피난처는 악마를 숭상하는 자들이 지하에 모여들어 만들어진 일종의 마굴이야. 예전에 우리가 갔던 마하트 3세의 무덤보다 더 어둡고 음침한 곳이지.”
“네.”
자세한 설명이 무색하게, 그녀는 한 글자로 리액션을 끝냈다.
안 돼, 이런 분위기에 말리면 안 돼!
내 페이스대로 설명을 이어 가자!
“원래는 던전이 아니었어. 다시 말해서 그냥 타락한 자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지. 하지만 피난처 안에 수많은 제단이 지어지고, 인신 공양과 함께 제물을 바치기 시작하면서.”
“던전화 되었군요.”
“맞아, 바로 그거지. 마기가 이곳에 완전히 뿌리를 내리면서, 고정적으로 악기에 찌든 몬스터를 배출하는 던전이 되어 버린 거야.”
“그곳의 몬스터들은 매우 강하다고 들었습니다.”
“응, 사실 놈들의 내구성은 매우 낮아. 거짓말 조금 보태서 검을 휘두르면 두부 썰리듯 썰릴 정도로 약하지. 하지만 그에 반해 엄청난 공격력을 가졌어. 무엇보다 이놈들에게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거세되어 있는 상태지.”
“상대는 악마로 얼룩진 몬스터들. 그렇다면 응당 신성력이 통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클로이가 제법 길게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그녀의 생각은 바로 대다수의 헌터들이 똑같이 했던 생각이다.
마기에는 신성력으로 대응한다. 너무 교과서적인 대응법이라 의심할 여지도 없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마군의 피난처 공략을 시도했던 수많은 헌터의 목숨을 앗아간 첫 번째 원인이 된다.
“아냐, 절대 신성력 무장을 해서는 안 돼!”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신성력 무장을 하게 되면 분명 몬스터들에게 입힐 수 있는 피해량이 2배로 늘어나긴 해. 하지만 그만큼 적에게 당하는 피해량도 똑같이 2배가 늘어.”
“……정말인가요?”
“내가 여기서 거짓말을 뭐 하러 하겠어?”
클로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것이 바로 게임 에서 등장했던 쌍방향 상성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갖는 것이다.
이럴 경우, 보통 선수필승이 된다. 먼저 대미지를 입혀야 상성상 우위로 들어간 피해를 입힐 수 있으니까.
에서의 상성 개념이야 모든 유저들에게 탑재된 지식이었으니 문제가 없다.
하지만 현생은 다르다.
십중팔구, 아니 그 이상의 사람들은 신성력이 마기에 대해 우위를 갖는다는 것만 생각한다.
반대의 경우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물론 그 이면에는 마기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최상위 흑마법사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도 한몫을 하겠지만 말이다.
“신성력으로 맞불을 놓으면 안 돼. 강화 없이 그대로 공략하는 것이 베스트야.”
“…….”
내 말이라면 어지간해서는 수긍하는 클로이도 고개를 한 번 더 갸웃거렸다.
바로 이런 선입견이 문제다.
많은 헌터가 그녀처럼 틀에 박힌 생각을 버리지 못했고, 신성력에 대해 집착하고 집착하다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전신을 신성력 무장으로 두르거나, 온갖 신성 버프를 받고 던전에 입장했다면 저승길은 더 빨리 열렸을 테고.
“공략 계획은 내 머릿속에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클로이, 너는 네 능력을 어떻게 100% 발휘할까만 걱정하면 돼.”
“그러면 되는 걸까요.”
“큭, 그러면 뭘 더하게?”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보탬이 되고 싶으면 되고 싶다, 임무를 맡고 싶으면 자신에게 임무를 맡겨 달라, 이렇게 말하면 되는데.
이렇게 말을 아낀다.
분명 말하기 전에 두 번, 아니 세 번은 고민하고 내게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영문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디 보자…….’
나는 그간 묵묵히 엘라와 나의 지도를 번갈아 받으며 성장해 온, 클로이의 상태를 다시 점검했다.
[클로이 – Lv. 83] [근력 : 63][체력 : 67] [마력 : 13][지혜 : 17] [민첩 : 501][매력 : 21] [물리 방어력 : 35] [마법 방어력 : 12] [특수 성향 : 절대 은신 SS / 위장술 S / 약점 분석 B] [일반 성향 : 호감, 혼란, 투지] [아티팩트 ‘트란퀼루스의 군화’를 보유 중입니다.]‘뭐야, 이 혼란스러운 일반 성향은?’
투지는 늘 훈련에 열심이니 그렇다 치고, 호감과 혼란이라니?
누군가에게 가진 호감이 마음속을 심란하게 만들고 있다는 뜻인가!
미루어 짐작은 했는데, 호감을 가진 대상이 누군지는 모르겠다.
생각해 보니, 클로이와 내가 훈련하는 연병장에서는 아그레시오 친위대가 훈련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친위대 중에 잘생긴 녀석들이 제법 있으니, 그중 한 명에게 연모하는 마음을 품었을지도.
얼마 전, 제안을 받아들여 공식적으로 친위대 훈련 교관으로 부임한 엘라가 선호하는 훈련 장소가 연병장이었기 때문에 그곳을 오가며 친위대의 얼굴을 보기도 쉬웠다.
여전히 엘라는 클로이의 스승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가르침의 양은 예전보다 줄었다.
일전에 그녀가 나와 술 한잔을 마시며 허심탄회하게 나눈 말에 따르면, 더 이상 클로이에게 가르칠 것이 없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엘라는 공격보다는 방어에 좀 더 능한, 탱커 타입의 검사였다.
그래서 레나에게는 가르칠 것이 많았다.
하지만 거의 공격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극공 포지션’을 잡아야 하는 암살자 계열의 클로이에게는 가르칠 부분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엘라와 클로이의 만남은 부쩍 줄어들고 있었다.
다음 달이면 상호 간에 맺은 계약도 완전히 종료된다고 한다.
사제지간에 왜 계약을 맺었나 싶지만, 그만큼 엘라와 클로이는 서로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는 관계였다.
‘절대 은신 SS에 위장술 S. 이거 방심하면 내 목도 온전치가 않겠네.’
나는 서늘한 기운에 반사적으로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지금 그녀의 실력이라면, 2클래스 이하의 일반 마법사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당할 것이다.
‘게다가 못 보던 아티팩트가 생겼네. 그레이 엘프가 몰래 전달해 준 걸까? 아니면 가지고 있다가 이제야 신은 걸까?’
나는 그녀의 아티팩트 보유 목록에 표시된 트란퀼루스의 군화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
트란퀼루스는 클로이의 오빠다. 2남 4녀로 이루어진 클로이 육남매의 첫째, 즉 장남인 것이다.
훗날 블랙 오크와의 전쟁에서 클로이의 두 오빠는 모두 죽는다. 그것이 그녀가 여왕으로 등극하게 된 계기였다.
어쨌든 남매 사이는 꽤 좋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트란퀼루스가 자신의 군화를 전해 준 모양이다.
‘트란퀼루스가 그렇게 잘생겼다던데. 같은 남자가 봐도 홀려 버릴 정도로 말이야.’
에서도 관련된 스토리만 들었을 뿐, 실제 얼굴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왠지 그의 얼굴이 궁금했다. 솔직히 비교해 보고 싶었다. 나보다 더 잘생겼나 싶기도 하고?
어쨌든 클로이의 성장을 보니 기분은 좋았다.
이제 적당한 시기를 보고, 그녀에게 정식 요청할 생각이었다.
지금은 내 영지에 엘라와 함께 머무는 손님으로 있지만, 이제는 진짜 내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고, 내 곁에 두고 싶은 사람은 너무나도 많구나.’
나는 행복한 고민을 했다.
세상에서 긁어모으고 모아도, 매번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지 않는가?
돈과 힘!
그리고 인재 말이다.
* * *
얼마 후.
영주 대저택 동편에 마련된 별관에 모두가 모였다.
목적은 던전인 마군의 피난처에 대한 상세 브리핑을 하기 위함이었고, 참여자는 미아, 레나, 이자벨, 헤이즈, 클로이, 라키스, 그리고 나로 총 일곱이었다.
브리핑은 신속하게, 그렇지만 자세하게 진행됐다.
모두 내 판단으로는 마군의 피난처 공략에 문제가 없는 스탯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가장 걱정되는 사람이 있다면 미아였다.
올해로 열세 살인 미아가 과연 피와 시체 썩은 냄새가 어지러운 전장에 잘 적응할지 걱정이었다.
“걱정 마세요, 영주님! 한 달 전부터 담력을 기르려고, 공동묘지에서 혼자 야영을 해 왔거든요!”
하지만 내 걱정이 어리석었다고 일침을 가할 속셈이었는지, 미아가 폭탄선언을 했다.
내게 말도 안 하고, 혼자 공동묘지에서 극기 훈련을 했던 모양이었다.
이 세계의 공동묘지는 내가 생각하는 전생의 공동묘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모든 시체가 오롯이 관에 잘 보관되어 묻힌 것이 아니라, 대충 흙으로 시신 위만 덮고 봉분(封墳)을 낮게 만든 것도 많았다.
이따금씩 폭우라도 좀 내렸다 치면, 빗물에 씻겨 나간 흙 사이로 손이나 발, 머리 따위가 삐져나오는 일이 다반사였던 것이다.
그런 곳에서 미아가 긴 밤을 보내 왔다고 생각하니, 당사자도 아닌 내가 오싹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
브리핑 내내 조용히 내 말을 경청하던 이자벨이 손을 들었다.
“영주님, 질문이 있습니다.”
모두가 모인 자리라 그런지, 둘이 있을 때와 달리 존대를 했다.
“얼마든지. 다시 말하지만, 사전 질문은 환영합니다. 던전 안에서 질답을 할 시간은 없을 테니까.”
“마군의 피난처는 A급 헌터 40명이 달려들어도 공략하지 못한 던전이라고 들었어요. 과연 여기 일곱만으로도 공략이 가능할까요?”
예리한 이자벨답게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 들어왔다.
좋은 질문!
기다리던 질문이기도 했다.
왜냐고?
나 혼자만 가지고 있는 지식을 이용해 늘 공략에서 꿀을 빨아 왔던 나!
그런 내 머릿속에 당연히 전부터 탑재되어 있는 공략법을 물어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