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83
제 83화
31장. 마스터 포션 – 3화
대화는 예상보다 꽤 길어졌다.
애초에 사신들이 내 영지를 방문한 목적이 단순히 구조 인력 요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구조 인력과 구휼미 요청은 당연했고, 두 사신은 거기에 치료제 판매를 적극 요청했다.
가격은 상관없다고 했다.
그저 원하는 양만큼은 꼭 팔아 달라는 것이다.
특히 그들이 놀란 것은 내가 제작한 마스터 포션이 특정 질병에만 듣는 표적 치료제가 아니라, 모든 수인성 질병을 아우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내게 되물었다. 정말이냐고. 확신할 수 있냐고. 거짓말 아니냐고.
매번 속고만 살았나 싶어서, 못 믿겠으면 돌아가지 왜 여기에 있냐고 쏘아붙였더니 조용해졌다.
판매가를 두고 긴 협상 끝에 원하는 가격을 도출해 낸 나는 보누스 왕국과 말루스 왕국의 사신에게 친절하게 맺음말을 해 주었다.
“약속된 물량은 즉시 준비해서 국경 지대로 옮길 것입니다. 병증이 약한 환자는 꼭 포션 한 병을 다 쓸 필요가 없습니다. 증세의 경중에 따라 많게는 5명까지도 나눠 먹어도 효과가 좋습니다.”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부디 빠른 공급을 부탁드립니다. 국왕 전하께서 매우 기뻐하실 것입니다!”
“연락 주시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두 사신은 환호하며 돌아갔다.
아마 나와의 협상이 틀어졌다면, 돌아가서 목이 날아가든 감옥에 갇히든 했겠지.
저들의 부담감을 모르는 바는 아니라서, 나는 예법에 따라 그들을 정중히 배웅해 주었다.
그렇게 손님맞이가 끝났나 싶었는데…….
“영주님, 신데르스 왕국에서도 사신이 왔는데, 오신 분이…….”
헤이즈가 다급히 새로운 손님의 등장을 알렸다. 그런데 말끝을 흐리는 것이 평범한 손님은 아닌 듯했다.
“왜? 무슨 일이야?”
“마이라 공주님께서 직접 오셨어요.”
내 정혼녀가 될 뻔했던 여인이 찾아왔다.
마이라.
그녀가 온 것만으로도 신데르스 왕국이 처했을 위급한 상황이 느껴졌다.
* * *
“이런 고급스러운 차를 마시는 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수해 현장에서는 많은 백성이 고통 받고 있을 텐데.”
“혼자 드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좋은 차로 기분을 전환하시고, 그 긍정의 기운을 백성들에게 전해 주시면 됩니다.”
나는 반쯤 죄인이 된 듯한 표정으로 차를 마시고 있는 마이라를 위로했다.
사신으로서의 예를 갖추기 위해 복장을 갖춰 입기는 했지만, 허술한 구석이 많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왕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누가 봐도 수해 현장에서 급히 출발한 것이 틀림없는 모습이었다.
윤기를 잃은 머리, 거의 화장기가 없다시피 한 수수한 얼굴, 그리고 손 여기저기에 보이는 숨길 수 없는 상처까지.
일전에 신데르스 왕국에서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그녀의 모습이었다.
“최대한의 준비를 갖췄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전염병의 확산 속도가 너무 빨라요.”
“제게 좀 더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홍수와 전염병의 대유행은 단짝 친구와도 같으니까 대비는 계속하고 있었어요. 충분한 양의 약재도 구비해서 초기에는 대응이 가능하다 여겼어요.”
“정확히 어디서 문제가 발생한 겁니까?”
“홍수 피해 지역의 백성들을 모두 외곽 지대로 소개시키고, 고위험군의 백성들은 전부 격리했어요. 질병의 발생은 막을 수 없었지만, 확산은 막겠다는 계획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산됐다?”
“일반적인 확산의 경로가 아니에요. 동시다발적으로 홍수와 무관한 지역에서도 전염병이 발생했어요. 그리고 영지민이 주 식수원으로 사용하던 우물에서…….”
“전염병을 유발할 수 있을 시체나 그 흔적들이 발견된 모양이군요.”
“맞아요. 어떻게 아신 거죠?”
까드득.
그녀의 말에 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바로 이를 갈았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치졸하고 악랄한 수단을 재해와 맞물려 쓸 줄이야!
이것은 십중팔구 움브라 교단의 소행임이 틀림없었다.
베일에 싸인 교주 린크스나와 달리, 부교주 클루제는 대외적인 테러를 서슴지 않는 놈으로 유명했으니까.
내가 신데르스 왕국의 내전에 깊이 개입해서 움브라 교단의 계획을 완전히 틀어지게 했으니, 다양한 경로로 복수를 계획했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놈은 잔혹하면서도 상당히 용의주도하다는 점이다.
클루제는 쉽게 추적당할 수 있는 크리비아 영지 내에서는 일을 벌이지 않았다.
대신 문제가 발생하면 간접적으로 어떻게든 영향을 미칠 주변 국가에다 수작을 부린 것이다.
“이건 움브라 교단의 짓입니다. 이런 테러를 체계적으로 자행할 수 있는 조직은 많지 않아요. 하물며 신데르스 왕국의 내부 사정에 정통하려면…….”
“과거에 프탈린과 제스 오라버니가 협력했던 움브라 교단이라면, 내부 정보도 충분히 수집했겠네요.”
“그렇습니다.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죠. 전염병 치료제는 있습니다. 마스터 포션이라 불리는 것으로 대표적 수인성 질병 6종을 모두 잡을 수 있습니다.”
“정말인가요? 그런 포션이 존재한다는 얘기는 지금껏 들어 본 적이 없는데요.”
“이제 들으셨잖습니까. 첫 사례가 생기신 거죠.”
“아……. 영주님이 처음으로 개발하신 건가요? 예전에 그 로넬라 병 치료제처럼?”
“그렇습니다.”
“믿기지 않아요.”
“원래 인생이란 놀라움의 연속이죠. 어렸을 적부터 약초를 꼼꼼히 공부해 왔던 게 이제 빛을 발하나 봅니다.”
나는 너스레를 떨었다.
치료제를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치료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지.
아울러 한 가지 더.
마스터 포션으로 얼마나 금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비록 사람을 구하기 위해 만든 포션이긴 하지만, 무료 봉사를 하려고 만든 것은 아니니까.
앞서 방문한 보누스, 말루스 왕국과 신데르스 왕국은 내게 치료제 대금을 치를 재력이 충분한 나라다.
그들을 걱정해 주는 것은 소작농이 흉년에 대지주의 농사를 걱정해 주는 것과 똑같다.
다시 말해 쓸데없는 오지랖이란 얘기다.
“영주님의 고생과 노력에 대한 대가를 치를 준비는 충분히 되어 있어요. 부디 저희 왕국에 치료제를 팔아 주세요. 한시가 급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백성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마이라는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면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일단 확보된 물량 중 7할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제작은 계속 진행되고 있으니까 공급은 수시로 이뤄질 겁니다.”
“7할이나요? 제가 오기 전에 방문한 사신단에게 팔기로 하지 않으셨나요? 두 나라에서 겨우 3할의 치료제밖에 사지 않았나요?”
“정해진 양 이외에는 욕심을 내지 않더군요. 아마도 그 약을 모두에게 쓸 생각은 아닌 거겠죠.”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보누스 왕국의 국왕 보리네스 3세와 말루스 왕국의 국왕 말자리스 8세는 에서 소문난 쓰레기였다.
무슨 말인가 하면, 국왕으로서 백성 모두를 아울러 돌봐야 할 덕을 갖추지 못했다.
두 국왕은 머저리 콤비인 양 변질된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함께 추종했다.
그 논리 중에는 귀족 미만의 평민은 왕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는 충성스러운 인민이어야 한다는 개똥철학도 있었다.
아까 사신단과 협상하면서 계산을 해 봤지만, 그들이 구매하기로 약속한 물량은 모든 피해자를 치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다는 것은?
귀족 같은 상위 계층만 선택적으로 치료해 구하겠다는 얘기다.
나는 이번 대홍수와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우리 영지에 벌어지게 될 일을 얼추 머릿속에 그려 놓고 있었다.
바로 난민 발생이다.
작년부터 예상했던 일이고, 머릿속에 대비를 위한 가이드라인도 착실히 준비되어 있다.
단, 딱 한 가지 계획을 충족하지 못해 모자란 부분이 있다.
바로 재화다.
그래서 나는 이번 마스터 포션 판매를 통해, 그 재화의 필수 조건을 충족할 생각이었다.
“모두에게 쓰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공주마마, 세상에는 생각보다 비정상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직 너무 순수하시군요.”
나는 순진한 마이라의 정신이 번쩍 들도록, 세게 일침을 가했다.
그녀는 차갑고 냉정해 보이는 성격과 달리, 세상 물정에는 어두워 보인다.
나를 찾아왔기에 망정이지, 다른 국가에 사신으로 갔다면 협상에서 호구가 되기 딱 좋은 상대였다.
“알고는 있지만, 영주님께서 직접 확인 사살을 해 주시니 부끄럽네요.”
“어쨌든 공주님, 치료제는 바로 드리겠습니다. 정해진 가격은 당연히 치러 주셔야 하고요.”
친절은 친절대로, 이익은 이익대로 챙겼다.
신데르스 왕국과 우리 영지는 분명 남다른 협력 관계이긴 하지만, 그것을 사적인 배려로 이어지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물론이에요. 대금은 충분히 준비해 왔어요.”
“그리고 피해 지역 전체의 우물을 집중적으로 관리해 주시고, 다수의 신관을 배치하십시오. 움브라 교단이 분명히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알겠어요.”
“잠복기가 있는 만큼 환자는 더 늘어날 겁니다. 계속해서 치료제를 생산할 테니 언제든 치료제를 수송해 갈 수 있는 수송대를 급파해 주십시오. 우리 영지에서도 국경 지역까지 보낼 수송대를 편성하겠습니다.”
“감사해요. 우리 신데르스 왕국의 백성들과 저, 그리고 국왕 전하를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이라가 대뜸 내게 절을 했다.
공주가 누군가에게 절을 한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나는 그녀의 진심을 오롯이 느꼈기에 맞절로 그녀의 진심을 가감 없이 받아 주었다.
그리고.
“그럼, 금화부터 좀 볼까요?”
바로 잔고 확인에 들어갔다.
일단 입금이 되어야 어떤 일이든 더욱 열정적으로 할 맛이 나니까 말이다!
* * *
그날 이후로 나는 모든 시간을 마스터 포션의 제작에 투자했다.
지금으로서는 마스터 포션의 판매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부를 축적할 최고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자동 생산공정을 확보해 놓기는 했지만, 이 공정으로는 하루 생산량에 한계가 있었다.
수동으로 직접 생산하면, 자동 생산공정에 비해 5배 이상의 포션을 제작할 수 있으므로!
당연히 자동 생산을 올스톱 하고 수동 생산에 올인했다.
나야 먹고 자고 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으니 24시간 일에 집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딱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하아, 하아, 하아아.”
하루 종일 마스터 포션 제작을 돕다 지쳐, 내 앞에서 새근새근 곤한 잠이 든 이자벨뿐이었다.
마스터 포션 제작의 최종 마무리 단계에 반드시 그녀의 저주술이 필요했기에, 그녀 없이는 이 공정을 마무리할 수가 없었다.
그녀와의 논의 끝에 9%의 수익 분배를 약속하고 얻어 낸 도움이긴 했지만…….
그녀는 나처럼 비정상적으로 일할 수는 없었기에 틈틈이 그녀가 자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부지런히 저주술 처리가 되지 않은 포션을 만들고 또 만들며, 잠든 이자벨에게 가끔 확인할 용도로 물음을 건넸다.
“이자벨……. 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