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g Player RAW novel - Chapter 93
제 93화
35장. 악마 유희 – 1화
클루제는 자레드가 만들어 낸 더블 플레임 애로우를 보는 순간,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이건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마법의 변종이다.’
솜씨 좋은 마법사들이 마법 두 가지를 동시에 시전하는 모습이야 종종 봤었다.
이는 마법의 숙련도를 극대화했을 경우에만 가능한 것으로 매우 특별한 케이스라고 했다.
사실 앞서 부하들이 무려 320개에 달하는 매직 미사일 구체에 쓸려 나갈 때만 해도.
클루제는 자레드의 특별함을 부정했었다.
아티팩트든 뭐든 부정한 수단을 이용한 눈속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애초에 매직 미사일이라는 것이 마법사 한 명이 다섯 개의 구체를 다루도록 만들어진 마법이다.
그것은 진리였다.
하지만 자레드가 오늘 그 진리를 깨 버린 것이다. 상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하물며 20개에 달하는 플레임 애로우의 구체는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각기 다른 20명의 마법사가 만들어 낸 합작품이라면 믿겠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자레드 혼자서 활활 타오르는 화염구를 허공에 띄운 채, 언제든 자신에게 날릴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클루제의 뒷목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수많은 디멘션 도어의 차원문이 있는데, 각각의 문이 어디로 연결됐는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제길!”
하지만 클루제는 이내 복잡한 생각을 털어 내고는 자신의 개변된 몸과 흐름에 모든 것을 맡겼다.
숨겨 둔 힘을 꺼내지 않았는가?
비록 자레드의 실력이 범상치 않아 보이기는 하나, 그것은 자신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 수준이면 6클래스 마법사는 물론이고, 7클래스 마법사의 목숨도 능히 거둘 수 있다.
하물며 자레드는 5클래스.
조금 특이한 5클래스지만,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아앗!
결심을 한 클루제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과연 분신술의 달인답게 수많은 환영이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고, 클루제는 그 틈에 자연스럽게 섞여 자레드를 노렸다.
다음 순간.
화르르륵!
자레드도 기다렸다는 듯이 불화살들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그것들은 바로 차원문 안으로 휩쓸려 들어갔고, 이내 저마다의 출구를 찾아 나오기 시작했다.
“죽여 버리겠다!”
그사이에 클루제의 몸은 일찌감치 자레드의 앞에 당도해 있었다.
거리가 워낙에 가까웠기 때문에 노림수를 가져가기에도 쉬웠다.
파팟.
“아?”
하지만 클루제의 일격은 허무하게 빗나갔다.
본신의 움직임을 진즉에 파악하고 있었다는 듯, 너무 간단하게 텔레포트로 공격을 피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레드가 이동한 지점은 클루제의 분신들 한가운데였다.
즉, 이 녀석들이 확실하게 분신이라는 판단을 했을 때에만 가능한 행동이었다.
‘내 모습이 보이는가……?’
클루제의 얼굴에 나타난 당황스러운 표정도 잠시.
퍼엉! 퍼엉! 퍼어엉!
“크억! 억! 크억!”
이내 변칙 경로로 날아든 플레임 애로우가 클루제의 등판을 매섭게 후려쳤다.
애초에 20개의 마법 구체가 정면에서 날아들어도 경로 예측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한데 디멘션 도어를 이용해서 변주까지 추가한 공격이 이어지니, 죽을 맛이었다.
“제기랄!”
클루제가 인상을 찌푸리며, 일단 플레임 애로우의 예측 경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터업!
“크어억! 바, 발이!”
자레드의 텔레키네시스 마법에 발목을 붙잡혔다.
정확히는 이동이 염동력에 의해 억제되고, 강제로 원위치로 끌려가 버리고 만 것이다.
콰앙! 퍼엉!
“끄으으으윽!”
시간차를 두고, 두 개의 불화살이 클루제의 가슴을 후려쳤다.
단순한 충돌 정도가 아니라, 거대한 바윗돌로 갈비뼈를 으깨는 듯한 엄청난 충격이었다.
“웨에에엑!”
참을 수 없는 구역감을 이겨 내지 못하고 클루제가 속에서 치밀어 올라온 것을 토해 냈다.
그러자 선명하게 검붉은 빛을 띤 핏덩어리들이 후두둑, 하고 떨어져 내렸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정말 말이 되지 않았다.
백번 양보해서 자레드의 실력이 6클래스 마법사의 경지에 있다고 해도, 이렇게 강할 수는 없었다.
마법 공격 하나하나가 뼛속까지 부숴 버릴 것같이 몸 전체를 울리고 할퀴었다.
위력에서부터 자신의 부하들을 학살하던 자레드의 마법과는 차원이 달랐다.
최소 2배!
그때보다 지금 더 강해진 것 같은 마법의 화력이었다.
델루크의 팔찌에 담긴 5번 옵션을 알 리 없는 클루제는 자레드의 능력(스탯) 상승을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파팟.
단거리 이동 마법으로도 자주 쓰이는 4클래스 마법, 블링크(Blink)를 이용해 자레드가 클루제의 뒤로 붙었다.
그리고 즉시 그의 몸에 손을 접촉한 뒤, 바로 절대 약화의 반지에 있는 6번 옵션을 활성화했다.
확정적 해체.
대상의 방어력 수치를 10초 동안 0으로 만들어 버리는 방어 해제 기술이었다.
“네가 어, 어떻게?”
클루제의 얼굴이 흙빛이 됐다.
이 아티팩트의 방어 해제 능력 – 확정적 해체라는 명칭은 자레드에게만 보인다. – 은 자신만 사용할 수 있는 고유 기술이었다.
반지의 고유 기술을 발동시키려면 반지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거니와, 기술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자레드는 별도의 연구나 분석도 없이, 바로 기술을 활성화시켜 버린 것이다.
스르르륵.
클루제가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놀라는 사이, 개변으로 강화되었던 몸은 순식간에 약화됐다.
모든 방어력이 0이 되면서 단단한 강철과 같았던 피부도 순식간에 물러 터진 물살처럼 변했다.
꿀꺽.
클루제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긴장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답게 침착성을 되찾았다.
그리고 이어질 자레드의 공격을 막기 위한 방어 동작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클루제, 생각보다 멍청하네?”
그때.
귓전을 거칠게 파고드는 자레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멍청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농담이어도 용납할 수 없을, 자신의 자존심을 깡그리 짓밟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 말을 부정하기도 전에 기어이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클루제에게는 ‘사고’, 자레드에게는 ‘노림수 적중’이 될 상황의 발생이었다.
푸욱!
“……!”
클루제는 자레드의 마법에 대비할 새도 없이, 자신의 오른쪽 가슴을 깊숙하게 찌르고 들어온 자레드의 도구를 내려다보았다.
단검이 아니었다.
무기라기보다는 마법진 세공이나 절단에 쓰일 법한 마도구였는데, 그 예리함이 상상을 초월했다.
“스텔라드……?”
희귀 광물 스텔라드.
쉽게 구할 수가 없어, 존재 자체만으로도 보물에 가까운 취급을 받는 스텔라드로 만든 마도구가 자레드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자레드는 스텔라드로 만든 마도구로 자신의 오른쪽 가슴을 꿰뚫어 버렸다.
예리한 단검도, 날카로운 장검도 아닌, 마정석을 세공하는 마도구에 치명상을 입은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자레드와 클루제 사이에 침묵이 짙게 깔리고.
절망에 빠진 클루제의 눈빛이 피가 철철 흘러내리고 있는 자신의 가슴으로 향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너만 있는 건 아니거든.”
쫘아아아악!
“크아!”
자레드가 미련 없이 ‘장인 불릿의 마도구’를 이용해, 클루제의 오른쪽 가슴에서 왼쪽 배로 이어지는 대각선의 절창(切創)을 만들어 냈다.
개변으로 강화된 몸 상태였다면 스텔라드로 만들어진 마도구라도 깊게 베이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하필이면 ‘확정적 해체’로 인해 방어력이 아예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된 상황이었다.
때문에 가벼우면서 절삭력이 좋은 마도구에 의해 입은 상처가 바로 치명상이 되었던 것이다.
“크헉.”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절대 상처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될 것들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것은 복막을 비집고 나온 클루제의 오장육부였다.
자레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에게서 멸살의 단검을 빼앗아 갔다.
정말 코앞에서, 대놓고 자신의 단검을 빼앗아 갔지만 클루제는 손 하나 제대로 까딱할 수 없었다.
“혹시 모르니 일말의 가능성도 확실히 차단하고.”
자레드가 클루제의 뒤로 돌아가서는 그가 신고 있는 신발 위로 단검을 그어, 양쪽 발의 아킬레스건을 끊어 버렸다.
“크아아아악!”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신음을 토해 내며, 클루제가 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발은 더 이상 몸을 지탱할 수 없고, 몸은 체내의 오장육부를 담아내지 못하고 열심히 토해 내는 중이었다.
“클루제, 네 그릇된 욕망과 잘못된 수단에 죄 없는 많은 백성이 죽었어.”
“……크큭. 제, 제법이군. 자레드, 아주 제법이야…….”
클루제는 자레드의 지적이 무색하게, 그에 대한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하긴 너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행을 일삼으니, 하나도 미안하게 생각하지 않겠지.”
“자레드, 너 같은 녀석이 어떻게 지금까지 작은 영지의 영주로 있을 수 있었던 거지……?”
서로 동문서답이 오갔다.
자레드는 클루제의 악행을 하나하나 짚고 싶었지만, 클루제는 자레드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결국 마음을 접은 것은 자레드였다.
어차피 죽을 놈이 죽기 전에 어떤 소리를 지껄이는지, 시원하게 들어 보고나 싶었기 때문이다.
“클루제, 그게 그렇게 분해? 내게 패했다는 사실이?”
“아니. 네놈이 이기지 못할 적이라고 판단할 근거가 있었다면, 애초에 싸울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쿨럭! 쿨럭쿨럭!
대답과 함께 이어진 기침에서 클루제는 세 덩어리나 되는 핏덩이를 토해 냈다.
생명의 불씨가 무척 빠르게 꺼져 가고 있었다.
“애초에 너 같은 녀석에게 질 것 같았다면, 이런 함정도 만들지 않았겠지.”
“대단해. 이 반지의 완벽한 사용법을 아는 것은 나뿐인데…….”
“그건.”
자레드가 무의식중에 ‘그건 에서 얻은 지식이니까!’ 하고 말하려던 것을 참았다.
어차피 죽을 놈이라 해도, 굳이 자신에 대한 비밀을 알려 주고 싶지는 않았기에.
“클루제, 네놈의 머리는 효수될 거고, 시체는 대영지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백성들의 분노를 받아 내도록 만들 것이다.”
“큭……! 죽은 시체에 분풀이를 해서 얻는 게 뭐라고?”
클루제가 비릿한 웃음을 터뜨리며, 자레드를 도발했다.
어차피 죽을 마당에 자레드의 속이나 긁자는 생각으로 던진 멘트였는데, 자레드의 반응은 침착하다 못해 평온하기까지 했다.
“그래, 맞아. 얻는 건 없지.”
“네놈이 그런다고 해서 죽은 인간들이 살아나진 않는다. 클클! 네놈이 부족해서 죽은 사람들이야. 영원히 살려 낼 수 없지! 크하하하!”
죽기 전에 마지막 불꽃을 태우려는 듯, 클루제가 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자레드가 조용히 클루제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은 뒤, 그와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의 복부를 향해 힐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그사이에 회복된 마력을 바탕으로 트랜센던스로 강화한 힐 마법이었다.
“이게 무슨……?”
클루제는 다 죽어가는 자신을 살리려는 자레드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목숨이라도 살려 주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1초 만에 허황된 망상이 되어 사라졌다.
“넌 어차피 죽어. 하지만 네 입으로 죽여 달라고 애원하기 전까지는 절대 죽이지 않을 거야. 스스로 죄를 자백하고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고통을 겪어 봐.”
꽈아아악!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레드는 일시적으로 회복시킨 클루제의 오장육부를 다시금 움켜쥐었다.
그리고.
“쿨럭! 크어어어억!”
클루제는 내장이 불타오르는 듯한 고통을 견뎌 내지 못하고.
“우우우욱!”
신음과 함께 검은 핏물을 토해 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절대로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
그야말로 생지옥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