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ing a human empire by creating a clan RAW novel - Chapter (11)
권속 생성으로 인류 제국 건설 12화(12/185)
이튿날이 되면 레오, 라는 이름의 어린 개척민을 데리고 밭을 돌아다녔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의식주였으니 이를 확인할 셈이었다.
‘경작지가 셋으로 구분되어있군.’
삼포식 농업이었다.
하나의 농지를 춘경지, 추경지, 휴경지 셋으로 나눈다.
봄이 되면 춘경지에 보리나 귀리, 콩을, 가을이 되면 추경지에 밀, 호밀을 심고 휴경지는 이름 그대로 쉬게 두는 방식이다.
밀, 호밀이 주식이니 그것만 심으면 되지 않냐고 물을 수 있는데, 인공 비료가 없는 세상이니 밭의 지력 소모를 감당할 수 없다.
밀, 호밀 등을 수확하면 지력이 떨어진 밭은 한 해 이상 쉬어야 한다.
삼포식 농업은 밀, 호밀 등이 흡수하는 영양소와 다른 영양소를 흡수하는 작물을 심거나 지력 회복을 도와주는 작물을 심어 생산량을 높이는 농사 방법이었다.
‘밀, 순무, 보리, 클로버 순이었나. 4윤작법이?’
나는 삼포식 농업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4윤작법을 생각했다.
이 세계에서 4윤작법이 개발되려면 한참 남았다.
기억하기로 20년 뒤쯤 제르마니아에서 개발되어 부분적으로 행해진다.
그들보다 훨씬 앞서서 4윤작법을 개척지에 도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놈의 업적 욕심 때문에 이 꼴이 되었지만, 그 욕심 덕분에 이런 것까지 기억하고 있군.’
데우스 엑스의 업적 중 최초 업적이란 것이 있었다.
진보된 과학, 기술, 문화, 제도를 최초로 도입하는 것이 업적 달성의 조건.
업적 달성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한 회차에 몇 개의 업적 조건을 달성했냐에 따라 패키지 업적이란 것을 주기까지 했다.
현실과 가상이 구분되지 않는 사실성은 가진 게임에서 그러한 업적이 얼마나 난도가 높았을지는 말할 가치도 없다.
혹자는 학습용 게임이 아니냐고 불만을 터트렸으니.
나 또한 욕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인생을 갈아 넣었다.
그깟 게임이 뭐라고, 인생을 갈아 넣으면서 한 회차에 모든 업적을 달성하려고 온몸을 비틀기도 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4윤작이 어떻고, 용광로가 어떻고, 캠축이 어떻고, 전생의 사회에서 쓸 일 없는 지식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문제는 알고 있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르다는 거다. 이전 회차에선 그나마 기반이 있고 새로운 작물도 퍼진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기반도 없고 작물도 직접 찾아다녀야 해.’
가령 4윤작에 필수적인 작물, 순무가 그랬다.
순무는 본래 이종족의 영토에서 자라다가 우연하게 인류에 퍼진 작물이었다.
워낙 재배가 쉽고 수확기가 빨라서 불과 몇 년 사이에 인류 문명 전역에 퍼졌지만, 지금 시점은 순무가 전해지기 이전이었다.
‘순무만이 아니라 감자도 전파가 안 되었겠지. 곤란한데.’
대평원 너머에 있는 이종족의 영역으로 한 번쯤 넘어가봐야하나?
문득, 이전 삶에서 유목민족이 왜 정주민족을 침공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인류 문명보다 수천 년 앞선 귀쟁이나 난쟁이의 땅은 노다지였다.
잠깐이라도 넘어가서 필요한 것 한두 개만이라도 건져올 수 있다면.
십 년은 걸릴 일을 그 한 번으로 끝낼 수 있었다.
‘대의제가 경계하고 있을 테니 지금은 참는다.’
아쉬움을 달래며 속으로 혀를 차고 걷고 있으면, 밭에서 돌을 치우고 있는 개척민들이 보였다.
“저것들, 쓰는 건가?”
손짓으로 밭 한편에 내려놓은 농기구 여럿을 가리켰다.
바로 쓸 것처럼 가져다 놓았는데 상태가 영 좋지 못했다.
철제 날이 부러지거나 끝이 뭉툭하게 변해있었다.
녹여서 재활용해도 모자랄 꼴의 농기구를 왜 두고 있나 싶었다.
“예? 아··· 딜런이 끌려가고 화덕이 부서진 뒤로 야장 일을 할 수가 없어서······.”
딜런은 대장장이의 이름이었을 것이다.
“귀쟁이들이 데려갔나?”
“아닙니다. 고블린입니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고블린, 덩치는 작지만 사악한 지혜와 무시 못할 머릿수를 지닌 족속.
인간보다 앞서서 문명을 이루었음에도 야만성은 몬스터와 동급이다.
녀석들은 항상 무리를 이루고 떠돌아다니며 약탈을 생업으로 삼았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자 인내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부족 혹은 왕국마다 누리는 문화, 기술의 격차가 컸다.
‘야장 노예가 필요해서 대장장이를 잡아간 건가.’
백 명 전후의 촌락에 대장장이 한 명은 중요함이 남다르다.
농사에 필요한 농기구는 누가 만들 것이며, 집을 지킬 무구는?
사냥에 필요한 촉을 만드는 것도 야공이고, 때로는 마을을 지켜 줄 성벽이나 제분소, 도르래 등 제련에 국한되지 않고 기술이 필요한 곳이라면 성직자 이상으로 불려오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 사람을 저들이 필요하다고 노예로 삼아 데려가다니.
‘다른 촌락도 타격을 입었겠군.’
전문 기술을 가진 사람이 흔하지 않은 시대다
개척촌 마다 대장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대평가다.
마침 평원이라 숲이라는 천연 울타리가 없었기에 마을과 마을 사이를 쉽게 오고 갈 수 있었다.
키슬러도 마을 간에 소통이 잦은 편이라고 말했고.
이런 환경이라면, 대장장이 하나가 인접한 여러 마을을 담당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터.
생각할 수록 터무니 없는 짓을 당했다.
나는 혀를 찼다.
“그나마 촌락은 남겨두었구나.”
“이삭은 남겨야 다음 해에도 수확할 수 있으니까요.”
체념이 녹아있는 말투였다.
나는 이 어린 개척민이 많은 고난 끝에 어른스러움을 터득했노라고 판단했다.
‘이삭.’
곡물을 추수할 때에 흘리거나 빠뜨린 낟알이 이삭.
전통적으로 이삭은 가난한 자의 것으로 여겨졌다.
가난한 자를 구제할 사회 제도가 없는 세상이니까.
땅에 떨어진 낟알은 너희 것이다, 라고 자비를 베푼 것이다.
목숨을 연명시켜서 이듬해의 세를 걷기 위해서.
‘인간이 고작 이삭 취급인가.’
인간이 이삭이란 말은, 자비를 베풂 받았다는 말이었다.
내년에 또 인간과 곡식을 수탈하기 위해서,
몇 안 되는 인간을 남겨두어 촌락이 붕괴하지 않게끔.
“같잖은 몬스터 주제에 멀리도 보는 구나.”
으드득···
나는 이를 강하게 깨물었다.
멀리서 보면 희극
내가 으드득, 소리 나게 이를 깨물자 소년은 당혹을 띄었다.
혹여 분노가 저한테 향할까, 겁을 먹고 얼른 말을 이었다.
“그, 그래도 땅이라도 좋아서 다행입니다···. 사냥당하지만 않는다면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으니까요.”
오로코 대평원은 비옥한 땅이니까.
티아마르만 아니었어도 진즉 먹혔을 땅이다.
괜히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이 땅을 얻은 것이 아니다.
이종족 따위에게 넘겨주기 너무도 아까운 땅이라 그랬다.
‘하지만 땅이 비옥하다고 농사가 무조건 잘 되는 건 아니지.’
돌을 치운 개척민들은 농기구를 들고 손수 밭을 갈았다.
빈약한 농기구와 인력으로 하는 밭갈이는 한계가 뚜렷했다.
흙이 무른데도 한 사람이 쟁기를 낑낑대며 끌어야 했기에 쟁기가 쉽게 끌리지 않았다.
그뿐인가? 대장장이가 없어서 고치지 못한 쟁기는 관리 상태부터 한심했다.
넓은 삽 모양이어야 할 끝이 뭉툭하게 변해서 애써 쟁기를 끌어봐야 흙을 뒤집기는커녕 옆으로 물리기만 할 뿐이었다.
쟁기가 흙 깊이 파고들지 못한 것은 당연하고, 저래서야 몇 사람이나 뒤에 달라붙어 나무 삽으로 흙을 다시 갈아야 했다.
시간, 인력, 효율 모든 면에서 답답한 모습이었다.
‘4윤작에 필요한 종자, 대장장이, 거기에 가축도 필요하겠어.’
저 고된 밭갈이를 소, 말 없이 인력으로 하는 이유야 뻔하다.
가축을 키울 수 없으니까.
키워봐야 빼앗기니까 키우지 않는 거다.
촌 외곽에 부수어져 흔적만 남은 울타리를 보았다.
한때 닭장이었을 판자가 너부러져 있었다.
약탈의 흔적이었다.
“고기를 먹은 지 얼마나 되었지? 사냥꾼은?”
“사냥을 할 수가 없어서 올해 들어 한 번도 먹지 못 했습니다.”
나는 레오를 내려다보며 이유를 물었다.
“엘프님들이 갑자기 숲의 출입을 금하셔서···.”
“사냥을 하지 말라고?”
“예. 그 외에도 나무님을 죽이지 말라고 화덕을 부수셨습니다.”
나는 기가 막혀서 허, 소리를 내고 입을 닫았다.
그러고 보면 개척민들은 모두 혈색이 나쁘고 살집이 별로 없었다.
일이 고돼서 그러겠거니 했는데, 영양 결핍이었다.
‘에코 파시스트 놈들··· 인간이 초식동물인 줄 아는 건가.’
고개를 돌려서 남쪽에 흐르는 강을 보았다.
숲이 안 된다면, 강도 다르지 않았겠지.
엘프란 그런 족속이니까.
나는 혀를 찼다.
“칼리오페!”
“예, 에다르 님.”
“새벽에 잡은 놈들, 아직 손질 안 했더냐.”
“예.”
“그럼 손질해서 나눠주도록. 내 안쓰러워서 가만 못 보겠구나.”
“알겠습니다.”
칼리오페가 새벽 사이에 잡은 동물은 모두 늑대였다.
내 가슴까지 오는 덩치의 늑대가 스무 마리나 되었다.
육식 동물인 늑대가 무얼 먹고 이리 컸을까.
나는 답을 알지만 떠올리지 않고 늑대를 도축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하나씩 들고 가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선물이다.”
개척민들은 손질한 늑대 고기를 앞에 두고도 망설였다.
눈동자에 아주 오랜만에 접하는 고기에 대한 탐욕을 담고서, 이상하리만치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종교적인 이유에서 발하는 것임을 알아챘다.
‘이 세계에서 인간들이 섬기는 신이 늑대의 신이었지. 잊고 있었군.’
늑대의 신, 호르비드를 섬기는 호르비드교.
편의상 늑대교, 라고 부르는 이 종교는 인류 문명의 거의 유일한 종교였다.
늑대의 신을 섬기고 있기에 힌두교에서 소를 숭배하듯이 늑대를 숭배한다.
늑대가 가축을 공격하고 인간을 잡아먹어도 감히 손대서는 안 된다.
인류가 정처 없이 떠돌아다닐 때 서남쪽 끝으로 이끌어 정착시킨 것이 늑대의 신이기 때문에.
‘늑대는 인간을 구원한 신의 아들딸인데, 손찌검하는 것이 말이 되겠나··· 였지.’
이종족에게 시달리던 인간들은 자신들을 해방한 늑대의 신에게 감사를 올리고 신앙을 바쳐야 한다는 것이 늑대교의 교리였고, 절대다수의 인간이 이를 받아들였다.
마법이 존재하고, 영적인 존재 또한 실존하는 세계다.
전생과는 달리 신이라는 존재가 설득력과 무게를 가졌다.
거기에 인간은 다른 종족과 달리 인간만의 신이라 부를 존재가 없었다.
드워프는 거장을 조상신으로 삼았다.
엘프는 세계수를 아버지이자 어머니로 삼았다.
오크는 그저 강한 자를 종족의 선지자로 삼았다.
그러나 인간은 거장이 없었고, 세계수도 없었고, 나약하기까지 했다.
호르비드는 늑대의 신인데도 인간을 불쌍하게 여기어 은총을 내렸다.
‘다 거짓이다.’
늑대교의 탄생 비화를 알고 있는 나는 그러한 사실이 우스웠다.
말하자면 너무 긴, 더러운 협잡의 역사를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호르비드는 결코 인간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다.
늑대교는 이종족이 인간을 쉬이 이용하기 위한 여러 수단 중 하나에 불과했다.
‘인간이 아닌 놈들이 만든 종교의 영향력도 몰아내야 한다.’
나는 그 방법을 잠시 생각하다가 칼리오페에게 턱짓했다.
늑대 가죽을 부드럽게 벗기던 칼리오페가 칼을 집었다.
햇빛에 칼날이 발사되어 반짝임과 동시에 죽은 늑대의 목이 바닥을 굴렀다.
“허억!”
이도 저도 못하고 서 있던 개척민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질 쳤다.
아침에 칼리오페가 광장에 쌓아 놓은 늑대의 사체에 기겁하고도 여전했다.
개척지의 잔혹함이 신앙심을 메마르게 했어도 신에 대한 경외는 남아있었다.
“에, 에다르 님···!”
개척민들은 그만하라고 애처롭게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나는 들은 체 만 체하며 칼리오페를 지켜보았다.
신앙을 흔들 때 필요한 것은 설득이 아니라 충격이다.
제가 믿는 신이 아무것도 아니요, 저를 돕지도 벌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충격이.
칼리오페는 늑대의 목을 들고 그들 앞에 내밀었다.
죽은 지 한참이 지났어도 잘린 목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개척민들의 얼굴이 자신들의 피가 빠져나가듯 파랗게 변했다.
“굶주림이 무섭나, 너희를 방관하는 신의 분노가 무섭나.”
머리를 빼앗아 개척민들에게 다가가자 다가간 걸음만큼 개척민들이 물러났다.
신의 자손이라 믿은 늑대를 하나도 아니고 무리째 목을 쳐 능욕하는 꼴을 보자 질려서 하늘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벼락이라도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꼬락서니에 나는 코웃음 치며 목청을 높였다.
“무엇이 두렵지. 이 개들의 아비가 벌을 내릴까 두렵나. 그럴 힘이 있다면 왜 너희의 기도에 답하지 않는지 생각해 보았나?”
나는 레오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녀석은 몸을 빳빳한 돌처럼 몸을 굳혔다.
“말해봐라.”
“시, 신께선 언제나 저희를 지켜보며 지켜주고 계시다고 하셨습니다. 단지··· 저희가 눈치채지 못할 뿐이라고······.”
“누가?”
“키, 키슬러님이 그러셨습니다.”
“촌장이 사제였나?”
나는 낮은 목소리로 웃음을 흘렸다.
“틀렸다. 키슬러도 속은 것이다. 신이란 놈은 너희를 지켜주지 않는다. 놈이 보기에 너희는 사냥감이다.”
“그건······.”
레오의 어깨를 꽉 쥐고 늑대를 가리켰다.
“봐라. 이 개들의 아비가 누구냐. 왜 자식들이 너희를 사냥하는 것을 말리지 않는 것이지? 이 커다란 몸을 봐라. 늑대가 풀을 먹고 자랐겠느냐? 너희의 형제자매를 먹고 자란 것이다.”
“······!”
레오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기 시작했다.
울음을 참는 것처럼, 입술을 깨물고 숨을 참았다.
그 반응에서 나는 레오라는 어린 개척민이 형제 또는 자매를 잃었음을 알았다.
“대체 어떤 신이 자신을 믿는 자에게 자손을 보내어 사냥하게 둔단 말이냐? 너희를 사냥감으로 보기에 그런 것 아니겠느냐.”
손질된 다리 살을 뜯어 레오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것은 죄가 아니다. 합당한 복수지.”
그리고 손을 이끌어 펄펄 끓는 물이 담긴 솥 위에 뻗었다.
레오는 내가 지시하는 바를 눈치채고 눈을 질끈 감았다.
손에 힘이 풀리고, 퐁당 소리와 함께 다리 살이 물에 빠졌다.
부글거리며 끓는 물의 표면에 기름이 동동 뜨고 진한 냄새가 풍겼다.
우습게도, 신에 대한 모독은 누린내 나면서도 구수한 고기 냄새로 돌아왔다.
“신의 분노가 느껴지던?”
레오는 떨면서도 실눈을 뜨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웃으면서 녀석의 등을 쳐서 돌려보내고, 내게 집중된 시선을 하나하나 마주 보았다.
꿀꺽······
고기가 끓는 냄새에 누군가가 본능을 참지 못하고 허기 속에서 침을 삼켰다.
침뿐일까, 꼬르륵 배곯는 소리도 들렸다.
‘굶주림조차 채워주지 못하는 믿음이 무슨 가치가 있지?’
나는 말 없이 비웃었다.
“나는 내 땅에 사는 너희를 지켜주겠다고 말했다. 내 땅에서 사는 인간은 늑대를 섬기지 않는다. 인간은 인간을 섬길지언정 동물 따위를 섬기지 않는다. 이 말을 따를 수 없다면, 당장 떠나라.”
“······.”
누구도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동자를 떨며, 어깨도 떨고, 다리도 떨어 두려움을 내보냈다.
끝의 끝까지 남은 신앙심이 버려지기를 거부하는 모습이리라.
나는 엄숙한 표정을 지우고 인자함을 드리우며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나는 너희들이 믿지만, 모습도 목소리도 드러내지 않는 자칭 신과는 다르다. 나는 여기 너희 앞에 있다. 그리고 너희가 사냥당하지 않도록 지켜주리라 약속했다. 그리고 너희가 굶주림에 못 이겨 이웃을 먹지 않도록 땅을 줄 것이다. 이래도 고민되느냐?”
떨림이 멈추었다.
개척민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고기를 받아갔다.
그리고 누군가가 레오처럼 끓는 물에 고기 한 점을 넣자 뒤따라 넣기 시작했다.
솥이 꽉 차서 물이 넘칠 지경이 되자 행동은 멈추었다.
“···호르비드시여.”
뒤늦게 또 누군가가 불안감에 늑대의 이름을 읊조렸다.
신의 자식을 범한 죄로 혹여 벌이 내려지지 않을까.
레오가 그러했듯 두려워하다가 이윽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불안은 사라지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후련함이 모두의 얼굴에 드러났다.
나는 그것으로 이들이 늑대에 대한 신앙이 사라졌음을 확신했다.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다.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섬기더라도 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해야지. 어떻게 개새끼 따위를 섬긴단 말이냐.’
푹 익힌 고기를 꺼내 나누어 받는 것을 보며 나는 울타리에 대충 몸을 기대었다.
남자아이가 약간 겁을 먹은 표정으로 다가와 내게 죽그릇을 건넸다.
“드, 드세요······.”
나는 죽그릇을 내려다보았다.
누리끼리한 나무 그릇이었다.
안에는 귀리로 만든 죽과 늑대 고기가 담겨있었다.
전생에서 귀리 하면 오트밀이었고, 오트밀이면 건강식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귀리는 가난의 상징이었다.
가축 사료로 쓰이는 작물이었고, 가축이 없으면 식량으로 썼다.
심지어 지금은 귀리 파종을 시작해야 할 때.
그릇 안에 귀리는 분명 작년에 수확하고 숨겨둔 것이겠지.
오래 묵힌 곡물이 어떤 맛을 내는지는 뻔하디 뻔하지만.
나는 그릇을 받아 한 입 먹었다.
‘맛없군.’
입안을 맴도는 꺼끌꺼끌한 귀리와 퍽퍽한 고기 맛이 날 뿐.
무심코 얼굴이 구겨지려는 것을 참고 삼켰다.
‘따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칼리오페의 사념이 읽혔다.
‘됐다.’
흙바닥에 주저앉아 식사하는 개척민들을 보았다.
그들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깟 비린내 나는 고기를 먹어서?
아니면 내가 저들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해서?
어느 쪽이든, 그들을 보는 내 속에서 착잡함이 솟구쳤다.
데우스 엑스를 게임으로 받아들일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가깝다 못해 가상이 현실이 된 지금, 나는 한낱 인간이었다.
인간이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사는 세상 속에서.
‘필요하면 노예로 잡아가고, 사냥당할 의무는 있으면서 권리는 없고, 신앙을 이유로 개새끼한테 물려 죽는 게 당연하다고? 인간이 얼마나 우습게 보이는 거냐.’
그것은 단순히 인간이 나약해서, 이종족이 포악해서가 아니었다.
인간 스스로가 저항을 포기하고 서로를 팔아 자신을 지켜왔기 때문이었다.
‘토끼도 궁지에 몰리면 여우를 무는 법이다. 그러나 이 세계의 인간. 왕이니 귀족이니 성직자니 하는 족속은 한 번도 문 적이 없지. 물어서 저항해야 할 때면 동족을 팔아서 안전을 추구했으니까. 그딴 마음으로 내가 왕이요, 귀족이요, 떵떵거리는 종족을 어떻게 원숭이가 아니라고 말할까.’
나는 끓어오르는 혐오감을 억누르며 미지근한 귀리 죽을 입에 마저 넣었다.
‘인간은 절대 이런 취급을 받아서는 안 돼. 인간은 노예로 부려지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인간의 잠재력은 무궁하다. 내부에서 깎아 먹는 기량을 하나로 모아 저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면. 그 어떤 종족도 결코 인간을 우습게 보지 못해.’
그러니 인류는 통합되어야 한다.
인류를 좀 먹는 기생충을 쳐내고 분열된 세계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