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ing a human empire by creating a clan RAW novel - Chapter (111)
권속 생성으로 인류 제국 건설 113화(113/185)
혼종 전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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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로키아 서부 해안을 따라 길게 영역을 가진 나라 체세나. 통상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이 나라의 수도는 티시레돈이라는 이름의 섬이었다.
티시레돈은 작은 섬 두 개를 간척으로 연결해서 건설한 도시였고, 농업이 불가능한 토양 탓에 인구 부양 능력이 떨어지는 도시이기도 했다.
하여 공화국이 제르마니아, 왈로키아를 넘는 해상 무역 국가였음에도 수도의 인구는 두 나라의 수도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16만에 불과했다.
그러나 왈로키아 남부의 소국들이 대의제로부터 무역 허가를 받기 이전까지, 공화국은 바닷길을 독점하다시피 했기에 부유함에 있어서 두 국가 못지않은 대국이었다.
“결국, 이렇게 됐군.”
눈이 툭 튀어나오고 이마가 벗겨진 남자가 원탁을 쳤다.
그는 원탁을 사이에 두고 앉은 아홉 명의 위원을 보았다.
“저 오만한 배교도가 이제 우리에게 이빨을 드러냈습니다. 어머니께 바쳐야 할 공물을 빼앗고, 우리의 권리마저 빼앗겠다고 겁박했지요. 대체 언제까지 우리가 참아야 합니까?”
위원들은 저마다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의 외모 또한 남자와 마찬가지로 눈이 튀어나오고 이마가 벗겨졌다. 거기에 목에 주름이 깊게 졌는데, 주름은 숨을 쉴 때마다 아가미처럼 열렸다가 닫히기를 반복했다.
“어머니께서는 무어라 하셨습니까?”
한 위원이 신관복을 입은 다른 위원을 보며 물었다.
신관은 눈을 감은 채 대답하지 않았다.
“왜 말씀이 없으십니까. 혹시 어머니께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 겁니까? 아니면 전하기 곤란한 말씀이라도 하신 겁니까?”
“······.”
“제국이라는 이름의 배교도들이 단속을 강화하고 있소. 제국 내 협력자도 몇 안 남았단 말이오.”
“······.”
“대책이 필요합니다. 이대로라면 수개월 내로 공물이 끊기게 됩니다.”
위원들은 신관을 향해서 불만을 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관을 제외한 위원 전원은 에다르 룬드링겐이 황제를 참칭한 이래 제국과의 전면전을 주장해왔지만, 그때마다 신관의 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막혀왔으니까.
열 명의 위원이 한 표씩 행사하며 국정을 이끌어가는 집단지도체제에서 신관은 유일하게 거부권을 가졌기에 그를 설득하지 않으면 안건을 통과할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이 어머니와 어르신들을 망설이게 하는 것입니까?”
신관은 눈을 떴다. 두 개의 눈동자가 각기 따로 움직이며 위원들을 훑었다가 맨 처음 말을 꺼낸 남자에게 모였다.
“엔리코 도제. 우리가 제국과 싸운다면 승산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공화국에 해가 될 일이었다면 의제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제국은 공화국을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어찌 그리 장담하십니까. 제국은 교국을 무찌른 강국입니다. 비록 배교도이나 현실을 파악할 필요가 있어요.”
신관이 타이르는 투로 말하자 도제는 고개를 주억였다.
“교국이 제국에게 맥없이 패하였음은 저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공화국도 제국과 전면전을 벌인다면 내륙 식민지를 유지할 수 없을 겁니다.”
“그걸 알면서도 전쟁을 권한 겁니까?”
“공화국은 내륙 국가가 아니잖습니까.”
도제는 그의 대답에 신관이 미소를 짓자 목소리를 높였다.
“내륙을 상실하는 것은 작지 않은 손실입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공화국은 해안 지방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제르마니아, 왈로키아에 해금령이 내려진 이래 무방비하고 탐스럽게 익은 연안을 말입니다.”
위원들을 보며 말했다.
“공물조차 거두기 어려운 식민지와 수백 년간 온실 속에서 길러진 해안 지방. 둘을 교환한다고 가정했을 때, 누가 손해를 보겠습니까.”
도제는 목청을 높이며 탁자 위의 지도를 가리켰다. 지도에 그려진 것은 서남 반도 전역과 공화국의 무역로. 그의 검지가 제국의 해안가를 따라 움직였다.
“제국이 공화국의 내륙 영토를 원한다면 가져가라 하십시오. 그 대가로 우리는 제국의 해안에 있는 모든 것을 가지게 될 텐데 무엇이 아쉽습니까. 남부 소국 따위도 제대로 막지 못하는 배교도가 이 넓은 해안을 무슨 수로 지키겠습니까? 그렇다고 우리의 심장, 티시레돈을 노릴 수나 있겠습니까? 이곳이 육지와 얼마나 멀리 떨어졌는데?”
도제는 두 팔을 넓게 벌리며 티시레돈과 육지 사이의 거리를 몸짓으로 표현했다. 그의 행동에 위원들이 웃음을 지었다.
“그뿐입니까? 제국은 북, 서, 남, 세 방향에서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해안을 짓밟으면서 제국의 역량을 갉아먹기만 해도 제국은 감당을 못할 겁니다.”
“흐음···..”
“그간 공화국이 제르마니아와 왈로키아와 다투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종교가 다르되 같은 대의제를 섬기기 때문이었지.”
다른 위원의 말에 도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대의제에서 우리가 두 나라와 다투는 것은 금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배교자가 참칭을 한 뒤에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제국은 우리의 목줄을 쥐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두 개의 선택지만 남은 겁니다.”
제국의 겁박에 불복하여 공물을 포기하느냐, 어머니에게 바칠 공물을 얻고자 제국과 싸우느냐, 위원들은 망설임 없이 싸워야 한다고 소리쳤다.
“제가 장담하겠습니다. 공화국과 제국이 싸우게 된다면, 반년 내로 티시레논의 인구보다 많은 제국인을 씨 배양을 위한 공물로 바칠 것을. 그간 씨를 받지 못해 동족이 되지 못한 모든 시민을 위한 공물을 바치겠습니다. 그러니 제국에 대한 전쟁을 허가해주십시오.”
위원들은 그의 단호한 요구를 격한 박수로 화답했다. 박수를 치는 와중에도 모두의 시선은 신관에게 향했다. 혹여 그가 거부권을 던지지 않을까 걱정이 담긴 시선으로.
“어머니께서는.”
박수가 뚝 끊겼다.
“이번 사안의 중대함을 충분히 이해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신관은 한 손을 들어서 말을 막았다.
“어머니께서는 제국과 싸우게 되어 자손들이 상처 입는 것을 우려하셨기에 전쟁을 반대하신 겁니다. 그러나 사태가 더는 물러날 수 없음을 이해하셨기에 제게 따로 말씀하셨습니다.”
“······.”
“위원회가 진정 제국과 싸워 이길 수 있다고 확답한다면 제국과의 전쟁 결의에 더는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라고.”
“오오!”
위원들은 주먹을 꽉 쥐고 감탄을 토했다.
“안건을 표결하십시오.”
제국과의 전쟁 선포는 만장일치로 승인되었다.
그 순간 햇볕이 회담장에 쏟아져 위원들을 비추었으니 그들의 피부가 빛을 반사하여 비늘처럼 반짝였다. 그리고 목주름처럼 보이는 아가미에서 촉수 한 가락이 살짝 나왔다가 햇빛을 받자 도망치듯 안으로 숨었다.
댕—
그리고 마침 종소리가 도시에 울렸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나가의 신전.
신전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무수히 많은 인파가 모였다.
인파의 선두에서 정갈하게 흰옷을 입은 수십의 청년들.
댕—
청년들은 신전으로 들어가고, 군중은 계단 위에 서서 청년들을 배웅했다. 곧 신전 안에서 비명이 터지자 군중은 환호를 터트렸다.
위대한 종족의 씨를 받는 것이라.
“———!”
“—! ——!”
뜻 모를 비명이 한참을 이어지다가 그쳤다. 그러자 군중도 환호를 멈추었다. 청년들이 들어간 정문에서 다시 청년들이 들어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왔다.
청년들은 이전처럼 잔잔한 미소를 지었고 외형에 변화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의 피부가 조금 더 창백해졌고, 눈이 조금 더 튀어나왔음을 알 수 있겠지.
목 아래 주름이 생겼고, 주름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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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군.”
확실히.
공화국의 움직임은 빨랐다.
산상노인 누아딜과 보안군이 공화국의 상단으로부터 노예를 몰수하고 보름도 지나지 않아 제르마니아 동부 해안이 공격받기 시작했다.
이제 막 시작되었기에 소규모 해적단에 불과했다. 피해도 그리 크지 않았고. 허나 문제는 소규모조차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누아딜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르마니아, 왈로키아는 해안 방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네. 여태껏 해상으로 오는 공격이 없었으니까.”
해상으로 공격이 오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했다.
이 세계의 인류는 바다 진출이 극히 제한되었으니.
육로로 상납을 할 수 있는 제르마니아, 왈로키아는 해군 창설 및 해상 무역이 해금령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막혔다. 공화국과 남부 소국은 제한적으로 해군을 보유하고 해상 무역을 허가받았을 뿐.
이렇듯 바다로 침략받는 일이 없는데 방비를 왜 하겠나.
“대의제와 소모전을 시작한 뒤로 이종족의 선박이 출몰하는 탓에 나름의 방비는 했다만··· 솔직히 말해서 교국과 남부 소국 국경에 요새를 짓느라 벅차지.”
그렇겠지.
현대 지구에서도 해안 봉쇄는 어려웠는데.
이 시대에서 길고 긴 해안선을 어찌 막을까.
“급한 대로 두 총독부에서 해안 인근 거주지는 모두 소개령을 내렸네. 방면군 산하 권속을 해안 가까이에 배치하기도 했고 하지만 효과는 미미할 거야.”
“음.”
나는 두통을 느끼고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괜찮은가?”
상황을 보고하던 누아딜이 걱정스레 물었다.
“듣기 곤란하시면 다음으로 미루지.”
“계속해. 그것 때문이 아니야.”
라헬이 또 힘을 쓰느라 그런 것이었다.
봉기가 끝났어도 늑대교 신앙은 남아있으니까.
그녀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공교회를 선교했고, 그 과정에서 기적이랍시고 흔히 신성력이라 부르는 마력을 끌어 다 썼다. 아무래도 말로 떠드는 것보단 한 번 보여주는 것이 확실하니까 말이다.
“음··· 그럼 계속하겠네. 게하르드는 왈로키아 남부 국경과 맞닿은 공화국 식민도시를 점령하면서 서쪽으로 향하고 있어.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왈로키아 서남부에 공화국의 식민도시가 밀집된 반도가 있으니까. 거기를 점령하고 수도 티시레논을 압박할 의도로 보이는군.”
“그 말은 이쪽과 합류하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소린가.”
“그렇네.”
“그렇다면 오래 기다리지 않게 해야겠군.”
나는 관자놀이에서 손을 떼고 정면을 보았다.
정면에 공화국의 깃발이 휘날리는 요새가 있었다.
고지대에 성벽을 높게 올리고 성터 주위에 해자까지. 참 고전의 정석이라고 봐야 할 모양새다.
보고에 따르면 요새 수비군은 800명 정도로 규모는 별 것 없었다.
“에다르 님, 준비됐습니다.”
칼리오페가 제국군 소속 권속 분대를 이끌고 뒤에 섰다.
권속 3개 완편 분대, 즉 30명에 제국 근위처 7명까지.
이종족이 없다면 순식간에 점령할 전력이었다.
“잠시 대기하도록.”
돌입 준비를 마친 그들을 세우고 나는 오른손을 들었다.
각각 12마리의 말이 이끄는 중포 4문이 앞으로 나왔다.
출병 직전에 양산을 시작한 공성포.
제르마니아에서 선보인 청동 대포를 수차례 개량한 것으로 파괴력, 명중률, 이동 속도 등 모든 부분에서 그때 사용한 대포보다 월등한 성능이 기대되었다.
“얼마나 효과가 있나 실험해 보지.”
“포대 방열!”
그리고 4문에 불과한 육군의 공성포대를 지휘하는 인물은 군무부 산하 해군처 총장, 호레이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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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독
호레이쇼
Lv. 83
등급: A
특성: [권속], [항해술], [포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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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보는 누아딜의 표정이 이상야릇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호레이쇼의 등급과 레벨이면 누아딜, 게하르드 이상의 대우를 받을 법하건마는, 해군 없는 해군 총장으로서 지상에서 편제 미달의 포대를 지휘하고 있었으니.
“쏴!”
콰광—!
반년이 넘는 노력이 깃든 공성포가 불을 뿜었다.
포신을 늘리고 포탄을 돌에서 금속으로 바꾸었기에 명중률부터 확연하게 달랐다.
초탄이 정확하게 성벽을 후려쳤다.
“오호.”
누아딜이 눈매를 좁혔다.
포탄에 맞은 성벽의 표면이 후두두 떨어졌다.
제르마니아에서 쏘았던 돌덩이는 성벽에 금을 내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금속 포탄은 성벽을 박살 내고 있었다.
“수가 모자란 게 참 아쉽구만.”
나는 계속해서 성벽을 두드리는 공성포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쟁은 장기전이 될 거다. 따라서 당장에 저것밖에 없어도 곧 수가 충분히 쌓이게 될 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올리머스의 조병창은 돌아가고 있을 테니까.
“성능 확인은 이 정도면 된 것 같군.”
포격을 멈추려던 차에 성문이 열렸다.
“음?”
요새에서 서른 명의 기병이 나왔다.
누아딜이 어처구니 없다는 투로 헛웃음을 지었다.
“충격이 꽤 컸나 보군. 성안에서 버티지 않고 최후의 돌격이라니. 명예로운 죽음 같은 건가.”
“글쎄.”
【Lv. 38】
【Lv. 43】
【Lv. 39】
【Lv. 47】
“혼종이군.”
나는 기병대의 레벨을 보며 다시 손을 들었다.
이번에는 포병이 아니라 총병대가 앞으로 나왔다.
총병대의 수는 1개 중대의 절반을 조금 넘는 211명.
더해서 공성포와 동일한 숫자의 야전포 4문.
“너무 위험하지 않나?”
“괜찮다. 적당해.”
턱짓으로 총병대 바로 뒤에 권속들을 대기시켰다.
혹여 총병대의 효과가 없다면 권속이 기병대를 처리하도록.
“사격 준비!”
성문을 나오는 즉시 돌격을 시작하는 적 기병대.
총병대는 기병대 앞에 3열 횡대의 진형을 갖추었다. 1열은 무릎을 바닥에 대고, 2열은 다리를 조금 굽히고, 3열은 바로 서서 전방을 겨누는 진형이었다.
“흰자가 보이기 전까지 쏘지 마라!”
대열 우측 끝에서 중대장이 소리쳤다.
내 기억으로 그의 이름이 피에몬이었던가.
티투스, 라는 이름의 권속이 추천한 용병 출신의 인간이었다.
펑! 펑!
보병 지원을 위해 배치한 야전포가 불을 뿜었다.
그러나 야포는 공성포처럼 화끈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상대의 수가 적고 너무 빠르니까. 숙련도 낮은 포병이 맞추기엔 어려운 상대였다.
“대기!”
주변에 떨어진 포탄에 기병 몇몇이 놀라 대열에서 이탈했지만 그뿐.
서른 명의 기병은 포병이 긴장 탓에 버벅대며 장전하는 꼴을 보며 속도를 높였다.
저들은 눈앞에 나무 막대를 겨누고 있는 보병들을 보며 비웃고 있으리라.
대포를 접하는 것이 처음일 테니 머스킷을 그저 이상한 창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적어도 최후의 돌격치고 허무하게 죽지는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쏴라!”
타다다다다당!
그런 그들을 맞이한 것은 일제 사격이었다.
혼종 전쟁(4)
푸히히히히힝—!
말들이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적 기병은 총병대와 고작 십여 미터 남긴 거리에서 일제 사격을 맞았다. 머스킷의 명중률이 낮아도 이 거리에서 빗나갈 총탄은 몇 없었다.
“커, 어헉!”
서른 마리의 말은 모두 쓰러진 채 일어나지 않았다. 열댓 명의 기수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으나, 조금 전에 보였던 기세를 잃고 머뭇거렸다.
한순간에 눈앞에서 불꽃과 연기가 터지더니 살이 찢기고 동료가 죽었다. 정신이 받은 충격이 보통이 아니리라.
“······.”
총병대를 감싼 연기가 천천히 흩어졌다.
자욱한 연기는 흑색화약의 단점 중 하나였다. 연소 시에 연기가 지나치게 많아서 후속 사격의 조준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기병들은 흩어지는 연기 속에서 움직이는 총병대를 보았다. 화약 무기에 대해 몰랐으나 총병대의 행동이 탄환을 장전하는 것임을 알아챘다.
“이··· 이 개자식들!”
계속 멍청히 서 있으면 두 번째 사격을 당할 뿐.
뒤늦게 정신을 차린 한 기병이 창을 쥐었다.
【Lv. 43】
그는 왼팔에 총상을 입은 것이 고작이었다.
거기에 총병대와 기병대의 거리는 불과 십여 미터.
“위험한데.”
누아딜이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기병대의 돌격에 대비해야 할 총병대는 굼떴다.
첫 실전이니까. 그것도 전력으로 달려오는 기병을 상대로 겪은 첫 실전. 적의 수가 적었어도 한 박자 늦었다면 죽는 것은 그들이었을 테니까.
긴장감이 그들을 지배한 탓에 훈련을 잊어버렸다.
이제 막 화약이 든 카트리지를 총구에 기울여서 화약을 채워 넣었다. 몇몇은 손을 너무 떨어서 화약을 바닥에 흘리기까지 했다. 기병대가 걸어와도 그 전에 장전을 마치지 못할 꼬락서니였다.
“돌격해! 저 개자식들 죽여버려!”
기병이 총병대에게 달려들었다.
쾅!
그 순간, 기병의 가슴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렸다.
“······?”
기병은 멍청하게 고개를 내려서 구멍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서 옆을 보았다.
회색 연기가 걷히며 야전포가 드러났다.
풀썩
기병이 고꾸라지자 호레이쇼가 웃었다.
“잘했다. 그래. 이런 식으로 쏘면 되는 거야.”
모두의 관심이 총병대와 기병대에 쏠린 사이에 그는 야전포대로 달려가서 버벅대는 포병들을 지휘했다.
첫 포격을 빗맞힌 야전포대는 두 번째 장전을 마치고 남아 있는 기병대를 조준했다.
“계속 쏴라!”
쾅! 쾅! 쾅!
나머지 3문의 야전포도 불을 뿜었다.
거리는 십여 미터, 상대는 멀뚱히 서 있을 뿐.
직사로 맞추지 못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포탄은 주먹보다 작고 거리도 가까워서 관통력이 온전했기에, 제르마니아에서 대포에 맞은 이들이 보인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석제 포탄에 맞은 이들은 퉁퉁 튀거나 파편이 전신에 박힐 뿐이었지만, 금속 포탄은 육신을 뚫고 지면에 박혔다.
“내··· 다리, 내 다리!”
“억!”
“으아아아아악!”
3번의 포성으로 3명의 기병이 각각 다리가 뜯기고, 머리가 터지고, 옆구리가 터져나가 죽었다.
【Lv. 37】, 【Lv. 36】, 【Lv. 41】
포탄에 직격 당한 기병대,
【Lv. 4】, 【Lv. 6】, 【Lv. 5】
도화선에 불을 붙인 제국군 병사,
본디라면 절대 상대가 되지 못할 격차.
허나 머스킷을 쥔 이상 둘은 평등해졌다.
나는 모든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었지만, 파시메아가 만든 머스킷은 사람을 평등하게 만들었다.
“조준!”
“······!”
기병대가 야포에 놀라 멈칫한 사이에 총병대는 장전을 마치고 적을 다시 겨누었다.
“자, 자자잠···!”
“쏴라!”
타다다다다당!
두 번째 사격으로 기병대는 전멸했다.
숫자만 보면 211명으로 30명을 잡은 셈이라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방금 보여주지 않았나. 레벨의 격차를.
평생에 걸쳐 수련한 이들을 몇 달 사격 훈련을 마친 해방 노예 나부랭이가 손가락 두 번 까딱하는 것으로 사냥했다. 손실도 없이.
“이런. 생각 이상이군.”
누아딜은 흰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중얼거렸다.
“사거리, 장전 속도, 명중률··· 보완할 게 많지만, 저기서 수가 모이면 그런 단점을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화력이 나오겠어.”
“그걸 기대하고 만들었으니까.”
“권속 중에서도 수가 모인 총병대를 상대로 우위를 점할 녀석은 몇 없겠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권속 중에는 기병대와 같은 레벨이 수두룩하다.
개개인이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집단을 이루고 화망을 형성하는 총병대를 상대해야 한다면 어지간한 권속이라도 피해를 강요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자칫하면 지금 체세나 공화국의 기병들이 보인 꼴을 권속이 재현할지도 모르지.
“앞으로는 갑옷으로 꽁꽁 싸매고 돌아다녀야겠군.”
총알을 갑옷으로 막겠다니.
우스운 발상 같지만, 이들은 권속이다.
권속뿐만 아니라 권속과 동급의 강자도 마찬가지다. 맨손으로 강철을 우그러뜨리는 근력이 있으니까, 이들이 입는 갑옷은 거동의 불편함을 감내한다면 방어력을 무지막지하게 높일 수 있었다.
“미스랄이나 오리칼쿰으로 무장하는 방법도 있고.”
물론, 그렇게 무장할 수 있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주인이 바란 게 이런 거겠지? 화약 무기에 영향받지 않는 적을 우리가 맡고, 나머지를 인간들이 잡는 것. 그렇지?”
“그래.”
그것이 내가 의도한 바다.
제국은 권속 외에 이종족에 맞설 무력이 없으니까.
칼리오페 같은 비대칭 전력이 있으면 뭐하나, 상대가 작정하고 물량전을 강요한다면 그녀도 어찌할 방도가 없는데.
왈로키아에서 블라드를 사냥하던 때를 떠올려보자.
당시에 내가 동원한 권속의 수는 300명이었고, 평균 레벨은 30 중반이었다. 그런데 칼리오페, 파시메아를 제외한 권속은 80레벨에 이른 혈족 여럿을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내가 이런 상황을 역으로 당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나?
“너희는 분명 강하지만, 압도적인 물량을 뒤집지는 못해. 나는 대의제를 적으로 돌렸고, 대의제는 이종족 전체다. 따라서 나는 이종족 전체를 상대할 수 있는 물량을 준비해야 했지.”
화약 무기는 그런 목표에 적절한 수단이었다.
한 자릿수 레벨의 해방 노예가 30, 40레벨의 나가 혼종을 도륙한 전과로 효과는 입증되었다. 이제 조병창에서 무기를 찍어내서 제국군 전체를 무장시킨다면 육상에서 권속만 바라봐야 하는 상황은 끝이었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칼리오페.”
나는 그녀와 권속들을 요새로 돌입시켰다.
요새는 권속이 도착하는 즉시 항복했다.
공성포에 맞고 공황에 빠져 자살 돌격을 택했는데, 그마저도 허무하게 바스러지는 모습을 보았으니, 싸울 의지가 남아 있을 리가.
“포로는 어찌하겠나.”
“공교회에서 사제를 보내기로 하지 않았나?”
“음. 면죄부 판매원··· 이라는 좀 이상한 직업의 사제더군.”
이름이 카라마조프였나.
워낙 직업이 강렬한지라 이름을 기억했다.
“그에게 맡겨라. 내가 라헬에게 교화를 위한 사제를 요청한 것이다.”
“교화를?”
“공화국은 두 왕국과 다르다. 공화국의 시민은 본인들을 이종족하고 동일하게 여기는 사고관이 깊으니 주의가 필요해.”
나는 기병의 시신을 확인했다.
시신의 목 아래 주름이 꿈틀거렸다.
칼리오페가 칼로 주름을 베자 그 안에서 문어와 유사한 생물이 흐느적거리며 나왔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기병의 창으로 그것을 눌렀다.
“봐라.”
“이게, 주인이 말한 나가의 기생물질인가.”
기생물질이지만, 기생충과는 조금 다르다.
숙주의 양분을 착취하며 살아가는 시기는 처음 몇 년뿐. 성체로 자라면 숙주와 공생하며 점차 숙주를 기생물질과 동일한 생물로 바꾸었다.
“이것이 나가의 아종이기 때문에, 이것의 숙주가 된 인간 또한 나가의 아종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것이 공화국의 시민이 보기에 나가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라.
“···혈족의 종복이 되고자 하는 인간이 생기는 이유가 인간을 넘어서 이종족이 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지. 공화국 시민들이 그들과 똑같은 마음이라면···.”
“숙주가 되고자 무엇이든 하겠지.”
나가가 공화국을 지배한 방식이 그랬다.
인간으로부터 공물을 받고, 공화국을 간접적으로 지배하면서 충성심 높은 시민을 골라서 기생물질을 심고, 숙주가 된 인간이 완전한 아종이 되면 동족으로 대우했다.
“오크와 고블린은 인간을 번식 도구로 볼 뿐이다. 블라드와 혈족은 인간을 종복이란 노예로 부릴 뿐이고, 호르비드는 인간을 세뇌하고 존재 자체가 기만 그 자체지.”
“그것들에 비하면 아종으로 만들되 동족으로 대우하는 나가의 행태는 자비롭다고 볼 수 있겠군. 늑대교도 섬기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래, 자비롭지. 아종의 새끼를 만들기 위해서 인간을 배양 시설로 쓴다는 것만 빼면.”
“으음···.”
누아딜은 눈매를 좁혔다.
“이종족은 이종족일 뿐이군.”
“놈들에게 인간이 인간일 뿐인 것처럼 말이다.”
누아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죽은 기병들을 살펴보았다.
“그러고 보니 외모가 비슷비슷한 것 같네.”
“아종으로 변이가 진행될수록 외모도 변한다. 물고기처럼 눈동자가 튀어나오고, 피부에서 털이 빠져나가고, 비늘, 아가미도 생기지.”
이러한 변이는 이종족이 인간 사회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는 의심을 일으키기에, 얼굴까지 비늘이 덮인 혼종은 공화국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교국의 기사단이 혼혈이란 정체를 숨긴 것처럼.
“성벽은 포로들로 하여 보수하도록 해라. 당장 화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뿐이니까. 한동안은 저 고전적인 성벽이 유용하게 쓰일 거다.”
내가 굳이 공화국의 수도로 직행하지 않고 내륙 거점을 모두 정복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요새 수비병을 내버려 두면 후방 약탈을 시도할 우려도 있었고, 요새를 점령하면 내륙 방어를 위해 사용할 수도 있으니까.
지금처럼 해적이 내륙까지 침투하는 상황에서는 쏠쏠한 도움이 될 터.
“다음은 어디지?”
“여기서 반나절 거리에 도시가 하나 있습니다.”
칼리오페가 대답했다.
“오늘 중에 점령한다. 이동 준비해라.”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