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ilding a human empire by creating a clan RAW novel - Chapter (12)
권속 생성으로 인류 제국 건설 13화(13/185)
변화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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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나 키슬러가 올리머스로 돌아왔다.
일단의 개척민이 그의 뒤를 따라 함께했다.
라에라곤이 사냥 왔을 때 도망쳤던 개척민.
포고를 듣고 각 촌에서 합류한 개척민.
그 수가 다 합쳐서 300명에 가까웠다.
‘너무 많구나.’
키슬러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으나 속으로 걱정했다.
탈주민이야 본래 올리머스의 촌민이었으니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문제는 각 촌에서 합류한 이들이었다.
올리머스는 개척촌 중에서도 규모가 작은 편이었다.
이들을 수용할 수 있을까, 그것이 키슬러의 걱정이었다.
‘영주님이 오시기 전이었다면 거절했겠지만. 영주님이 계시는데 내가 멋대로 이주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몇몇은 각 촌에서 포고가 사실인가, 확인하고자 따라온 이였지만, 대부분 올리머스에 정착하고자 이주한 이들이었다.
‘영주님 주변이라면 더 안전할 거란 생각이겠지.’
키슬러는 수레에 아이와 짐을 얹고 끌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자식이 있고, 한창 밭을 갈아야 할 시기에 이주를 결심한 이유가 무엇일까.
라에라곤의 사냥은 가벼이 여길 정도로 무거운 약탈을 당한 탓이다.
키슬러는 이종족의 손에 불타고 부서진 촌락을 떠올리며 작게 한숨을 뱉었다.
‘호르비드시여. 어찌하여 우리에게 시련만 주시나이까.’
신앙심 따위 한 점 남지 않은 푸념을 마음속에서 습관으로 읊조렸다.
키슬러는 늑대교의 젊은 수도사 시절, 교국에서 촉망받던 인재였다.
하지만 문득 인류를 서쪽 땅에 인도한 선지자처럼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신의 계시를 받아 인류의 양치기가 된 선지자처럼 되고 싶었다.’
그것이 헛된 꿈이요, 현실의 매서움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형제들의 만류를 들었어야 했어.’
수도사에서 개척민이 되고 10년보다 더 많은 시간이 지났다.
스무 살에 품었던 맹렬한 신앙과 억센 열정은 빛을 잃었다.
키슬러의 삶은 그저 하루를 살고 또 다음 하루를 사는 것뿐.
죽음이 아직 그를 데려가지 않았기에 삶을 겪고 있을 따름이었다.
‘허나······.’
키슬러는 에다르를 떠올렸다.
말발굽이 얼굴을 스칠 때도 초연했던 젊은 영주.
엘프의 왕자 앞에서 당당하게 제 것을 주장한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째서 내가 그때 신앙을 느낀 것일까.’
말고삐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잊고 있던 그때의 영적인 감응이 다시 마음 한편을 자극했다.
가슴에서 퍼지는 전율이 몸을 떨게 하였고, 목에 힘을 주어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니. 지금은 헛된 생각을 할 때가 아니야. 오늘 올리머스에 도착하면 영주님에게 이주민에 대해···.’
키슬러는 고삐를 당겨 말을 멈추었다.
“응?”
“무슨 일이요?”
뒤따르던 이들이 따라 멈추고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변이 일어났나 얼굴에 불안감이 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라고 답하려던 키슬러는 입을 뗀 채 눈을 깜빡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바뀐 올리머스의 풍경이 보였다.
키슬러는 잘못 온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혼란스러웠다.
‘없던 건물이 한두 개가 아니야. 저 집은··· 영주관인가?’
올리머스 외곽에 목조 주택 한 채가 있었다.
단층에 정사각형으로 꽤 크게 지은 주택이었다.
촌민의 가옥 네 채는 합쳐야 비슷하지 않을까.
주택을 중심으로 바둑판 형식의 구역이 길고 넓게 나누어져 있었다.
울타리처럼 출입을 막는 것은 아니고 고랑을 파서 경계를 표시했다.
‘무슨···?’
개척지는 물론이고 내륙에서도 이런 경우는 드물었다.
공유지든 사유지든 영지는 하나의 공동체였으니까.
토지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드물었다.
특히 농토를 직사각형으로 나눈 것은 처음 보았다.
“음···.”
젊은 영주의 뜻을 짐작하지 못하고 시선을 고랑을 따라 내렸다.
고랑으로 구분한 구역은 남쪽에 있는 강까지 그어졌고, 강에도 목조 건물이 하나 있었다.
키슬러는 건물 안에서 막 나오는 촌민을 발견했다.
촌민은 두 손에 유기를 들고 있었고, 유기에는 하얀 가루가 담겼다.
그 가루가 밀을 빻아 만든 것임을 키슬러는 알아챘다.
‘제분소를 고쳤나.’
엘프들이 올리머스에 찾아와 숲의 출입을 금할 적에 본보기로 대장간과 함께 부순 것이 제분소와 공용 화덕이었다.
대장간과 달리 제분소와 화덕은 품이 남는다면, 대장장이가 없어도 어찌어찌 고칠 수 있는 시설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고블린, 오크와 같은 족속의 약탈이 이어진 탓에 품을 놀릴 수가 없었다.
다음 수확까지 버틸 식량이 모자랐다.
숲 인근이나 강가를 뒤지며 허기를 채울 식량을 구해 다녀야만 했다.
찬물에 불린 귀리로 배를 채운 것이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연기··· 숲의 출입이 가능하니 땔감도 구했겠구나.’
화덕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이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 어째 빵 굽는 냄새가 나는 착각이 들었다.
고기조차 입에 대지 못한 것이 한참 전인데, 갓 구운 빵은 언제 먹었던가.
끝없이 내리막길을 향하던 삶이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전의 근심은 잊고 키슬러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벌써 이렇게 손을 쓰시다니. 놀랍군요.”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으음··· 그랬으면 좋겠습니다만.”
이웃 개척촌에서 동행한 촌장들이 숙덕였다.
그들 또한 올리머스의 상황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터였다.
모든 것이 부족한 개척지에서는 상호 교류가 필수 불가결이니까.
올리머스에서 탈주민이 왔을 때는 올 것이 왔구나 싶었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영주가 부임하고 엘프들을 내쫓았다는 말을 들었다.
믿고 싶으나 믿기 힘든 일이었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자 동행했다.
‘직접 본 나도 믿기 힘들었는데 보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믿겠나.’
키슬러는 촌장들의 의심을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작은 실수 하나로 모든 것을 잃는 것이 개척민의 삶이다.
오히려 이들이 벌써 마음을 풀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특이한 것이었다.
“저 분들은?”
“복장을 보면 영주님의 가신으로 보입니다만···.”
촌장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촌민들과 다른 몇몇이 보였다.
그들은 누비 갑옷을 입거나 허리에 무구를 차고 있어서 촌민과 차별되었다.
키슬러는 그들 중에 에다르가 부임했을 때 동행한 남자를 밭에서 발견했다.
‘가신이 밭일을?’
밭뿐일까.
벌판에 임시 가마를 설치하고 벽돌을 굽고 있는 사람, 숲에서 벌채한 목재를 영주관 옆에 쌓고 있는 사람, 저 끝에 나무 괭이를 쥐고 고랑을 만들어서 구역을 긋고 있는 사람까지.
촌민보다 배는 빠른 움직임으로 각자 맡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에다르의 가신이었다.
‘귀족이나 다름없는 가신이 천한 것들이나 하는 일을 하다니.’
마을의 변화를 목격했을 때 못지않게 놀랐다.
키슬러는 수도사가 되기 이전에는 변경 귀족의 자식으로 살았다.
따라서 나름 기사요, 영주의 가신이라 콧대 높이는 이들이 몸에 흙 묻히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영지 간에 분쟁이 일어나 대치할 때도 참호를 파거나 그 안에 들어가는 것조차 싫어하는 유사 귀족 나부랭이였다.
아무리 손이 부족한 곳이라도 저리 열성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키슬러는 가신들의 정체를 의심했다.
‘용병인가?’
그리 고민하면서 올리머스로 향하면 곧 젊은 영주가 보였다.
“에다르 님.”
키슬러가 말에서 내려 다가오자 갑옷을 입은 여성이 막아섰다.
그녀가 라에라곤과 일전을 겨루어 우세를 보였던 기사임을 떠올렸다.
아름답지만, 얼굴에 표정이 없었고 푸른 눈동자가 키슬러를 향하자 영혼까지 시리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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